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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품은천리안 #성지혜장편소설 #문이당 #정경부인장님고성이씨 중종 1539년에 태어나 광해군 1615년에 살았던 여인이다. 조선시대의 절개가 있고 총명한 여성의 삶은 그린 이야기이다.부제목으로 정경부인 장님 고성 이씨로 이름은 경이다. 명문집안인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 때에 우리 민족의 산 역사를 일군 집안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선생의 후계자로 서해 선생은 시각장애를 가진 정경부인 이경을 형의 반대를 무릎쓰고 백년 혼인가약을 맺었다. 현 세대에나 장애는 한계의 대상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질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그 능력이 출중하면 그에 대한 예우나 대우를 해주었다. 조선시대에 장애를 가진 자에게 하는 대우를 보면 현시대보다는 조금 더 진보적인 복지정책으로 능력을 인정해주어 대우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어떤 사회분위기를 갖고 있어서 정경부인 이경은 여성임에도 자신의 뜻을 펼쳤을까 조선시대의 복지정책이 궁금하기까지 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왕으로 다 알고있는 세종대왕이시다. 누구보다 큰 뜻을 품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도 시각장애의 불편을 겪었다. 너무 안타까웠던 것은 조선시대때만 해도 진보적인 정책으로 펼쳤었지만 일본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유입되면서 근대에 들어서며 안좋게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복지정책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유용하게 작용하고 쓰임받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변화는 현재 근대때보다 더 저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가 장애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려하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 책은 정경부인 이씨의 일생 그러니까 한 여인이 자신의 핸디캡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그녀의 부던한 노력과 헌신으로 조선시대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명문가문이며 학자들이 입을 모아 조선시대에 현모로 칭하는 것이다. 결혼한지 얼마안된 정경부인이씨의 남편인 서해선생은 23세때 요절하였다. 어린나이였지만 슬하의 자녀인 서성을 훌륭히 길러내었다. 장애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사회적 편견을 타파하며 집안을 다스리며 일으키는 것도 여장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모든 부분에서 진두지휘하며 섬세하고 세심하며 여러편견에 덮여있는 자신을 더욱 담금질하며 본보기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정경부인이라 함은 ?조선?시대 정일품 종친의 부인 혹은 종일품 종친의 부인에게 주던?내명부?관등 봉작?작위(爵位)이다. (위키백과 발췌) 책의 제목처럼 눈은 어두웠지만 세상이치에 밝고 총명했으며 그 시대에 노비를 해방시켜 준 진보적인 여성이었다. 어진품성에 따뜻한 마음가짐으로 통솔력있고 깨어있는 여인으로 사람을 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여인이었다. 소설이지만 픽션보다 고성 이씨 문가의 자문을 받아 정경부인 이씨의 일대기는 가문에 내려오는 사실들을 적은 한 여성의 진취적인 삶을 그린 이야기이다. #조선시대여성사업가 #한가문을일으킨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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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 자녀 교육을 훌륭히 시켜서 국가를 영도할 동량지재로 만드는 거록한 어머니들은 우리 역사에 아주 드물지는 않게 계셔 왔습니다. 한국 특유의, 교육을 중시하는 풍조라는 게,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면면히 이어져 왔고, 이것이 종종 기적을 일궈 냈던 것입니다. 실제로 명문가에서는 이런 훌륭한 부인들을 두고 그 일생을 현창하는 행장 같은 기록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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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해외 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당시 자유 배낭여행으로 미국보다 유럽이 선호 지역이었던 것은 영어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 소통이 자유로우면서, 유럽은 역사적인 장소가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많이 남아있어서 명소라 할 것이 많았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당시 팀을 꾸려 거의 한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했는데, 체코에서 집집마다 대문에 조각된 문양이 특이했다. 책자를 찾아보며 왜 집집마다 다른 문양이 조각되어있을까 했는데, 그것이 바로 가문을 나타내는 문패 역할이었다. 그 문양이 편지를 보낼때 밀랍으로 봉인하고 찍는 문양이기도 하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문양이 아직 대문에 남아있는 가문들이 모두 명문가는 아니었겠지만, 그 오랜 세월을 사용한 집이 그대로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건물과 문화재급 유물들이 사라졌다'라고 하신 말씀이 실감나는 때였다. 그 전까지는 아직 우리나라 보물과 국보가 이렇게 넘쳐나는데 전쟁에서 없어졌다는게 크게 와닿지 않았던것 같다.
우리 나라에도 명문가가 무척 많다. 전주 이씨, 광산 김씨, 안동 김씨, 안동 권씨, 밀양 박씨, 파평 윤씨 등등 아마도 명문가를 대라고 하면 끊임없이 나올듯 하다. 보통 성 앞 본관이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안동이 많은걸 보면 안동 지역이 명문가가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안동에 남아있는 한옥마을과 양동마을까지 무척 많은 양반들이 살던 기와집들이 그 이름을 떨치며 남아있는 것은 그만큼 정성들여 집을 짓고, 관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이 안동을 유학의 산 고장이라 부른 것도, 대저택인 임청각을 비롯한 군자정, 귀래정, 반구정, 어은정이 있기에 더 빛났고, 그곳을 드나들던 선비들과 유학자들이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해 영남학파의 산실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정경부인 장님 고성이씨 집안은 고려 충정왕과 공민왕 때 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 조선 세종대왕 때 좌의정을 지낸 용헌공 이원 선생, 구한 말 석주 이상룡 독립운동가 등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 안동의 여러 건축물을 삼대에 걸쳐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소설은 고성이씨 정경부인 이경의 탄생부터 병으로 인한 실명, 서해 선생과의 혼인, 서해 선생의 요절, 외아들 서성, 손주 서경우까지의 벼슬길에 오른 과정과 시각장애를 가진 채로 가문을 훌륭하게 이끈 고성이씨 정경부인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많이 엮여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훌륭한 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신사임당 뿐만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 생활이 아닌 훌륭한 가정 경영으로 현명하고 훌륭한 위인들을 길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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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 이에 이 책은 해당 내용과 함께, '무엇을 위하여 지어졌는가?' 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예를 들어 어느 (과거의) 사실에 근거를 두어 작성되는 '창작물'은 대부분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막연하게나마)인식하고 있는 시대와 국가 또는 위인들이 주를 이룬다. 그야말로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보다 폭넓은 관점과 주제를 마주함과 동시에, 이후 저자 스스로가 주장하고 싶은 세부적인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는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책은 보다 폭넓은 주제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도리어 어느 과거의 한 인물, 그리고 그가 영향을 미친 하나의 가문의 관한 이야기로서, 이는 저자에게 있어서, 스스로의 뿌리에 대한 관심과 긍지를 발견할 수 있겠으나, 반대로 이와 커다란 연관점을 발견할 수 없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있어서는 '어느 양반댁의 며느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에 불과하다.
특히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랜 고전적 문체에 익숙하다고 생각해온 나에게 있어서도, 분명 이 소설의 표현은고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고 여긴다. 이에 비교적 젊은 독자들에게 권하기에, 이 소설은 좋게 표현하자면 '너무나도 옛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대한민국의 국민이 존경하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이 아닌 저마다의 뿌리 속에서, 남다른 멋과 장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가 그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발한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조선의 여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신사임당을 제외하고, 만석꾼의 아내, 종가의 며느리... 그 밖의 여성이 짊어진 사회적 의미를 제외한 개인의 개성(또는 자질)이 드러난 예를 쉽사리 찾을 수 있는가? 이에 이 책의 주인공은 유학자의 딸이자, 며느리이며, 어머니로서의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러 뛰어난 이야기를 드러낸다. 이에 그 명성이 드높지는 않으나, 이 여인을 존경하고자 하는 후손과, 그 행적을 다시끔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발현된 만큼 나는 이에 이 소설의 가치를 나름 높게 쳐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