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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연대하라』는 나의 열망에 의해 구입했고, 바로 읽은 책이다. ‘구입과 완독’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 서평단을 통해서 자주 책을 만나는 나로서는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구입을 했더라도 금방 읽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리뷰의 의무가 있는 서평단 책을 중심으로 독서를 하다 보니 정작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은 읽지 못하거나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불성실한 독자인 내가 드물게 구입과 동시에 읽은 이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호기심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다. 저자인 강우일 주교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교구인 제주교구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이래 수구 및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가톨릭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고위성직자 중에 한 분이라는 것 외에는……. 이런 분이 과거에는 왜 조용했으며, 지금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아무튼 국정원 댓글 파동에 대해 파렴치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권력자들이 있는 현실에서 이런 분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것이 작은 연대라는 마음으로 구입을 했다.
둘째, 예상 이상으로 감동을 느꼈다. 이 책을 펼치면서 생각한 솔직한 마음은 감동이 있으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이기는 하지만 가톨릭 성직자의 책에서 감동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나기처럼 시원하지는 않지만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봄비 정도의 책일 것이고, 그만큼만 느낄 수 있어도 되었다, 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느낀 마음은 그 이상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 시절에 장준하 선생이 발행한 『사상계』나, 박정희 정권의 독재 시절에 함석헌 선생이 발행한 『씨알의 소리』를 만난 젊은이의 마음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시국선언의 문구처럼 격정적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한민국과 교회의 현실에서 우리가 겪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강우일 주교의 강론과 생각, 그리고 강우일 주교가 어떤 분인가에 대한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국장의 글 등이 담겨 있는 이 책은 표지가 화려하지도 않고, 삽화가 풍성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회나 교회의 어른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 유신시대에 격정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정의구현사제단의 뒤에 서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강우일 주교의 글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그런 목소리를 발견하면서 반가웠다. 셋째, 저자인 강우일 주교님을 알게 되었다. 강우일 주교는 1974년에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은 이래 추기경의 비서와 서울대교구의 각종 직책을 맡았고, 1986년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서임되는 등 김수환 추기경의 옆에서 보좌했던 분이다. 즉 유신과 5공의 어두운 시절에 김수환 추기경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분이다. 그러나 ‘보좌’라는 자신의 위치를 지켰기에 앞에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이력을 지닌 분이시니 김수환 추기경님이 안 계신 현실에서 그분을 대신할 가장 적임자가 아니겠는가? 저자는 과거에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좌하면서 자신의 직분을 지켰듯이 김수환 추기경님이 안 계신 현재에는 역시 자신의 가야 할 길을 걸으면서 해야 할 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뛰어 넘은 우리 시대의 어른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서있는 곳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대교구 교구장이 아니라 가장 작은 교구인 제주교구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속의 눈으로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건전한 믿음을 실천하는 예언자의 목소리이지, 서 있는 자리가 아닐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한국 가톨릭을 떠나서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는 어른이자 원로셨다. 그분이 선종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분의 자취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함석헌 선생, 성철 스님, 이희승 선생 등 국민의 존경을 받는 원로가 많았던 듯한데 그런 분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그런 원로가 그리운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그 그림자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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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2일 인권연대 초청으로 강연하신 내용과 인권연대 오창익 국장이 바라본 강우일 주교의 모습, 그리고 그분이 쓰신 몇개의 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주 4.3 항쟁, 쌍용차 문제,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등의 굵직한 문제외에도 구제역, 태안 기름 유출 사건, 4대강 사업, FTA 등에 대한 주교님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제주 해군 기지 문제를 보면 저는 고 노무현 대통령도 존경했고 강우일 주교님도 존경하지만 제주도 군사기지와 관련한 '무장없이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와 '인간들이 의지하는 군사력이 결코 이 땅의 평화를 지켜주는 보증이 될 수 없다'라는 국가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간의 입장 차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국가 지도자는 보다 당면한 시점에 대해 종교 지도자는 보다 먼 궁극적인 시점으로 보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주교님의 말씀 중 아래 구절이 인상 깊습니다.
'참된 평화는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평소 생활 속에서 생명 존중과 자연보호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를때까지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육류 소비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좀 줄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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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4일부터 4박 5일 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실제로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고 이날 귀국 길 기자회견에도 세월호 리본을 왼쪽 가슴에 그대로 달고 있었다. 이와 같이 교황은 세월호 유족은 물론 가장 낮은 사람에게 가장 기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현재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준 방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교황의 방한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4박5일 방한 일정을 총괄한 사람이 다름 아닌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제주교구장)이다. 강우일 주교는 교황의 방한을 수행하면서 겪은 일화를 《한겨레》(2014년 8월 19일)에 공개했다. 교황의 방한 첫날 주교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교단은 교황의 방문 기념으로 교황의 친필 서명을 받기 위해 큰 종이를 드렸다. 그러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큰 종이가 무색하게도 아주 작은 글씨로 ‘Francisco’(프란치스코)라고 썼다고 한다. 강우일 주교는 “돋보기를 써야 보일 정도였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우리 주교들이 다 웃었다”고 했다. 이어 “보통 큰 글자로 썼을 텐데, 일부러 작게 쓰셨을 것이다. 당신이 큰 인물로 드러나길 원치 않으시고, 나도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을 겸손하게, 간접적으로 암시하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멋진 교황의 행동과 그에 걸맞은 멋진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강우일 주교는 1945년생으로 올해 일흔 살이다. 본격적인 사회참여는 2002년 제주교구 교구장이 된 다음부터다. 활발한 사회참여는 60세가 넘어서의 일이었다. 강 주교는 1977년부터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직에서 은퇴한 1998년까지 꼬박 21년을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다.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신부들을 챙기는 일은 추기경의 몫이었지만, 가끔 참모인 강우일 신부가 맡기도 했다. 옥중 신부들을 면회하거나 출소하는 신부를 환영하는 자리에 나타나는 등 그렇게 가끔씩만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서울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지내던,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으로 이어지던 격동의 시절 동안은 묵언수행과도 같은 긴 침묵의 세월을 보냈으나 이는 추기경을 보좌하는 직분에만 충실하려는 의도적 침묵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강우일 주교는 가장 작은 교구, 제주에서 일하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그가 그토록 따르고 싶어 했던 예수님에게 성큼 다가설 수 있었다. 제주는 그 동안 배제와 소외가 강요된 섬이었다. 주교 자신은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사람이기에 제주에서 소수자 정서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새로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제주를 배우고, 제주 사람들에게 배우는 시간들이 몇 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 동안은 제주교구 교구장으로서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노무현 정권이 마을 주민들의 계획된 날치기를 근거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가장 빠르고 단호하게 대응한다. 비로소 사회참여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는 주교의 참된 정신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류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되고 그 고통이 쌓이면, 그 희생이 무의미하게 그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란 존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받을수록 오히려 사람이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또 고귀한 존재인지를 역으로 드러내는 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인류가 경험한 고통들이었습니다. (1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