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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이라면 캐럴라인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할 거야. / p.123
이 책은 위니프리드 홀트비의 장편소설이다. 고전의 재미를 조금씩 느끼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읽은 작품보다 읽지 않은 작품이 많은데 이번 독서 모임 서적으로 선정되어서 읽게 된 책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읽게 된다면 익숙한 작가와 작품을 먼저 읽기 위해 후순위로 밀리거나 아예 읽지 않았을 책인데 그래도 새로운 작품을 읽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캐럴라인이라는 인물이다. 당시 여성상과는 조금 맞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면서 노령 연금을 받지 않으려 하고, 끼니를 걱정해야 될 정도로 가난하다.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아 자녀조차도 없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영화사 '크리스천 키네마사'를 일으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투자를 유치하는 등의 노력을 불사한다. 심지어 재산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준다는 유언장까지 작성했다.
내용은 '크리스천 키네마사'를 위해 노력하는 캐럴라인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각자의 의도를 가지고 캐럴라인을 이용하거나 뜻을 함께한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무시한다. 별볼 것 없는 늙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사진들은 함께하더라도 자신들의 목적과 멀어지면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내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럴라인은 끝까지 성공시키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닌다.
읽으면서 영미 고전 작품 특유의 어려운 점을 고스란히 느꼈다. 많은 등장 인물과 눈에 익지 않은 문체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다 캐럴라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물의 서사 자체에 집중하면서 읽었다. 계속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는데 이는 문체라든지 내용을 떠나 캐럴라인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캐럴라인에 대한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초반에는 캐럴라인과 결이 맞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쪽으로 표현하면 순수하고, 안 좋은 쪽으로 돌리면 허무맹랑했다. 현실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는데 자본이나 기반을 닦은 이후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상식과 다르게 행동하는 캐럴라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끼니를 걱정하면서 영화사를 살리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는 점, 뻔뻔하게 조카에게 돈을 요구한다는 점, 누가 봐도 이용하거나 무시하는 게 눈에 보이는데 그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 등 하나하나 답답했다.
그렇게 보이던 캐럴라인이 끝까지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에서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남들에게 무시당하는 답답함이 굳은 심지를 가진 할머니로 와닿았는데 어쩌면 캐럴라인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원하는 상에 조금 다르게 비춰지는 비주류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잡음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캐럴라인이 주제도 모르는 노인네라고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을 보냈겠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던 용기와 맨몸으로 맞서 싸웠던 실행력에 대해 그 누가 그녀를 비하할 자격이 있을까. 적어도 등장 인물들 중에서는 그것만큼은 캐럴라인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불어, 비주류와 약자에 대한 사회적인 연민과 동정이 피부로 와닿았다. 나이 든 노인, 미혼 여성, 가난 등 캐럴라인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단어들이 있었는데 그것으로는 캐럴라인을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만 인간을 판단해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는 행동, 또는 능력적인 한계를 단정 짓는 생각은 자제해야 되지 않을까. 인간에게 편견과 무지만큼이나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캐럴라인과 성향적인 결은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인기 있는 MBTI에 접목시켜 본다면 그 네 글자 중 어느 하나라도 맞지 않는 유형이지 않을까 싶다. 아마 수성과 해왕성 수준의 먼 차이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성공 가능성만 따져 안정적으로 살아오려고 노력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신념만큼은 참 닮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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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기획된 문학시리즈가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할머니라는 세계'가 처음이다. 물론 '4월의 유혹'을 흥미롭게 읽게 된 영향이 크다. '도련님'과 할머니라는 세계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궁금해졌다.(처음 도련님을 읽었을 때 내게 할머니의 시선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도련님을 읽게 되었고, 사라진 모든 열정..까지 재미나게 읽게 되면서, 다른 두 작품도 마저 읽어 보고 싶었다. <불쌍한 캐럴라인> 역시 흥미로웠다.
혼자 살던 캐럴라인 고모의 장례식을 다녀온 조카들은 자신들에게 유산이 남겨진 것이 흥미롭다며..그녀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른 이들 눈에 캐럴라인이란 여인은 다소 무모해 보이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 특별히 가진 것도 없는데,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투자를 하게 설득한다.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기꺼이 투자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모이고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캐럴라인 보다 더 불쌍한 이들이 보였다. 정말 캐럴라인이 가장 불쌍한 인물일까..하는 생각이 들정도, 오로지 자신의 기계에만 관심있는 매커피,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로저..가 훨씬 더 불쌍해 보였다..그리고 마침내 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캐럴라인이 돈키호테처럼 보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녀가 불쌍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이유는, 당당히 살아내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인데,그녀 역시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잊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던 건 아니였을까 "이제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 크리스천 키네마사가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이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고 있다.일이 사라져 버렸다.꿈이 사라지고 있었다.(...)내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떠나가고 있다.나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매커피와 로저 에게서 느껴지는 불쌍(?)함과는 결이 조금 달랐다고 말해주고 싶다...불쌍한 캐럴라인이었으니까...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소설이란 생각을 하게 된 건..나 역시 조금은 노년의 시간으로 추가 흘러 가고 있어서라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쁨을 주기 위한 에너지를 쏟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인데..실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수단이 필요했던 거다. 자신이 병원에 눕는 순간 엘리너에게 절규에 가까운 원망을 쏟아 내는 순간..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이것이 '노인'에게 처해진 숙명인 걸까 싶었다..이성적으로 따지고 들자면 캐럴라인은 무모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은 엘리너와 사제와 속세에서 갈등하는 신부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지 않던가...가르침이 아닌 그녀가 보인 행동을 통해서 말이다.그런 점에서 캐럴라인 보다 매커피와 로저가 더 불쌍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무모해보일지 모르는 돈키호테를 보면서도 용기에 박수를 내는 건..누군가에게는 도전의 마음을 품게 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헐머니의 세계'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 불편하진 않을까 했던 생각은 기우였다. 오히려,..노인으로 가는 시간에 육체적 고통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육체적 고통이 따른다고 정신적으로까지 고단해지는 건 경계해야 하는 문제가 되고. 그러나..또 캐럴라인 처럼 마냥 무모(?)하게 되는 것도.. 위험하다.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할 수 있는 생각은 , 정도를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건강하게 사는 문제보다, 잘 늙어가는 문제가 더 어려운 숙제인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