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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탄다. 그 사각의 공간, 불이 환하다. 자리에 앉는다. 눈을 들면 마주볼 수밖에 없는 긴장의 공간 사이로 초점 잃은 눈들이 허공, 어느 한 점씩 세 들었다. 책을 꺼낸다. 무언가를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허공에서 시선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위안이다. 낡아빠진 위안들이 무가지라는 이름으로 선반 위에 걸려있다. 그것은 흡사 명태. 늙은 사내가 그것들을 걷는다, 말없이. 책을 본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제목 아래로 벌거벗은 몸에 지하철 노선을 새긴 남자가 가드를 올린다. 그이의 가드를 뚫고 책장을 넘긴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지하철이 달린다. 김하진. 덜컹덜컹, 덜컹덜컹, 뉴욕 지하철에서 깬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용카드로 자신의 이름을 짐작할 뿐, 함께 들어 있던 사진 속 여자와 꼬마애가 가족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김하진, 말이 많다. 그는 책 속에서 뛰쳐나와, 마치 싸구려 외판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댄다. 악몽에 대해서 기억상실증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의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허나 그의 쉴 새 없는 주절거림이 어쩐지 슬프다. 그는 손에 승차권 하나를 쥐어준다. 뉴욕 지하철 승차권. 그는 또 말한다. 승차권을 받게 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한 남자가 목수가 된 딱한 이야기를, 지상으로만 나가면 정신을 잃고 다치기에 지하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처량한 이야기를, 지하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내의 기막힌 이야기를, 그저 아들의 생일을 챙겨주고 싶었을 뿐인 아빠의 슬픈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곤 속삭인다. 어쩌면 이 이야기들은 지하철 1구간 표 값의 가치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선택은 자유라고. 누군가는 그 승차권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받는다. 그리고 김하진은 승차권을 받은 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김하진이 들려주는, 아니 작가인 서진이 들려주는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종래 한국 문학에서 볼 수 없었던, 그가 등장시키는 빨간 모자를 쓴 난쟁이처럼 이질적인 이야기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종점에서 종점까지, 1구간의 단일 노선이었다면 서진의 이야기는 서너 번쯤 환승을 해야 하는 복잡하고 낯선, 그럼에도 흥미진진한 복합 노선이다. 잘 만들어진 노선표처럼 어지러운 환승을 도와주는 것은 서진이 빈번이 사용하는 ‘Fade In’과 ‘Rewind’ 등의 영화 용어들이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이 용어들은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주고, 그리하여 독자들을 안전하게 최종 목적지까지 안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서진의 이야기에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독자들은 끊임없이 되돌리기를 해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물론 서진이 자신의 소설에서 했던 절묘한 비유처럼 독자들은 덜 감긴 비디오테이프를 앞에 두고 ‘Rewind’ 버튼을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는 기로에 설지도 모른다. 물론 선택인 개인의 몫이다. 그렇지만 서진의 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몇 번을 되돌려서 읽어도 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소설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오버그라운드에 남아 있지 못한 모든 것들이 스며드는 언더그라운드처럼 악몽과 기억상실증, 희망과 절망, 유머와 공포, 냉소와 연민, 폭력과 희생, 도망과 죽음이 가득하다. 모든 요소들이 한겨레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이 칭찬해 마지 않은 ‘박진감 있는 서사의 전개’속에 적절히 들어가 있다. 또한 이 모든 요소들이 잘 조제된 환각제처럼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자들을 절망과 악몽이 넘실거리는 가득 찬 공허(언더그라운드)로 인도한다. 진정, 다시 깨기 싫은, 황홀경이다. 작금의 문학 위기론은 서사의 부재에 기인한다. 철학은 있으되 서사가 빠진 소설들은 뼈만 앙상한 생선처럼 독자들의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젊은 작가들은 신묘한 ‘이야기’로 가득 찬 소설을 만들어 내고 있고, 이제 서진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다년 간 ‘언더그라운드’에서 내공을 닦은 그의 등장은 분명 신선한 바람이 될 것이다. 그가 온라인상에서 남긴 몇 몇 작품들에 등장한 요소들, 마술과 난쟁이 그리고 장르문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장치들은 이번 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에서도 유효하다. 이는, 서진이 앞으로 펼쳐낼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기기묘묘하고 신통방통하리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일찍이 그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온라인상의 팬들이 열광한 것이 바로 그의 기기묘묘하고 신통방통한 이야기들 때문이었으므로. 책장을 넘기다, 순간, 눈을 든다. 지하철은 어둠 속을 달린다. 덜컹덜컹. 문득 불안하다. 책에서처럼 이것은 악몽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본다. 무심한 사람들이 무심하게 앉아 있거나 혹은 서 있다.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전자 피아노 소리. 창밖으로 언뜻 글자가 스쳐 지난다. Prove Yourself. 흡사 코니아일랜드에서 불어오기라도 한 듯, 한 줄기 바람에 짭짤한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은 악몽일 것이다. 눈을 뜨려 한다. 셋을 센다. 하나, 둘, 호흡을 가다듬고, 셋. 덜컹덜컹, 덜컹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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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 책이 재미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제목이 너무 딱딱한데다가 표지도 좀 지루해보였다. 한겨레문학상에 큰 관심이 없기도 한지라 그냥 그럭저럭 지나쳤다. 아마도 리뷰를 보지 않았다면, 평생 안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본 소감? 재밌다는 것이다. 소설은 특이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이야기. 그 남자는 기억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기억상실증. 그 이야기가 제법 속도감이 있어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괜찮다. 그런데, 헉! 갑작스러운, 조금은 실망한 반전의 등장.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도 일종의 트릭이었다. 소설은 빙글빙글 돌고 돈다. 그 도는 이야기가 은근히 슬프다. 미국에 이민 가서 실패한 가정의 이야기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통에 약간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끝에 가서 묘한 감동을 준다. 그래, 우리가 바라던 바로 그런 감동 말이지! 얼마 전에 본 ‘달의 바다’와 그 여운이 묘하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달의 바다’는 부드러웠다면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거칠게 다가오는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둘 다 좋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 똑같이 좋다. 작가 이름 서진. 기억해두련다. 더불어 미안하다는 말도. 책표지 때문에 오해해서 미안하다. 우리의 인연이 빙글빙글 돈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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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이렇게 이쁜 표지를 만들줄이야. 책을 구입한후 출퇴근을 하면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읽었다. 아주 독특한 문체의 새로운 작가가 탄생했다고 생각했다. 시니컬하고 반복적인 문체에서 그만의 독특한 글의 매력이 묻어 났다. 뉴욕의 지하철에서 같이 헤메이고있는듯한 느낌이랄까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집중하게 되어 길을 걸어가면서 읽을 만큼 집중력을 높이는 책이였다. 읽다보면 그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궁금해서 계속 빠져들게 된다. 책의 배열 자체가 앞을 읽고 뒤를 일고 해야 이어지는것이 꼭 영화를 보고있다는 상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날카롭고 직선적이며 당당하고 내 의견인데 뭐 어쩔꺼야 라는 식으로 강하게 나오는것 자체가 새롭다. 언더그라운드의 세계에 한발을 내딪는 느낌. 그래서 더욱 잊혀지지 않고 강하게 밀어 붙힌다. 한겨레에서 큰 작가를 발굴했구나. 앞으로 이 작가의 앞을 기대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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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서진 저 / 한겨레출판사(2007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 책은 2007년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학상 중에서 한겨레문학상은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아찾기'일 것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언더그라운드에 온 것을 환영한다' 는 뜻인데, 밝고 경쾌하고 가볍고 재미있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생각보다 무겁고 어둡고 답답하다. 이 책의 주된 배경은 지하철이다. 책 뒤표지에 있는 작가 한강의 평처럼 '아마 이 작가는 지하철 차창 너머의 음산한 어둠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을 기반으로 한 지하세계를 말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은 위험사회, 하층사회, 희망이 없는 부조리한 사회, 소수 약자들의 사회 등 소위 '마이너리티'를 말한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양지의 세계에서 밀려난 사람들, 평범한 삶에서 뒤쳐진 사람들, 마이너리티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대변해준다.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 살아남는 방법, 탈출하는 방법에 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 시작은 '자아찾기'일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언더그라운드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현명하게 탈출하기를 기대한다.
저자의 독특한 서술방식도 이 책의 품격을 높이는데 한 몫한다. 카세트의 플레이버튼, 되감기, 빨리감기, 멈춤 등의 기능을 적절히 사용한다. 처음 부분엔 이런 낯선 서술 방식에 어리둥절하지만 읽을수록 빠져든다. 기승전결을 모두 끝내지 않고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독자가 궁금증을 갖게 하는 마무리 방식도 좋다. 글을 쓰는데 참고했던 자료 목록까지 실어주어 한층 격을 높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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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서진 장편소설 / 한겨레출판
뉴욕의 지하철에 갇힌 사나이 김하진. 사내의 방황이 예사롭지 않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뉴욕의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마냥 사내의 기억과 환상을 오가며 사람의 살을, 영혼을, 한마디로 말해 삶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묻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지상에서 내려와 일정한 노선의 지하철을 피해 숨어든 그들만의 공간에 삶을 감추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지상을 향해 탈출을 감행한다. 돌아오는 것은 생채기. 그 자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묻는 주인공은 유령일지도 모른다. 이런 녹록치 않은 주제를 작가는 천연덕스러울만치 쉽게 이야기한다. 뉴욕 지하철의 일정한 속도감과 더러움. 코니 아일랜드의 놀이동산의 장난기 가득한 공기. 언더그라운드 곳곳을 배회하는 각양각색 두더지인간들의 속삭임. 소설은 가 보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보내주는 트랜스포터. 뉴욕에 가게 된다면, 특히 지하철을 타게 된다면, 누군가 슬쩍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라고 속삭일 것만 같다. 웬만하면 코니 아일랜드에서 원더 힐을 타고 대서양을 내려다보고, 센트럴 파크에서 피크닉만 즐길 지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코니 아일랜드를 헤매는 아내 잃은 남자와 센트럴 파크 아래 300미터에 펼쳐진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떠올리겠지. 가상으로 창조된 이야기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독자의 힘이다. 이 소설의 가독력은 그런 힘이다. 실로 튼튼한 작가의 등장에 힘이 솟는다.
서진 작가는 '언더그라운드 소설'에 존재해왔다. 독립출판을 하였고, 1페이지 단편소설이라는 소설 창작 모임을 운영한 것 등, 마치 언더그라운드 밴드 같이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느낌에서 그런 호칭을 붙여보았다.
그가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전국의 서점에 즉 오버그라운드에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를 올려놓았다. 가드를 잔뜩 올린 지하철 노선도로 무장한 인간의 형상으로. 이것은 도전도, 언더와 오버의 교류도, 등단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언더와 오버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사건이다. 사건이야말로 하나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존재다. 자유로운 당신의 이야기를 웰컴하는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쓸지어다. 끊임없이 오르는 누구들처럼.
마치 정신을 잃고 쓰러져도, 상처를 입고 지하철 어딘가에 널부러질 것을 알고도, 지상을 향해 오르는, 인생은 오르막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내리막을 지키는. 그런 이야기다. 그 지하의 웰컴이 무척이나 든든하다.
take care alex
당신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일 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일을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잠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떠났다. 기차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모두 떠났다. 인생에 시간표 따위는 없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멈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터닝 포인트를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사람은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감사하게 여기고 불행이 다가오면 다시 행복해질 미래를 기약하며 참을 줄 안다. 아, 교장 선생님의 훈시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실은 언제나 따분하게 들릴 정도로 단순하다. 당신은 어떤가? 한숨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신은 집값이 오를 때 덩달아 사는 사람이다. 행복할 때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불행할 때는 자기 비하와 연민에 빠지는 사람이다.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맨손으로 일궈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뉴욕은 그런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도시랍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죠.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그곳에 있으니까. 눈앞에 빤히 보이니까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지요. 하지만 그걸 가지기가 결코, 결코 쉽지 않다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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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 서진 / 한겨레출판
책을 열면 익숙한 용어들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예견해준다. Rewind(되감기), Fast Forward(빨리감기), Record(녹화하기), Pause(일시정지), Stop(정지), Skip(건너뛰기), Fade In : 점점 밝아짐, Fade out : 점점 어두워짐.
“때로는 진실로 살기 위해서, 당신은 몇 번 죽어야만 한다.” _Hubert Selby Jr.
덜컹덜컹, 덜컹덜컹. 저 멀리서 들리는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처럼 들린다. 사내는 지하철 안에서 잠이 들었었다. 눈이 안 떠진다. 13그램밖에 안 되는 눈꺼풀이 작동을 안 한다. 오직 귀만 열려있다. 사내는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런 적이 없었냐고. 악몽에 시달린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 없을 리가 없지.
사내가 지금 있는 곳은 지하철 안이다. 뉴욕의 코니아일랜드와 아스토리아 사이를 왕복하는 N트레인이다.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행선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내 이름은 뭔가? 왜 지하철에 앉아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다 이건 더 큰 문제다. 나는 누구인가?”
그는 그의 주머니를 뒤진다. 다행히 지갑이 있다. 신용카드에 금박으로 이름이 박혀있다. ‘KIM HA JIN’. 김하진이라. 그래도 사내는 그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분명 그의 이름일 텐데..매우 낯설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지하철 밖으로 나가는 길, 지상의 세계로 나가는 길이 두렵다. 용기를 내어 올라가보지만 번번이 되돌아오고 만다. 나갈 때 마다 몸 어딘가에 상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눈이 부시다.
뉴욕의 지하철. 24시간 운행이 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있던, 몸을 누이러 들어갈 집이 있든 없던 상관없이 지하철은 밤새 움직인다. 밤새 달린다. 소설의 무대는 사내 스스로 갇혀있는 지하철 외에 사내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이야기, 그의 가족들 이야기와 공사가 중단 된 지하철 터널을 장악하고 살아가는 지하생활자들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지하철 안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지하생활자들의 이야기는 따로 빼놓아도 한 편의 스토리가 될법하다.
소설의 제목인 ‘Underground’의 사전적 의미는 광범위하다. ‘지하’라는 뜻 외에 (예술의)전위적 경향(운동)이라는 의미도 있다. underground film은 반체제 영화를 뜻한다.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underground는 지하철, 지하생활자를 뜻한다. 덧붙인다면, 주인공인 김하진이라는 사내의 무의식을 표현했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가 의도했던 안 했던, 이 소설은 뉴욕의 방문객들에게 주는 뒷골목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매일 보아왔던,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뉴욕은 화려하지 않으니까. 섹스 앤 더 시티는 잊어라. 브로드웨이는 싸구려다. 그런데 당신은 아는지 모르겠다. 그 좁은 맨해튼 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높은 빌딩 때문이라는 것을. 그 빌딩들은 1970년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1900년대 초반부터 지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사내가 스스로 갇혀있는 지하철 이야기가 펼쳐진다. “Fun Pass 7달러면 하루 종일 무한정 뉴욕을 누빌 수 있다. 언제나 추가 비용 없이 버스로 갈아 탈 수도 있다. 투어 버스는 잊어라. 서울의 지하철보다 훨씬 어둡고, 지저분한 지하철을 타야한다.” 지하철을 타야만 뉴욕의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사내는 지하철을 탈출했을까? 기억을 회복했을까? 가족을 만났을까? “나는 눈을 감는다. 덜컹덜컹. 전철이 움직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해가 지고 있다. 어둠이 다가온다. 머릿속이 전철 소리와 함께 멍해진다. 마치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것만 같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와 함께 세상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만 눈을 떠야 할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뜰 수가 없다.” Rewind, Rewind, Rewind..... Fade O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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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소설을 표방하는 소설인데, 처음 1/3을 읽을때까지는 힘들었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고, 뭘 얘기하겠다는 것인지 더욱더 모르겠었기 때문. 더욱더 상대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내가 이틀전에 '조대리의 트렁크'를 읽고 감명받은 다음이었기 때문.
하지만 뒤로 가면 탄력이 붙으면서 속도감이 생긴다. 처음의 지지부진하고 엉키고 설킨 느낌이 줄어들면서 꽤 속도가 붙고 읽는 맛이 느껴지고 책을 놓기 힘들어진다. 특히나 뒤의 반전(!)은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하면서 책 전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게 한다.
천명관의 '고래'만큼의 스케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뉴욕을 무대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스토리 텔링 야부리실력은 인정. 두 번째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걸 보고나면 나름 '간이 명확'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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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분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쓰신 박민규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박민규식의 소설인가 하고 책을 폈다. 박민규님의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터라. 하지만 이건, 다르다. 박민규식의 소설과는 다르다. 사실 나는 삼미슈퍼스타즈 이후로 주변에서 평이 좋은 소설들을 읽어봤지만, 계속해서 갈증이 났다. 삼미슈퍼스타즈 만한 소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사실 이 소설도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간지러운 데를 시원히 긁어주는 소설은 아니었다. 일단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아 뭔가 이 소설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일단 소설 내용이 그렇다. 마치 한 편의 어두운 영화를 보는 듯한... 그러나 읽는 내내 적절한 긴장감을 갖고 독서를 했고, 너무 지루해지지 않게 속도감도 있는 거 같다. 작가의 의도는 먹힌 거 같다. 글 쓰는데는 영 재주가 없어서... 사실 나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뭔가 유쾌한 소설을 원하는 분들은 피하시길. 결코 유쾌한 내용은 아니니까. 뭐 결론은 괜찮았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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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잠시, 라고 생각할 때 시간은 멈춰주지 않는다. 그 잠시 동안 한 사람의 인생이 뒤바뀔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뿐이다.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막연한 미래를 기대하며 잠시 다른 일을 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하지만 당신은 변화하지 않는다. 당신은 잠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사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당신에겐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는다. 버스는 떠났다. 기차도 택시도 오토바이도 모두 떠났다. 인생에 시간표 따위는 없다. 인생은 오르막길이다. 멈추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며 내려간다. - 본문 56Ρ에서
* 잠시 동안만이야... 하고 자신의 현실에서 눈을 돌렸을 때, 사실은 그때가 바로 인생이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순간이란 말일까?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저 멈춰서 있는 다면 인생은 언제든 내리막으로 끌어내려진단 말인가, 미래와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그만두는 순간에 기회는 도망쳐 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으아, 때로 어떤 현실은 악몽보다 더 가혹하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원한다면 세상보다 더 빨리 더 먼저 변화해야 하는 이 지독한 현실. 그러니 그 성공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잘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그처럼 변화를 원했고 그리고 성공을 원했지만 지독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 인생을 그려내고 있다. 지상에서의 숨가쁜 인생에서 실패하고 지하 언더그라운드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인생. 소설은 힘이 있고 그래서 재미있게 읽힌다. 여기저기 조금 치기어린 부분도 눈에 띄지만 그것은 새로이 등장한 신인의 재기발랄함과 포부라 여길 만하다. 그리고 읽어나가면서 느낀 것은 한국어로 씌여진 한국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딱히 한국어가 아니었어도 무관한 그런 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배경이 뉴욕이기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는 그런 소설들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물론 어떤 나라도 그 나라만의 고유한 수식어라 무색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설에 앞선 영화가 그렇고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국가를 넘어서는 빠른 소통의 시대에는 국적은 점차 무의미해질 것이고 사람들의 사고 역시 국가라는 테두리로 해석하기 어려워질 것이니까. 물론 그 국가의 언어로 씌여지는 것이 소설이고 그 언어와 그 문화와 사고가 모두 글로벌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어가 가지는 사고의 고유성이 점차 흐릿해져 갈 것이라는 의미다. 시간이 흘러가고 세대가 변화하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당연히 전 세대들이 했던 이야기들과 달라졌고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각 세대들은 각 개인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이야기하게 되기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웰컴 투더 언더그라운드>의 작가 서진이 이제 앞으로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해올지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봐야 겠다. - 다락방에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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