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기적으로 신간 목록을 훑어보다가 매우 인상 깊었던 저자의 신간을 발견하면 일단 책을 사놓고 보는 습성이 있는데, 이 책 또한 그랬다.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의 전작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너무 재밌게 읽었고 이번 책의 주제는 기술에 관한 것이라 호기심이 생겨 책을 사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 전개 방식은 그의 전작과 비슷하다. 커다란 핵심 주제 하나를 잡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조 주장들, 이것들을 설명하는 방대한 양의 과거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인간 사회의 물질적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의 발달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고 있다.
저자의 전작이나 저자에 대한 정보가 있는 분이라면 당연히 이 분의 기본적인 정치적 성향이 미국식 리버럴에 가깝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주된 인식 속에서 기술 권력과 진보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AI 기반의 전방위적 감시로부터 심각한 프라이버시와 자주권의 침해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현재 중국은 그러한 기술을 국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수출 중인데,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를 벤덤식 파놉티콘의 현시로 비유하며 이러한 기술 활용 방향이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즉 기술의 인도적 활용 방식을 다른 민주 국가라면 민주적인 방식의 통제를 통해 바꿀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핵심 주장 또한 메시지가 매우 또렷하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는 빈곤과 번영을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써 '제도'를 강조하고 동시에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 조건이 주요 변수가 아님을 강하게 논설했다. 특히 지리적 요인이 번영과 빈곤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얘기하면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비판하고 남한과 북한의 예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런 복잡한 사안에 있어서 현실은 그보다 더 미묘할 가능성이 높다. 즉, 국가의 정치체제의 기본 작동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는 100년 단위 타임 스케일에선 제도가 핵심 변수일 수 있지만, 10000년 단위의 인류사 타임 스케일에선 기후, 자연환경, 지리, 생물의 분포 같은 우연적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내가 이 책들을 읽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것인데, 저자의 경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들을 종합한다기보다 배제하는 방식으로 주로 자신의 논의를 발전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느낀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저자의 성향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일단 기술에 대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키며 러다이즘을 지지하는 게 아니고 보편적 기술의 활용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까지 착취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보편적 기술이란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기술로써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수력, 풍력, 전기, 교통, 통신, 그리고 최근의 AI 기술 같은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후 100년 동안 영국의 영세농들이 자립적인 삶의 방식을 잃어버리고 도시에 편입되어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사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고도의 자동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겹치며 전세계적으로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1970년대 이후 중산층이 적어지고 있는 추세다. 10년 주기의 경제 위기로부터 '고용 없는 성장'의 방식으로 회복을 반복함으로써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로 인한 정치적 압력이 전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현재 AI와 플랫폼 기술들을 민주주의에 이로운 방향이 아니라 그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사용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활용 방향이 그것을 통제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총, 균, 쇠>의 주장을 종합했던 것처럼 이 책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는 동의하면서 일부는 다른 의견을 종합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폭넓게 사회에 여러 형태(상품, 미디어, 플랫폼, 서비스 등)로 제공하는 핵심 의사결정자들은 자신의 기술이 사회, 정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경우 적은 부분 미리 예측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러 우연적인 사건들과 사회적 동학이 결합하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저커버그는 2016년 대선에서 알트라이트를 비롯한 일부 극단 세력들의 가짜 뉴스 공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일정부분 알았다는 것은 정황상 거의 확실하지만, 그로 인해 향후 몇 년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해선 거의 몰랐을 수 있다. 또한, AI와 바이오 기술 같은 경우에도 대부분의 공대 출신의 기술 개발자들은 자신이 만든 기술이 사회에 어떤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일각에선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각성하여 기술의 파급력에 대해 미리 예측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기술의 본성을 생각해 보면 거의 현실성이 없다. 다만 기술 개발과 확산이 먼저 이뤄진 후 실증적인 연구와 분석을 통해서 어떤 부정적인 부작용(예를 들면 저자가 말하는 감시나 민주주의의 후퇴)이 있다면, 향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의 지배적인 기술 기업들을 보면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러한 모습조차 보이고 있지 않아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력의 힘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동감한다.
정리하자면, 기술과 개발자들은 기술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정하기도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방향이 의도치 않게 전개되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전적으로 기술의 방향을 사회가 통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일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 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일부 적절하고 바람직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저자의 해법은 크게 세 가지 갈래가 있다 (p. 551). 첫째는 내러티브와 규범을 바꾸는 것, 둘째는 길항 권력을 일구는 것 (노조를 비롯한 기타 시민 단체), 셋째는 구체적인 진단과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책의 주장이 큼지막한 것처럼 저자의 해법도 지엽적인 것보다 큰 방향성에 치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의 빠른 이탈과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결과가 혼인율과 출생률의 급격한 하락, 그리고 천민자본주의의 대중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초대형 언어 모델 AI 기술을 보유한 전세계에 몇 안 되는 나라이고 IT 인프라도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점, 더불어 로봇 밀도가 압도적 세계 1등이라는 점에서 생산의 자동화와 AI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이 사회 전반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이 보여주는 방대한 역사적 사례와 저자의 주장은 우리 사회에 매우 시의적절하고 커다란 시사점을 안겨준다. 기술과 사회의 바람직한 동행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
|
|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책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을까 하고 걱정 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힙니다. 우리 나라도 언급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기대에 비해서는 분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국가 발전 연계가 흥미롭고 로봇 사용에 의한 발전도 인상 깊습니다. |
|
대런 아세모글루는 뛰어난 경제학자이기도 하기에 다른 문명비판서와는 달리 꼭 한번 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맑스가 근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논지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맑스주의 또한 빠져들었던 진보의 환상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논의를 21세기의 기술 진보의 성과 위에서 펼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의 필독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맑스 또한 이미 백칠십년 전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기술 발전의 성과가 노동자에겐 족쇄가 되고 때로는 기술 발전이 노동자와 민중을 위협하는 총칼로 돌아오는 체제 자체를 변혁해야만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닌 모든 대중의 행복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맑스는 이런 논의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변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사회주의가 달성되면 자동적으로 모두를 위한 진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본 데 그 한계가 있습니다. 큰 틀에서 저자들의 논지도 맑스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이긴 하지만 저자들은 단선적인 체제 변혁으로 문제가 해결될거라는 맑스주의의 환상과는 전혀 결론을 공유하지 않으며, 다만 여기에 대해 주목해주길 원하는 정도여서 내가 진리니 나를 따르면 행복이 이루어질 거라는 위험한 획일적 주장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이며 이 점에서는 또한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도 함께 경청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
설득권력이란 단어가 인상적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치우쳐저있는듯 정리하자면, 기술과 개발자들은 기술의 방향을 의도적으로 정하기도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확산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방향이 의도치 않게 전개되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전적으로 기술의 방향을 사회가 통제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일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 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일부 적절하고 바람직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는 논평에 한표 |
|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AI, 첨단과학의 등장으로 기존의 권력(정치권력, 금융권력 등)이 위협 받고, 이를 보이지 않는 투자와 연관된 전략도 등장하는 권력의 대척점에 대한 치열함을 자세히 기술하였다. 하지만, 다소 주제의 일관성을 저해하는 비약적 근거는 읽어내는데 거부감을 주기도 한다. |
|
분량이 많아서 부담스럽겠지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무게감있게 다룬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듯 하다. 사람들이 완전히 오인하고 있는 이상적인 진보의 개념을 처음부터 다시 다루고, 권력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 있는 명저이다. 일독을 권한다. |
| 기술이 좋아진다고 생활 여건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수렵 채집하던 원시시대 보다 정착 농경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건강이나 영양 상태가 훨씬 안 좋고 수명도 짧아졌다고 하는 사실은 충격. 인터넷 기술 발달로 출현한 플랫폼 노동이 초 저임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보면 일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 축소는 물론 민주주의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니, 무기로써의 칼보다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칼로 만드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 |
|
유명한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의 저자가 쓴 다음 책 입니다. 벽돌책 이고 제게는 좀 어려워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확실히 전작의 느낌이 많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막을 수 없지만 인류가 어떻게 기술과 같이 공존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경쟁으로 가면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건 인간이겠지만 철저한 준비를 한다면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기술은 인간에게 더 풍요로운 삶을 제공 할 것입니다. AI에 의존하고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기술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
내용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갔습니다. 권력과 진보라는 관점으로 사회의 변화를 해석하는 유용한 책입니다.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특히 세계 역사를 기반으로 투자처를 모색하거나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