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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론자 세르의 엄지세대 찬양
"인식론자 세르의 엄지세대 찬양" 내용보기
현 시대는 과거와 급격한 단절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단절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훨씬 능가하는 사태가 다음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슐라르를 잇는 프랑스 인식론계의 거장 미셸 세르에게도 지금의 젊은 세대는 관심을 부르는 사유의 맞춤한 대상인 듯 하다. 세르의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신인류에게 세르가 보내는 찬사이
"인식론자 세르의 엄지세대 찬양" 내용보기

현 시대는 과거와 급격한 단절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물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단절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훨씬 능가하는 사태가 다음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바슐라르를 잇는 프랑스 인식론계의 거장 미셸 세르에게도 지금의 젊은 세대는 관심을 부르는 사유의 맞춤한 대상인 듯 하다. 세르의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신인류에게 세르가 보내는 찬사이다.


후에 거론되지만 세르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대를 하는 입장인데 애초에는 책 제목을 ‘엄지공주’라 붙이려 했었다고 말한다. 세르가 파악한 신인류는 지난 60년간 서양 역사에서 유일하게 전쟁이 없었던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고 각종 문명의 혜택과 풍요를 누린 사람들이다. 세르에 의하면 도덕이란 종교적으로든 세속적으로든 질병, 기아, 세상의 냉혹함 등 필연적이고 일상적인 고통을 견디는 훈련으로 요약된다.


그러니 이전 세대들과 지금의 신인류는 도덕에 대해 다른 인식과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구석기인들의 돌도끼 제작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도구를 만들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말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같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우리의 정신적인 삶의 모든 측면이 신체 경험과 연결됨을 지시한다.


아니면 가소성(neuroplacity)이거나. 가소성은 경험에 반응하여 변화하는 뇌의 특성을 말한다. 세르는 흥미롭게도 신인류는 모두 기성 세대가 확산시킨 미디어와 광고에 의해 포맷되었다(또는 된다)고 말한다. 매체가 다르면 즉 상대하는 매체가 다르면 자극받는 뉴런 및 뇌부위가 다르다고 한다. 세르는 신인류의 머리는 우리의 머리와 다르다고 말한다. 세르는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다른 만큼 소통 방식, 지각방식 등이 우리와 다르다고 말한다.


세르는 두 개의 엄지 손가락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신인류들을 엄지세대라 부른다. 세르가 말했듯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 소식은 소속감이나 집단 의식의 사멸을 의미한다. 세르는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무엇을 전수할 것인가? 누구에게 전수할 것인가?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등이다.


세르는 지식은 인터넷상에 널려 있다고 말한다. 모든 지식을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이 세르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모든 지식을 전수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지식이 개방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말이다. 세르는 지식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고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말하자면 아직 지식의 대종(大宗)은 문서에 있다.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는 가득찬 머리보다 잘 구조화된 머리를 가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물론 오늘날 이 잘 구조화된 머리는 다시 한 번 격변하고 있다.(52 페이지) 세르에 의하면 문자가 발명되어 보급되던 시기에 그리스인들이 교수법(파이데이아)을 고안해낸 것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인쇄술 발달은 교수법에 큰 변화를 일으켰으며 신기술의 부상은 완전히 다른 틀을 만들 것이다.


세르는 생드니 성인의 일화로 엄지 세대를 설명한다. 파리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초대 주교로 선출한 드니는 로마병사들에 의해 베어진 자신의 머리를 들고 현재 생드니라는 곳까지 계속 걸어갔다. 세르는 엄지세대들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을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에 비유한다. 세르는 인쇄술, 컴퓨터 등의 출현으로 암기의 노고를 덜게 된 우리에게 창의와 직관을 요구한다. 물론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이 드니처럼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라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어떤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책은 저장 매체일 뿐이지만 컴퓨터는 연산(演算)을 할 수도 있고 인공 지능이 될 수도 있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디지털의 이기로 인해 아니 그에 의존해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디지털 치매는 문제라 할 만하다. 이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다. 수용자가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세르는 교사가 들려주는 지식은 이미 모든 이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78 페이지) 모든 지식이 인터넷에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문서 형태의 지식이 웹상의 지식보다 많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전자책이 등장하자 일정 기간이 지나면 종이책은 사라질 것이라 말했지만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전자책이 종이책의 활성화를 이끄는지 모르지만 종이책은 계속될 것이다. 관건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전자책의 지식량이 종이책의 지식량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르는 이제 지식은 도처에 유통되는 까닭에 강의실 어디에서나 동질적인 밀도를 유지하고 탈중심적이고 이동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지식이 확산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85 페이지) 세르는 예전에 사슬에 매어 동굴에 갇힌 몸이었던 엄지세대는 이제 수천년 동안 이들의 입을 꿰매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잡아 매어 침묵 속에서 꼼짝 못하게 가두어 두었던 동굴 감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한다.


세르는 지식 시대의 종말(79 페이지)과 결정권자 시대의 종말(88 페이지)을 선언한다. 이제 정치라는 경기장 안에 결정권을 가진 권력자는 없고 대신 그들이 내린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자들이 그곳을 점령했다고 말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르에 의하면 혼돈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92 페이지) 세르는 학문의 분류 체계를 전복시켜보자고 말한다.


세르는 어떤 종류의 분류도 허락하지 않으며 어떤 바람이 불어오건 종횡무진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창조성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으니 그간 고정관념과 고립된 시각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의력을 갖추기 위해 세르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세르가 말한 바는 부단한 노력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얻을 수 있다. 세르는 과거 조상들은 빛의 밝음을 선택한 반면 오늘날 우리는 (검색retrieval에서의) 빛의 속도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세르는 호모사피엔스는 오래 전에 호모 비아트로(여행자)가 되었다고 말한다.(125 페이지) 덧붙이자면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비아트로는 대안적인 개념이 아니다. 세르는 엄지세대는 도시와 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무한히 확장된 집합 도시에서 산다고 말한다.(126 페이지) 세르는 자신이 인식론자였으나 이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나 인식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식론이란 학문의 방법과 결과를 연구하며 때로는 그것들을 평가하는 학문을 통칭한다.


물론 진정한 인식론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은 많고 계속 그 길을 유지하는 것은 지난하다. 세르는 두 차례 우리가 보는 별빛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별들이 내는 것이라 말한다. 이 말을 하며 세르는 지금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던 제도 또는 기관들은 그 별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죽었고 유명(唯名)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별들 가운데 죽은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죽은 것은 아니다. 다음의 글을 보자. “우리가 보는 태양은 실제로 몇 분 전의 태양이고, 북극성은 수백년 전의 북극성입니다. 여러분이 본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2015년 4월 1일 헤럴드경제 수록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우종학 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별이 아니라 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세르는 남녀 구분도 전복될 것이라 말한다. 세르는 입법, 행정, 사법, 언론에 이은, 그들과는 독립적인 데이터의 권력이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139 페이지) 세르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엄지세대는 엄연히 개인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바 이는 추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세르는 코드를 예찬한다. 코드는 단수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특정 개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유일무이한 개인, 그러면서 동시에 총칭적 인간? 정해지지 않았으나 해독 가능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 접근 가능한 동시에 폐쇄적인 존재, 사교적인 동시에 소심한 존재, 접근 가능한 동시에 접근 불가능한 존재,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존재, 친밀한 존재, 친밀하면서 비밀스런 존재, 나 자신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은 동시에 나를 알리려고 과시하는 존재..,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코드다.(148 페이지) 유쾌한 동시에 낙천(樂天)의 한 장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짧고 임팩트 있는 저술이다.

m******1 2016.04.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앞으로 도래할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앞으로 도래할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내용보기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은 언제나 걱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끔은 젊은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읽어내는 기성세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셀 세르 역시 보통이 아닌 기성세대가 틀림없습니다. 미셀 세르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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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젊은이들은 언제나 걱정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끔은 젊은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읽어내는 기성세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의 거장 미셀 세르 역시 보통이 아닌 기성세대가 틀림없습니다. 미셀 세르는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자신이 열 개의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을 보고 놀라 ‘엄지세대’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엄지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주역이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는 세르의 이러한 예언을 담은 예언서입니다. 엄지세대는 “세상이 너무 급격하게 바뀐 탓에 무든 것을 다시금 창조해야 하는 젊은 세대”이며, “이들은 함께 사는 방법이며 제도, 존재 방식, 인지 방식 등, 모든 것을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도록 재창조해야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교육시키는 방식도 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지식은 교단을 통하여 인쇄된 텍스트를 통하여 전수되어왔지만, 엄지세대는 인터넷상에 널려 있는 지식을 두 개의 엄지손가락만으로 기성세대보다 더 빠르게 지식을 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주장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지식을 모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그렇게 모은 지식들을 오류를 수정하고 꿰어 맞추는 능력이 없다면 그렇게 모아들인 지식을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비웃듯이 저자는 “이렇게 유통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인지 기능이 학생들에게 부족하다는 식의 괜한 불평은 아예 입밖에 내지 않는 편이 좋다. 인지 기능 자체가 매체와 더불어, 매체로 인하여 변하기 때문이다.(52쪽)”라고 적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모은 지식을 읽다보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는 이야기인가요? 사리를 판단하는 것도 오랜 훈련을 통하여 가능해지며 그러한 훈련은 독자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일찍 깨우친 선각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자는 개인을 인터넷 세상과 연결해주는 기기, 즉 또 다른 뇌를 손에 안고 사는 신세대를 프랑스의 드니 성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금하던 시절 파리지역의 기독교도들은 드니를 초대 주교로 모시고 있었는데, 로마군은 드니 주교를 체포하여 고문을 한 끝에 몽마르트 언덕에서 참수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게으름뱅이였던 형집행관은 언덕 중간쯤에서 드니 주교의 머리를 잘랐고, 주교의 머리는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이 잘린 드니주교가 몸을 일으키더니 잘려나간 머리를 양손으로 집어들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기적으로 드니 주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인류가 손에 넣게 된 새로운 뇌를 통하여 얻게 되는 지식은 누군가에 의하여 생산되는 것인데, 저자는 누구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온갖 지식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지식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하여 소비하는 시간은 지식을 모으는 시간보다 더 많이 소요되면서도 신뢰할만한 결론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을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던 집단이 무언가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그들이 웅얼거리는 무엇이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사분란한 분류의 틀 안에서 움직이던 지식 세계가 자유분방한 혼돈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 속에서 올바른 지식을 가다듬어 내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방식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온 지식체계는 알고리즘방식으로 성립되어왔던 것인데, 새롭게 등장하는 지식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방법론은 미래세대, 즉 엄지세대의 몫이 될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이들에게 달렸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y*****2 2014.07.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