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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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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은 늘 외롭다. 아니, 외로움은 항상 잠을 쫓는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그걸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아채지 못한 척 했다면 어쨌든 참을 수 없다. 스스로를 속인 셈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은 시간이 둥둥 떠다니며 기억의 분해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대로 이해하며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겪은 경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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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은 늘 외롭다. 아니, 외로움은 항상 잠을 쫓는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그걸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거나 알아채지 못한 척 했다면 어쨌든 참을 수 없다. 스스로를 속인 셈이다.

그렇지 않다고 믿은 시간이 둥둥 떠다니며 기억의 분해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대로 이해하며 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겪은 경험이라도, 두 이야기는 결코 같지 않다."

 

많은 생각으로 고단했던 옛 전쟁의 상흔이 잊혀지고 평온을 되찾을 때 즈음, 새로운 전쟁터가 열리곤 한다. 그 전쟁 역시 속임수로 무장한 채 들어온다.

그때, 전쟁터에서, 불현듯, 어쩔 수 없이.

w******1 2015.01.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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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도입부와 철학적 상념들『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하비에르 마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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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 문학과지성사  강렬한 도입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철학적 상념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최근에 접한 책들 중에서 가장 도입부가 강렬했다. 주인공 빅토르가 우연히 만난 하룻밤 상대 - 게다가 2살 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 와 뭘 해보기도 전에 그녀가 죽어버린 얼떨떨한 상황. 그리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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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 문학과지성사

 강렬한 도입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철학적 상념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최근에 접한 책들 중에서 가장 도입부가 강렬했다. 주인공 빅토르가 우연히 만난 하룻밤 상대 - 게다가 2살 난 아기가 있는 집에서 - 와 뭘 해보기도 전에 그녀가 죽어버린 얼떨떨한 상황. 그리 가까운 관계도 아닌 그녀와 오늘 하룻밤을 맞이하게 된 일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품 안에서 어떤 이유도 깨닫지 못한 채 죽은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그리고 불가항력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는 무심결에 자신의 흔적을 없애고 아이는 남겨둔 채 빠져나온다. 그는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기억을 조작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위선적인 생각을 품는다.

 

  갑작스레 찾아온 너무나 허구 같은 '죽음'과 예상 불가능한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녀와 큰 연고가 없던 빅토르를 용의자 혹은 방관자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 후에 오는 우연과 같은 상황들 - 가족들을 만나고, 인식하지 못 했던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자신의 전 부인과 닮은 매춘부를 만나는 - 은 삶이 얼마나 미스터리하고 우연한 것들 투성이인지 전하고 있다. 당황스러운 사건 앞에서 작가가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주인공에게 부여한 것은 '익명성'이었다. 대필 작가, 혹은 대필 작가의 대필 작가로서 생활하는 빅토르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데 특화된 익명성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작가는 빅토르의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표현하고 심리를 대변하면서, 그가 용의자로 들어서게 될 불안 속에 녹여놓는다.

 

  "남을 속이며 살거나 남에게 속고 사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야. (...) 뿐만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자연적인 상태야. (...)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항해서 열심히 투쟁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어."라는 빅토르의 말은 소설의 전체를 꿰뚫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있다. 삶은 너무나 불확실한 것을, 불확실하며 때로는 허구인 것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아둥바둥댈 필요는 없음을. 이것은 빅토르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와 그날 밤의 상황을 알게 된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서 전해지는데, 그 여자의 남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인간에 국한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본성임을 깨닫게 해준다.

 

  소설은 "내일 전쟁터에서 살아있을 때의 나를 생각하라. 네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라는 셰익스피어의 인용문을 반복하면서, 갖가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가는데,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와는 달리 속도가 꽤나 느리다. 고전의 향기를 물씬 풍기면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과 대화, 독백 등에 무거운 상념들을 여기저기 끼워 넣는데, 갑자기 들어온 상념이 뜬금없기도 하고 그 경계가 참 분명하게 보여서 읽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게 만든다. 그러나 딱 그 글만 잡고서 보자면, "이 작가, 장난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미스터리적 요소가 감돌긴 하지만, 철학적인 요소가 곳곳에 내재돼있는 꽤나 무거운 소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페이지를 술술 넘기기는 쉽지 않지만, 글맛이 좋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볼 예정이다. (남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 상' 수상작이며, 마르케스도 이 상을 받았었다.)

 

 

 

 

 

죽음이란 종종 확언이나 행동 때문에 일어나는 수가 있다. 반면에 무지와 권태로 인해 늦추어지거나 사라지는 수도 있다. 그래서 항상 최고의 대답은 "나도 모르겠어. 확실히 말할 수 없어. 한번 기다려보지"와 같은 말이다. 따라서 기다려봐야 한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가 행하거나 결정하는 것, 또는 보거나 고통 받는 것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매 순간 그런 것들은 희미해지고, 비현실의 정도는 갈수록 커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것들은 스스로 희미해지는 길을 가고, 심지어는 그런 것들을 지탱하고 있는 순간들마저 사실상 그런 것을 억누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33p) 

 

 혼자 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잊히게 마련이야. 또한 혼자가 아니라 함께한 것도 거의 다 잊혀져. 우리에게 남겨진 흔적은 거의 없고, 그나마 얼마 안 되는 흔적에 관해서도 대부분 입을 다물어. 따라서 입을 다물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야. 사람은 자기 기억을 만드는 데 정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기억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어. 아이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은 쓸모없는 거야.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나 우리가 느끼는 열정이나 고통도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며, 이내 시간이 지나면 잊혀. 쌓인 눈처럼 미끄럽거나 지금 아이가 꾸는 꿈처럼 모두 순간적일 뿐이야. 나는 지금 문가에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아이는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 알게 되지도 않을 것이며, 기억하지도 못할 거야. 거의 미지의 인물인 내가 아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은 사라질 기억에 불과해. 아이와 나는 기억의 분해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거야. (87p)

 

 아마도 내가 찾던 것은, - 내가 음식을 씹으며 위선적인 눈을 루이사의 가슴에서 떼는 순간 불현듯 생각났다 - 즉 내가 원한 것은 황당한 것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날 밤의 온당치 못한 내 출현을 보다 합당하고 당연하게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고, 따라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비열한 행위였다. 즉, 무엇보다도 사건 자체를 바꾸려는 것이었고, 과거의 삶을 조작하거나 단순한 정황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낭만적인 밤을 보낼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남자와 함께 인생의 작별을 고하는 것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았다. (224p) 

 

 모든 것은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외로운 방랑자'가 장황하게 자신의 혼란스런 생각을 말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자신의 부당함을 설명하면서 정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정의가 사회를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의 관점이 개인의 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의 관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시간이란 꿈이나 눈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항상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으며,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347p)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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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 2014.10.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