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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연인들」 이광호, 문학과 지성사
"「장소의 연인들」 이광호, 문학과 지성사" 내용보기
한때 연인이기만 했던 사람은 이제 배우자가 되어 나의 공간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다채롭고 많은 장소를 거쳐 왔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여러 목적을 가진 집을 공유한다. 우리 둘 다의 소유이자 모든 욕구가 충족된 장소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우리가 나다닌 장소를 생각하곤 한다. 주말에 다시 그곳을 거닐며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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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연인이기만 했던 사람은 이제 배우자가 되어 나의 공간 대부분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다채롭고 많은 장소를 거쳐 왔고, 이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여러 목적을 가진 집을 공유한다. 우리 둘 다의 소유이자 모든 욕구가 충족된 장소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 가끔은 우리가 나다닌 장소를 생각하곤 한다. 주말에 다시 그곳을 거닐며 기억을 회상하기도 하고, 그저 사랑뿐인 젊은 연인들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시금 느끼기도 한다.

 

연애 초기, 일이 너무 바빠 개인 시간이 많지 않았던 나는 연인과 자동차 안에서 무한하고 끈질긴 대화로 사랑을 키워나갔다. 주말엔 시끌벅적한 거리로 나가기도 하고, 우리만의 장소를 찾아 끝없이 헤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은 가림막도 비를 피할만한 지붕도 없었고,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를 둘러싼 막이 존재했다고 여긴다. 사랑의 작동으로 이루어진, 우리만 아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되었다.

「장소의 연인들」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을 '수행했던' 모든 장소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되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장소가 연인들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 수행성의 문제이다 (169쪽)"라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연인들의 장소는 일반적인 사회적 규정과 분류, 장소들의 위계를 무의미하게 한다. 연인들은 장소를 탄생시키고 발명한다. 연인들은 그들만의 장소를 찾아내기 위해 분투한다고.

 

저자는 다양한 장소와 예시가 될만한 문헌들을 통해 연인들의 사랑과 장소의 속성을 발견한다. (픽션인지 모를) 저자와 그의 연인이 만들어낸 특별한 장소도 계속적으로 등장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연인이었던 우리의 장소와 경로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사랑의 장소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장소의 속성을 꿰뚫어보기도, 뒤집어보기도, 다시 낯설게 보기도 한다. 이 특별한 시선과 사유가 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 + 중간중간 책과 글에 대한 사유의 문장도 근사했다.

연인들이 몸을 담는 순간 이륙하는 우주선이 된다는 욕조 (57쪽), 두 사람의 최소 공간이 만들어지는 우산 속 (69쪽), 누군가와 함께 있기 위해 정차한다면 방이 되기를 바라게 되는 자동차 (92쪽) 등, 연인들의 매력적인 장소는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로 더욱 남다른 장소가 된다. 저자의 경험을 통한 장소와 그가 관찰한 연인들의 장소들, 그리고 나와 연인의 장소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이는 같으면서도 다를 것이다. 사랑하다-의 감각 또한 다를 것이니까.

인문 에세이, 라고 되어 있지만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친절한 책이다. 연인과 사랑에 관한 특별한 사유를 만나보고 색다른 시선을 살펴보고 싶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 81쪽,

책을 찾거나 고른다는 것은 자기만의 종교를 찾기 위한 영혼의 편력이기도 하다. 자기만을 위한 일생일대의 단 한 권의 책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갈증을 이곳에서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점은 바깥 세계의 번잡함과 계산들을 피해 숨어드는 동굴과 같다. 그 동굴에서 연인을 만난다면 서점의 영적인 뉘앙스는 한껏 부풀어 오른다.

● 112쪽,

기차역의 시간성은 가독성이 없다. 하나의 장소에는 하나의 시간이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장소는 무수한 시간의 주름을 품고 있다. 기억 너머의 형언할 수 없는 시간은 캄캄한 침묵에 둘러싸여 있다. 기차역의 시간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현기증 나는 개발의 속도감은 시간의 입을 다물게 한다.

● 115쪽,

떠나기 위해서만 잠깐 머무르는 환승 공항의 이미지는 연인들의 시간에 대한 은유가 될 수 있다. 스크린에 명멸하는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공항 내부의 시간을 추상적으로 분절한다. (…) 공항에서는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아무도 정체성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익명성이 공항을 무중력의 공간으로 만든다.

● 160쪽,

어떤 슬픔은 수영장의 물처럼 귓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흘러나오지 않고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가끔은 그 물들이 몸 안에서 출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내가 지금 사는 방에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검은 방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방의 존재를 느끼지만 그 입구를 영원히 찾지 못한다.

p********1 2023.02.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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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연인의 장소에 대하여
"흐릿한 연인의 장소에 대하여" 내용보기
이 책에서 연인의 '장소'는 연인과 사랑 사이를 잇는 플랫폼이 된다. 사랑이 모여들고 사랑이 벗어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장소는 명확히 존재했다가 흐리게 형체를 잃는다. 그것은 고유한 흔적을 가지는 장소의 숙명이므로, 장소는 필연적인 목적지를 지닌 채로 느긋하게 떠있는 분홍빛의 나룻배가 되어 현재를 물속에 감춘다.   장소의 속도는 빛과 같고 장소의 위치는 수정할 수 없
"흐릿한 연인의 장소에 대하여" 내용보기

이 책에서 연인의 '장소'는 연인과 사랑 사이를 잇는 플랫폼이 된다. 사랑이 모여들고 사랑이 벗어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장소는 명확히 존재했다가 흐리게 형체를 잃는다. 그것은 고유한 흔적을 가지는 장소의 숙명이므로, 장소는 필연적인 목적지를 지닌 채로 느긋하게 떠있는 분홍빛의 나룻배가 되어 현재를 물속에 감춘다.

 

장소의 속도는 빛과 같고 장소의 위치는 수정할 수 없는 역사서와 같다.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관념적인 흔적을 가진 사랑의 핵심이기에 장소의 연인과 연인의 장소는 결국 사랑으로 생겨나고 사랑으로 부서지며 허망함과 열망이 공존하는 관계가 된다. 연인이 발견한 장소는 사랑으로 뒤덮인 허공이고 장소는 연인을 삼킨 채로 사랑의 두께를 쌓는다.

 

연인과 사랑과 장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라 사라질 듯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영원할 듯 보이나 찰나에 소멸하게 된다. 끝없이 생겨나는 연인은 끝없이 장소를 만든다, 허상에 불과할지라도 현재에 충실하며. 이 책은 연인이 사랑을 딛고 만들어내는 장소의 가치를 끊임없이 더한다.

 

몇 번이고 앞으로 돌아가 곱씹고 싶은 문장들로 구성된 책.

 

[해당 서평은 채석장 그라운드 서포터즈의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j******7 2023.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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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시(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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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시(時) -이광호 『장소의 연인들』을 읽고-   이별 후, 유독 장소와 추억을 연결하여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 가면, 혹은 저곳에 가면 그때 함께 했던 일이 떠올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렇듯 사랑을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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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시()

-이광호 장소의 연인들을 읽고-

 

이별 후, 유독 장소와 추억을 연결하여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곳에 가면, 혹은 저곳에 가면 그때 함께 했던 일이 떠올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렇듯 사랑을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누구도 장소의 퇴색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인들에게 장소란 무엇일까? 같은 대상 같은 공간임에도 시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같은 공간에 다른 대상과의 경험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한다. ‘장소공간은 다르다. 추상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에 개인 주체의 체험과 실존의 관계가 개입되면 장소가 될 수 있다. 즉 도시에는 수많은 물리적 공간이 있지만, 연인과 함께 그 공간에서의 고유한 시간이 경험되었을 때 그것은 연인들의 장소가 될 수 있다. ‘함께 있음을 행하는 것이다.

 

장소의 연인들은 연인들의 시간이 장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책 표지 뒷면에도 쓰여있다시피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라는 문장에 사물을 둘러싼 촉각의 세계와 피부의 시간을 채워 넣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카페, 서점에서부터 각각의 몸,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 낮과 밤의 벤치, 국경과 테라스 등 정지해 있는 장소는 물론 계절,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장소들 전부를 담고 있다.

 

계절은 장소에 특정한 시간의 이름을 덧씌운다. 그러면 그 장소는 언제나 그 계절 속에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구체적인 계절의 이미지를 공유한다는 것은 시간의 흔적이 지워지는 것을 늦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어떻게 발설되고 잊히는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p.111~112)

 

이 책의 재밌는 요소는, 장소별로 그 장소가 나오는 소설에 대한 짤막한 줄거리를 소개한다는 점이다. 보통 소설을 읽게 되면 화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 마련인데, 줄거리를 소개할 때 장소의 역할과 효과를 제시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픽션 에세이라고 일컫는, ‘가 어떤 장소와 관련된 짧은 글을 통해 그 장소가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되고 읽히는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나아가 나에게 그 장소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여러 장소 중 유난히 우산 아래의 벤치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연인들의 벤치는 연인들을 에 앉게 만든다. ‘의 세계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곳이지만 의 세계는 몸을 나란하게 위치시킨다. ‘의 세계란 건 나와 그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세계다. 나란히 앉아 말하지 않아도 편안한 세계다. 비가 오는 저녁, 한 우산을 함께 쓰고 우리만의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우산 아래의 벤치가 좋다. 가끔은 우산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보면서 잠시 세계의 바깥을 가늠해보다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마저도 우산 아래의 벤치가 만들어내는 의미가 된다.

 

연인들의 장소의 필연적인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중략) 사라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소는 고유하다. (p.170)

 

우연한 공간을 장소로 만드는 것은 연인들이 사랑을 수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장소는 절대적이지 않다. 장소는 사라져야만 한다. 사랑이 그 장소에 존재했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수없이 거쳐도, 처음 부여되었던 그 장소의 의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 발명하고 발명하고 다시 발명한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연인들의 이 발명하는 행위는 무수한 사랑의 증거로서 끝내지 않을 기나긴 여행일 것이다.

 
k****4 2023.02.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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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연인들 /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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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연인 #감각적 키워드 우리의 사랑하는 연인과 장소-한다. 한 줄 평 장소들은 사랑의 신체와 같다. 첫 문장     문학과지성사의 인문 에세이 시리즈, 채석장 그라운드 서포터즈로 이광호 작가의 <장소의 연인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장소'와 '연인'이라는 두 단어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해하며 읽어나갔다.   장소가 연인들의 장소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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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연인 #감각적

키워드


우리의 사랑하는 연인과 장소-한다.

한 줄 평


장소들은 사랑의 신체와 같다.

첫 문장


 


 

문학과지성사의 인문 에세이 시리즈,

채석장 그라운드 서포터즈로

이광호 작가의 <장소의 연인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장소'와 '연인'이라는 두 단어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해하며 읽어나갔다.

 

장소가 연인들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사랑의 수행성의 문제이다. 연인들의 장소에서 '사랑-하다'는 '장소-하다'와 동의어이다.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장소-하다'를 통해 그 장소의 본래적인 특성 이상의 다른 차원을 갖게 된다.

p. 169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작품은 장소와 사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특정 장소와 사물마다

관련된 하나의 소설이 소개되고,

그 장소와 사물에 대한

'그'와 '나'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가는 "사소하고 우연한 장소는

연인들의 시간을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별성을 갖게 된다",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p. 9)고 말한다.

 

연인과 함께한 장소는 특별해진다.

매일 걷던 길도, 매일 가던 빵집도, 매일 타던 버스조차도

연인과 함께하면 새로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장소를 발명하고 있던 것이다.

 


 

"그 장소에서 연인들은 자신들만의 촉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품은 감각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장면과 그 감각이

눈앞에서 선명하게 펼쳐지는 듯하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의 손목에서 만난 따뜻한 부드러움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낸다. 물방울이 유리창에 스며들지 못하는 것처럼, 손목은 다른 표면에 스며들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린다.

p. 64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부드럽고 예쁜 문장으로 잔잔히 노래하다

신선한 은유가 갑자기 톡 하고 튀어 오른다.

 

연인이 된다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하나의 행성이 되는 것이다. 그 행성이 떠도는 이유와 방향 같은 것은 없다.

p. 10

 

어떤 슬픔은 수영장의 물처럼 귓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흘러나오지 않고 온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가끔은 그 물들이 몸 안에서 출렁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p. 160

 


 

<장소의 연인들>은 그 어떤 로맨스 소설보다도

더 로맨틱하다.

 

가장 로맨틱했던 곳은 욕조였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물이 출렁거리거나 또 하나의 피부와 만나 다른 감각이 시작된다. 욕조의 시간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물의 시간이다. 욕조는 연인들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완벽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좁고 따뜻한 바다로 연인들을 안내한다. 두 사람의 몸이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따뜻한 바다로의 유영이 시작된다. 두 몸의 부피 때문에 물이 갑자기 흘러넘칠 때, 이미 욕조의 항해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몸속에 함께 들어앉은 쌍둥이 태아처럼 두 사람은 물 위를 유영한다.

p. 57

 

따뜻하고 촉촉한 공기가 가득 찬 희뿌연 욕실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공기 특유의 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장소와 사물에 대한 표현이 감각적이고 새로웠다.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문장 하나하나 꼭꼭 씹어 삼키고 싶은 책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작품 속 장소와 사물에 대한

나와 연인의 이야기를 떠올려보게 된다.

그와 함께라면 일상 속 공간도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연인들의 시간이 장소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한 생각에서 출발했을 것이다"(p. 177)라는

작가의 후기에서 보듯,

그 미세한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글의 재료로 삼는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주변의 모든 것이 글감이라는 생각 또한 해보게 된다.

 

참 괜찮은 책이다.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문장 수집

장소의 연인들, 이광호

 

사랑하는 연인들이 장소를 탄생시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자신들의 물질적 영역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연인들은 은둔자가 되려는 것처럼 숨을 장소를 찾는다.

p. 11

 

연인들은 장소 자체를 숭배하거나 의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함께 있음'만이 장소의 사건이다.

p, 25

 

연인들이 머무는 장소의 기본 단위는 집이 아니라 방이다. 그것은 그들이 제도적이고 물질적인 안정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방은 현재적인 체류의 지점이지만 소유한 곳은 아니다. (···) 연인들이 방에 머문다는 것은 그들이 머무는 장소가 유동적이며 잠재적이라는 말이다. (···) 그 방에서 연인들은 바깥 세계에 대한 감각을 잠시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공간은 아니다.

p. 31

 

아파트 발코니가 바닷가 호텔의 발코니보다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발코니의 개방감을 제한하는 삶의 안정감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p. 34

 

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두 사람은 지금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곳을 여행 중이다.

p. 39

 

가끔 책의 활자들은 이국의 식당에서의 읽을 수 없는 메뉴판처럼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은 그래서 일종의 기억상실이다. 하나의 문장은 다음 문장에 의해 금방 잊히고 하나의 페이지는 다음 페이지에 의해 잊힌다.

p. 39

 

'앞'의 세계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곳이지만, '옆'의 세계는 몸을 나란하게 위치시킨다. 가까운 곳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시선은 이동하고, 뒤돌아볼 것들은 사라진다. 다른 손가락에 닿는 최단 거리를 손가락은 알고 있다.

p. 67

 

우산은 매력적인 사물이다. 그 안에 숨겨진 관절이 작동하면서 검은 천으로 덮인 챙이 넓은 모자처럼 전혀 다른 공간을 펼쳐보인다. 우산이 펼쳐지는 순간은 두 사람의 최소 공간이 만들어지는 장면이다. 우산은 순식간에 내밀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 연인들이 우산 아래에 있다는 것은 가장 손쉽게 그들만의 최소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p. 69

 

연인들은 대개 완전한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혹은 현재의 완전함 때문에 과거와 미래의 헛된 무게에 짓눌리고 자신을 괴롭힌다. 이미 지난 것과 모르는 시간들이 현재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책을 찾거나 고른다는 것은 자기만의 종교를 찾기 위한 영혼의 편력이기도 하다. 자기만을 위한 일생일대의 단 한 권의 책 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의 갈증을 이곳에서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p. 81

 

자연스러움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부자연스러워지는 일은 반복되는 실수이다.

p. 82

 

냉장고는 생뚱맞은 사물이다. 새벽에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면 당혹스러운 불빛이 얼굴에 쏟아지고, 문을 닫으면 그 작은 세계는 다시 봉인된다. 냉장고 안에 있는 식물과 동물의 잔해들은 사실 죽은 것인데 신선하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죽음을 유예하는 차갑고 기이한 시간이 그 안에서 웅웅거린다.

p. 16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c*******0 2023.0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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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는 연인들에의해 재발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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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장소의연인들이광호문학과지성사..연인들의 장소를 지도로 그린다면 등고선은 감정으로 일렁일 것이다. 익숙한 곳은 낯설게, 먼 곳은 가깝게 축적은 알수 없이 달라질 것이다.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탐색의 지도가 아니다. 장소를 은폐하기 위한 지도다. 장소는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만 재현된다. 그들은 연인들이며 이 책은 연인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찾아 섬세하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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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
장소의연인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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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장소를 지도로 그린다면 등고선은 감정으로 일렁일 것이다. 익숙한 곳은 낯설게, 먼 곳은 가깝게 축적은 알수 없이 달라질 것이다. 장소를 찾아가기 위한 탐색의 지도가 아니다. 장소를 은폐하기 위한 지도다. 장소는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의 마음속에서만 재현된다. 그들은 연인들이며 이 책은 연인들이 머물렀던 장소를 찾아 섬세하고 아름다운 지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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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어떤 장소가 있는가. 유독 계절의 색이 선명했던 시간들, 우리는 어디에 있었나. 마음은 목적없이 떠돌더라도 '어딘가'에 분명히 있었다. 이 책은 그 장소의 기억들을 익명의 존재로서 재구성한 에세이다. 방, 발코니, 극장, 공항, 운동장, 공터, 서점, 골목 등. 연인들의 이야기는 마치 초점이 흐린 사진의 한장처럼 깊고 섬세한 서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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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건이 ‘함께 있음’의 행위라면, 장소는 함께 있음이라는 사건이 그곳에서 벌어졌음을 증거한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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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장소가 되기 위한 최소조건은 '함께 있음'이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기억에서든 함께한다면 장소의 물성이 변화할 수 있다. 마치 선언과도 같은, 혹은 발명과도 같은 문장을 보면서 이 책의 시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가 알던 일상의 공간들은 "연인의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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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는 연인들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완벽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좁고 따뜻한 바다로 연인들을 안내한다. 두 사람의 몸이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따뜻한 바다로의 유영이 시작된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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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장소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짐작할 수 있으며 에로틱한 순간들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인용한 것처럼 문장은 아름답고 문학적 순간들로 포착되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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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사라진 장소는 날카로운 비문으로 채워져 있지만, 망자의 이름이 없는 묘비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 비문은 계속 다시 쓰여야 하지만 진정한 문장 같은 것은 없다. 그 비문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고 어떤 장소도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물 위에 쓰는 비문과 같다.(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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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그러나 장소에 대해 쓰는 시점에는 연인의 현재보다는 과거에 있기에 읽으면서 서글프고 처연한 감정이 이어진다. 연인은 장소에 존재했고 그 장소에는 없으며 내 기억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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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공간에서 익명의 연인들이 보여주는 서사는 문학작품과 이어진다. 저자의 전작 #사랑의미래 에서 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언급한 책과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읽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장소에 주목하기 때문에 새로운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지적인 문장은 아름답고 사유의 깊이가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언제든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재발명되는 장소들을 위한 에세이는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w*****e 2023.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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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와 ‘장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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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장소의 필연적인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 사라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소는 고유하다.”“연인들의 장소에서 ‘사랑-하다’는 ‘장소-하다’와 동의어이다.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어떠한 추억이 있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 연인 뿐 아니라 가족이나 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언제 함께 하느냐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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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장소의 필연적인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 사라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장소는 고유하다.”

“연인들의 장소에서 ‘사랑-하다’는 ‘장소-하다’와 동의어이다. 연인들에게 장소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어떠한 추억이 있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다. 연인 뿐 아니라 가족이나 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언제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사랑은 굉장히 주관적이듯 장소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규정된 용도와 정체성이 바뀐다. 또한 그 장소는 똑같이 기억되지 않으니 매번 일회적이다.

이 책은 가상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장소를 떠올리게 한다. 그 장소의 특성과 함께 그 시간에 얼룩처럼 남겨진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연인들의 장소뿐 아니라 가족의 공간인 ‘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집에 켜켜이 쌓인 아이의 시간들을 떠올리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벅찬 감정이 든다. 태어나고 자라고 하루하루 커가며. 아이는 나중에 우리집을 어떻게 기억할까.

“장소의 세밀함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기억과 상상력의 문제이며 그것은 사랑의 장소를 잊지 않으려는 불가능한 노력의 산물이다. (..) 연인들이 장소를 발명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이며, 지금은 없는 장소를 다시 기억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그 여행에 대한 여행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j********5 2023.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은 그 자체로 물리적이고 실재적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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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가 상징하는 매우 사적인 시작과 정지의 이미지, 개방과 폐쇄의 이미지, 이미 사라진 기억들과 사라질 추억들을 얘기한다.‘헤테로토피아와 아토포스’가 이야기를 여는데, 연인들의 헤테로토피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반공간’이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사건을 통하여 양립 불가능하던 기존의 이미지들이 겹겹이 쌓이는 결과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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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가 상징하는 매우 사적인 시작과 정지의 이미지, 개방과 폐쇄의 이미지, 이미 사라진 기억들과 사라질 추억들을 얘기한다.

‘헤테로토피아와 아토포스’가 이야기를 여는데, 연인들의 헤테로토피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반공간’이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사건을 통하여 양립 불가능하던 기존의 이미지들이 겹겹이 쌓이는 결과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간은 그 자체로 사랑의 기억에 대한 상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기도 했다.
”어떤 특정한 장소들은 ‘사랑-하다’의 행위를 통해 ‘장소-하다’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소음에 둘러싸인 방’에서 연인들이 일시적으로 머물게 되는 방은 약간의 단절, 사적인 감각을 제공하지만 외부에서 새어들어오는 소음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이 노출된 추문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일깨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엔딩이어서 사랑의 시간이란 유한하다는 사실을 더욱 공고히 한다.

‘우산 아래의 벤치’는 한 번이라도 벤치에서 사랑에 버금가는 팽팽한 경험을 한 적 있는 독자라면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게 될 것 같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이들은 공기의 밀도가 거의 손에 만져질 정도로 긴장되는 순간을 묘사한다. 서로 마주보고 시선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앞’의 세계와 달리 ‘옆’의 세계은 상상과 공백이 두드러지는 나란한 연인의 세상이다.
”다른 손가락에 닿는 최단 거리를 손가락은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밤의 골목으로 가려면’에서 밤의 세계는 빛의 부재만큼이나 소음과 이성 또한 부재하는 상상과 감각의 공간이 된다. 이 곳은 깊이로 감각되며 어둠은 상상, 기대와 두려움을 모두 만드는 다재다능한 역할을 한다. 곧 ”밤 자체가 하나의 사건“인 이유이다.

이 외에도 자동차는 연소와 에너지의 폭발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연인들의 사랑과 닮아있고, 야간 열차는 마주치는 역들을 ‘여태 기다린 것만 같은’ 안도감을 선사하므로 오랜 기간 후 연인을 사귀었을 때 느끼는 ‘비로소’의 감각과 닮아있기도 하다.

이 책은 쉽게 잊히나 경험 당시에는 영원히 기억될 것만 같은 순간들을 섬세하게 짚어내며 그 배경이 되는 장소를 조명한다. 이는 매일 지나치는 장소들에 감정이 부여하는 소중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사랑 또한 물리적이고 실재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YES마니아 : 로얄 t****1 2023.02.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