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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처음 이 자매의 소설을 읽었었는지 뭘 첨 읽었는지 당근 기억도 안나지만 작가이름만으로 손이 가는 책이다. 나혜석을 얘기할 때 나오는 그 최정희...태어나니 아버지가 김동환 있었다는 자매. 김지원, 김채원 부모님은 일제시대를 겪고 자신들은 한국전쟁, 급성장기를 거쳤고 그것이 소설 속에 묻어 있다. 김지원은 어찌해서인지 이민가서 산다. 술 판매점을 하면서 계속 글을 썼더라. 꽤 다작이었던데...
여튼 난 촌스러운 사람이라 이런 옛날 여성작가의 소설이 꽤나 잘 읽히는 편이다. 김동환의 시가 중간중간 노래로 인용된 <돌아온 날개> 이외에는 거의 모두 여자, 남자, 생활 이야기다. 꽤나 현실적이고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그냥 그런,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이 소설집은 동생 김채원이 낸 김지원의 유고집 중 두번째이다.
<마술의 사랑> 조금 몽환적인 분위기 영혼을 여행한다는 마법사 여진, 한수, 운희가 주로 등장하는데, 짜증나는 삼각관계다. 여자는 친구고 남자는 양다리. 여진은 한수랑 결혼했는데 주부가 되어 괴롭다. 운희는 로맨스는 짧다는 걸 알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싶어하지만 한수랑 불륜관계이다. 나쁜 놈인 한수는 한 사람 사랑하기의 불가능성을 되뇌이며 운희에게 마귀때문에 높은 탑 꼭대기에 갇힌 공주 같다며 구애한다. 아마 여진도도 그렇게 꼬셨겠지. 사랑은 믿게 해주고 꿈을 주는 것인데 불가능한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해주는 마술같은 것이라는... 어쩌면 현실생활과 사랑은 공존불가인 것이다.
<한밤나그네> 영준 - 책임감은 없고. 여자는 좋고 나이가 들면 뻔뻔스럽게 옛여자에게서 새 길을 찾아보려는 나쁜 남자 경수 - 천진하게 자기밖에 모르지만 영주권 때문에 하옥과 결혼하고 자기식대로 쭉 사는 남자. 하옥 - 나아지길 원하지만 주변에서 원하는대로 살아지고 속으론 많이 말하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못한.. 슬프게도 세번 임신하고 세번 유산한다. 도미하여 이모 덕에 영주권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을 기대하고 경수와 결혼했을까... 이런 여자가 하옥 하나일까.
<바닷가의 피크닉> 작가가 아무래도 본인의 도미 경험을 글 속에 녹여내다보니 그런 식의 배경이 많은 것 같다. 아마 그 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이 그랬겠지만. 더 나은 삶을 바래 도미하고 거기서도 여전히 빡빡한 생활을 하고 그 생활 속에서 나름 자리를 잡으면서도 힘들고.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생활의 비루함이란....그러면서도 그 와중에 반짝임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애쓰게 되고. 호레이쇼라는 옛 고등학교 영어 교사가 미국으로 온 제자들을 재워주곤했었다. 그이가 결혼을 한단다. 한국할머니와. 그래서 제자들과 그 아내들이 함께 바닷가로 피크닉을 간 사이 이야기이다. 알고 보면 그 늙은 한국인 신부는 호레이쇼의 양아들이 할머니 아들이 자기 애보게 하려고 나름 수를 써서 호레이쇼와 결혼시킨 것이다. 호레이쇼의 선의는 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할머니가 바닷가서 본 애보는 할머니를 보고 뱉는 말들이라니 결국 인간이란...싶어진다. 별소득없이 대책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김선생 부부와 남편이 괴물같이 느껴지는 그 부인 정희의 심리묘사도 현실적이다. 마지막에 남편이 주워주는 조개껍질이 다시 살아가게 되는 힘이 될런지.
<잊혀진 전쟁> 촌스럽게 울 뻔 함. 외국생활을 하고 있는 화자가 한국전쟁을 회상한다. 피난길에 머물렀던 영희네에 대한 기억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전쟁 중에도 점잖고 인간적이며 예의가 있었던 사람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는게 전쟁인 것은 맞다.
<내노래가 꽃이면> 아내와 아내의 남편과 남편의 여자가 나온다. 셋째를 임신하고 무덤 속 사람처럼 살아가는 아내는 남편을 의심한다. 한때는 옆집 할아버지가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했던 소녀였는데... 남편은 빨간머리여자와 외도를 한다. 빨간머리여자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두들 괴물같지만...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여자는 아내의 옛이름 아내는 여자의 미래 이름
<돌아온 날개> 괴물을 만나면 먼저 대화를 해보겠다는 순진한 젊은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려는 셋째공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셋째 공주를 따라가주는 셋째 무사가 나오는 판타지다. 생명은 머릿 속에 산다. 결국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인가.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괴물은 남들과 다르게 생겼고 힘이 없어 힘들었던 존재가 독이 차올라 되었다는 것도 반성이 되고. 마음속에 왕국이 이는 선의의 젊은이 존재도 본받고 싶어졌다. 전체에 걸쳐 파인 김동화의 시가 많이 인용된다.
<늪주변>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하는 상희와 석현씨 사기꾼같지만 상희에겐 약속을 지키려했던 석현씨를 상희는 끝까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석현씨의 편지를 전하지 않는 스스로 잘했다고 여기는 상희의 똑똑한 언니 때문에.
<겨울나무 사이> 우진- 전에 하내랑 사겼는데 지금은 조금맣고 야무진 견주와 결혼해 나름 이루고 살고 있다. 하내를 결국 몰래 한번 안아본다. 하내 - 결국 친구 언주에게 우진은 뺐겼고, 자기는 더 낫게 살아보려고 언강과 결혼했다. 남편인 언강이 죽고 친구들을 만나러 잠깐 들어왔는데 우진을 보고 다시 흔들린다. 현실적인 대안인 탁도 생각해보고. 자신은 우진의 와이프인 언주처럼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대학 공부를 시작하기로..우와~ 언강 - 키 큰 남자인 언강은 하이힐 신은 하내의 키가 마음에 들어서 결혼했다. 너를 제일 예쁜 여자로 만들어줄거야 라면서. 결국 끊이없이 떠돌아다니며 여자를 만나고 그 중 하나에게 총맞아 죽는다. 하내의 시어머니인 언강의 어머니 의사 대단하다. 그 시대에 미국서 의사하는 한국여자. 시간이 나면 아들을 안아주려 했는데 못안아줬던 것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든 지려는...
언주 - 참 현실적인 ...나름 잘났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아줌마가 된.
싱글인 친구가 부럽지만 그 생각에 매몰되기엔 현실이 너무 무겁다. 자기걸 뺏길까봐 하내를 일찍 보내고 싶다.
<지나간 어느날 > 역시 뉴욕에 살고 있는 중년 연자가 화자다.
책읽는 걸 즐기고 아직도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현실에서 실행하지는 못하는 중간에 존케루악의 전기에 네줄 나오는 여자가 1년 반동안의 케루악과의 일로 한 권의 책을 썼다는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여튼 애인을 가진 여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던 연자는 막상 가진 것은 없지만 순수하고 도인같은 창준의 청혼은 거절한다. 그냥 자자고 했으면 좋았을 걸 하면서. 전쟁끝에 대부분은 불행했던 가정이었다는 화자의 정의는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보통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식구들도 분명 어딘가는 있었을텐데...나는 역시 겪지 않아서 모르는 것인가. 여튼 사람이 사는 일에 너무 매몰되고 달리게 되면 격이 떨어지고 재미만 추구하게 되는 듯. 창준을 놀래키고 싶어서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는 수림은 깜찍하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생활의 윤택정도는 달라지지만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인듯.
p33 운희는 대개 그 시간이면 도서관에서 돌아오든가 산책 겸 거리를 한 바퀴 걸어오다가 카페에서 차라도 마시던 습관이 있었으므로 마술사 앞에는 특별히 큰맘 먹고 서주는 것도 아니었다. 밤늦은 시간에 군중의 거리에 홀로 나서면 운희의 가슴속에 차오르는 의지 같은 것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 외롭게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인생의 느낌이 하나로 뭉쳐지는 듯한 그 기분을 운희는 사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항상 그런 상태에 놓아두고 싶었다.
p43 ... 운희는 그가 자기를 구해줄 기사가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을 발 앞에 엎드리게 할 인간도 아니며 또한 부자가 될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운희는 한수에게서 자기가 가진 한계를 보았다. 운희 자신이 공주가 아니듯 그도 여러모로 괴로운 한 인간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기가 운희는 힘들었다. 간간이 흐느낌으로 떨리는 전화 속 여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운희는 죽고 살 정도의 각오도 책임도 없이 한수 앞에서 부렸던 여자가 부끄러웠다. 자신이 때묻ㄷ고 더러워진 것 같았다. 마술사를 대하는 운희에게는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 내정신은 아주 건강해요. 아무리 괴로워도 까무러치거나 기절해 본 일도 없어요. 고통을 늘 생생하게 체험하고 괴로워해요. 자살 같은 것은 생각해본 일도 없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어찌나 건강한지 사랑에 빠지는 일조차 불가능한 것 같아요. 까막눈이 되어 사랑하는 것, 맹목의 사랑이란 것, 그게 안 돼요." ...... "마술이란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마술사가 될 생각을 했어요? 불가능한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해주는 것, 사랑도 결국은 그게 아닌가요? 믿게 해주고 꿈을 주는 것."
...... 불멸이라는 내 영혼이여, 외부로부터는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내가 이 인생에서 근본적으로 행복했다는 것, 외롭고 쓸쓸한 거 같으면서도 사실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늘 행복했었다는 것을 기억해다오. 햇볕 밑에 있는 모든 자연이 내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 오늘 밤의 내 방 풍경과 더불어 부디 아로새기어 다음 생 어느 날 꿈에라도 한번 보여다오. 그리하여 내가 지금 하는 노력을 그때에도 계속할 수 있도록. 여러 인생을 거쳤다면서도 아직도 해답을 모르고 갈팡질팡 흐르는 자신을 운희는 두 팔로 감싸 안았다.
p49 앉지 않고 왔다 갔다하는하옥에게면도하던 얼굴을 돌리고 경수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수건에 싸인 머리를 흔들어 털며 하옥은 소파에 쿡 앉았다. 남자가 섹스에서 얻는 만족은 어느 만큼일까? 기지개를 켜는 정도? 그보다는 더해서 참았던 오줌을 누는 정도? 땅이 흔들리는 정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정도.....? 이 아침 곤한 잠에 잠겼던 하옥은 경수가 자기 몸에 들어와 사정할 때쯤에 잠이깨어 분한 마음으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왔따. 겨우 오줌을 누는 정도의 만족이었든지 녹신녹신 천지가 혼미해지는 만족이었든지 간에 어쩌면 내 잠 같은 것은 조금도 상관 않고 - 더구나 불면증이 있는 줄도 잘 알면서 송장과 자듯 그렇게 일방적일 수가 있나 일거리가 많은 오늘 같은 날은 잠이 부족하면 빈혈이 이는 걸 생각하니 하옥은 화가 점점 더 났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 어찌나 현실적인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말도 않고 하라는 일을 하는 하옥까지도 완전 현실적이다.
p98 이와 같은 작은 조개껍질로부터 뜻 아니한 타인의 친절, 꽃, 정다운 말씀, 아름다운 사람, 노래, 날씨, 풍경, 한 번 지나가면 언제 다시 그 같은 것과 만나게 될는지 전혀 확신이 없는 때문이었다.
p116 사는 일은 제자리를 지키려는 노력만으로도 힘겹다고 도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근래에 영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비디오로 다시 보았는데, 클라크 게이블이 떠난 후 계단에 쓰러졌던 비비언 리가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하고 눈물 젖은 얼굴을 힘있게 들 때 도혜는 전에 볼 때와 달리 그 '내일'이란 것이 왠지 오늘보다 못할 것만 같았었다. 내일이란 꿈꾸는 미래가 살아 숨 쉬는 곳이 아니고 예측을 불허하는 위험하고 불안한 곳이었다. 오늘은 버틴다만 내일은 병가·가난· 늙음 같은 데 굴복하고 떼밀려가야 되는 듯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전멸할 수도 있는 현대의 삶은 생명의 가치가 없고 인간관계들도 잠정적일 뿐 느껴졌었다. 이런 세상에다가 내가 왜 아이를 데려왔을까 싶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리 쉽사리 부서지거나 추해지는 것이 아닌 듯하다. 원시의 인간들이 자연을 이겨냈듯 이 땅 위에서 그래도 한번 믿어볼 만한 것은 사람뿐인 듯하다. ....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옛 기억들이 살아나서 도혜는 혼자이다. 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너와 나는 각자의 기억을 간직하며, 그 기억의 조각들을 서로 맞추어도 그림 맞추기 게임처럼 꼭 맞아 들어가서 한 개의 그림을 이루지 않는다. 기억에 없는 일은 안 일어난 일과 같으며 정확하거나 틀리거나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에 관해 너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추억은 삶처럼 혼자 돌리는 물레이다. 인간 찬미의 감정에 북받쳐 도혜는 옆에 앉은 아이에게 말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다가 살아도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해 보여야 해."
p132 '아내'는 골목을 이리 돌고 저리 돈다. 마치매 친정집이 보인다. 모친과 올케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아내'의 발결음은 느려진다. 뭘 하러 내가 여기에 왔는가, '아내'는 주저한다. '아내'는 보이지 않는 끈에 매달린 공같이 친정집 문에 다가선다. 그 사람한테 딴 여자가 있는 거 같아 증거는 없어 하며. 모친은 너는 너무 잘 울지, 너는 너무 잘 웃지, 너는 너무 조용하지. 너는 너무 시끄럽지, 네 음식은 짜지, 네 음식은 싱겁지, 엄마는 여기가 이렇게 아프고 저기가 저렇게 아팠다. 네 올케가 나한테 이러고 동네 여편네가 나한테 저랬다. '아내'는 안다. 문제는 풀어진 것이 아니고, 자라야 될 일은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모친에게 진 빚은 하나도 못 갚았다. 빚쟁이같이 자신 없는 손가락으로 '아내'는 벨을 누른다. 어린 조카가 문을 연다. 이어 마루 끝에 섰던 모친이 달려 내려온다. 웬일이니 전화도 없이. 모친은 '아내'를 얼싸안는다. 죽음같이 질기고 숙명적인 포옹이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다. 모친은 딸을 조종하고 '아내'는 반항하면서도 모친에게 돌아간다. 모친에게로 되돌아가고 또 되돌아가서 조종당한다. 그러면서 어느덧 모친같이 변해간다.
; 어쩌면 이리 같을까 싶을만큼 이런 모녀 관계가 있다. 나는 물질적으로는 다 갚았고...정신적으로도 다 갚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저쪽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종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변하고 싶지 않다.
p133 빨간 머리 여자에게 '남편'이 말한다. "당신은 참 이상한 여자야. 나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지.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나를 염려하지도 않지. 너는 어디에서 그런 힘을 얻었을까. 너한테는 모든 게 자연스럽고 실망이 없지. 노력을 안 해도 그렇게 되지, 참." 칭찬을 받고도 여자는 가만 있는다. 웃지도 않는다. '남편'의 손길이 여자의 짧은 머리칼을 빗질한다. "아니면 이렇게 뭐든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더 편해서인가. 응? 우리 관계는 잠깐이고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응?"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묻는다. " 한계가 없는 관계가 뭘까, 혈육?" 여자가 말한다. "하긴 지속적인 관계가 되면 네 태도도 달라질지 몰라. 서로 자기가 좋은 형태로 상대방을 만들 궁리를 하겠지.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그렇게 했거든. 그래서 그 과정을 잘 알아."
; 뭐라 말할 수 없지만...<내 노래가 꽃이면>이라는 이 소설이 이상하게 뒷머리를 끌었다. 나는 남편을 한계가 있는 관계로 생각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든 최대한 덜 영향을 끼치고 싶다. 내 의도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의 변화는 내부에서 자신이 원해서 해야 맞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p162 " 잘못하다간 당신은 우릮자ㅣ 다 죽이고 말겠어요. 막내의 말처럼 그냥 숨어 있는 것이 낫겠어요. 당신은 참 무얼 모르십니다. 바보입니까?" " 바보라 하십시오. 그러나 바보는 무엇이든 할 수가 있고 자유롭습니다."
p167 "생명은 머릿속에 산다. 너희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으면 띵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지? 의식을 잃지 않니. 생각을 잃으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른다." "그렇군요." "인간들은 곰곰이 생각들을 ㅁ낳이 한다. 저한테서 나온 생각도 아닌 생각을 붙들고 쉬지 않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자기 라고 생각한다. 경멸스럽다. 나는 너희들한테 뭘 생각해야 될지 가르쳐주겠따." ...... "죽는게 무섭지? 너희들이 싫어하고 미워할수록 나는 힘이 꺽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독스러워진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생명을 애걸복걸하면서 픽픽 죽어갔다. 내 주변에는 죽음 뿐이다. 여자는 땅이다. 흙이 생명의 씨를 품어 싹을 틔워서 세상에 내보내듯이 너희들은 이 불모의 땅에다가 생명을 탄생시키거라. ..."
p189 "...땅덩어리가 합치고 혈육이 만나는 이 감격의 순간에 과거의 일이 정말 부끄러워지는군요. 인간은 가고 오나 우물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땅속에 줄기차게 솟는 샘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듯, 욕심 속에 지푸라기 날리듯하는 보잘것 없는 인간이나 민족은 영원불멸임을 알겠습니다." ...... "...저는 이 젊은이가 이 나라의 왕위를 계승하여 새로운 정치를 펴는 것을 보고 싶나이다. 변화가 있기 전에는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열 살 때 입던 옷을 스무 살에 입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것은 과감히 버려야합니다.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더 이상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 모를 때 죽음이 옵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납니다. 이미 있는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 새것을 건설할 수 없으며 우리는 작은 죽음을 겪어가면서 자라납니다...." ....... "...강물을 밀지 못합니다. 강은 저 스스로 흘러요. 이미 이렇게 되도록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왕국은 여기 내 안에 있습니다. 한번 내 안에 영접했으니 어디 가지 않는 귀한 내 것입니다. 물고기가 되어 바다를 헤엄치고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들말이 되어 들판을 달릴지라도."
; 감격의 순간에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작은 죽음을 겪어가면서 자라나서 결국엔 자신의 죽음에 도달하는 것인가. 왕국이 자신 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p193 "낯선 곳에 가서 나의 길을 찾아낼 수 있나 보겠습니다." "네. 꼭 찾아낼 거예요. 어디에 계시더라도." 공주는 젊은이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있다는 왕국을 볼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이 함께 춤추고 싸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평화로운 곳. 맑고 환하게 세부까지 보이는 젊은이의 왕국은 공주 자신 안에서도 태어나고 있었다. "당신은 언제나 우리들의 일부입니다. 가끔 잊을지라도." 말을 타고 떠나가는 젊은이에게 무사는 말했다. 젊은이의 왕국은 무사에게도 보였다. 스님에게도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그들 모두는 한나라 한겨레였다.
; 가끔 잊을지라도 우리에게도 젊은이같은 사람이 있고. 우리모두의 마음에도 각자의 왕국이 있으면 좋겠다.
p225 자기는 견주같이 우진과 살 힘이 없다고 하내는 생각한다. 같이 계속 있었다면 자기는 우진을 망치고 자신을 망쳤을 것이다. 망치다니 무엇을. 하내는 자신의 생각에 또 의문을 가진다. 좀 생각해봐도 구체적으로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진이나 자신이나 둘 다 지독히 미워하다 망쳐버렸을 것 같은 느낌은 확실하다. ...... 절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겟으나 열일곱에 오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내는 생각한다. 인생의 윤곽과 운명이 거의 정해져 있을 때 말고 가능성이 무한한 때 오는 것이. "밤에 누워 이불을 끌어 덮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타일러요. 내 생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죽음도 받아들여야 한다. 뭐든지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그럴 때에 무슨 절정이라니 이상해."
.......... ...진짜를 만나지 못하고 항상 임시인 듯 한 자리에 머무는 자신이, 모든 것을 그대로 믿으면 세상 빛깔이 달라지는지 알고 싶다. 보이는 그대로를 믿고 싶은 자기에게 또 하나의 의심많고 교활한 자기가 붙어서 모든 것은 순간일 뿐이라고 악마같이 속삭인다. 일순간의 즐거움으로 일생 신세 망치지 말라고 한다. 하내는 어려서도 진짜인 자기 엄마를 두고 어딘가에 있을 진짜 엄마를 그렷음을 생각한다. 또 자신도 어딘가에 있을 정직하고 귀엽고 착한 어린이. 거짓말 안 하고 어여쁜 아이. 어른이 된 지금도 하내는 생각한다. 진짜인 자신은 아직 먼 데 있고 자기는 거기 노력해서 도달해야 한다고.
; 끊임없이 정신머리없이 생각하는 하내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저런 생각했었는데...하고. 어쩌면 인생의 윤곽과 운명이 거의 정해져있는 하내의 나이 서른 일곱쯤이 절정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느정도 정해져서 혼란이 덜해서... 나는 사십이 먹은 지금도 아직도 자라고 있다고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짜 나에게 닿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p232 모르는 남자의 사진을 품고9이미 자기는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자기자리도 아닌 남의 과 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하내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자신은 혼자라는 느낌이었으나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오케이인 사람이 되고 싶다. 평범함이 소원이었다. 미국에서 선보러 왔다는 양갓집 아들과 낯선 땅에서 하내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힘을 모아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고 싶었다. 그저 오케이인 생활을.
; 평범함이 소원인 딱 저 생각. 나도 했었다. 그런데 실제는 어쩌면 난 달라 하고 살고 있는지도...
p274 ...저런 사람을 미워해 뭐하리 생각한다. 좋은 아내로 내 능력을 나타내 보이고 싶으니까, 그 외에는 다르게 내보일 아무것도 내게 없으니까 그걸 이루어보려 하면 할수록 -내가 당신 쪽으로 향해가면 갈수록 당신은 더 쫓겨가는 것 같아. 나는 줄에 걸린 인형같이 피곤해. 나도 화낼 권리가 있지. 그렇지만 내가 화내면 당신은 들어주는 게 아니라 도망가. 내가 당신이 뭘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면 당신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밖에 분명해지는 게 없어.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를 무시하듯 당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하는 것마다 반대로만 하려 하지. 우리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가야 할지 난 모르겠어. 내 열등감까지 합쳐서 엉망진창이야. 내 과일을 따 먹을 생각이 아니거든 내 나무를 흔들지나 말어.
p292 "...난 부러워. 나도 너처럼 새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언제나 누군가가 내게서 뭘 원해. 어떤 사람이나 일이 내 시간과 관심을 원해. 난 하고 싶은 데로 가서 뭘 할 수가 없. 니 처지가 좋은 줄이나 알아둬."
; 늘 누군가가 내 시간과 관심을 원하는 삶...낯설지 않다. 보통 엄마들의 삶...
p303 ....책은 모르는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일반화시켜 주는 친구였다. 남에게 말 못할 자신의 감정도 책에서 발견하면 확실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감정이 되었다.
p310 젊은 날 연자를 기쁘게 했던 일이 기쁘지 않은 대신 연자는 더 이상 남편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닫고 불평 않으려 노력했다. 행복은 자신에게 달렸다고 보았으며 요즘 닷새 동안 하는 아침 공부에서도 가르침은 그것으로 요약되고 있는 듯했다. 타고난 자기 자신을 좋게 만들어나가는 것은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임무같이 여겨졌다. 답답한 것은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옳고 좋은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다는 것과 이것이 내 몫의 삶이다 마음먹어 봐도 뜻대로 안 되는 일에 실망하고 일상 사는 무게를 견디기 싫은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나..아니면 연자나 나같은 아줌마만?
p324 ...연자를 비롯해 아이들은 일들을 많이 하고 학교에 다녔으며 어른의 어른인 듯, 어른들을 가엾게 여기고 쓸쓸해했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은 곧 증오스러운 사춘기로 이어졌다. 어른이 되면 성과 같이 견고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는 따뜻한 가정을 이루리라고 연자는 결심했고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지금의 결혼 생활이 어릴 때의 원을 푸는 것같이 후련했다. 그러나 가정은 또한 깊은 바닷속에서 어느 방향으로 헤엄쳐나가야 할지 모르는 무거운 수압에 갇혀 앞뒤로 흔들리기만 하는 것 같은 어찌해볼 수 없는 원인 모를 절망감도 연자에게 안겨주었다. ....... " 결국은 하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안 되기를 원하고 기도하고 그 길밖에 없어요. 생각이란 게 우리가 느끼는 결과로 나온 거지요. 우리한테는 은연중 얻게 된 나쁜 습관이 잇어요. 어떤 사람은 나쁘다. 어떤 종족은 원수다. 어떤 놈은 우리가 꼭 이기고 봐야 된다. 그런 게 자라는 동안 상식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아요. 서로 만나고 얘기하고 그 길밖에 없어요. 모를 때는 상대방이 더 무섭고 나쁘게 보이지요. 대화만이 유일한 길 같아요."
; 나도 연자같은데... 찬준처럼 살고 싶다.
p332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필요한 공간을 주는 사람들하고만 지내요. 참견하고 요구 많이 하는 사람이랑은 친해진 적이 없어요.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 어머니 하나로 족해요. "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실 수 있나 봐요." " 왜요, 걷잡을 수 없는 감정도 있지요. 그럴 때는 심호흡을 해요." ..... "그래도 괴로우면 새파랗게 맑은 하늘에도 구름은 지나간다고 그렇게 자신한테 이르지요."
p343 ...산다는 것은 여행길같이 정거장과 출발점의 연속인데 중도에 머물러서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수림도 지금 있는 고통의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라고 말했었다. .......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있으면 걸으면서 생각하고 자면서 생각하고, 그 사람 생각하느라 아무 일도 못하고 그러지 말고 맑은 거울같이 사물이 있으면 비추고 없으면 안 비추라고. 그런데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수림은 거울같이 되기 싫었다. 만일 거울이 되어야 한다면 한 가지만 비치는 거울이 되고 싶었다.
p347 하루의 끝 무렵 산이 검푸르게 변할 때 연자는 무거운 슬픔을 느꼈다. 산들은 웅기중기 서서 오늘 또한 지나갈 것이며,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참을성뿐이라고 연자에게 속삭였다. 지금은 전쟁하고 싶어도 전쟁할 때가 아니며 겸손히 참고 견뎌야 하는 때라고.
p353 ...하늘도 물도 나무도 있는 곳, 하지만 무언가에 짓눌려 있는 세계. 그곳은 곧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이기도 하기 땜누이다. 뿐만 아니라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 사실 처음부터 괴물이었던 것이 아니고 단지 고평치 못한 세상을 한탄 , 저주하던 인물이었고 산사태 속에서도 노여움과 복수의 욕망에 사로잡혀 죽음을 거부하고 독의 힘으로 살아남아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 괴물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다시 말해 그 괴물이 우리의 분노와 노여움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임을 환기시킨다.
p355 결혼 후 멋진 기사는 대부분 어긋나기만 하는 고집불통의 타인이 된다. 끝없이 배려와 희생을 요구하는,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타인. 결혼 후의 삶이란 이 타인과 함께하는 혹은 이 타인을 견뎌야 하는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시간이 된다.........그 안에서 농구도 하고 책도 읽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결혼이란 그 네모반듯한 공간 안에서의 삶이 된다. 요리책에 적힌 분량 그대로 음식을 하듯 정확히. 충실히. 규칙을 지키면서 유지되는 삶. 밖으로 나가려면 철망에 몸이 찢겨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삶. ..... 상상과 현실은 항상 빗나갈 수밖에 ㅇ벗다. 특히나 사랑이나 결혼이란 대개 환상에서 출발하는 법. 환상이 깨진 후 마주해야 한느 실체는 오롯이 우리가 짊어져야 한는 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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