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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은 두 가지 이유로 놀라운 책이에요. 하나는 저자가 모리스 메테를링크라는 점이에요. 어린 시절에 누구나 읽어봤을 동화 《파랑새》의 원작자예요. 또 하나는 꿀벌들의 세계가 굉장히 경이롭다는 거예요. 제가 알고 있던 지식은 수박 겉핥기 수준, 거의 몰랐다고 봐야겠네요. 기후위기와 관련해 꿀벌 종이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 오죽했으면 UN이 '세계 벌의 날'을 지정했을까라는 걱정에 머물러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을 봤을 때, '꿀벌에 대해 알고 싶어!'라는 마음을 충족시켜줬던 것 같아요. 벌통 안에 이토록 많은 비밀들이 감춰져 있었다니, 놀랍고 신기했어요. 예전에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저서인 <꽃의 지혜>를 읽으면서 식물학자 못지 않은 지식과 철학적인 통찰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곤충에 관해서도 전문가였네요. 어찌보면 꽃과 꿀벌의 조합에서 어느 한쪽만 몰입하는 게 더 이상할 수도 있겠네요. 자연을 사랑하는 그가 꿀벌을 사랑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 책은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을 주제로 한 곤충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에요. 저자는 꿀벌을 기르면 기를수록 본인이 꿀벌에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생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그저 자기 만족적인 무지라면서 꿀벌 덕분에 무지의 차원이 훨씬 더 높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정말 꿀벌에 대해 무지한 사람과 비교하자면 탁월한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그의 태도는 겸손하네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고 했던가요. "무지야말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배웠다고 자부할 수 있는 모든 것이지 않겠는가?" (15p) 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순수한 사랑과 열정인 것 같아요. 우리가 꿀벌의 생활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인간의 지성이 꿀벌의 결함을 나무랄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꿀벌을 관찰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을 관찰하는 더 큰 존재를 상상해본다면 인간의 활동을 꿀벌보다 더 현명하다고 보긴 어려울 거예요. 저자가 책을 집필할 당시 (<꿀벌의 생활>은 1901년 출간되었음.) 양봉가들은 꿀벌 종의 욕망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해왔기 때문에 종족이 약해졌고 분봉을 과도하게 일으키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꿀벌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실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무지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면 달라질 수 있어요. 꿀벌은 자신들이 모으는 꿀을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지 어떤지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심오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꿀벌의 교훈이자 자연의 섭리일 거예요. 우리 역시 지구 생태계를 위해 인간적인 의무를 다해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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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꿀벌의 예언』을 읽었습니다. 와! 꿀벌이 이리도 중요한 곤충인 줄은 미처 몰랐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는 꽃식물이며, 이 꽃식물 수분의 80퍼센트를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 그렇기에 꿀벌이 사라진다면... 소설을 읽고 '꿀벌'에 대해 호기심과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책을 찾던 중!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때마침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에세이가, 꿀벌에 대한 사실을 전해준다고 하였기에 반가운 마음에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꿀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메테를링크의 무한한 상상력과 문학적 재능으로 사회적 곤충의 생태를 극명하게 그려낸 자연관찰문학의 최고 걸작! 『꿀벌의 생활』
이 책은 꿀벌에 관한 학술 논문이 아니다. 새로운 관찰 기록이나 연구 논문집도 아니다. 나는 꿀벌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만 이 책에 담을 작정이다. 20년에 걸친 양봉에서 얻은 특수한 경험과 수많은 관찰 결과는 보다 전문적인 책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여기에서는 그저 사람들이 친숙함과 애정을 느끼는 일을 문외한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듯, 피에르 드 롱사르의 노래에도 나오는 '황금 벌'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을 뿐이다. - page 13 ~ 14 본문에 들어가기 전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논문보다는 더 생생한 사실을 기록하고, 구체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고찰을 바탕으로 꿀벌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로운 사실들을 전한다고... 그래서 오히려 안심을 하게 되었고 쉬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대신 너무 글로만 전해서 아쉬움이 남았다고 할까...) 이제 본격적으로 벌집의 한 해를 되도록 간단히 알아보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 노동을 다시 시작한 봄철의 한 벌집을 예로 들어봅니다. 분봉의 형성과 출발, 새로운 도시의 건설, 젊은 여왕벌의 탄생과 결투, 결혼비행, 수벌 학살, 동면 따위가 자연의 질서를 좇아 펼쳐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과연 어떤 법칙과 특성, 습관, 사건이 그 일화를 일으키고 또한 지지하는지 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불가사의한 부분의 일종의 복사본과도 같은 '꿀벌'.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이토록 합리적이고 성실하며 적극적이고 또한 조신한 공화국이여! 덧없는 꿈의 희생을 치르는 기묘한 작은 공화국이여! 이토록 심오한 작은 민족이여! 자연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인 꽃의 영혼, 가장 아름다운 웃음을 향해 가는 민족이여! 감탄을 하게 되며 오히려 우리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대우주의 요구에 이토록 일치하는 이상, 이토록 확고한 이상, 이토록 엄격하고도 명백한 이상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또한 이토록 완전하고 영웅적인 자기희생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그들은 전원이 협동 작업에 참여해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다해 건축할 때 편리성이나 내구성 면에서 가장 월등한 정육각형으로 벌집을 만드는 점에서도, 어떤 망설임도, 의견 분열도 없이 전원 일치의 정신으로 선출된 여왕벌이 자신의 경쟁 상대가 도전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자신의 운명과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깨닫고 용감히 맞서는 점 등, 이 작은 생명체로부터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파라오 시대의 이집트인에서 오늘날의 농민에 이르기까지, 양봉가들은 이 종족의 욕망과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해 옴으로써 신중하고 환경에 잘 적응하기까지 하는 무리를 멸망시켜왔습니다. 종족은 약해졌고 분봉을 과도하게 일으키는 경향이 대대로 이어져오면서 머지않아 인간은 매우 자연스러운 분봉조차 방치한 채 꿀과 꽃가루의 수확에만 매진하는 꿀벌 종속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큰 재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꿀벌은 자신들이 모으는 꿀을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지 어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우주에 끌어들이는 정신의 힘을 누가 이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꿀벌이 자신들이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양의 꿀을 모으려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녔듯, 우리도 이 신비로운 불꽃에 자양분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다녀야 한다. 유기체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자. 이 불꽃은 우리의 감정과 감각으로 배양하자.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나아가 불꽃 그 자체의 정수-다양한 발견이나 경험, 불꽃이 방문한 모든 것을 관찰한 후 찾아낼 수 있는 사상 따위-로 이 불꽃을 배양하자. 그러면 인간적인 의무에 열의를 가진 인간에게는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수월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의 노력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그의 탐구 열의를 더욱 확고하고 순수하고 고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 page 251 ~ 252 만감이 교차했었습니다. 몰랐기에 지나쳤었고 이제라도 알게 되었기에 관심이 생기고 더 알고자 하는 욕구가 솟았습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꿀벌. 꿀벌들을 통해 우리 인간에 대해, 나아가 자연에 대해 한 수 배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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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 책을 읽고..
꿀벌의 생활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는 듯 싶어요. 우리가 몰랐던 꿀벌들의 이야기를 잘 몰랐지만 책으로 보니 실감났네요 꿀벌에 대해서 알게 되니까요 꿀벌도 여왕벌도 있고 그 외에는 벌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꽃냄새에 맞아가면 꿀을 몰고 오게 됩니다. 꿀벌들은 짝을 지어서 여왕벌하고 사귀거나 또는 임신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꿀벌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죠 꿀을 몰아서 벌집내서 꿀집이 되는 거겠죠. 꿀벌의 생활이 이렇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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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 감성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너무나 과학적이라 놀랐다. 문학 작품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20년에 걸친 양봉에서 얻은 특수한 경험과 수많은 관찰 결과가 한가득이라 놀랐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꿀벌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만 이 책에 담았으며 새로운 관찰 기록이나 연구 논문집이 아니라고 했는데 꿀벌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너무나 전문적인 내용이라 놀라웠다. 과학자들의 영역일 것만 같은데, 꿀벌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과도했던 것인지 벌들이 멸종 위기종이 아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벌들에 대해 이 정도의 관찰은 당연하게 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어쨌든 메테를링크의 무한한 상상력과 문학적 재능으로 사회적 곤충의 생태를 극명하게 그려낸 자연관찰 문학의 최고 걸작, 박물신비학자의 박물 문학의 걸작이라는 표현에 정말 부합하는 책이었다. 꿀벌을 온종일 관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꿀벌의 생애와 행동들에 대해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벌집이 가난에 시달리거나 여왕 일가가 악천후며 적들의 약탈 따위로 괴로워할 때 집을 결코 버리지 않고, 일하느라 정신이 없던 봄날이 가고 12만 개나 되는 방들을 거느린 거대한 궁전이 새로운 꿀과 유충, 번데기를 기르기 위한 꽃가루로 넘쳐나 행복의 절정을 맛볼 때에 벌집을 떠난다니 벌집의 정신은 놀라웠다. 벌들이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두서나 송이의 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매시간마다 2, 3백 송이나 되는 꽃들을 찾아다니는 고통을 겪는 이유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는 것도 신비로웠다. 꿀벌은 나이를 먹을수록 윤기가 흐르고, 마르고, 체모가 부족하고, 특히 날개가 가혹한 노동으로 찢겨 있을 때가 많아 쉽게 판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니 인간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희생이었다. 자신은 굶어죽을지라도 여왕벌만큼은 상처 하나 없게 지키며 자신보다 소중한 여왕벌에게 자신의 먹이 주머니 밑에 보관해둔 최후의 꿀을 먹이면서 숨을 거두는 일벌들의 삶에 숙연해졌다. 꿀벌들이 벌집 안에 있을 때는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여러 마리가 마치 한 마리인 양 결합하여 한 마리가 상처를 입으면 다른 천 마리가 그 원수를 갚는 데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지만, 벌집에서 한 발자국만 떨어져도 완전히 안면을 바꾸고 서로를 무시하는 이중성 또한 신기했다. 벌집 안에서는 그토록 강력한 연대감을 드러내지만 벌집 밖에서는 잔혹할 만큼 매정하다니 놀라웠는데, 우리가 꿀벌을 관찰하듯 어떤 미지의 존재가 우리를 관찰한다면 그 미지의 존재가 느낄 놀라움은 어떨까라는 작가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꿀벌들의 신비에 대한 충분하지 못한 답들을 검증 불가능한 가설들과 덧붙일 수 있는 반론들의 수많은 증거와 유력한 논거들을 분석하면서도 왜 확실성을 가질 수 없는지 조목조목 알려주어서 꿀벌의 생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꿀벌의생활 #생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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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입니다. 꿀벌과 인생이 뒤섞여있습니다. 벌통 앞에 서서, 도시 건설, 젊은 여왕벌들... 조금 읽다가 너무 잔잔하다 갑자기 치밀한 문장이 보이길래 이거 벌 키우는 사람의 애환과 즐거움이 아니라 뭔가 문학작품인걸 하고 저자 이름을 찾아봤습니다. 세상에. 파랑새의 작가였습니다. 찌르찌르와 미찌르의 그 유명한 파랑새!! 모두들 내용은 몰라도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오니 집안에 바로 그 새가 있다는 파랑새죠. 행복은 항상 집에 있는거죠. 절대 집을 떠나면 안됩니다. ? 모리스 메테를링크는 벨기에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이면서 191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작품의 특징을 보니 "일상생활의 내부에 깃들여 있는 신비적인 것의 정적인 표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도 딱 이 표현대로 흘러갑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 사람이 양봉을 이야기하는 건가, 인생을 벌에 비유하는 건가, 벌들의 세계로 간건가, 내가 벌인가 벌이 나인가, 지금 어느 세계를 떠도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더 나가서는 혹시 삶을 꿀벌에 비유하는 은유가 숨어있는 건가 하고 다시 보니 20년간 양봉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구나. 20년의 세월을 이 책 한권에 농축, 압축시켜놨구나 다시 감동을 받습니다. 노벨문학상이 뒤배경에 깔리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까짓 노벨상은 온갖 사람들이 다 받는건데 팝스타도 받는 상이죠. 1911년이면 백년도 넘은 옛날 사람입니다. 백년 전에, 또 그 이전에 20년간 양봉을 (직업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깊숙히 벌의 육각형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은 취미였을 겁니다) 해왔다니 더욱 옛날 이야기입니다. 이정도 옛날이면 산속 깊숙히 호랑이가 있고, 고개 너머에 여우가 나오는 시대 아닌가요. ? ?우리는 여기서 비록 탁월하기는 하나 사려가 부족한 어떤 의지가 생의 지적인 의지를 저지하지 못해 안달이 나 결국 간섭하려 드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 간섭은 곤충의 세계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나며 이를 관찰하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에 비해 안에 포함된 곤충의 수도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자연의 욕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또 미완성이라고 생각한 실험에서 갑자기 그 욕망을 파악하게 되기도 한다. 자연은 보편적인 큰 꿈을 지녔다. 가장 강한 자가 승리함에 따른 종족의 개량이 그것이다. 152p. 이것이 어떤 세상일까요. 한문장을 읽으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기분입니다. #생태학 #꿀벌의생활 #모리스마테를링크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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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에세이 <꿀벌의 생활>은 자연관찰문학으로 이 책을 읽는 매력은 꿀벌의 신비로운 세계를 바탕으로 저자가 펼치는 상상력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운 문학적 재능으로 펼치는 묘사에 있다. '여왕은 바짝바짝 속을 태우며 결행의 날과 시간을 선택한다. 그리고 출입구의 그늘에서, 거대한 감청색 항아리 같은 하늘의 끝에서 황홀한 아침이 혼례를 올릴 공간에 넘쳐나기를 기다린다. 이슬의 흔적이 나뭇잎과 꽃들을 추억으로 적실 때, 쇠약해져가는 여명의 마지막 서늘함이 서툰 전사의 팔에 안긴 발가벗은 처녀처럼 단념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저항하듯 낮 동안의 더위를 거스르고자 할 때, 근방에 남아 있는 아침에 핀 제비꽃의 향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질 때, 여왕은 그런 때를 좋아한다. (p. 174)' 드디어 여왕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은 날아올랐다가 돌아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는 화살처럼 감청색 하늘 꼭대기로 날아오르면 결혼 비행에 나선다. '우리는 이 벌집을 통해 꿀벌들의 중요한 일상. 즉 분봉의 형성과 출발, 새로운 도시의 건설, 젊은 여왕벌의 탄생과 결투, 결혼비행, 수벌 학살, 동면 따위가 자연의 질서를 좇아 펼쳐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p. 18)' 지성知性의 측면에서 인간 다음으로 축복받은 지구상의 주민은 벌이라는 것이 저자의 상상력이다. 학자들 간에는 꿀벌의 지성을 놓고 왈가불가한 모양이다. 저자는 위의 글에 제시된 꿀벌들의 중요한 일상 모두를 꿀벌 지성의 근거로 내놓는다. 육각 구조의 튼튼한 건축물을 세우기도 하고, 심지어 한 번도 본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제공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재료의 속성을 파악해 활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꿀을 얻기 위해 꿀벌들이 확고하다고 믿는 자연법칙을 끊임없이 흔들어놓는다. 꿀벌들은 이제까지 지켜온 법칙에 따라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한다. 만약 누군가 우리 주변의 중력, 공간, 빛 혹은 죽음 따위의 법칙을 흔들어 댄다면 우리는 과연 꿀벌처럼 대응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고 이해하려 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에 지성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을 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보다는 예외로 규정해 무지에서 빠져나간다. 꿀벌들은 다르다. 수벌 살육이라는 처참한 자연의 법칙을, 그 의도를 오인이나 모순으로 여겨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자연의 두 가지 힘, 즉 생과 사를 다스려 자연의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자연을 믿는다. 자연을 상대로 우리의 지성을 증명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꿀벌은 하지 않는다. 꿀벌에게 미래는 신이다. 미래의 불안 때문에 신에게 의지하는 인간보다 꿀벌들의 신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강하다. 섬기고 떠받드는 여왕마저도 미래라는 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사명에 게을리할 때 여왕을 향했던 애정은 분노와 증오로 바뀐다. 미래를 위해 꿀벌들은 행복과 권리를 포기하며 벌집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활용한다. '자연에는 물질의 일부분을 더욱 좋은 상태로 향상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는, 물질의 표면에 처음에는 생명이라 불리고 다음에는 본능, 그다음에는 지성이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힘을 서서히 침투시키려는 의지, 미지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다그치는 모든 존재를 조직하고 활용하려는 의지가 존재한다. (p. 226)' 자연 앞에서 거만하면 안 된다. 꿀벌 세계를, 생활을 업신여겨서도 안된다. 그 세계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수벌의 나태함과 일벌들의 불공평한 상황들을 내세워 비합리적이고 몰 지성하다고 결함을 지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원리를 따른다고 결론짓는다면? 인간들의 처지도 이에 못지않다. '공동생활 전체의 유일한 근원인 땅을 전체 인구의 20, 30퍼센트의 인간들이 힘들게 경작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10퍼센트는 실컷 놀면서, 전자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확물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치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며 쉬지도 못하면서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에 정력을 소진한다. (pp. 245, 246)' 메테를링크는 매일 벌집을 드나드는 양봉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 그가 풀어놓는 꿀벌의 일상은 생생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상상력에 더해진 문학적 표현은 이 글을 읽는 즐거움을 몇 배로 키워 놓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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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하고 질서정연한 꿀벌은 벌집 밖에서 보이는 루틴 외에 무슨 생활을 할까? 이 책은 꿀벌의 삶을 이루는 단계별 활동과 역할에 대해 기록되어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6각형 작은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지만 체계적인 움직임도 엿볼 수 있다. 저자인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기록이지만, 마치 꿀벌이 집들이는 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소개하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디테일하면서도 꿀벌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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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우리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 꿀벌의 경이로운 생명과 신비로운 세상은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오묘한 힘으로 움직이고 이어진다. 내가 꿀벌에 관해 아는 것은 정말 작고 작았구나를 깨달으며 자연과 생명의 신비에 수도 없이 감탄하며 읽었다. 꿀벌의 불가사의한 세계 와.. 이 책.. 진짜 빠져들어 읽었다. 나는 자연생명과학책을 좋아하나보다. 전에 #정어리의웅변 읽고 그렇게 좋더니만.. 이 책 the best !!! 작가님의 꿀벌에 관한 세세한 설명과 체계적 지도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고. 어느 것 하나 버릴 내용이 없었다. 꿀벌의 세계의 심오한 진리를 우리 사는 세상에 입혀주는 친절함은 덤이다. 진짜 최고의 자연관찰문학이라 할만 하다. '미래'를 신봉하는 집단지성늬 세계로.. 꼭 빠져보길 권하고 싶다. 벌집 안의 하나의 세계에는 여왕벌 한 마리 (일족 전원의 어머니) 일벌 수천 마리 (불완전해서 임신을 할 수 없는 암 컷) 수벌 수백 마리 (여왕벌의 혼인 비행까지 놀고 먹는 벌들) 가 살고 있다. 수백 마리의 수벌들 중 단 한 마리만 새 여왕벌의 배우자로 뽑혀 혼인비행을 통해 여왕벌은 어머니가 된다. 일벌은 평생 처녀로 꿀만 모으고 왕국을 건축하다 죽는다. 혼인을 한 수벌은 교미시 내장이 빠져나와 죽고 나머지 수벌은 꿀벌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한다. 여왕벌은 기존의 어미 벌 이 스스로 벌집에서 나간 후 남은 일벌들에 의해 애벌레 중에서 선택된다. 여왕벌은 자신이 이 구역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남은 여왕벌 애벌레를 다 죽인다. 무섭고도 경이로운 그들만의 법칙이다. (전에 다른 책을 읽어 알고 있었지만..) 여왕벌이 알을 낳을 때 태어나는 애벌레의 성별을 결정한다. 수벌인 암발(일벌)을 인위적으로 선택 가능하다니 몸 속에 정자를 저장한 여왕벌의 신비가 과학적으로 모두 밝혀지지 않았기 더욱 신비롭다. 꿀.. 꿀벌.. 벌이 점점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 책이 더 아름답게 마음 속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구성 : 꿀벌들의 일상과 역할, 분봉의 형성과 출발, 새로운 도시의 건설, 젊은 여왕벌의 탄생과 결투, 결혼비행, 수벌 학살, 동면, 그리고 꿀벌 외 다른 벌들을 간단히 설명한다. >> 꿀벌은 6월 의 환희를 알게 해주고, 아름다운 계절의 조화를 맛보게 해준다. 꿀벌과 관련된 일들은 모두 1년 중 가장 행복한 계절에 일 어난다. 꿀벌은 여름의 영혼이다. 꿀벌은 풍요의 시기를 알리는 시계다. >> 우리가 동정하는 대상은 이들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활동하게 하는 저 커다란 힘이기도 하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처녀 여왕벌이라고 해도 결코 불임이 아 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처녀 여왕벌은 수벌 밖에 낳지 못한다. 결혼비행을 해서 수태를 한 후에야 비로소 일벌이나 수벌을 선택해서 낳을 수 있다 >> 그들의 힘은 이 지구상에서 막대한 양의, 게다가 질도 우수한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 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생명의 질과 양은 오로지 이 힘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걸까? >> 우리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더 많은 사실을 이해하려 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들, 그 이면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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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이번 여름을 지내면서 문득 이제 더이상 지구가 못 버티겠구나를 생각했다. 18년도 여름 그 더위를 이겨내며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들고, 간혈적 채식을 하였다. 전직장에선 직장동료들이 함께 도와줘 채식은 어렵지 않았고, 함께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용기를 내어 포장을 하며 다녔는데, 이번 직장에서 무참하게 무너진건 남탓 아닌 남탓. 그러는 사이 지구는 더 없이 상황이 나빠졌다. 그러다 문득 꿀벌들의 붕괴현상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꿀벌들은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동식물의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빈 벌집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과 한 초콜릿 공장 근처에 있는 양봉업계에 꿀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소식. 나는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 끝에 만난 책 "꿀벌의 생활"
꿀벌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작은 곤충도 협동작업을 하는데, 왜 인간은 그렇지 못할까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벌들의 삶을 통하여 철학적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 것 같았다. 이 책은 무조건 꿀벌의 생활을 통해 지구를 위하여!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육각형의 작은방안에 과거와 미래 그리고 생과 사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벌집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꿀벌들이 서로가 협동작업을 통해 자기에게 주어진 몫으로 만들어낸게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정말 인간이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어릴때만 해도 봄이 되면 벌들을 많이 본거 같은데,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개체수가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우리는 식량난을 겪게 될것이고, 우리 뿐만 아니라 동식물에도 크나큰 문제가 발생할텐데.. 이 책을 읽기전까지 양봉이 과연 생태계에 괜찮은가라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생태계를 보존하는데에 있어서 양봉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이런저런 꿀벌에 대해 이야기를 담은 이 책, 킬링타임용으로 손쉽게 읽을 수 있으니 추천하는바이다.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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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질병과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사라지는 꿀벌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짐으로써 인류를 위협하게 되어 가는 현실의 상황들 꿀벌들에 의해 열매를 맺고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받던 것들이 이제는 인공적으로 수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됨으로써 과일이나 곡물들의 수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런 꿀벌들의 생활은 단순하게 양봉인들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그들의 생태를 알아간다면 아무래도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에 접한 꿀벌들의 생활 이야기 꿀벌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정육각형의 밀랍으로 만들어진 벌집을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여왕벌을 따르는 일벌들의 끊임없는 날갯짓까지 저자는 이런 꿀벌들의 활동과 행동 양식을 알기 위해 많은 실험을 통해 그녀들의 행동을 알아가고 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꿀벌들의 세계 곤충인 꿀벌을 단순하게만 생각지 않고 그 누구보다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생명체로 인간생활의 축소판처럼 다뤄지고 있다. 체계적인 그녀들의 세계 속에서 분업화가 잘 되어 있는 일꾼들의 모습, 꿀벌들의 지주인 여왕벌과 수벌들의 백수 같은 모습, 봉아소의 돌봄이, 청소부, 파수꾼과 건축가들,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는 일벌들까지 각각의 위치에서 여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세계 그리고 자연을 이용할 줄 알고,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단 인간과는 달리 번창한 그곳을 후손에게 남기고 떠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여왕벌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행렬과 꿀이 아닌 전분을 먹이로 사용할 수 있고, 밀랍이 아닌 지푸라기와 시멘트 벽, 동굴을 이용할 수 있는 그녀들의 건축가적인 모습까지 꿀벌들의 세계는 너무나도 도덕적이고 조직적인 모습이었다. 단순한 교육에 의해서 꾸려진 것도 아닌 그녀들의 세계 처음에는 왜 그녀들일까 궁금했었는데 수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여왕벌과 맺어지기 위한 과정이 끝나거나 도태되어버린 벌들은 죽기 때문에 일을 하는 이들은 다 그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라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꿀벌들의 생활에 경외감 비슷한 마음을 갖고 인간과는 비슷한 듯 다른 그들의 세계를 찬양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인간의 복사판 같은 그들의 세계가 번창하는 거야말로 인류의 번창을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꿀벌들의 생활에 대한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 여왕벌이 사라지면 다 같이 줄어나가는 꿀벌들의 세상 그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을 더 이상 인간의 임의적으로 손상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봤던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맴돌았다. 조그마한 세계를 엿보는 인간의 모습과 그 인간을 엿보는 또 다른 커다란 세상의 모습 조그마한 세계가 보이고 더 큰 세상이 있고 그보다 더 큰 세상이 있는 모습 인류의 모습도 우리보다 큰 존재에겐 꿀벌들의 세상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능이 있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모습들은 함께 해야 한다는데 더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