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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수상록
몽테뉴의 이 책은 자신과 삶의 통찰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자는 이 책을 그래서 ‘몽테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글’이다라고 해석한다. (239쪽)
그 말이 맞다. 몽테뉴는 다양한 주제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글로 써서 남기고 있다. 해서 독자들은 그가 펼치는 통찰의 향연을 통해, 인생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점이 있는가 하면, 나는 그가 살펴보는 글 중 내가 요즘 찾아보고 있는 여러 주제들을 언급한 것을 발견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는 자료를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몽테뉴가 인용하는 것 중, 그리스 신화 관련 부분이다.
그 첫 번째가 니오베란 인물이다.
니오베는 레토 여신의 화를 돋우는 바람에 딸 7명에 아들 7명, 도합 14명의 자식을 잃은 비운의 인물이다. 14명의 자식을 잃고 돌이 되었다는데. 이에 대해 몽테뉴는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니오베 관련 부분, 특히 니오베가 돌로 변했다는 사연을 읽으면서, 신화는 우리 상상을 벗어난 것이니까 돌로 변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해주자고 생각했는데, 몽테뉴는 그것을 다시 한번 통찰의 세계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돌로 변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가? 단지 돌로 변했다는 재질과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심적고통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극심한 불행을 당해 충격을 받고 온 몸이 돌처럼 마비되어서 몸의 기능이 작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니오베가 돌로 변했다는 말의 속내가 아닐까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사항이다.
여기 인용한 글 중 호메로스라는 말은 호메로스의 책 『오디세이아』를 말한 것이다. 해서 그 책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다. 세이렌이 율리시스(오디세우스)를 유혹할 때 어떤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다.
그러니, 세이렌이 율리시스(오디세우스)를 유혹한 방법은 다른 사람이 군주에게 했다는 아첨이었다.
그래서 그전에 호메로스의 책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세이렌에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장면에서 그저 아름다운 노래로만 한 줄 알았더니, 이 책에서 노래 전에 이미 다른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인용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 그 안에서 지식들을 얻게 된다.
영국의 헨리 7세와 그의 아들인 헨리 8세 (21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몽테뉴가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헨리 7세와 8세가 살았던 시대는
헨리 7세는 튜더 왕가 출신으로는 첫 번째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이다. 재위는 1485년 8월 22일 ~ 1509년 4월 21일이다. 그 아들인 헨리 8세는
재위 기간은 1509년 4월 22일 ~ 1547년 1월 28일이니, 몽테뉴(1533년 출생, 1592년 사망)보다는 약간 앞선 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몽테뉴는 헨리 8세의 행적을 다 알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고 읽으니, 몽테뉴가 언급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몽테뉴가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역사적 사실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이 책이 『수상록』 전부를 번역한 게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선집이라는 것, 또는 발췌 번역했다는 것을 밝혔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목차>에서도 이렇게 표기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혼동하지 않는다.
목차를 제1권 제2권 제3권으로 할 것이 아니라
제1권 제1장, 2, 7, 8, 12, 17, 20, 21, 22, 27, 38, 56, 57장 제 2권 5, 16, 19, 21, 28, 29, 31장 제 3권 4장
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목차를 읽으면서 이 책이 전체를 번역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은 것, 그게 무척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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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자신이 은퇴후에 집필했던 책인데 1580년에 적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현대사회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내용이 꽤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법관까지 지냈던 인물이어서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고의 깊이가 남달랐습니다. 그리고 첫장에서 각 인물들의 사례를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위인들의 명언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해서 좋았습니다. 자신의 사고를 집필한다는 자체가 어떻게보면 그만큼 생각을 많이 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특히 "나라를 위태롭게 마든 사람은 그로 인한 폐해로 대개 가장 먼저 몰락한다."는 말을 보면서 꼭 서양역사가 아니고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역사를 둘러보더라도 이런 사례는 충분히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나고자란 땅에서 반면교사삼아야할 사례는 수도 없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은 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가 어떻게 공공의 이익까지 도모할 수 있는가는 의문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만 그것보다 이런 개념을 누가 자주 차용하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만 봐도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람사는 것은 크게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정의를 증명하는 양심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는데 군대의 병사가 어떤 여인이 아이에게 먹일 죽을 뺏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대장은 여인의 말의 진위를 판명하고자 병사의 배를 갈랐다고 했는데 이 사례에서는 진짜 죽을 먹었다는 증거가 나와서 여인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으나 예전에 일본의 사례에서는 몰락한 사무라이의 아들이 떡장수의 떡을 훔쳐먹었다는 누명을 쓰자 자신의 아들의 배를 갈라 먹지않았음을 증명한 뒤 그 떡장수를 베어버리고 본인도 결국 할복을 했다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사례와 같이 몽테뉴는 여러사례를 접하면서 본인의 사고를 더욱 정리하여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지혜가 분명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뒤르켐이 이야기한 "아노미적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사회자본은 턱없이 축소되었고 불신사회 혹은 뉴노멀의 사회라고도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상정하고 집필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럴때일수록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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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에 집필된 몽테뉴의 [수상록]은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복잡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과 답을 하면서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현대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몽테뉴는 옷차림에서부터 우정, 신앙, 사회, 관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탐구한다. 개인적인 일화, 역사적 사건, 철학적 탐구를 동등하고 쉽게 다루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몽테뉴의 관심은 시대를 초월한 호기심을 반영하며 현대의 지적 추구와도 일치한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수상록은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몽테뉴의 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찰하려는 그의 의지이다. 그의 작품은 불확실성과 의문을 단점이 아닌 미덕으로 여기는 소크라테스적 사고방식을 구현한다. 현대의 독자에게 이러한 자기 성찰에 대한 개방성은 경직된 자세와 타협하지 않는 관점을 요구하는 세상과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기적, 마법, 비범함에 대한 중요한 믿음은 순진한 대중의 상상의 힘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대중은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현실에서 보지 않은 것도 봤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상상이 그 어느 때보다 결정적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인데 16세기에도 상상으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을 예시로 들면서 서술하고 있다. 수상록은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다룰 때에도 대화적이고 접근하기 쉽도록 개인적 일화와 사색으로 가득 차 있어 그의 사상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글쓰기의 친밀함 덕분에 독자는 수 세기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차원에서 몽테뉴의 사상을 접하고 그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 중 일부는 당시의 사회적 규범과 한계를 반영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테뉴의 수상록은 세계적 문화유산이며, 그의 내성적인 접근 방식과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려는 열망은 현대 철학자, 작가 및 일반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준다.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은 지적 자극과 인간적 교감을 원하는 독자를 위한 보물창고이다. 일부 내용은 현대인의 감성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그의 글은 르네상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인간 됨의 의미에 대한 시대를 초월한 에세이이다. 철학, 역사 또는 개인적 성찰의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과 콩나무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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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쓴 수상록은 원체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몽테뉴'라는 사람과 '수상록'이라는 작품은 서로 연결이 되어있었지만 그 의미나 의의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습니다. 책 표지에 써져있는 'LES ESSAIS'라는 문구를 보고, '이 책이 에세이essay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그 책이지'라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책이 도착할 때까지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다가, 책 표지를 보고 '아 그랬었지' 한 후에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이래서 이 책이 에세이 장르의 시작이구나'했습니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LES ESSAIS [수상록]'은 앞뒤 표지와 내지 등을 제외하고 242쪽입니다. 몽테뉴가 쓴 수상록의 완역판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책 구성은 간단하고 7쪽부터 1권, 145쪽부터 2권, 219쪽부터 3권이라고 되어있고, 책 말미에 옮긴이의 글과 몽테뉴 연보가 짧게 있습니다. 각 권에서 주제별로 선정해서 몇몇 장이 번역되어있습니다. 1권의 경우에는 '제1장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부터 '제57장 나이에 대하여'까지 12개 장이 발췌되었고, 2권에서는 7개 장이 3권에서는 하나의 글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에세이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책 전체로 보면 전체 내용이 하나의 흐름에 있지는 않다는 뜻이고, 하나의 글로 보면 글 속에 서론-본론-결론이 명확하게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LES ESSAIS [수상록]'를 읽다보니 완역이 아닌 발췌본인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글 하나만 놓고 보자면 짧은 글인 경우에는 쉽게 읽혔지만, 좀 긴 장인 경우에는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읽기 쉽게 풀어쓴'이라는 부제답게 번역 자체가 쉽게 잘 읽히도록 되어있었음에도 긴 글이 잘 읽히지 않은데는, 단지 글이 길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몽테뉴가 글을 쓸 때 무언가 주장을 하려하거나 설명을 하기 위해서 쓰지 않았기 때문에 글 하나의 구성이 완벽하게 짜여있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글이 길어지다보면 몽테뉴가 자기 시대 혹은 자신이 아는 그 이전 시대 유럽권 인물에 대한 이야기나 일화를 들어서 글을 풀어가는데, 간단하게 역자가 설명을 달아주었음에도 아예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다보니 선뜻 그 내용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몽테뉴가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보다 왜 이 글을 썼을까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옮긴이의 글에 묘사된 몽테뉴를 보면서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천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틀어박혀 집필했고 글 속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지만 <수상록>은 어려운 말로 쓰인 현학적인 책이 아니다. ... 아마도 은거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겼고 그의 정신은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누빈 듯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 그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해서 탐색하기로 한다. 그래서 독자에게 고백한 것처럼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고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써 내려갔다. ... 글 속에서 방대한 주제를 다루면서 몽테뉴가 내린 결론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였다. 238-9쪽 35살에 서재에 틀어박혔다는 몽테뉴이지만, 서재에 있는 수많은 책을 통해서 세계 곳곳(비록 그 세계가 몽테뉴가 상상할 수 있는 서구를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겠지만)에서 시대를 초월한 저자들을 만났을터입니다. 그런 몽테뉴가 자신의 모든것을 드러내는 글이 쓰고 싶어서 쓴 결과물이 바로 수상록이라고 생각하니, 기회가 된다면 완역본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라도 배웠다면 원어로 읽어보겠다는 꿈도 꿨을지 모릅니다. 그 전에 몽테뉴가 풀어놓은 몽테뉴를 맛보기에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LES ESSAIS [수상록]'은 아주 훌륭하고 손쉬운 선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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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장르의 아버지 몽테뉴’라는 수식어는 책의 제목을 앞서간다. 수상록 이라는 제목도 언 듯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뜻은 단순하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 그렇다고 절대로 가볍게 읽히는 내용은 아니다. 고전의 의미에 부합하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깊이가 느껴진다. 이미 16세기에 21세기에도 여전한 이기적인 사람의 본성과 새로이 대두될 사회현상을 꿰뚫어 보는 미래지향적 통찰과 지성에 감탄하게 된다. 근래 부쩍 늘어난 예측불가한 양상의 범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정체되어 있는 법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궁금해 질 정도다. 보르도 시장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학을 전공하고 고등법원의 법관으로 일한 전력이 있으니 무지한 분야는 아닐 것이다. 책에서도 법률을 언급한다. -습관에 대하여 그리고 기존 법률이 거의 바뀌지 않음에 대하여- 제22장에서 습관의 힘이 너무 위대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관습법이 익숙하고 일반적이어서 바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내용은 한편으로 그 시대 각 나라의 기이하면서도 상이한 법에 대해 수긍하게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평결보다 대대로 내려온 관습에 따른 진부한 평결이 계속되니 오늘날 미개한 법이 그대로인 것은 아닌가 싶다. 저자는 애초에 법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여러 가지 관계에서 파생되어 만들어졌음을 역설하고 있다.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 공포, 우정, 고독, 양심, 영광, 불굴 등의 감정들을 다방면으로 나름의 생각과 기준으로 성찰하고 있지만 맥락은 하나다. 일상을 누리면서 느끼고 추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감정과 이성의 충돌이 모든 법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상대로 인한 슬픔과 분노가, 실체 없는 공포에 대한 공포가, 진정한 고독을 위해 영혼속에 존재하는 악을 내면에 꽉 붙들고 있어야 하는 힘겨움이 법을 만든 근간이며 문명이 더 발전하기를 바란다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일 먼저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비록 옮긴이는 저자가 내린 결론을 다르게 정의하지만 말이다. 정년의 연장이나 어떻게 노후를 보내야 하는지, 분노조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등 오늘날에도 유용한 저자의 선견지명에 연신 감탄한 고전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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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라는 이름도, 수상록이라는 책 제목도 결코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나 정작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은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독서 시간이었다. 고전을 읽고, 과거 선인들의 말씀을 듣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도움과 가르침을 얻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알게 된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시리즈는 쉽게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몽테뉴가 자신의 삶에서 거듭되는 불행을 겪으며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직위에 있다고 느끼게 되는, 어쩌면 인생에서의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현실을 뒤로하고 은둔생활을 시작하며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편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각각의 글의 이어짐이 탁구공이 튀듯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 공감이 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그가 얼마나 당시에 복잡한 심경이었을까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무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의연함이란 또 어떤 것일까하는 자신의 생각을 적기도 하며, 공포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과 다른 이들의 말을 빌어 글을 적어내려가기도 한다. 물론 의도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읽으며 극히 공감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고, 한 사람에게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해롭다는 글을 통해 우리의 욕망이 타인의 희생으로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짚어주며 함께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옳을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을 담고 있기도 하다. 양심에 대해서, 신앙의 자유에 대해서, 나태와 분노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과 선현들의 글귀와 그리고 자신이 마주하는 현실을 연결해가며 5세기 전의 글쓴이 몽테뉴는 지금 옆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다. 처음 말했듯 하나의 주제를 담은 글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글들이다. 그래서 이 '수상록'의 원제가 'Essais'인가 보다 싶다. 마치 삶이 계속되듯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렇게 끝맺음이 없는 '수필'의 탄생 말이다. 우리가 삶이 힘들 때 타인의 글로 위로를 받는 수필이라는 장르가 이렇게 몽테뉴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런 역사?를 알게 되니 500년도 전의 몽테뉴가 조금은 이해되고, 또 그의 자발적 고립을 위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책 '수상록'은 한마디로 평하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어디든 툭 펼쳐서 읽어도 좋은 그런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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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23/8/12 ~ 2023/8/18 지난번에 읽었던 군주론에 이어서 이번엔 시카고플랜 시리즈 중 수상록이다.
https://blog.naver.com/for_neoend/223169221184
군주론때 호되게 당했기 때문에, 읽기 주저하던 책이였으나, 겁내서 이런 좋은 책을 읽어볼 기회를 놓치면 나중에 후회할거 같아 굳은 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호되게 당했다. 군주론, 신곡처럼 이 책 역시도 나온지가 너무 오래된 책이라 문체 자체도 너무 어렵고, 내용도 방대할 뿐더러, (중간에 언급되는 로마-그리스 시대 인물들이 너무 많다!!) 현대의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글이 한번 더 꼬아져 한문장 한문장 넘기기도 버거운 부분도 꽤 있었다. 신곡 이후로 이렇게까지 진도 나가기가 힘든 책이 최근에 또 있었나 싶을 정도여서, 안되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쉽게 나온 편역본 한권을 빌려와서 같이 읽어 나가기 시작하며 차근차근 공부를 해보았다. 국내에서는 이상하게도 수상록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던데, 찾아보니 1965년 국내에 출간된 첫 완역본의 제목이 수상록이여서 그 이후로 나오는 모든 책들이 다 수상록으로 발간되고 있는 중이였다. 당시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 다시 한글로 2중 번역을 했었다 하며, 때문에 일본 책의 제목인 수상록이 쓰였다 한다. 원제는 '에세(Essais)'이고, 수필로 번역되고 있지만, 실상 몽테뉴가 살던 당시의 의미로는 '사고(思考)' 라는 의미로 쓰였다 하며, 어느 특정 주제에 대한 몽테뉴 개인의 생각과 의견들이 쓰여진 책이다. 몽테뉴는 1570년 법관직에서 물러나 몽테뉴 성에 들어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고, 20여년간 100편이 넘는 길고 짧은 글들을 썼으며, 5번에 걸쳐 책을 출간했다. 주제는 죽음, 우정, 종교, 동물, 섹스, 전쟁 등등 여러가지이며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주제의 글들은 죽음과 동물이던데, 아쉽게도 이번에 읽은 이 번역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국내에 출판되어 있는 '에세'는 크게 세가지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완역본으로 100편이 넘는 모든 글들을 다 완전하게 번역해 놓은 책이다. 최근 민음사에서 새로이 완역본을 출판했으며, 그외 동서문화사에서 출간한 책도 있다. 다음으로는, 이 책이 워낙 양이 방대하여 그중에 출판사 각자 임의대로 몇 챕터들만 추려내어 번역한 부분 번역본이 있으며, 이번에 읽은 이 책 역시 그러한 부분 번역본이다. 그리고, 워낙에서 원서가 어려운 책이다보니, 아예 출판사에서 내용들을 현대적인 의미로 쉽게 해석하여 내놓은 편역본도 꽤 많다. 도서관에서 이러한 편역본도 빌려 읽고 있는 중이니, 조만간 그에 대한 독후감도 써보도록 하겠다.
이와 같이 상당히 공감될만한 내용도 많지만, 또 반면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글들도 있다. 이 책이 쓰여지기 약 50년 전에 루터의 종교 개혁이 있었는데, 몽테뉴는 그럼 그 종교 개혁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인건가? 면죄부를 돈 받고 팔던 중세 교회의 폐쇄성과 타락함을 옹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교회의 폐해와는 별개로 정통 가톨릭 신자로서 종교 개혁을 거부하는 것인가?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데다, 주변에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어 이러한 의구심이 들때는 참으로 답답하다.
뼈속까지 정통 그리스도교인 몽테뉴는 의외로 배교자라 불리우는 율리아누스 황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는 여느 현대인들과 다를게 없어보인다. 밀라노 칙령 폐기와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명확히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율리아누스 황제의 행보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종교 개혁에 대해서는 매우 꼰대같은 모습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내가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건지. 출판사 미래와사람은 사실 잘 모르는 출판사이다. 작년 언제부터였던가..시카고플랜 시리즈로 고전 명작들이 나오기 시작하던게 기억이 날뿐. 군주론과 수상록 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본적이 없었다. 군주론때도 그랬지만, 이번 수상록 역시 미흡한 부분들이 보인다. 하지만, 오타와 어색한 조사의 사용 등 초판 인쇄에서 흔히 보일 법한 그런 문제들이라 시간이 지나면 차차 개선될 부분이라 여겨진다. 그래도 이제 막 새로이 고전들을 펴내는 곳이니만큼, 앞으로 좋은 양서들을 많이 많이 내줬으면 하는 응원을 해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수상록 #에세 #몽테뉴 #미셸드몽테뉴 #미래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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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하면 떠오르는 수상록이다. 학창 시절 작가와 작품명을 달달 외운 것 외엔 그 어떤 정보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처음으로 읽어보았다. 몽테뉴는 에세이 장르를 최초로 고안한 장본인이라고 한다. 다양한 장르의 도서를 접하면서도 굳이 에세이란 장르의 시초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는데 그 시대에 처음으로 일정한 형식 없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무척 커 보였다. -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우정보다는 존경이 있어야 한다. 우정은 친밀한 소통으로 쌓이는 것이므로 동등할 수 없는 부모와 자녀 간에는 우정이 생길 수 없다. 게다가 자식에 대해 부모가 가진 근본적 의무를 해칠 수 있다. p 86
'16세기 최고의 지성인이자 사상가이며 철학자인 몽테뉴'가 쓴 수상록을 읽으며 5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을 담은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아래의 글은 1장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같은 결과에 도달한다'란 주제 속 내용인데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는 인간 본성이 놀랍다. - 확실히 인간은 허영심이 강하고 각양각색이며 변덕스러운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해 변함없는 일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p 12
'슬픔에 대하여' 그가 쓴 내용 중 인상적인 대목으로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속으로 참고 참으며 겨우 버텨내고 있었는데 작은 시련에 무너져버림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많은 이들이 겪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사람들은 그가 예기치 못한 마지막 시련 때문에 힘들어했으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슬픔으로 마음이 가득 찬 상태에서 작은 시련일지라도 더해지는 바람에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p 16 저자는 본인은 여간해서는 격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데 태생이 예민하지 않고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철갑을 주위에 치기 때문이라는 글로 마무리한다. '무위에 대하여'를 읽으며 종종 행해지는 나의 나태함에 대한 반성을 해 본다. 목표가 없는 것과 나태가 지닌 부정성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었다. - 목표 없이 정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것과 같다. 마르티알 - 나는 알게 되었다. 나태가 모든 면에서 정신을 항상 흐린다는 것을. 루카누스 p 25 대체로 대책 없는 불행에 용감하게 맞설 때 발현된다는 '의연함', 이상한 감정이라고 표현한 '공포', '상상의 힘에 대한' 내용이 신선했다. '습관에 대하여 그리고 기존 법률이 거의 바뀌지 않음에 대하여' 속 내용 중 관습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인상적이며 놀라웠다. - 그러니 핀다로스가 관습을 세상의 여왕 그리고 황후라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 양심의 법칙이 자연에서 탄생했다고들 하지만 실은 관습에서 태어났다. p 68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에세이 장르의 시초 '수상록'을 '사카고플랜' 시리즈로 읽어 보았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이란 타이틀에 걸맞은 도서로 즐겁고 유익한 독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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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이라는 이름은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몽테뉴라는 이름만 기억 저편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렇게 본 책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괜스레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까지 들어 반성하는 마음과 함께 아무것도 모르는 새 책을 만나는 설레는 기분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이름인 "les essais"는 오늘날 수필로 알려진 '에세이'라는 뜻도 가지지만 '시도, 시행'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본 책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말하지 않았던 것을 죽음 앞에서도 절대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라고 다짐합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에 다 폭로하고 떠나는 것을 경계하며 남긴 말입니다. 어차피 자신은 죽어 더는 이 세상에 없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벌이고 마는 것이죠. 저자도 그런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를 질타합니다.
저자의 '불행한 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무기를 들어도 지탄받을 이유가 없다'라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요즘 무서울 정도로 흉흉한 사건이 부쩍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 심지어 대상까지 불문하고 벌어지는 강력 범죄에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범죄에 대항하는 과정에서의 정당방위의 인정 및 허용 범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때문인지 유독 눈에 들어왔던 구절입니다.
저자는 고대 서적의 단편을 인용하여, 윤리적인 주제들을 다루며 역사적인 판단과 의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생각과 비판적인 시각을 더합니다. 이런 형식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고려하게 하며, 자신의 생각과 가치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본책은 약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쓰이다 보니 각 권별로 생각,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일들 겪습니다. 그러다 보면 삶에 대한, 그 외 다른 여러 것들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죠.
이렇게 자신의 인생과 생각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기록을, 그것도 꾸준히 남기는 것. 정말 대단하고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본 서평은 오로지 제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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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쉽게풀어쓴현대어판수상록 #시카고플랜 #미셀드몽테뉴지음 #미래와사람 벌써 시카고플랜 010번째에 이르렀다. 시카고플랜시리즈는 7권정도 보게 되었는데 시카고 프랜은 1929년 시카고 대학의 제5대 총장인 로버트 호킨스가 '존 스튜어트 밀'식의 독서법이라고 한다. 철학 고전에 기반하여 100권을 읽어야지만 졸업을 시킨다는 취지의 독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고전이 얼마나 삶에서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고전을 원전을 훼손하지 않으며 읽기 쉽게 독자에게 읽게 한다니 꼭 읽고 싶거나 손도 못댔었던 고전들을 하나씩 도전하고 있다. 책을 꾸준히 읽게 되다보면 고전, 전집이나 두꺼운 도서중에 버킷리스트처럼 읽어야겠다 싶은 책이 있는데 그 중에 수상록도 포함이 된다.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에세이'장르를 최초고안한 모럴리스트이다. 모럴리스트란 도덕학자, 도덕지상주의자이다. 16세기~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인간에 대해 탐구하여 수필이나 단편으로 쓴 문필가를 칭한다. 수필형식이라 읽힘이 막힘없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내용을 전달하여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사람의 심리상태나 삶에 있어서 인간이 갖추고 있는 성품과 인품에 대해 통찰력있음을 보여준다. 중간중간에 현자들의 명언들이 있는데 적절하게 피치되어 몽테뉴의 글을 더욱 이해가 빠르도록 해준다. 몽테뉴의 글 중에 아리송한 글이 있다면 어떤 사람, 어떤 나라라고 칭하며 예를 들어주는데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설명했다면 더욱 글이 선명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언급한 사람중에 가까운 사람이 있기에 어떤 사람으로 표기했으리라. P.98 피상적으로 사귀는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우정, 즉 마음속 깊은 곳에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우정이라면 모든 동기는 완전하게 순수하고 진실해야 한다. 우정에 관하여 쓴 글이 무척이나 와닿았다. 어릴적에는 허물없이 나를 다 내비치고 내어주며 쏟아붓는 우정이라고 했다면, 나이가 먹은 지금에 우정이라고 한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 통하기도 하며 속깊이 터놓으며 일단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않는 사람이라 하겠다. 우정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시시콜콜 너무 서로에게 파고들게되면 시간이 지나면 둘중에 하나는 지친다. 연애할때처럼 한쪽이 너무 일방적이고 저돌적이라면 거리부터 두게된다. 나이불문 우정이든 사랑이든 일방적이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힘쓴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욱 조심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아예 못만나는 상황이 오지않게 오래토록 보고픈 사람에겐 유독 더 조심하고 신중하다. 곁에 오래보고 싶은 사람과 한번 크게 틀어진 후로 더욱 우정이 무엇인가. 어떻게 오랫동안 봐올 수 있는가 생각했는데 약간의 거리두기가 있어야 건강하고 편안한 관계가 유지가 되었다. P.112 의무에서 벗어나 이것저것 사랑하되 화합은 자신과만 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과 관계를 맺어도 좋지만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야만 분리될 수 있을 정도로 결합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이 되는 법을 아는 것이다. 나를 많이 사랑하고 아껴줄 것. 번아웃이 한번씩 올때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해는 반드시 뜬다" 라며 내 마음을 더욱 단단한 마음으로 키워나가며 나를 사랑해야겠다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