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훈 입니다.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 참 역설적인 제목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587년은 모든것이 일어난 해 였습니다. 1587년(만력 15년) 전후를 살았던 6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명조가 어떤 방식으로 멸망의 길로 나아가는 지를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 재미있는 역사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의 재미 못지않게 어떤 역사책 보다 사건의 본질을 깊이있게 파고드는 역작이었습니다.
대개의 역사책이 역사를 서술할때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인물이 행했던 공과를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 맞추어 서술하는데 반해서, 이 책은 1587년을 살았던 인물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왜 그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조말기의 사회적 구조속에서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해야 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했었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농경사회적 전통에 바탕을 둔 명왕조가 법령체제나 구체적인 행정 시스템의 결여로 인해서 서구사회에 발전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는 지적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대명률을 기본으로 한 조선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그리고 한 사회에서 막연한 도덕적 규범, 소위 동양사회에서 말하는 한 지도자의 덕치(德治)에 근거한 통치가 얼마나 위험한 접근법인가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적하고 있는 왕조말기 관료제의 폐단 등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경직된 관료체제의 불합리성과 후진성으로 말미암아 개인적인 좌절을 맞보아야 했던 인물, 그리고 그 자신도 모르게 관료제적 틀속에 갇혀서 맴돌아야 했던 1587년 전후를 살았던 인물들은 2002년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책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인상깊은구절] 1587년은 겉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해였다. 그러나 그 당시 명조는 발전의 한계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황제가 성실한가 무책임한가, 수보가 진취적인가 보수적인가, 고급 무장들이 독창적인가 무능한가, 문관들이 청렴한가 부패한가, 사상가들이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
| 명조(明朝)같은 거대한 대륙형 국가가 하루아침에 그 사회구조를 개선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뭍짐승이 날개만 단다고 해서 새가 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1587, 만력15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는 이 같은 명조의 쇠퇴에 대하여, 특이하게도 1587년이라는 어느 한 해에 맞추어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세 번이나 심한 충격을 받았는데, 처음은 이 책의 제목에서(거의 누구나 그랬겠지만...) 두 번째는 이 책의 독특한 서술방식에서(레이 황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명조의 쇠퇴에 대하여 이를 직접적으로 개괄하는 것을 피하고 명조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보여줌으로서 이를 명조 쇠퇴의 증거로 삼는 서술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무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1587이라는 한 해를 명조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로 해석한 그의 독특한 역사적 안목에서였다. 여하튼 이 책은 그 내용과 더불어 저자인 레이 황의 이름까지도 내 머리 속 깊숙이 각인을 시켜줬고, 그로 인해 같은 해를 두고서 서양에서 쓰여진 「1587 아르마다」라든가 혹은, 레이 황의 다른 저서들까지도 계속해서 뒤적거리게 만드는 골치 아픈 후유증을 남겨주었다. 황제와 관료제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대 황제인 만력제와 관료집단 사이에는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명조는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고도로 정형화된 국가였다. 이렇게 거대한 영토를 훌륭하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국가는 의례적인 절차에 의지해야만 했다. 의례적인 절차는 허식이든 아니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믿음을 형성시켜 주었고, 이것은 강력한 군대라든가 혹은 광대한 토지라는 ‘지배의 토대’가 없는 황제에게는 둘도 없는 강력한 통치도구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의례적인 절차를 가장 강조한 집단이 바로 관료집단인데, 이들은 황제의 자질에 따라 왕조가 좌지우지되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의례적 절차, 즉 도덕적 규범의 틀을 언제나 황제에게 강요하여 왔다. 다시 말해 명조의 절대 군주 제도는 관료 제도의 목적에 철저히 부합되도록 만들어진 제도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명조 13대 황제인 만력제는 관료집단이 요구하는 허수아비 황제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면모를 찾기를 고수했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황제의 바뀐 태도는 오랫동안 중국을 떠받들어 오던 군주와 관료제의 평형을, 양(陽)과 음(陰)의 조화를 깨뜨리게 되었다. 양(陽) 음(陰)의 조화 - 이 책에 등장하는 수보 신시행은 양(陽)을 관리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는 공인된 도덕적 통치기풍이라 하였고, 음(陰)을 그들의 숨겨져 있는 욕망과 동기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자면, 이 책 五장에 등장하는 모범관리 해서는 극히 양(陽)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그는 모든 분야에서 법률이 엄격히 집행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도 그러한 도덕적 원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도덕적 원칙, 즉 양(陽)의 측면만을 오로지 고수하였기 때문에 양과 음이 어우러진 이중성을 가진 관료집단의 따돌림을 받게 되었다. 이에 반해 이 책 七장에 나오는 철학자 이지는 어떤 면에서 매우 음(陰)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철학자로서 도덕적 원칙에 관심을 두면서도 자신의 삶은 그것에 맞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명성과 넉넉한 부를 누렸고, 그러한 이기심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책에서도 매우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그래서 ‘자기 모순적인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六장에 나오는 고독한 장군 척계광은 이러한 양과 음의 조화를 그나마 잘 이뤄낸 인물이라 생각된다. 그는 무관으로서 그 당시 문관에 의해 억눌려 있던 제한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최상의 군사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융통성 있게 당시 수보의 자리에 있었던 장거정에게 선을 대는 미묘한 정치적 술수에도 정통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양과 음의 조화 속에서 군제 개혁을 시도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의 ‘원앙진법’인데,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이 책의 설명은 결국 이러한 양과 음의 조화 속에서 탄생한 그 어떤 훌륭한 방안도 결코 그 당시 명조의 대안이 될 수는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완전히 균형 잡힌 부대의 명칭은 ‘원앙진’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 사용되었던 무기들에 비하면 원앙진법은 백년 이상 뒤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6C는 이미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의한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시기였다. 머지않아 중국은 이제 서양과 충돌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는 ‘중국이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골탈태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1587년의 명조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 시대 명조는 결국 환골탈태하지 못했고, 그럴 뜻도 없었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이고 폐쇄적이었던 명조의 암담함을 통하여 현재 자신의 모국(중국)을 되돌아보려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오늘날의 중국은 다시금 약진하고 있고, 그래서 ‘환골탈태해야한다’는 작가의 신념이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반드시 재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
|
대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거의 매주마자 빌려보던 책이 바로 이 '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였다. 중국 명나라 후반기, 6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룬 명나라의 역사가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서였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먹고 살기에 바빴다가 얼마 전 돌연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구해서 읽어보았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유익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중국에는 이른바 명빠들이 많다고 한다. 명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나라라면서 매우 찬양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만 명나라는 실제로 있었던 나라고, 3대 황제인 영락제 때는 서양보다 더 앞서서 대항해를 했을 만큼 강대국이었으니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데 그렇게 강력했던 대제국 명나라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587년으로부터 불과 60년도 안 되어 내우외환, 즉 이자성의 농민반란과 청나라의 공격을 받고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물론 양자강 남쪽에는 남명이라고 하여 명나라의 잔존세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20년만에 청나라에게 모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거대한 제방도 아주 작은 구멍으로 무너지듯이, 강대국 명나라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
| 한 나라가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구체적으로 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나라가 쇠퇴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를 맡은 지배층만의 잘못일까? 보통의 경우 한 나라의 역사에서는 전성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바로 쇠퇴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또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원인에는 지배층의 부정부패도 큰 원인이었음을 과거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만력제 제위 초반의 명조의 상황은 이 문제에 확실한 대답을 하기 어려웠다. 명조의 전성기인 영락제 시대로부터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명조 자체는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비록 북으로부터 몽고족의 침략과 남부 해안으로의 왜구의 약탈이 명조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지만 이런 북로남왜의 화도 명조를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1587년(만력 15년)은 눈에 띄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외적의 침입도 없었고, 국내에서는 약간의 자연 재해만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해를 명조 쇠퇴의 시작으로 보고 있을까? 이 책은 1587년을 전후로 생존했던 만력제, 장거정, 신시행, 해서, 척계광, 이지를 중심으로 이들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많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해서처럼 지나치게 완고한 사람도 있는 반면 이지처럼 당대에 이미 이단적인 사상을 가진 자로 낙인찍힐 정도로 개방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밖에 다른 인물들도 각자 자기만의 신념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은 거의 똑같은 장애에 부딪쳐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중앙과 지방에서의 장거정과 해서의 개혁 추구, 황제와 관료사이에서 융통성 있는 정치를 해나갔던 신시행, 그리고 각각 군사면과 사상면에 새로운 발전방향의 지침을 세운 척계광와 이지, 마지막으로 처음에는 의욕적인 정치를 해나가려 했던 만력제. 바로 이들의 노력을 좌절시킨 것은 거대하지만 비능률적이었던 관료집단이었다. 관료기구는 명조 초에 넓은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 무렵에 이르러 그것은 지나친 의례의식에 얽매여 유연성을 잃어버렸고, 도덕성과는 무관한 행정적인 문제에도 도덕성을 잣대로 하여 처리하려고 했기 때문에 행정의 효율성은 매우 떨어졌다. 게다가 정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쟁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법제도도 없었다. 너무 경직되어 있고 비능률적인 관료기구로 인해 광대한 영토를 제대로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라는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만 그 과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은 노쇠한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거대한 집단의 저항 앞에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책의 중심 사건인 황태자 지명 문제는 주로 만력제와 관료집단의 대립을 다뤘지만 어쩌면 이 문제는 이 책에서 소개된 주요 인물들을 대신하여 황제가 관료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여러 인물들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만력제도 관료들의 의지에 자신의 뜻을 꺾고 말았다. 황태자 지명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훨씬 후였지만 1587년, 즉 만력제가 즉위한 지 15년 째가 되는 해에 황제는 이미 황제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의욕을 잃어버리고 이후 수십년 동안 정치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명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제위에 있었던 만력제. 그 수십년 동안 명조는 더이상의 발전없이 기나긴 정체상태에 머물렀다. 나라는 이미 활력을 잃어버렸고, 개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만주족의 침공과 이자성의 난으로 명조가 멸망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남았지만 그 수십년동안 명조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 명조를 정복할 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명조는 타성에 의해 유지된 것이다. 1587년, 척계광과 해서가 사망했고, 만력제에게 중대한 심경 변화가 일어난 그 해는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해'지만 역설적으로 명조의 발전과 쇠퇴의 분기점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던 해'였다. 이 책은 역사책이지만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추리기법의 사용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한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사료에서도 특별한 언급이 없을 정도로 별 다른 일이 없었던 해가 실은 쇠퇴의 시작이었다는 참신한 시각과 한 나라의 제도적인 문제가 국가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서 앞서 스스로 물었던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된 것 같다. |
|
매우 어려운 책이다. 서너시간이면 충분히 읽기 쉬운 소설책 등에 비해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다른 책과는 달리 이 책에는 향기가 배어있다. 일반 역사서적 같으면서도 추리 소설 같고 시적이다. 내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나는 그 시대를 바라보았다. 다섯 사람의 인물을 탐구해 나가면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문학 등을 총 망라하여 그 시대가 그 인물이 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해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는 형식은 작가의 기발한(?) 발상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재임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만력제는 자신이 조정대신들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황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군주라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가혹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았다.(중략) 설사 개성을 박탈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것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 했다. 황제는 관료집단의 일개 도구로서의 황제의 역할을 거부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은 명조의 법제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
| 시작 부분에서 우리는 만력(萬曆) 15년 어느 날의 작은 에피소드를 접하게 된다. 정오에 어전회의를 한다는 소문을 접한 여러 관리들이 부리나케 성으로 입성하였지만 그 소문은 헛소문임이 밝혀졌다. 솔직히 이런 일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사소한 일로 비추어 졌지만 명대(明代)의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사소하게 치부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명대(明代)의 사회가 얼마나 도덕적 규범과 의례를 강조하는지 엿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대(明代) 사회는 특히 관료사회는 도덕적 규범과 의례에 대해 상당히 엄격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성은 명대(明代)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유력한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중국이라는 커다란 영토를 지배하는 명(明)이란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엄격성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현대와 같이 교통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고 기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과 같이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지방관을 잘 다스리고 관료 체계를 얼마나 훌륭하게 관리하는 것에 체제 유지가 달려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이 선택한 것은(명뿐만이 아닌 중국의 왕조들이) 유교에 입각한 관리들의 도덕성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그 도덕성은 엄격성을 강요받아야 했다. 그리고 만력제(萬曆帝)를 비롯한 명대(明代) 황제들은 정말 질릴 정도의 수많은 직무와 의식을 수행하여야했다. 이런 직무와 의식들은 그 상징하는 의미가 컸다. 엄격한 의례의 강조는 앞에서 이야기한 엄격성과도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뛰어난 황제라고 할 지라도 황제도 인간이기에 이러한 과중한 의례의 양은 황제라는 인간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몇몇 황제는 정면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이러한 의례들을 하기를 꺼려하거나(정덕제) 다른 핑계거리를 대며 의례들을 회피하거나(가정제) 의례를 하긴 하지만 형식적이고 무관심하게 하는 황제(융경제) 등등 여러 모습으로 황제들은 의례를 대하고 있었다. 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를 읽으면서 친구가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던 부분은 왜 1587년이어야만 했냐는 것이었다. 실지로 이 책을 읽다보면 1587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명 중·후반기의 전반적인 사항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1587년의 중요성은 파악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졌다. 아마도 1587년은 만력제(萬曆帝)를 초점으로 해서 잡은 해라고 생각된다. 이 1587년을 기점으로 하여 만력제(萬曆帝)는 냉소적이고 업무를 거부하는 황제로 변화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한 변화를 초래한 것은 직접적으로는 장거정(長居正)이고 막지 못한 인물은 신시행(申時行)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드러나 있는 사실 말고 내부적인 사항을 살펴보면 아마도 명(明)을 지탱하는 동시에 발전을 철저하게 막은 엄격한 도덕적인 규율에 의한 음과 양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모순의 발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나서 지배적으로 드는 느낌은 정말 세밀하다는 것이다. 이전의 역사서의 단순하고 명료한 서술이 아니라 세밀한 묘사와 작은 사건이나 그 동안 조명되지 않던 인물들을 통해서 바라보는 명(明)의 모습은 새로웠고 책의 제목은 비록 아무 일도 없었던 해이고 그냥 보기에는 평범하게 지나가는 해이지만 내부적인 모습은 명(明)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입각한 사람들의 나름대로의 노력과 그 노력의 실패들이 산재한 생명력이 넘치는 해라고 정의하고 싶다. |
|
책을 고르다보면 가끔-어쩌면 자주- 제목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잘 지은 책의 제목이란 무었일까? 수많은 출판 전문가들이 고민을 해 온 문제일텐데, 내가 딱 부러지는 답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목 자체가 가져야 할 어떤 요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선택 하는 시점에 독자의 심리적 상태도 책 선택의 한 요소가 될 것이니 명쾌한 기준이란게 있을 수나 있는 것인지. 애초에 책 제목이 도서 선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란 게 얼마나 되는 것인지.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의 제목이 잘 지어졌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모든 이유는 책 제목이 주는 묘한 끌림 때문이었다. 수년전 어딘가에서 이 책에 대한 언급을 잠깐 읽었던 기억이 있는 듯도 하지만, 기시감과 같은 착각이라 해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책 안팎의 해설문에서 상찬되듯 이 책이 그만큼 인정 받는 역저라는 사실은 애초에 몰랐던 일이고...
단지 1587년이면 조선 중기의 대 격변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이고, '임란' 파병이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알고 있는 명왕조 멸망- 정확한 연대는 알지도 못하지만 지금 당장 알아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50년쯤 전인 것 같으니 그 내부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해 주려나 하는 정도가 처음 책을 집을 때 머리 속을 스쳐간 생각이다.
다 읽고 나서 다시 묻는다. 애초 가졌던 의문의 답이나 그 단초를 얻었는가? 아쉽게도 아닌 것 같다. '만력'이라는 연호를 통해 그 이름만 어렴풋이 알고 있던 '신종'이라는 중국 임금이 약간의 구체성을 가지게 되었고, 장거정이며 신시행이라는 관료와, 해서며 이지라는 우리로 치면 선비의 이름, 그리고 척계광이란 무장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거나 다시 기억하게 된 정도를 수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저자에 따르면 1587년은 명 왕조 멸망의 모든 징후가 시작하는 시점이었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다. 상황 설명도 딱 들어 맞는다는 느낌이 없고 그 상황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설명도 구체성이 부족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왜 하필 1587년이며 이 인물들인가 하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역사의 흐름이란 게 어느 한 시점, 하나의 사건, 한 명의 인물에 의해 결정되거나 설명되어지기 힘들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일반적 상식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색다른 해석 방법이나 사례 연구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고.
구체적 소득 하나. 척계광이란 장수가 그렇게 대단한 장수 인 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가 썼다는 '기효신서'란 책이 또 그렇게 대단한 병법서 인 줄도 처음 알았고. '임진왜란'에도 종군 했던 걸로 기억 하는 '유정'이란 장수도 그의 막하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이여송'은 어떤 위치였으며, 나중 명 왕조의 멸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이자성이며 오삼계는 명군의 족보에서 어떤 갈래에 위치하는 것인지... 꽤 호기심이 가는 주제 거리를 하나 건졌다고나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