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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라는 유명한 명언이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아래 우리나라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식민지 통치를 했듯이 요즈음 우리나라 땅 독도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앗아 가려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이다.
요새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나 일제강점기 등으로 국제적인 문제을 앓고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한 문제 사안이 일본과의 문제일 것이다. 나 또한 일본이라면 그냥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늘 예민하고 짜증나게 하고 가증스럽게 하는 민족이 일본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동해 표기" 문제나 위안부 소녀상, 욱일승천기 등의 문제 등이 나의 분노를 더욱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1900년대 초반 무렵 조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조선인들의 뜻을 대변하는 신문들을 발행하는 데 관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영국인 베델 선생과 조선과 타이완 등이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일본의 서슬 퍼펀 폭압을 뚫고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조국인 일본을 배신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조국인 일본이 가는 길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일본에 의해 희생되는 국가와 국민들을 돕는데 노력한 일본인 후세선생의 이야기이다.
널리 알려진 인물들에 비해 이런 분들의 이야기는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베델 선생과 후세선생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세계화 그리고 인류 공존의 평화라는 문구에 비하면 우리는 이분들 같은 위대한 정신의 예를 더 찾아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데, 그저 안타까웠다. 이런 거룩한 정신은 한 시대의 찰나의 모습이 아니며, 한정된 국가와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으로 퍼뜨려야 하고 받아들여 져야 하는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구성했다. 영국인 베델선생의 후손 수전, 그리고 한국인 영현, 전쟁으로 얼룩진 수단이라는 나라에서 온 빌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각각 피부색도 다르고 살아 온 문화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지만, 어떤 문제도 척척 자신들이 해결해 가는 도원결의의 세 명의 친구들. 읽는 내내 나는 과연 이들처럼 인류애를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100년 전에 베델선생과 후세선생이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셨듯이 먼나라에서 이들과 같은 노력을 한 이태석 신부와 고 이수현이라는 한국청년의 이야기가 잘 녹아 내린 소설 같다.
예전에 우리 집에 지인과 함께 방문한 일본인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아이가 일본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못 되게 행동한 적이 있다. 그 때 모든 일본인들이 나쁜 것은 아니고 자신의 선조들의 잘못을 대신 용서를 빌었는데도, 아직까지도 몇 명의 사람들의 의견이 일본 국민의 생각인지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지만은 않았다. 어서 빨리 일본도 독일처럼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나라도 유엔 평화 유지군 등으로 참전하여 좋은 점을 주었지만, 잘못한 점도 많을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반복하여 돌고 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베델과 후세 선생처럼 그리고 이태석신부와 이수현 청년처럼 숭고한 정신을 잃어 버리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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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오늘날의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과거의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일면이 있다. 혐한 과 혐일이 공존하는 오늘날... 아무리 시국은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지만, 진정 오늘날을 보면, " 이 두 국가가 정말로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악의없는 경쟁을 하던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으로 치 루던 그 국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냉각된대로 냉각된 두나라의 갈등, 그것은 분명 과거와 현재의 여러가지의 이유들이 복합적으 로 엮여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보다 (현실적으로)근본적인 원인을 꼽자면 '계속되는 요구에 대한 대상자들의 혐호감'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분명 일본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전쟁을 일으 키고 반 인륜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을 이끄는 세대들은 과거 전 쟁을 수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들뻘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괜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개과천선 하라" 는 이웃들의 외침은 가슴에 와 닿는 충고의 말이 아니라, 굳이 낡은 기억을 꺼내어 사람을 괴롭히는 '잔소리'에 불과하게 되 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피해국인 한국인들과 그 주변국가들이 이러한 잔소리(요구)를 그만두어 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용서과 관용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자질을 가진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라는 믿음하에 일본에 대한 더욱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를 위해서는 분명히 감정이 앞선 '힐책'보다 자신과 상 대방이 납득 할 만한 '내용'과 '증거' 그리고 '이야기' 와 '분위기'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많은 한국인들은 그저 다수의 입방아와 분위기에 동조하는 '곡학아세''키보드 워리어'의 레벨에 서 벗어나, 보다 역사와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서 과거 우리들이 무엇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는가?' 라는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소설)의 이야기는 역사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소설이 아니다. 그러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에 있어서 주된 접합점이 되어주는 인물 (독립운동가& 저널리 스트) 어니스트 베델과 (변호사) 후세 다츠지 들의 그 역활이 매우 크다.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 는 한번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라) 소설속의 가상의 세계에서 수단인 '빌' 한국인 '영현'영국인 ' 수전' 이 3명의 등장 인물들은, 과거 베델과 후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다딤돌 삼아, 그 인연과 우정을 이어나가는 관계로 발전한다. 베델과 후세가 남긴 정신적 유산, 그것은 강자의 횡포 에 저항하는 '용기' 그리고 정의(바른일)를 위해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실천을 행하 게 하는 '희생'과 '헌신'의 가치관이다.
만약 약자를 동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정의를 위해서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면, 그리고 모두 가 아니라고 박해할때 약해진 자신을 지켜줄 믿음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강자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들에 의해서 역사가 마음대로 정의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되었었다.'
인간은 의외로 현명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세계1~2차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고 나 서야, 정의와 박애 라는 정신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재확인 하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인간 은 그 무언가의 희생과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존재 이다. 한국인이 가증스러운가? 일본인이 증오스러운가? 이에 스스로의 감정을 떠나,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어버렸지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故'이수현'의 이야기를 한번 더 들여다 보 아라. 이는 분명히 무조건적인 적의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여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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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과거 조선과는 아무런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었음에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일본에 맞서 조선 사람들을 대변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과 일본인 후세 다츠지 선생의 위대한 희생정신을 모티브로 쓰인 책이다. 그리고 약 10여 년 전 일본의 어느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와 가난한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친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도 일부분 모티브로 삼았다. 아마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로 더욱 잘 알려졌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 베델 선생과 후세 다츠지 선생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수현 씨와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와 한데 묶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게 접근하려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승화되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전쟁 중인 아프리카 수단에 살고 있던 빌이 한국에서 온 알프레드 리 신부의 도움으로 영국에서 생활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시작된다. 빌이 머물게 된 곳은 동갑내기 수전이라는 영국 소녀가 사는 영국의 한 가정. 평소 마음씨가 좋고 여러 사람을 잘 챙겨 주는 성격을 갖고 있던 수전의 도움으로 빌은 영국 생활에 잘 적응했다. 한편, 아버지의 회사 일로 영국에서 생활하게 된 한국인 영현도 수전과 같은 반이 되면서 빌, 수전, 영현은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가 된다. 영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영현은 조선을 위해 희생한 영국인 베델 선생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업적을 조사하고 반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역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역사를 전공하게 된다. 영현은 서울에 개최되는 한국과 일본의 과거 역사에 관한 심포지엄에서 후세 강사를 만나게 된다. 후세 강사의 논리와 호소력에 감동을 한 영현은 후세 강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후세 강사의 선대에 일본인이면서 과거 조선을 위해 헌신을 한 후세 다츠지라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 후 후세 강사와 영현은 계속 안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친분을 두텁게 했다. 강제 징용된 분들이 제기한 소송을 맡은 공익변호사들을 역사학자로서 돕고 있다는 후세 강사의 메일에 영현도 후세 강사를 도와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일본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바쁘게 보내던 어느 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던 영현은 한 일본인 남자가 갑자기 지하철 선로를 향해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그 남자를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드는데…. 이영현의 장편소설 <달걀이 걸어간다>는 제목부터 독특한 소설이다. 달걀이 두 발로 걸어간다고? 책을 읽어 보니 지금은 달걀에 발이 없으니까 걷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면 걸을 수 있게 된다는 에티오피아의 속담으로 거대한 나무도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묘목에서 시작되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라고 한다.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위해 일본에 맞서서 자신을 바친 그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절망이었던 조선이 지금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의로운 희생정신에 모처럼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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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걸어간다 베델과 후세]잊지 않을게요, 베델과 후세!
조국의 편과 반대편에 서서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그것도 세계열강들이 미쳐있던 일제강점기에 말이다. 서양인들이 이권 목적으로, 선교목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교육 사업을 하고 언론 사업을 했다는 것을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 일본인이 조선의 입장을 대변한 줄은 몰랐었다. 지금도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 덕분에 한반도가 발전했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데……. 심지어 독도마저 자기네 땅이라며 교과서에 넣기도 했다는데……. 일본인들의 역사왜곡과 영토에 대한 야욕을 보면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사과하려는 양심적인 일본인이 몇이나 있을까 싶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정의의 편에 선 두 외국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현은 아버지의 회사 일로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생활하게 된다. 영현은 영국 소녀인 수전 베델의 배려로 친하게 지내면서 수전 집에 묵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유학생 빌과도 친구가 된다. 이들은 삼총사가 되어 외국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친구들에 맞서 사우기도 하고 서로 힘과 용기를 주면서 우정을 쌓게 된다.
빌은 수단에서 소년병사로 전쟁을 겪었다. 그리고 한국인 신부 알프레드 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상처치료는 물론 교육까지 받게 되었다. 신부님의 노력으로 교단의 장학금을 받으며 이젠 영국 유학생이 된 것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과제물 발표시간에 영현은 수전의 선조 중에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던 베델 선생을 선택해서 발표하게 된다. 한편 빌은 자신을 구해준 한국인 신부 알프레드 리의 이야기를 발표하게 된다.
영현은 수전의 선조 중 100여 년 전에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베델을 처음 알게 되면서 자료조사를 하게 된다.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 1904년 영국 크로니클 지의 특파원으로 러일전쟁 취재차 조선에 파견된 그는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해임되었기 때문이다. 해임된 이후 그는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인 양기탁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세운다. 그리고 주필 박은식, 집필진 신채호, 장지연, 안창호들과 함께 조선의 실상을 알리며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게 된다.
처음에는 순 한글 판에서 시작해 점차 국한문 혼용판, 영문판까지 발행하게 되었다. 그는 신문을 통해 일제에 억압받는 조선인의 실상, 을사보호조약의 무효, 명성왕후 시해사건, 항일무장 투쟁, 헤이그 특사 파견 보도, 국채보상 운동 등을 국내외에 알렸다. 1907년, 1908년 벌금형과 금고형을 받게 되면서 심장병을 얻었고, 결국 그는 37세의 나이에 조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 그는 마포 양화진 외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는데……. 그가 죽으면서 남긴 말도 한국을 위한 말이었다. -나는 죽으나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 하여 한국 동포를 구하시오.
그 발표 이후로 영현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대학에서 역사전공으로 이어진다. 역사심포지엄을 통해 후세 강사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선조인 후세 다츠지의 활약을 알게 된다.
일본인 인권 변호사인 후세 다츠지(1880-1953). 대문호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약자와 민중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일본인이다. 평등과 인도주의적 신념으로 일본 내 하층민의 권리보호에 노력을 기울였고 조선과 대만 등 식민지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변론해 준 변호사다. 조국인 일본의 침략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한국인과 대만인들의 인권을 위해 변론해 준 인권 변호사다.
1919년 2.8 독립선언으로 조선 유학생들이 잡혀가자 조선 유학생들을 변론했고 1920년대 의열단 사건과 관련한 변호를 했으며 일본의 조선 토지 수탈과 관련한 조사를 위해 조선을 방문하기도 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인들이 자행한 조선인 학살사건을 비판하기도 했다. 1946년에는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영현은 일본으로 떠난 자원봉사여행에서 결국 사망하게 된다. 지하철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자신이 죽게 된 것이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얻게 되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얻게 된다. (책에서)
1990년대 당시 영국과 일본은 동맹관계였기에 베델은 조국 영국과 반대편의 입장에서 언론활동을 한 것이다. 일본에 맞서 조선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 을사보호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글을 신문에 실었던 진정한 언론인이었다. 힘없는 조선 백성들의 인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쓴 공로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기도 했다.
후세 역시 조선의 독립 운동과 민중운동을 적극 지지했던 공로로 2004년에 뒤늦게나마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역사책의 한 자락에 마주했던 베델이 자신의 청춘을 먼 이국땅의 독립을 위해 바쳤다니…….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후세가 올바른 일을 위해 자신의 조국이 아닌 상대국을 변론하고 도왔다니…….
이 소설은 나라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침묵보다 의로운 행동에 앞장 선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쓴 소설이다. 수단에서 봉사하시다가 죽음을 맞은 이태석 신부님이 알프레드 리로 등장하고, 일본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김수현 씨의 내용이 영현의 이야기에 숨겨져 있다.
'달걀이 걸어간다'는 말은 에티오피아 속담이라고 한다. 달걀은 걸을 수 없지만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면 걷게 된다는 뜻이다. 모든 일은 작은 일에서 시작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누군가의 작은 희생정신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널리 퍼져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리라. 앞 표지는 베델, 뒷표지는 후세의 이미지가 담겨진 책, 제목마저도 의미있는 책이다.
민족과 나라를 떠나 의로운 일에 헌신과 희생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는 뜨거운 감동을 준다.
의인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보며 숭고함, 인류애,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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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는 '언제인가 달걀이 발로 걸어갈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은 당연히 달걀의 상태로는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만, 그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오고 그 병아리가 닭이 되면 닭은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P.348)
위안부 관련 '억지주장'으로 전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일본 우익이 자국내 '안네의 일기'관련 서적 훼손 사건에 한국인이 연류됐다는 황당주장을 하는 사건을 뉴스에서 보곤 웃음이 나왔다. 과연 무슨 근거로 저런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의 만행에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늘 당당한 일본의 태도에 누구나 화가 먼저 날 것 같다. 한일관계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레퍼토리마냥 똑같이 대응하는 우리의 현실도 답답하고 그들의 역사의식은 어디로 흘러 가고 있는지, 우리의 역사 바로잡기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 속에 불의에 맞서 항거했던 사람들이 있고, 값진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 분들의 정신이 흐려질까봐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자신을 희생하며 오롯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값진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하는 책이 있다. <달걀이 걸어간다_베델과 후세>는 일제 강점기에 부당하게 식민지화하려던 일본을 고발하려고 했던 베델이라는 영국인 신문기자와 거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과 조선인들을 대변하기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의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고 과거와 현재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소설로 보여준다. 그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었던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조명하며 과연 보통의 존재로서 할 수 있는 행위인지 묻는다.
어떻게 하면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갈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마치 좋은 일을 하고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처럼 남몰래 선행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TV 매체를 통해 그 감동적인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감동을 넘어 과연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을 때가 있다. 얼마전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그 선행이 알려졌던 이태석 신부님도 있고, 몇 년 전에는 일본 지하철에서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을 구하고 정작 자신은 목숨을 잃는 사건도 있었다.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이태석 신부님도 한국사회에서 안정된 의사의 길을 갔을 수도 있지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전쟁중인 수단으로 가서 아픈 사람을 돌보며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었다. 그건 아마도 감히 나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그분들은 어떤 것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한다는 것일 것이다. 지금 이런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100년 전 베델과 후세 또한 식민지 시대에 좀 더 가치있는 선택을 하고 자신을 돌보기 보다는 남을 위해 희생했던 그분들의 정신을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분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이 끝났다고 해서 진정한 끝이 아닐 것이다. 그 정신을 기억한다면 그분들의 희생은 절대 헛된 희생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회자되어야 하고 작가의 말처럼 후세에도 널리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슬프게도 이 세상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거룩한 희생정신 하나 하나가 작은 밑거름이 되어 언젠가 그들이 꿈꿨던 혹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읽는 것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것이다.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되돌아 보게 되었다.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보며 좀 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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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던 학창시절엔 소설을 많이 읽었다. 수업 시간에 책 사이에 놓고 소설을 보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읽던 소설의 내용이 궁금해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은 기억도 있다. 덕분에 공부 안한다고 많이 혼났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시간이 없어지면서 소설과 거리가 멀어졌다. 직장에 들어가서는 자기계발서나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한 교재들을 주로 공부했다. 그래서 공부엔 때가 있다고 하는가.. 이미 지나버린 학창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좀 더 열심히 공부하려나?
요즘 다시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다. 재테크책을 읽어야 맞지만 왠지 소설에 관심이 가고 끌리는 것을 보면 나에게 있어 독서의 계절은 겨울인가보다. 이번에 고른 책은 '달걀이 걸어간다'라는 책이다. 잘못을 바로잡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역사는 참으로 굴곡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하에서 많은 희생을 했다. 독립을 찾으려 노력한 사람도 많지만 배신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도 상당수다. 무엇으로도 변명거리가 될 순 없지만 그들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삶을 위해서 라는...
이 이야기는 조선과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외국인이라는 상황에서 일본과 맞서며 조선을 살리려 노력하고 조선 사람들을 위해 대변하려 애쓴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과 놀랍게도 일본인이라는 신분임에도 이런 노력을 했던 후세 다츠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독립을 위해 싸운 열사에 관해 많이 들었지만 외국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책을 읽으며 많이 배우게 되었다.
영현은 아버지의 회사로 인해 영국으로 가서 살게된다. 내전중인 수단에 사는 빌은 어리지만 소년병으로 끌려가게 된다. 내전을 통해 신부님을 만나고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빌은 영국 유학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들의 영국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지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이는 빌의 모습에 친구들도 마음을 열게 된다.
그렇게 의기투합하게 된 수전과 영현 빌은 베델 후세의 업적을 기리고 재단의 출범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들을 기리기 위해 재단에서 일하기 위해 지원하기 시작한다. 어찌보면 역사 속에서 묻힐 수 있었던 이들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렸기에 역사적인 내용이고 어려운 내용임에도 훨씬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많은 분들의 희생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노고를 기리고 또한 현재의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한 발 나서는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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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베델과 후세라니...그런데 왜 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무래도 소양이 부족한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으로 박애주의적 관점이 인류애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인류애의 사전적 정의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 또는 인간애 대한 사람을 말한다. 또한 박애주의는 인종에대한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 또는 종교적 차별을 버리고 인류 전체의 복지증진을 위하여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사랑하여야 한다는 주의를 가리킨다. 이 박애주의는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가 신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을 인간애라 부르는데서 기원한 말로 서구 기독교에 의해 본격화되었으며 대부분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을 존중하는것 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사랑에에서의 평등을 말하는것과 같다. 소설의 시작은 한국에서 영국으로 유학을 간 영현, 아프리카 수단에서 교회의 장학금 수여자로 유학을 오게된 빌,빌이 홈스테이로 머무를 가정의 수잔,그리고 악동에서 개과천선한 죠슈아 등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주가된 학교무대에서 아이들의 흥미거리와 학교 교육의 증명같은 일들을 통해 이야기는 100여년 전과 현실을 오가며 맞물려 돌아간다. 소설속의 아이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선택한 베델선생과 알프레드 리 신부의 이야기로 전반부의 내용을 장악하고 있으며 성장한 영현과 후세의 자손과의 이야기가 후반부를 엮어가고 있어 읽는 내내 언제쯤 후세라는 인물이 나올까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이야기는 영현과 아이들의 성장, 그리고 역사학자로 변신한 후의 내용들로 후세선생의 일화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만 뭔가 좀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는건 어쩔 수 없었다. 고 이수현의 삶과 그의 숭고한 인간사랑의 정신이 조명 받아야 함은 당연하고 옳다고 보지만 이 책의 후반부와 같이 영현과 이수현을 동일하 시키는 부분은 억지끼워 맞춤식의 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쉽다는 말로 설명할 수 밖에는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숭고한 역사적이고 올바른 정신을 길이 드높이고 세워 발전시키고, 좋지않은 전쟁과 억압과 가난의 역사들은 미리 방지 할수 있는 시간이 반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00여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류애를 발휘한 베델과 후세의 숭고한 정신은 알프레드 리(이태석) 신부와 이수현과 같은 인물을 통해 반복됨을 알려주며 인간을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가늠해 보게끔 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한다지만 가정이 있음으로 해서 상상이 생기고, 상상이 있음으로 해서 문학과 예술, 학문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는 그들이 그리 끔찍히도 생각하는 조상들의 숭고한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에 해당된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적인 이익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인류애,인간애를 가진 그런 국가로 거듭나길를 이 책을 통해 배워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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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델과 후세
이 책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그 정도 였던 것 같습니다. 베델과 후세라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했던 이 책의 성격은 일종의 다큐와 같은 방식의 내용이었습니다. 베델과 후세라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놓고, 그들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오늘날 그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내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책은 다큐가 아닌 소설이었습니다. 게다가 제목에는 베델과 후세라는 두 명의 이름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위 두명과 제목에 나오지 않은 다른 두명, 총 네 명의 삶과 업적을 모티브로 해서 작가가 창작한 소설이었습니다. 베델, 후세, 이수현, 이태석, 앞의 두 사람은 일제시대 때, 우리 나라를 위해 애썼던 분들이고, 이수현씨와 이태석 신부는 최근의 분들입니다. 일본의 어느 전철역에서 취객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었던 이수현씨와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나서 그 곳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 등 국가나 민족을 초월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네명의 이야기가 작가의 힘에 의해 잘 엮여 있습니다.
자칫 소설과 실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실화의 정도가 몇 퍼센트냐와 같은 문제는 아닙니다. 바르지 않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을 도왔던 앞선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바르지 못한 것에 침묵하기 쉬운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베델이나 후세와 같은 이들의 정신을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와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 나오는 달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기 전, 얼핏 외국인이었던 베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보면, 제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달걀이 걸어간다'는 에티오피아 속담이라는데요. 거대한 결과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은 많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희생이나 숭고함이 어려울 수 있지만, 아주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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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걸어간다
조선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낸 책이다. 사실 조선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던 이런 훌륭한 분들의 이야기는 쉽게 주위에서 들을 수 없었던 것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읽고 나서도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 우리가 다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자신의 나라를 배반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생겨나는 반면, 이런 분들이 오히려 자국민보다도 더 힘써 노력하며 조선을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에 경외감이 들기도 했다.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은 물론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의 억압적인 시대상황 속에서 그랬다는 것을 감안하면 왜 이 분들이 아직까지 우리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 아닐까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는 데 큰 기여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생각해보고 어떤 점이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리라.
작가의 필력이 생각보다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진 못했지만, 전체적인 내용과 구성은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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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이 우리나라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구나 느낄 때마다 묘한 감정을 듭니다. 대부분의 장기 체류로 타국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들의 경우 그 나라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는 한 오랫동안 타국에 머물기는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특히 그 분들의 경우 한국사람들보다 더한 애정으로 김치와 태극기, 태권도와 같은 문화부터 독도나 위안부 등 역사적인 문제들까지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 분들을 볼 때에는 제가 한국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제 비루한 애국심이 부끄러울 때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정말 사랑하고 자신의 모국처럼 여기는 분들을 보면서 저도 우리나라를 더욱 더 잘 알고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 <달걀이 걸어간다>는 픽션과 논픽션이 절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역사소설은 픽션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논픽션이 극의 재미를 더해주면서 소설의 배경으로 나오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거 같습니다. 그런 맛에 보기도 하고요. 외국인이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이고 그들은 어떤 모습에 매료되어 이 나라 한국, 혹은 조선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는 지, 그리고 왜 제목이 달결이 걸어간다인지 궁금증을 가득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설은 일제치하의 영국 언론인(신문사 운영) 어니스트 베델과 일본 인권변호사 후세 다츠지, 한국인 이수현과 아프리카 수단에서 그들을 위해 봉사한 한국인 카톨릭 사제 이태석 신부 등 역사적 실존 인물들과 관련하여 그들의 업적을 재조명한 소설입니다. 또한 소설은 실존 인물들의 일대기가 아닌, 이들의 공개된 위대한 업적 중 일부분을 모티브로 삼아 등장인물 및 줄거리 등을 창작하여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논픽션 역사 소설입니다.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끼어들어 있는 액자소설이고요.
위의 네 사람은 실존했던 인물로 네 사람의 공통점은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희생 정신을 보여주셨다는 겁니다. 저자 본인이 서문과 책의 이야기 전반에서 계속 이야기했던 거와 같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고 개인의 이익과 평온한 삶마저도 포기한 책 타인을 위해 인류적인 희생 정신을 보여준 이들을 삶을 재조명하며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이 나왔습니다.
<달걀이 걸어간다>는 아버지의 회사일로 영국에서 생활하며 학교를 다니게 된 한국소년 영현과 아프리카 수단에서 전쟁의 상처를 입다가 한국인 카톨린 신부님을 만나 영국의 수전의 집에서 유학을 하게 된 수단소년 빌, 그리고 활발하고 정의감 넘치는 영국소년 수전이 같은 반의 친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세 사람은 외국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갖가지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을 바탕으로 그런 친구들까지 감싸 안으며 서로의 성장에 기꺼이 도움을 줍니다. 그러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영현은 수전의 선조이자 과거 조선의 핍박하는 조선인들을 위해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베델을 알게 됩니다. 학교과제로 나온 존경하는 인물로 베델을 선정하여 조사하는 영현과 그런 영현 덕분에 베델을 알게 된 친구들은 그 분과 빌에게 새 인생을 살게 해준 한국인 카톨릭 신부님을 통하여 고귀한 희생정신에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움을 통해서 성장하게 된 아이들은 내면이 성큼 자라게 됩니다. 나이를 먹어 대학생이 된 수전은 수학을, 빌은 또다른 미국 유학을, 그리고 영현은 한국으로 돌아와 역사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역사학을 공부하다 역사심포지엄에서 만난 후세 강사를 통해 그의 선조인 후세 다츠지 또한 일본인으로서 타국의 핍박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후세 강사와 교류하게 됩니다. 후세 강사의 배려로 일본에서 강제 징용된 분들을 위한 자원봉사활동의 기회를 얻어 방학 기간 동안에 일본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안타갑게도 일본의 지하철 역 선로에 쓰러진 사람을 구하고 목숨을 잃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영현과 빌, 수전 그리고 죠수아의 우정을 알고, 영현이 얼마나 올바르고 현명하면서 맑은 아이에서 청년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그 신념대로 살아왔는지 쭈욱 이야기를 읽으면서 접하였기에 마지막 영현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정말 소설 속에서나 있는 이상적인 아이들이야, 라고 생각하며 이상적이었던 어른 상인 수전의 부모와 영현의 부모, 그리고 영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까지 어떻게 생각하면 이 책 속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금은 현실감이 떨어지고 이상적인 존재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불편함 없이 책을 보기도 했고 마지막에 픽션 임에도 일본의 달라지지 않는 보수적인 정치 모습에 현실의 안하무인한 일본의 정치인들이 생각나 화가 더 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영현과 수전, 그리고 빌 이 세 아이들만 봐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또한 책 제목에 대한 저의 궁금증은 영현의 추모식에서 빌의 추도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사람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전해지는 말을 하나 소개하면서 오늘 제 친구였던 영현의 추도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는 '언제인가 달걀이 발로 걸어갈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걀은 당연히 달걀의 상태로는 걸어 다닐 수 없습니다만, 그 달결에서 병아리가 나오고 그 병아리가 닮이 되면 닭은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거대한 나무도 그 시작은 아주 작은 묘목에서부터 시작되는 것과 같습니다. 위와 같은 아프리카 말처럼 제 친구였던 영현의 거룩한 희생정신이 작은 밑거름이 되어 영현이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꿈꾸었던 것과 같이 과거의 아픈 역사가 바로 세워지고 앞으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저는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추도사를 시작하겠습니다." (p.347~3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