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생각 없이 고른 책이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과학이나 지식, 산업기술의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유럽의 역사를 배운다. 그야 당연히 유럽의 과학 혁명 덕분에 산업화는 물론이고 현대기술 발전의 근간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우리나라는? 하물며 동양은? 개인적으로 평소에 그냥 막연히 아, 이때 우리는 아직 발전되기 전이었지~ 하고 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과 산업기술에 초점을 맞춰 한국과 서양사를 오가며 비교한다. 다 읽고 나면 과학과 역사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이러한 모든 것을 한국 문학에 빗대서 설명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다. 문학 시간에 배운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 한국 현대문학을 과학 시간에 배운 뉴턴의 법칙, 지동설과 같은 기본적인 과학 상식과 잘 엮어 정말 의미 있고 통찰력 있는 글이 탄생했다.
더 일찍 읽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책이 이런 것이다. 특히 과학과 역사를 둘 다 좋아하거나, 과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역사/문학 러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리뷰어클럽리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지적으로 얻어갈 것이 참 많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올해의 베스트 도서가 아닐까싶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유명한 과학적 지식에 대한 역사를 제국주의 시대 가슴 아픈 우리 역사와 그 시절 문학작품 '무정(이광수)', '표본실의 청개구리(염상섭)',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박태원)', '날개(이상)'과 연결지어 소개한 점은 정말 인상깊었다. 이러한 구성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배운 과학 이론이 탄생하게 된 배경, 우리 나라에 유입된 배경을 알게 되니 과학은 역사적으로도 인문학적으로도 굉장히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뉴턴과 다윈, 아인슈타인이 새로운 과학 이론을 소개했을 때 직면해야했던 어려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이론을 세상에 내놓고 평가받는 것과 이를 거부당했을 때의 마음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가 우주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넓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그러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작은 원자의 구성까지 파고 드는 집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와 각자의 삶의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 시대 강제적으로 주입된 과학기술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해 읽어가면서 현재는 쉬고 있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날이 다시 올 때, 나 또한 학생들이 '앎'으로써 지식을 느끼게 되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배움을 폭력으로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숙제로 남는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뉴턴의 무정한 세계 :우리 역사에서 다시 시작하는 과학공부 정인경 '우리는 왜 과학을 어려워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책. '과학은 당연히 어려운 것 아니야?' 라고 속으로 반문한 뒤 읽어보니 과학이 어려운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대 유럽에서 탄생한 과학은 서양인에게는 우리이야기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타자의 이야기이다.' 즉,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역사를 빗대어 과학을 설명합니다. 어떻게요?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근대문학 작품을 예시로, 한국사 시간에 배웠던 우리 역사이야기를 예시로요.. 과학이라는 이야기를 한결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오늘 리뷰할 책은 [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 역사에서 다시 시작하는 과학 공부]입니다! 과학저술가 정인경님께서 쓰신 책입니다.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문화의 식민지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위 논문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제국주의와 만나 식민지 시절을 보낸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리는 책입니다. 책의 줄거리 전개 방식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으로 시대상을 살펴보며 시작합니다.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표본실의 개구리] 등이 있습니다. 후의 인류의 역사적인 발견, 발명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스웨덴 종군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글을 보여줍니다. https://blog.naver.com/asianist/50137868254 글의 내용은 전차가 신기해 구경나온 조선인들에게 일본인들은 조롱과 멸시를 합니다. 이에 스웨덴 종군기자는 멍청한 짓에는 때려주는 것이 최고라며 두둔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모멸적 태도라고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문장이 책의 주제라고 생각해요. 식민지의 무지가 강대국들의 우월감을 주었고 우리는 더욱 핍박 받게 되었다.
우리가 과학기술을 선도하여 당하고만 있던 무지한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시대적 분위기가 창조론을 지지하고 진화론을 배척하고 금지하는 탓에 다윈은 진화론을 지지하는 자신의 연구자료를 발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연구자료를 모아가던 중 윌리스가 자신의 진화론과 똑같은 원고를 보내왔고 다윈은 자신의 연구 발표를 서두릅니다. 다윈은 학회에 자신의 초고와 윌리스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증거로 진화론을 제시합니다. 학회는 침묵할 뿐이었고 다윈의 진화론은 세상으로 나옵니다. 후에 윌리스가 편지를 통해 불만이 없다고 말하며 과학사의 동시발견 중 가장 아름다운 발견으로 알려집니다. 2부는 다윈의 진화론을 다루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 중 윌리스와의 훈훈한 결과가 매우 만족스러워서 가져왔습니다. 창조론은 인류의 기원을 알려주는 절대적인 명제였는데, 자신의 발견에서 특이점을 찾아 끝내 입증하는 다윈의 모습이 정말 멋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적으로 큰 부정을 얻습니다.
1. 인류의 우월인식에 도전했다. 인류는 자신이 신의 아들들로 창조자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창조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하등한 짐승들과 다르다고 믿었죠. 그런데 자신들이 자연선택으로 진화한 개체이며 종의 기원이 짐승과 같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2.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시대에 도전했다. 서양국가들이 강대국이었던 시대에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식민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의 인간은 자신들과 다른 하등 인류라고 생각했죠. 식민지의 노예제도만 봐도 충분하죠. 하지만 진화론은 우리는 같은 기원에서 자연선택으로 진화한 인류라는 사실. 3.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 도전했다. 플라톤의 본질주의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이데아'라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토끼는 허상이고, 신의 세계 '이데아'에는 완벽한 토끼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토끼를 하나의 종으로서만 보고 우연과 변이는 무시했습니다. 다윈은 토끼들 개체가 모두 다르고 개체간의 변이에 집중하였습니다. 생명의 다양성은 개체들이 보여주는 작은 사소한 변이들로 시작됐다고 말하며 플라톤의 본질주의를 부정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자연이 진화하는 과정에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윈은 진화의 과정은 목적 없이 우연으로 발생하고 변이들로 인해 실시된다고 합니다. https://namu.wiki/w/%EC%9E%90%EC%97%B0%20%EC%84%A0%ED%83%9D 예를 들면, 기린집단 속에서 우연히 목이 긴 변이가 발생하였고 이 변이들이 더 높이 있는 나뭇잎을 먹으며 생존에 유리해집니다. 그로 인해, 변이가 주체로 종의 진화를 이끌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다윈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정면돌파합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연구결과로 그들을 설득하고 인정 받게 됩니다.
저는 이 주제가 정말 재밌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물리를 배웠던 저에게 반가운 [전자기 유도 현상]이 나와서요. https://blog.naver.com/captain4528/222687491284 3부 4장 [거대한 전기기술 시스템을 건설한 멘로파크의 귀재]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인물로 알고 있었어요. 근데 책을 통해 제가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1. 에디슨은 벨의 전화기를 보고 일부 특허를 제출하였고 특허 침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2. 에디슨은 사업적으로 우수했다. 에디슨은 백열등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을 얻으려 투자를 받고, 약속대로 백열등을 신선한 충격과 함께 공개합니다. 이에 감동한 투자자들을 더 끌어모으고 에디슨 전등회사를 설립합니다. 이후 여러 회사와 실험실을 차리고, 합병을 하는 등 우수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3. 교류발전기와 대결 니콜라 테슬라는 교류발전기를 발명합니다. 기존 에디슨의 직류발전기보다 높은 전압에서 안전하고 멀리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이미 직류발전기 사업을 엄청나게 투자한 상태였기에 용납할 수 없었죠. 그렇게 에디슨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릅니다. 교류발전기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심으려 하죠. 개를 이용한 실험에서 교류발전기를 통해 전기충격을 가해 죽도록 만듭니다. 사람들은 교류발전기로 개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습니다. 또, 사형수를 교류발전기를 통해 사형시키는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때 사형수는 예상보다 쉽게 죽지 않았고 잔인하게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에디슨의 이러한 실험에 반감을 갖게 됩니다. 시카고 만국박람회,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소에서 교류발전기에게 패하며 그의 시대는 저물어갑니다. 배웠던 전자기 유도 현상을 책에서 보니 반가웠습니다. 전자기 유도 현상의 발견 역사를 배우니 더 이해가 잘 되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에디슨의 반전 모습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우리 이과생들이 꼭 읽어봤으면 합니다. 특히, 고등학생 이과생들이요. 우리가 배우는 과학적 발견, 발명의 역사를 배워 더 이해를 도울 수 있어요. 또, 과학적 성과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념과 만나 우리나라와 같은 식민지 국가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과학적 성과 뒤에는 잔인한 모습의 식민지 국가의 현실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필독서는 이런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읽기 힘든 책이 아니라 우리가 배운 개념을 다시 되짚어보면서 서로 달라보이는 과학과 역사라는 부문에 만남이 문이과 통합적 사고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뉴턴의무정한세계 #정인경 #이김 #과학책 #과학사 #제국주의 #종의기원 #진화론 #전자기유도 #책추천 #독서 #독서습관 #22전략 #역행자 #과학공부 |
|
저자도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책 제목부터 설명이 필요한 책이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라니, 이 무슨 문학적인 표현이란 말인가. 사실 책 자체는 과학사를 훑어가는 과학책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제목을 붙인 건, 뭔가 다른 책들과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의미였을 것이고, 이건 이 책이 담고 있는 네 개의 파트 소제목에도 반영되어 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 ‘다윈의 잔인한 표본실’, ‘에디슨의 빛과 그림자’, ‘아인슈타인의 휘어진 시공간’이다.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 진화론의 다윈, 발명가로 유명한 에디슨, 상대성이론의 아인슈타인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들을 배치해 놓고 각각의 시대를 소개하는 식으로 책의 내용은 진행된다. 그런데 여기에 저자는 각각의 파트에서 다루는 내용과 관련된 20세기 초 한반도의 인물들을 함께 배치하면서, “우리의 눈으로”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각 파트의 시작은 20세기 초 조선의 작가들이 쓴 글의 일부를 배치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뉴턴의 시대를 다룬 1부는 이광수의 “무정”의 한 대목으로 시작해,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해법으로 과학을 통한 “민족 개조”를 주장했던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을 비춘다.
뉴턴에서 정립된 서양과학은 한 마디로 “세계의 수학화”였다. 자연을 양적으로 수량화하고, 이를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것들 또한 단순히 수량적으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고, 이 때문에 저자는 뉴턴에게 “무정한 세계”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또, 그렇게 일찌감치 (뉴턴이 17세기 말에서 18세기에 걸쳐 활동을 했으니, 우리나라로 치면 인조 말에서 영조 초에 이른다. 그 시대 우리의 과학 수준은...) 과학을 통한 발전을 이룬 서양은 과학만이 진리의 근원이라는 과학주의에 빠져들었고, 이를 통해 아직 과학적 지식을 갖지 못한 미개인들을 문명화한다는 명분으로 제국주의적 침탈을 합리화했다. 앞서의 “무정”은 그런 서양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복사한 측면이 있었고, 저자는 이를 비판적으로 본다.
2부 다윈의 이야기는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시작해, 다윈의 진화론에서 나온 사회진화론과 여기에 근거해 “미개인”을 살아있는 그대로 전시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던 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일제의 모습이 설명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3부에서는 20세기 초 경성의 일상에서 전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에디슨에게로 넘어간다. 분명 과학기술계에 많은 공헌도 한 에디슨이었지만, 저자는 그의 탐욕스러움에서 드러나는 “과학의 가치중립”이라는 신화의 환상을 문제 삼으며, “조선의 과학기술”을 부정하면서 일제가 이식한 수준 이하의 식민지용 과학을 옹호하던 이들을 아울러 비판한다.
아인슈타인을 다룬 4부는 천재 시인 이상과 함께 시작한다. 단순히 시를 잘 써서 ‘천재’라고 불렸다고만 생각했던 이상은, 공부 쪽에도 꽤나 수재에 속해서 조선인들에게 매우 좁은 문만 열어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일본인 동기를 제치고)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제의 건축사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한동안 일제의 건축과 관련한 일에 종사하던 그는 자신이 하던 일이 조선의 발전과는 상관없음을 깨닫고 깊은 절망에 빠진 채 총독부에서 나와 쇠약해져 가는 몸을 붙잡고 시를 쓰기 시작했던 것.
저자는 이상의 시 속에서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향기를 읽어내면서(물론 이상이 이런 이론들을 충분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가 조선을 부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가차 없이 비난한다.
저자는 서양 과학의 발전사(그리고 애써서 탈아시아해 서양의 일원이 되려고 했던 일제의 시도) 속에서, 그 주요 요소들이 20세기 초 조선인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그런 과학 발전이 과연 조선에도 유익을 끼쳤는지를 인문학적으로 파고 들어간다. 흥미로운 접근 방식이다.
과학발전을 이룬 서양을 따라가는 것이 문명화이자 진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서양인들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은 미개인으로 전시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시대는 무정하고 잔인한 시대였다. 여기에 서양을 직접 접하고 공부하기보다 일제라는 필터를 하나 더 거쳐서 접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선에게 상황은 더욱 왜곡되어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지식인들은 결국 다양한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으니, 서양의 과학이 약속한 유토피아는 적어도 당시 조선에게는 거짓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우리의 과학”이란 뭔지가 좀 불분명하다. 저자는 책 초반 과학과 과학주의를 구분하면서 후자를 좀 비판적으로 보는데, 사실 둘 사이의 정의의 구분보다 어려운 건, 실제로 그래서 과학을 어느 선까지 가져다 댈 것인가 하는 실천적 차원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부분은 의외로 쉽지가 않다.
또, 식민지 조선의 과학이 갖는 울분과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우리의 과학이라는 게 조선인들에게도 수준 높은 과학교육을 시행하는 것과 조선의 발전을 위한 건축을 해야 한다는 정도라면, 그건 과학 차원보다는 식민지 통치방식의 문제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책 말미의 뉴라이트 진영의 헛소리에 대한 비판은 공감이 가지만.
요컨대 책의 시도 자체는 참신했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분명 공감이 가는 결론들이 있긴 했는데, 그게 하나로 잘 모아지지는 않았던 느낌. 결론부에 하나의 장을 추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책의 각 부분의 주제적 짜임새가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각각의 내용들은 교양으로 알아 둘만한 내용이니까. |
|
과학과 역사의 조우: '뉴턴의 무정한 세계'를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시선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 과학의 발전의 맥락을 경험하지 못한 채 과학이 먼 타지의 이야기로 느껴져 왔습니다. ?이 책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과학저술가이자 고등학교 과학사를 집필한 저자가 서양 과학의 거장들인 뉴턴, 갈릴레오, 다윈, 에디슨, 패러데이, 아인슈타인의 발견으로 새로운 세계를 우리의 눈으로 다시 보게 해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적인 위업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서양의 과학사를 교차시키면서 우리의 관점에서 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한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과학은 종종 오해와 오독의 대상이었습니다. 서양에서 발견된 과학 기술은 전쟁과 군사 기술로 전파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서양의 과학 기술을 통해 군사적,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했고, 이를 위해 근대 과학 기술을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이로써 한국인 과학자들은 일본의 과학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다루면서 우리 역사와 과학사의 교차를 탐구합니다.
또한,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문학과 과학의 교차점을 탐구합니다. 염상섭, 박태원, 이상 등의 작품을 통해 식민 지배의 상황을 모티브로 삼아 과학 기술과 우리나라 근현대의 역사적 상황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비교와 연관성은 과학을 단순한 지식이 아닌 역사적 맥락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이 책에서는 뉴턴, 갈릴레오, 다윈, 에디슨, 패러데이,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의 거장들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지 자세히 다룹니다. 그들의 과학적 업적과 짜릿한 발견은 우리의 이해와 관점을 변화시켰으며,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습니다.
과학은 우리의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며, 변화시키는 언어입니다. 과학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를 읽고 나면 과학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느끼고 체험하는 과학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 포스트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