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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을 촬영한 사진 색채복원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불과 100년 전의 우리나라 모습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시간에 많은 성장을 이루어왔죠.
내가 봐도 100년 전의 우리나라가 새롭고 흥미로운데, 외국인의 눈에 비친 꼬레아는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근대의 우리나라를 비주얼 가득한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기사로 만나 볼 수 있는 《꼬레아 타임스》를 소개합니다.
'꼬레아'는 외국인들이 부르다 지금도 코리아로 정착된 우리나라의 이름이에요. 신문과 잡지가 만들어져 머나먼 나라의 소식까지 다루었던 세계의 언론, 그 언론에서 다룬 조선 후기와 개화기,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역사자료를 직접 볼 수 있지요.
조선의 실사진과 함께 몇 년도 몇월 며칠, 어느 나라에 실린 기사인지 내용은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는 구성으로 역사자료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어요. 개항 이전의 꼬레아, 개항 이후 꼬레아, 대한 제국의 모습으로 3가지 시대로 분류되어 기사를 소개해요.
-외국인 눈에 비친 조선의 '첫인상'을 각국의 나라의 기사로 볼 수 있어요.
-서양 문물의 설레고 신기한 만남을 가진 조선인을 볼 수 있어요.
-조선의 민속놀이, 석전! 아시나요? 강이나 개천,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편을 갈라 돌을 던지며 싸우던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였는데, 일본 강점기에 군사 훈련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어 금지했다고 하네요. 저도 책을 통해 '석전'이라는 민속놀이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한성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 제목의 기사가 참 흥미로웠어요. 명성황후 시해 이후 고종이 황후의 능까지 행차할 때마다 한 가마에 80kg인 쌀이 1만 가마 이상 살 수 있는 돈이 들었다니! 전차의 설치 이유도 놀라웠지만, 도쿄보다 3년 앞서서 개통되었고, 신기술의 필요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전차가 조선에서 운행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랬지요.
-중반부를 넘어 <조선의 첫 외교 사절단 보빙사> 내용에서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 해결되었어요. 비행기를 탈 수 없던 100년 전 우리나라의 외교 사절단은 먼 거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어떻게 이동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요. 미국으로 파견된 조선의 텃 외교 사절단인 보빙사 일행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갓을 쓰고 긴 복장의 한복을 입고 첫 만남에 절을 한 보빙사를 보고 미국의 아서 대통령이 당황해하는 사진 기사가 실려 있어요.
-'대한 제국'의 꼬레아 편을 볼 때는 힘든 역사의 일부를 마주하게 되어 마음이 참, 힘들었어요. 일제와 서구 열강들의 싸움터가 된 우리나라. 힘없는 나라의 처참한 모습 속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고, 조상님들의 애국심에 감동과 평화와 풍요로운 지금의 우리나라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약 160쪽의 분량으로 '조선과 대한 제국'의 모습, 우리나라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책이라 활용도 가치가 높은 것 같아요.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기사 속 내용을 보며 의미 있는 대화도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없던 아이도, 우리 역사를 좋아하던 아이도 한 번 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꼬레아 타임스》를 많은 어린이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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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이다. 같은 사건도 기록한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에 누가 기록한 자료를 만나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물론 대부분 역사의 순간에는 사관들의 펜대에 압력을 가하는 이들이 있었겠지만, 근현대사 100년만큼 타인의 의지가 덧입혀진 시간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근현대사는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낯설고 여전히 흥미롭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신기한 책 한 권, 『꼬레아 타임스』. 외국인이 본 100년 전의 우리나라를 담은 책이란다. 즉 외국인이 기록하고 남긴 우리나라의 모습들을 발췌한 책이라는 뜻이다.
특히 『꼬레아 타임스』는 국공립 박물관에 이미지 자료를 제공한 저자의 책인 데다가 국내 유일 우리 역사 문화 아카이브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더욱이 근현대사 100년에 미공개되었던 이미지들이 최초공개되어 어른들에게도 아이에게도 훌륭한 사료집이 되리라 생각한다.
『꼬레아 타임스』가 초등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 이유.
첫째, 역사적 자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서 봤던 주요자료나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자료들을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 더욱이 근현대사는 교과서에서도, 시험에서도 단골손님. 『꼬레아 타임스』에 등장하는 사진들, 내용만 기억해도 숙제부터 시험까지 조금 더 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제목과 부제, 본문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일부러 찾아야만 만날 수 있는 신문. 그렇다 보니 축약 등의 표현을 배우기 어려운데 『꼬레아 타임스』는 신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제목, 부제, 본문을 나눠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이 책의 형식을 빌려 '우리 집 타임스'를 만드는 훈련을 한다면 창의력과 문장력을 동시에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셋째,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키울 수 있다. 우리 기준의 역사, 외국인이 본 우리 역사를 만나며 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다. 역사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도 키울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꼬레아 타임스』의 분량이 적은 편도 아니고, 매우 다양한 순간들을 다루고 있기에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완독하는 것보다, 일정 분량씩을 나눠 공부하듯 만나보시면 좋겠다. 이제 방학을 앞둔 시점, 『꼬레아 타임스』를 통해 역사를 보는 다양한 눈을 키우기도 하고 '우리 집 타임스'를 만들어보며 창의력과 문장력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꼬레아 타임스』는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역사의 새로운 얼굴, 숨겨졌던 이야기를 만나게 하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
| 옛 조선인이 아닌 옛 외국인들이 조선(대한제국)을 소개하는 외국인의 시점에서 바라 본 조선이라는 주제로 인해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외국 신문에 실린 조선 관련 기사들이 있는데 그 중 나는 1867년 1월 19일자 프랑스 주간지 릴뤼스트라시옹에 실린 세계 최초의 밤반조끼 '면제갑옷'을 우리나라가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면제갑옷은 병인양요때 전쟁에 나간 군사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이 조선후기 기계제작자인 김기두와 안윤 등의 개발자들에게 명하여 만들어졌다. 면제갑옷은 총 또는 포탄의 파편들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하여 피해를 줄이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강을 건널때 갑옷에 사용된 천이 젖게 되어 물이 흡수될 때 무거워지는 단점과 더위, 그리고 불이 잘 붙는다는 것이였다. 또한 이 면제갑옷은 1871년 신미양요때 실전에 사용했으며 미국 장교들은 놀라운 내구성이라 평하고 병사들도 총탄세례를 뚫고 오는 조선군을 보며 이 신무기에 놀랐다고 한다. 이러한 군사적, 역사적 유물로서 가치가 높은 면제갑옷을 우리나라가 최초로 만들었다니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를 외국 신문에 기록된 내용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이 책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잘 알려지지 않는 역사를 외국 신문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고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되었다. 역사를 모르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역사를 배우는 것에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역사는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새로운 것들이 많고 지루하지 않다. 역사를 알아간다는 건 지난 과거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위한 새로운 길을 만든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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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 100여 년 전의 외국을 본다면 신기한 모습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같은 100여 년 전이라고 해도 동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준에서 외국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 신기해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외국인들이 본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꼬레아 타임스』는 바로 그런 물음에 외국의 주간지, 외국인이 찍은 사진 등을 통해 보여준다. 사실 100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은 같은 우리나라 사람인 지금의 내가 봐도 참 신기한 모습들이 많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얼마나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질적으로 보였을까?
지금이라면 당연한 것들이 그 당시에는 처음인 것들이 대부분이였을 것이고 때로는 실제했던 사건이지만 그때의 모습을 보거나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본 것이 아닐 경우에는 자신들의 기준에서 그려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런 부분들을 보는 묘미도 있는 책이다.
외국인의 눈에 조선, 조선 사람이 이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조선의 역사, 사회, 문화, 정치, 외교관계 등을 우리 역시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에는 세계에 알려진 우리나라의 기사 네 가지와 함께 세계에 황당하게 알려진 우리나라 사건 네 가지를 부록으로 실고 있는데 이는 기사 자료와 이미지이기 때문에 관련해서 앞의 내용들처럼 자세한 코멘트는 없지만 충분히 의미있게 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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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나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느끼지만, 외국인들은 신기해하는 우리나라 모습을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오히려 '이게 왜 신기하지'라고 생각하며 재밌게 느껴집니다. 세계화가 된 지금도 이런 상황이 빚어지는데, 100년 전에는 어떨지 상상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100년 전 조상들의 생각에 황당함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꼬레아 타임스>는 이런 재밌는 상황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책입니다. 서울에 자동차가 최초로 나타났을 때, 한성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 등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책을 읽으며 아이들이 너무나 신기해 했습니다. 재미뿐 만아니라 19세기 말부터 개항, 대한제국의 시기까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쓴 글(기사)와 사진, 그림 등이 짜임새 있는 실려있어 근대사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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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 경복궁을 밝히다. - 1887년 3월 6일 저녁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점화되었다. - 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설비는 당시 동턍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이었음. - 향원정 연못에서 물을 얻어 연료로 석탄을 넣고 발전기를 돌렸는데 발전기를 가동하자 연못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함. 2. 프랑스 박람회에서 휘날린 태극기 - 태극기는 고종의 명을 받아 1882년 특명전권 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가 지은 <사화기략>에 "그해 9월 박영효가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건곤감리 사괘를 그려 넣은 '태극?사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그달 25일부터 배에서 사용했으며, 10월 3일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고 함. 3. 아시아 동쪽의 조선이라는 나라 - 제너랄셔먼호 사건 4. 프랑스의 조선 원정 - 외규장각 의궤 5.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신미양요 6. 통신사, 수신사, 신사유람단, 보방사 7. 조선 왕비의 암살 8. 고종과 커피의 만남 9. 독도는 우리 땅! 10. 경운궁과 덕혜옹주 11.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읽고 나서) 서세동점의 시기에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을 신문기사나 사진 등을 통하여 보니 얼마 전 경복궁, 경운궁 및 안중근, 김구 선생의 묘에 갔던 일들과 오버랩 되면서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다. 그때 그 시절의 조선이라는 나라와 현재 이 시점의 대한민국은 다른 듯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을 생각하여 같은 시대착오를 겪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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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나라, 은둔의 나라인 꼬레아를 여행한 외국인들. 꼬레아인의 독특한 의식주에 외국인들은 고개를 젓기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곧 꼬레아라는 아름다운 나라에 매료되지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를 꼬레아라고 불렀어요. (-9-) 지게를 메고 지팡이를 든 짐꾼, 아기를 업고 있는 낮은 신분의 여자, 수도인 한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 외국인을 둘러싼 조선 사람들, 열 네살의 어린 신랑, 가마꾼, 인력거꾼, 장옷을 쓴 여성, 등에 짐을 가득 실은 수소와 앞에 앉은 남자 등 조선을 여행하며 만난 다채로운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지요. 특히 톰 브라운은 "말총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갓) 는 결혼한 남성이 쓴다. 우산처럼 쓰는 모자(삿갓) 는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해 준다. 조선 사람 누구나 입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가운(두루마기)은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이 느껴진다."고 설명하며 낯선 조선 사람의 의상을 인상깊게 보았다고 전하고 있어요. (-11-) 1902년 2월 8일자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 에 실린 '석전'의 모습이에요. 영국의 판화 작가가 서울 근처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 그림이지요.석전은 강이나 개천 또는 넓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편을 가라 돌을 던지며 싸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예요.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 <동이잔> '고구려조'에 석전에 대한 기록이 있어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어요. 석전은 주로 정울 대보름에 행해졌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단오나 추석에도 벌어졌어요. (-19-) 자동차를 처음 본 조선인들이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들고 가던 짐도 팽개친 채 숨기에 바빴다. 짐을 싣고 가던 소와 말도 놀라 길가 상점이나 가정집으로 뛰어들었다. (-27-) 1904년 1월 29일자 프랑스 주간지 《라비 일뤼스트레》 기사에 대한 제국 황제의 행차 장면이 실렸어요.위쪽 사진은 고종황제와 황태자(순종)가 두 개의 연(임금이 타는 가마)에 나눠 타고 흰 두건을 쓴 승려와 군인들에 둘러싸여 행차하는 모습이에요.아래쪽 사진은 고종황제가 탄 연이 구식 총과 갈고리 모양 창으로 무장한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한양의 한 교량(다리)으로 진입하는 모습이고요.황제는 일년에 한 번씩 조상들의 묘를 찾는 연례행사 때 , 중구에서 고위급 사신이 왔을 때,나들이를 갈 때 연을 타고 행차하지요.기사는 이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고종 황제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드 라네지에르와의 인터뷰를 실었어요. (-35-) 100년 전 조선은 고종 임금과 순종 임금이 있었던 조선 말엽이었다.그 당시 조선은 강제로 개항하였고, 일본에 합병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일찌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데 반해, 조선은 민비 시해 이후 ,문을 꽁꽁 닫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구 열강은 조선 땅에 들어오게 되는데, 동학 농민 운동을 핑계삼아서, 청일전쟁을 벌이게 되고, 조선의 힘이 약해진 시점이었다. 봉건사회였던 조선을 기이하게 보았던 외국인은 카메라로 그 순간을 담았고,미지의 나라, 은둔의 나라 조선을 기록했다. 물론 그 때 당시 미국은 메이저리그 야구가 시작된 시기였고,조선은 민속놀이,석전, 편을 갈라 돌을 던비며 싸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가 있었다.여기서 석전놀이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서 박을 깨트리는 놀이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에서, 조선이 서구의 입장에서,최빈국에 불과하지만, 그 대 당시 문화의 수준은 상당히 높았으며, 일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미지의 나라, 은둔의 나라 조선에 대해,외국인은 신기하게 바라 보았고,처음 등장한 자동차,전차에 놀라서, 도망 다녀야 했넌 조선 사람을 독특한 민족으로 인식하였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후기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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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호기심은 인간을 항상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곳을 탐색하게 합니다. 매년 공항 이용객수 최고 기록을 갱신해 가는 것만 봐도 항상 새로운 곳, 늘 있는곳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 드러나 보입니다. 이는 비단 오늘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00여년의 시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 그 옛날에도 목숨을 건 항해를 무릎쓰고 새로운 곳을 탐색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그들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놓았지요. 꼬레아 타임스는 그 옛날 대서양, 태평양을 건너 조선이라는 이국적인 나라에 다다른 푸른눈의 그들에게 비친 조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고지도, 옛사진, 신문과 책 등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담긴 자료를 40여년간 끈질기게 수집하고 있는 작가가 편찬했습니다. 이 책은 주로 영국 주간지 <더 그래픽>, <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미국 <하퍼스 위클리>, 프랑스 <르 프티 주르날>, <라 비 일뤼스트레> 에 실린 기사와 사진, 그리고 일러스트를 토대로 외국인의 눈으로 본 '꼬레아'를 담아내었습니다. 여러 사진 자료에 더불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배경설명, 사건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에 대해 소개한 부분인데요, 프랑스 주간지와 스페인 신문에 실린 명성황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진과 비교해 보니 두 나라의 그림 차이가 확연히 보이네요. 이 페이지 아주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프랑스 주간지에 표지 기사로 오를 만큼 관심있게 다루어 졌다는 부분도 아주 놀라웠습니다. '뚜렷하게 친중국 정치를 펼쳤던 조선의 왕비가 살해되었다. 침입자들은 근위병들을 먼저 학살한 뒤 와비의 거처로 들어가서 와비와 궁녀 세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시신은 불태워 버렸다. 조선 왕비의 나이는 45세였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역사책, 역사동화, 역사 교양서와는 달리 조선이라는 극동의 나라를 관찰했던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어서 새로웠고, 그런 그들의 시선을 읽는 즐거움이 컷던 책이었어요. 아이들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우리나라라는 점이 신기해서 자꾸자꾸 들여다보고 많은 이야기를 하게 했던 책입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쓴 후기 입니다.
#꼬레아타임스 #제제의숲 #이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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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물을 한참 받아들일 때 당황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의 모습들을 외국인의 입장에서 표현한 부분들이 다소 해학적이기도 하지만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컸다는 것도 알게 된다. 변화하는 근대사를 우리 한국인의 시점에서 쓰여진 역사책과 달리 외국인이 만든 신문기사나 사진잡지로 접하니 우리나라의 역사변화가 더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역사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실제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역사가 정말 사실일지도 한번쯤 의심하게 하기도 하고 지금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가운데 왜곡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최초로 공개되는 미공개 이미지들과 쉽게 구하기 힘든 역사자료들을 보며 우리가 배우고 알게 된 역사가 정말 진실일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외국인과 같은 다른 시각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맨 뒤에 이미지 자료부록을 보면서 왠지 모를 소장의 가치도 느껴졌다.
저자는 사진으로 남아있는 우리나라 근현대 사진자료를 열정적으로 수집하였다. 그리고 국공립박물관과 각종 전시회에 자신이 모아놓았던 각종 이미지를 적극 제공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진실을 현재에 다시 한번 더 되짚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자동차,빵과 쨈이라는 외국문물을 받아들일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는 그림도 재미나고 외국인과 만날 때 우리의 방식대로 큰절을 하는 모습은 동방예의지국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가마꾼에 대한 힘겨움을 표현한 외국인의 기사도 흥미롭다. 서로의 문화가 다른 것을 인정하며 표현하는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매체의 자유가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의 자유가 더 없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소중한 역사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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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간지 〈하퍼스 위클리〉 1898년 1월 15일자에 말을 타고 꼬레아를 유람한 사진 작가 W. H. 잭슨의 글이 실렸다. 제물포항으로 '꼬레아'에 들어간 잭슨은 항구의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고 나서 조랑말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초가지붕을 올린 흙집이 줄지어 선 꼬레아의 마을과 거리를 지나가면서 마주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보며 꼬레아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도 했지요. 잭슨은 처음 본 꼬레아의 경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관은 다양하고 낭만적이었다. 산맥은 선이 굵어 아름답고 섬세한 푸른색과 보라색을 띤다. 만듦새도 조악하고 사용된 자재도 지저분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의 작은 집들조차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19세기 말 세계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졌던 작은 나라 꼬레아. 외국인들이 부르다 지금도 코리아로 정착된 우리나라의 이름이다. 꼬레아는 발음상 아무래도 불어나 스페인어 계통이 아니었을까? 신문과 잡지가 만들어져 머나먼 나라의 소식까지 다루었던 세계의 언론. 그 언론에서 다룬 조선 후기와 개화기,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를 세계 언론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들에게 비친 우리나라 꼬레아의 모습은 어땠을까? 많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를 남긴 언론이 있었다. 주로 우리에게 개항을 요구했던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다. 이 책 『꼬레아 타임스』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서 회자된 우리나라의 모습과 역사를 보여 준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역사에 관심이 없던 아이뿐만 아니라 제대로 몰랐던 성인들도 이 책에서 얻을 것이 많다.
이 책은 이돈수, 배은영이 공동으로 썼다.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면 무조건 구하고 봤던, 외국 자료에 실린 우리나라 자료 수집가인 저자의 고해상도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사료로서 가치도 높다. 또 책장만 넘기며 사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고리타분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에 아이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에서만 최초 공개되는 미공개 이미지는 물론, 희귀하거나 구하기 힘든 역사 자료도 적잖게 실려 있다. 독자가 꽤 오래 전에 『꼬레아, 꼬레아』란 체목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도 개화기, 대한제국의 시기,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는 100년의 역사를 중심으로 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진 자료나 신문 기사 등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인지 사진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서 보는 사진 상당 부분이 독자로서는 처음 보는 사진이다. 독자가 그 시기의 우리나라 실상에 관심이 컸던 것이 아니기에 한 번 읽고 잊어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아쉽다. 훌륭한 생각 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이 책은 사진뿐 아니라 사진과 기사를 바탕으로 한 그림도 많이 들어 있어 어린이들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의 책의 맨 뒤에는 잘라 쓸 수 있게 만든 이미지 자료 부록까지 들어 있어 활용도 높은 소장용 책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사람이나, 우리가 처음 본 서양 사람이 서로 서먹서먹하거나 경계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의 개화기는 대원군의 쇄국정치와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는 시점이어서 외부인이나 외국인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그들에게는 더욱 냉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앞의 신문에 실린 글을 토대로 이 책에 실은 잭슨의 감상기는 적대적이지 않지만 매우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로 들어선 잭슨은 북새통을 이루는 사람들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언덕과 구릉, 유서 깊은 궁궐 앞을 지키고 있는 몇몇 군인을 보았다. 그리고 곧 내부대신(조선 후기 내무행정을 맡아보던 관아의 으뜸벼슬) 남정철을 만나 꼬레아 왕실에 들어가 따뜻한 샴페인과 달콤한 케이크를 대접받았다"고 공동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왕을 기다리는 동안 알현실과 경복궁의 흥미로운 사진 몇 장을 찍었고, 얼마 후 잭슨은 꼬레아의 왕과 세자를 만났다. 잭슨은 이렇게 신문에서 기술하고 있다. "왕은 밝은색 천으로 덮인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는데, 탁자에 있는 두 개의 등유 램프가 방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왕은 키가 큰 내시들 옆이라 오히려 왜소해 보였으나, 대화를 시작하자 왕의 얼굴은 흥미와 지적 호기심으로 밝아졌다." (중략) 왕은 통역관을 통해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특히 내가 꼬레아에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를 궁금해 하는 듯했다. (중략) 함께 자리한 세자는 얼굴이 둥글고 졸려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자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오가는 이야기에도 흥미가 없어 보였으며, 단답형의 대답 말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거나 짧게 대답하였다.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공손하게 왕을 알현한 후 절을 세 번 한 뒤에 뒷걸음으로 나왔다."(p.4~5) 잭슨은 남은 여정 동안 도와줄 안내자를 알렌 박사한데 소개받았는데, 박내원이라는 꼬레아인이었다. 이튿날 아침, 잭슨은 왕이 하사한 호랑이 가죽, 은 상자 등 다양하느 선물을 가지고 박내원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다.
책은 또 잭슨의 이후 일정을 쫓아가면서 몇 가지 사실을 더 기록한다. 서울과 원산(함경남도 남쪽)의 중간 지점에서는 쾌활한 성격의 어느 지방관의 대접을 받았다. 그 지방관은 잭슨에게 가진 것 중에서 최고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접해 주었고, 잭슨은 라이 위스키(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의 한 종류)로 답례했다. 여행의 후반부에 잭슨은 기사에서 꼬레아가 더욱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기록한다. 꼬레아 유람을 마친 잭슨의 마음은 원산의 잘 익은 논밭처럼 꼬레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알알이 꽉 차 있었다고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책은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 기사를 발굴, 소개한다. 기사의 제목이 「이채로운 조선인의 모습」이었던 듯하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특이한 모자를 쓰는 나라다. 조선인 누구나 입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가운은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이 느껴진다. 책은 이 기사가 실린 날짜를 1909년 12월 4일자라고 밝힌다. 나라의 운명의 풍전등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리고 1909년이면 우리나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숨졌다. 12월의 시사라면 안중근 의사도 사형을 언도 받고 이미 숨졌을 때다. 〈더 그래픽〉은 사진 기자 톰 브라운이 작성한 기사를 사진과 실었던 듯하다. 지게를 메고 지팡이를 든 짐꾼, 아기를 업고 있는 낮은 신분의 여자, 수도인 한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 외국인을 둘러싼 조선 사람들, 열네 살의 어린 신랑, 가마꾼, 인력거꾼, 장옷을 쓴 여성, 등에 짐으 가득 실은 수소와 앞에 앉은 남자 등 조선을 여행하며 만난 다체로운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공동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특히 톰 브라운의 기사 일부 내용을 직접 인용해 여기에 적었다. "말총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갓)는 결혼한 남성이 쓴다. 우산처럼 쓰는 모자(삿갓)는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해 준다. 조선 사람 누구나 입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가운(두루마기)은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이 느껴진다."(p.11)
이 책은 파트나 장(章)의 구별 없이 각 사안에 대해 한 건씩 기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아마 여러 나라, 여러 신문에서 발굴, 발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빵과 잼을 처음 맛본 조선인」(p.14), 「조선의 민속놀이, 석전」(p.18), 「수도 나들이에 나선 상류 계층 여성」(p.22) 등으로 한 제목 당 한 건씩의 기사를 처리했다. 이를 테면 「빵과 잼을 처음 맛본 조선인」이라는 제목 밑에 '-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이라고 적어 출처를 밝힌다. 다음 부제목처럼 '자, 이거 한 번 먹어 보세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푹신한 빵, 고소한 버터, 달콤한 잼, 처음 먹어 보는 신비로운 맛에 홀딱 반할 거예요'라고 적고 있다. 기사 본문은 다음 이렇게 쓰여 있다. "1888년 12월 22일자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에는 난생처음 빵과 버터와 잼을 맛본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외국인이 건네는 담배를 집는 조선인의 모습이 실렸다.(어린이들이 읽을 것을 대비해 존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 서평에서는 존칭 생략) 이 기사에 실린 그림은 영국인 여행자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에요. 노란 머리에 파란 눈, 하얀 피부색의 서양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낯선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게다가 서양인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이들을 멀리했다. 이때 한 영국인 여행자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빵과 버터와 잼, 담배와 성냥 등을 나눠 주며 호감을 샀다. 서양 음식과 물건을 처음 본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영국인 여행자가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림 속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을 잘 보라. 처음 빵과 잼을 맛본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묘한 표정과 몸짓이 그 맛을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곰방대를 입에 문 조선인과 궐련(얇은 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을 피우는 영국인의 대조적인 자세와 외국인이 신은 구두를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의 몸짓이 웃음을 준다."(p.15)
이 책에는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저격한 사건을 보도한 기사가 눈에 띈다. 이탈리아 주간지 〈라 트리부나 일루루스트라타〉 표지 기사로 소개되어 있다. 이 기사 역시 앞서 언급한 영국 주간지 〈더 그래픽〉 보도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 다시 두 저자가 쓴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번역한 후 동일하게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단 말이다. 사진도 없이 그림으로 대신했다. 아마 저격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 남은 것은 없을 것 같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역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고,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한 친일 내각을 구성한 중심 인물이며,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 자리에 앉아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는 등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안중근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의병 활동을 하고 구국 투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만나기 위해 만주를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와 궁내대신 비서관 등 일본 주요 인물에게 중상을 입히고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됐다.(p.131)
글 : 이돈수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스페인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명지대학교 연구 교수로 활동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고지도, 옛 사진, 신문과 책 등 우리나라 관련 자료를 40년 가까이 모으고 있는 수집가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역사 문화 관련 이미지 아카이브인 “이미지로 떠나는 역사 문화 기행” 사이트 ‘코리아니티닷컴’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다양한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 TV 다큐멘터리 및 출판 등에 지금껏 수집해 온 이미지를 제공해 주고 있어요. 현재는 현대 미술을 기획 전시하는 갤러리 ‘북과바디’의 대표입니다.
글 : 배은영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아동·청소년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배틀』 시리즈 네 권과 『기시니 스릴러툰』 등을 썼고,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책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그림 : 토리아트 상상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푸른 꿈이 있는 곳, 무한한 상상력을 갖고 색다른 기획과 그림, 디자인으로 수준 높은 창작물을 만들려는 회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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