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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빛을 간직하고 있기에 아름답다. 언제든 빛을 뿜어낼 준비가 돼있다고 할까. 빛을 발산하지 않아도 빛을 알아봐 주고 발견하는 이가 있으면 충분하다. 설령 그런 존재가 없더라도 내 안에 빛이 있다고 믿으면 괜찮다. 빛은 용기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되기도 하고 비밀이 되기도 한다.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 은 그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윌리엄 트레버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들, 10편의 짧은 소설은 그래서 아름답다. 윌리엄 트레버가 주목하는 것은 평범하면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한 삶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절대 당연할 수 없는 것들, 그것을 묘사하다. 그러니 뻔하고 지루한 일상은 어디에도 없다.
뭔가 수상하고 비밀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처럼 시작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마치 당신의 삶도 그렇지 않냐고 묻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은 있기 마련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너무도 많으니까. 그리하여 윌리엄 트레버는 독자에게 궁금증과 여운을 남기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우리네 삶이라고.
아버지가 남겨주신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여자와 천재적 소질을 지닌 소년 제자와의 이야기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에서 제자가 다녀갈 때면 집 안의 물건이 하나씩 사라진다. 그러나 여자는 소년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음을 기약했던 것일까.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지닌 남자와 그를 돌보는 여자가 사는 「장애인」에서도 비슷하다. 페인트칠을 하러 온 형제의 눈에 비치는 둘은 뭔가 수상하다. 장애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의 죽음을 눈치채지만 여자도 형제도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윌리엄 트레버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음을, 우리도 그렇지 않냐고 가만히 말을 건넬 뿐이다.
윌리엄 트레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그래, 그렇지, 그럴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변화무쌍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남자의 법적인 아내 ‘애니타’ 와 동거 중인 ‘클레어’가 친구였다는 소위 막장 드라마 같은 「다리아 카페에서」도 누군가의 삶이지 않는가. 남자가 죽고 남겨진 저택을 팔아야 한다면 이런저런 사정을 ‘애니타’에게 털어놓는 ‘클레어’. 계절이 바뀌고 한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그 집을 서성이던 ‘애니타’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친구의 존재를 찾을 수 없는 공간은 쓸쓸함이 가득하다. 남편은 죽고, 친구는 사라졌고 그녀는 다리아 카페에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원고를 읽는다.
집을 판다는 표지판은 치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그 집에서 산다. 클레어가 쓸쓸한 고독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 그걸 애니타는 지금 뒤늦게 쓸쓸한 고독 속에 받아들인다. 사랑이 오기 전, 우정이 더 나은 것이었을 때 있었던 모든 것을. ( 「다리아 카페에서」, 64쪽)
우리가 생에서 애써 감추려 했던 것은 정말 그럴만한 것일까. 묻지 않았던 말들이 바람 따라 날아가지 않고 가슴속에 쌓아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추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은 옳은 것일까. 자신의 집 청소부였던 젊은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과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젊은 여자의 삶을 궁금해하는 「모르는 여자」 속 화자 역시 말을 쌓아둔다. 왜 젊은 여자가 자살을 선택했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여자들」에서도 그런 비밀이 등장한다. 엄마가 죽은 걸로 아는 딸은 아빠의 극진한 돌봄으로 성장해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간다. 학교 주위를 맴돌며 우연하게 딸과 만나는 중년의 여자들. 이처럼 쉽게 이해를 구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언제든 등장한다. 그래서 비밀이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뻔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게 우리네 삶이라는 걸 안다. 그런 이유로 삶은 살만하다. 『마지막 이야기들』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긴 건 「겨울의 목가」다. 어느 시골 농장의 딸 ‘메리 벨라’와 가정교사 ‘앤서니’의 첫사랑을 다룬 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어린 소녀의 첫사랑은 미완으로 끝나고 가정교사는 지도 제작가가 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시간이 지나 둘은 그 목장에서 재회한다. 일꾼들과 농장을 운영하는 메리 벨라와 앤서니는 과거의 감정을 확인한다.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메리 벨라를 택한 앤서니,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잠깐이라고 행복을 누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 마음의 하나라고 하면 맞을까. 앤서니는 아내를 떠났듯 메리 벨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다. 메리 벨라는 예전과 다르지 않게 농장의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을 느끼고 간직하며 살아갈 뿐이다.
일꾼들이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선다. 붉은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그들의 장홧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메리 벨라는 불안감을, 그리고 어쩌면 연민을 감지한다. 그녀는 그것들을 웃어넘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변함없는 사랑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그에게는 그 사랑이 그녀의 그림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녀에게는 그와 함께했던 방들과 장소에 있음을 일꾼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임을, 길고 긴 느린 죽음이나 평범해진 사랑은 없을 것임을 일꾼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의 목가」, 206쪽)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설명한다고 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는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는, 이해받지 않아도 될 사정이 있다는 걸 살아갈수록 깨닫는다. 거장인 윌리엄 트레버는 이미 알고 있었고 소설로 들려준다. 그가 획득한 삶의 지혜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삶의 이야기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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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다렸다. 왜 기다리는지,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 기다렸다. 그가 붓을 씻고 아침을 위해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내는 소리만이 밤의 정적을 깼다. 물감은 말랐고, 그는 전등을 하나만 남기고 다 끈 후 다시 그림에 시선을 돌리고 자신의 천사들의 완전함을 보았다. (「조토의 천사들」중에서)
윌리엄 트레버의 마지막 열편의 단편. 너무 아름답고 쓸쓸하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점점 더 좋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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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단편들이 수록된 소설집입니다. 책을 읽은 후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였습니다. 첫번째 단편에서는 주인공이 도둑질 하는 학생을 눈치채고도 눈 감아줍니다. 아이의 천재성을 알아본 그녀는 뛰어난 연주를 들은 대가로 도둑질을 눈 감아줍니다. 그 판단은 제게 납득되지 않는 장면이였지만 이런 선택도 있다 라는 것을 감정의 개입 없이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윌리엄 트레버가 작가들의 작가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
우선, 노작가만이 풍길 수 있는 차분한 관조가 드러나는 섬세한 문장을 한국말로도 느끼게 해준 번역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단편 소설이라는게, 단지 짧은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가 포착해낸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단편 소설에서 이야기(줄거리)는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포착된 순간에 처해있는 인물들의 심리와 그 인물들이 보고 있는 사물과 풍경의 묘사만으로 충분하며,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숨김으로써 미스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그런 단편소설의 정수다.
모든 이야기가 다 좋았지만 <피아노선생님의 제자>, <다리아 카페에서>, 그리고 <겨울의 목가>가 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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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극장에서 영화가 끝났는데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미적미적 앉아있는 느낌. 남들이 부산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막이 하염없이 올라가는 화면을 보면서' 나혼자 깨고싶지 않은 꿈을 꾸는듯 미련을 갖게되는 작품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은 늘 그랬던 것 같다. 그의 책을 대부분 읽은 독자로서 감상문을 요약하자면 여운을 남겨줘서 고마운. 몇장만 읽어도 결론을 짐작하게 되는 통속적이고 뻔한 소설이 아니라 얼마나 고마운지. 도벽이 있는 천재소년,,생사를 알 수 없는 장애인, 남편을 뺏어갔던 절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부유한 중년남자.... 그들의 미래를 추측하긴 힘들다. 그래서 책장을 덮으며 내가 상상한다. 피아노 연주에 천재적이었던 그 소년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성인으로 자라게 되었을테고, 고집불통 장애인은 고독사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부유한 레이븐스우드씨는 로젠이라는 꽃뱀에게 재산을 잃게 되고, 크래스소프 부인은 외로움에 허우적대다 죽음을 맞은 것 같다. 누구도 해피하지 않고 누구의 인생도 가볍지 않다. 인생이 그런거 아닌가. 멀리서 보면 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구질구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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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 안톤 체호프의 뒤를 잇는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 그러나 저에겐 너무나 낯선 이름이며 88세에 영면한 작가의 탄생 90주년 기념 출간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에 실려 있는 열 편의 단편소설들은 모조리 한번 읽어서는 절대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습니다. 책을 펼쳐서 작가가 1928년 아일랜드 출신의 역사 교사이자 조각가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설명을 읽고 사진까지 봤음에도 [마지막 이야기들]에 실린 첫번째 소설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를 읽다가 화자인 50대 초반의 미스 엘리자베스 나이팅게일 선생님과 레슨을 받으러 오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이 떠날 때마다 사라지는 작은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보면 모호함과 섬세함, 다시 세월이 지나 등장하는 어른이 된 소년과의 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어떤 힌트도 없이 끝나버린 소설에 당황합니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성별을 까맣게 잊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번째 단편 '다리아 카페에서'는 그야말로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다리아 카페'를 전쟁 후 황폐해진 런던에 만든 사람은 안드레아 카발리 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라 검색을 했지만 유명한 실존인물은 아닌 것으로. 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출신으로 사랑하는 아내가 시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에 대한 원한을 품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자신이 고향이자 가문의 유산인 포도밭까지 팔고 런던을 배회합니다. 그리고는 사랑한 아내의 이름을 기리 남기겠다고 '다리아 카페'를 차립니다. 소설은 이 카페에서 애니타와 클레어가 만나며 이야기가 시작 됩니다. 둘은 1970년대 파이어플라이스라는 댄스팀의 멤버로 꽤 유명했던 사이였고 열아홉 살에 애니타가 저베이스라는 삼십대 중반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면서,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길을 가면서 팀은 해체 되었습니다. 50대가 된 애니타는 런던의 그곳, '다리아 카페'에 앉아 원고들을 검토하고 있고, 클레어가 등장해 남편인 저베이스의 죽음을 알리면서 1차 혼란이 찾아옵니다. 애니타의 남편 이름과 동일한 클레어의 남편 이름에 어디서 잘못 되었는지 찾기 위해 소설을 거슬러 읽어가다가 삐끗, 다시 방향을 바꿔 전진. 결국 애니타와의 결혼생활에 실증을 내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그 상대가 클레어였다는 것에 2차 당혹스러움을 맛보고, 여전히 애니타는 전남편의 성를 쓰고 있지만 클레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애니타가 신혼집으로 꾸미고 살았던 그 집에서 지금은 클레어가 죽은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려 한다는 것에 3차, 4차 펀치를 맞습니다. '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 '모르는 여자', '여자들' 등등 열 편의 단편소설들을 모두 읽고 나서 '윌리엄 트레버 연보'를 살펴보다 충격을 받습니다. 그의 '아내' 제인이라는 글에.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던 소설들 속의 심리묘사가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발견하는 순간,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입니다. 평범한 인물들에 대한 관찰자 시점의 소설, 어떤 판단도 편견도 없이 서술해 나가는 이야기 방식에 매료 되어 작가가 남성이라는 것을, 여성인 저를 포함한 독자가 느낄 감정까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쓰여진 글이 마치 작가의 손바닥 위에 놀아난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이 섬세함이, 왜 작가 윌리엄 트레버를 단편소설의 거장이라 부르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편소설들로 이만큼의 혼란을 주는 작가라면 그의 장편소설은 어떤 충격을 줄지 기대하며 서가에 꽂혀 있던 [펠리시아의 여정]를 꺼냈습니다. 무척 기대됩니다. 장편과 단편소설 모두 칭송받는 몇 안되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 정말 초면에 이렇게 당황하기는 처음 같습니다. 또 소설들 속에 등장하는 또다른 소설들(달과 6펜스, 영원의 처녀, 친구들 등등)을 찾아 읽어보는 재미도 미리 예약합니다. #마지막이야기들 #윌리엄트레버 #민승남_옮김 #문학동네 #단편집 #세계문학전집 #국내초역 #완독 #독파챌린지 #책추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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