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중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 장징훙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 그런지 학교생활의 흥미로운 묘사와 청소년의 혼란스런 시기와 방황을 섬세하게 잘 표현해서 그들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열일곱살 우지룬은 어린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얼굴조차 본적없는 엄마. 여느 가정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큰아버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다닌 학교는 모두 정신병원보다 더 욕지기나는 곳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학교를 싫어하고 이 빌어먹을 세계와 단절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김용의 무협지를 읽는것이라며 공상을 즐긴다. 우지룬은 꼰대와 한심한 머저리들만이 득실거리는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어울리지도 않는데 학교를 밥먹듯이 안나오는 아카오를 보며 자신과 비슷한점을 발견하게 되고 가까워진다. 그러던중 학교에서 폭죽이 터지는 사건으로 오해를 받아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갈곳없던 우지룬은 친구 아카오에게 잠자리와 일자리를 도움을 받게 된다. 아카오를 통해 알게된 루시와 에밀리도 알게 되고 레스토랑과 모텔에서 일하게 된다. 도시의 모텔이라는 위선적이고 자극적인 공간에서 일하게된 우지룬은 배신과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열일곱살 예민한 성장기를 거쳐나가는 우지룬을 통해서 방황하는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대변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와도 별반 다르지 않는 비슷한 혼란기를 겪어나가는 모습에 공감하면서 보게 된다. 책 두께가 제법되서 놀랐지만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열일곱 시선에서 본 세상은 부조리와 위선으로 가득찼지만 그런 세상에 맞서 성장해 나가는 우지룬을 통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해 본다. |
|
엄청 기대를 하고 읽은 소설이다. 인간의 애욕이 들끓는 장소로 상징되는 '모텔'이라는 므흣한 배경에 설레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런 설레임은 내가 지금까지 야동이나 성적묘사로 가득찬 소설들을 충분히(?) 읽고 보고 하지 못한데서 오는 결핍의 반증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는 주인공 우지룬이 모텔 알바를 하면서 훔쳐보게 되는 갖가지 애로틱한 장면들에 대한 묘사가 내용의 주를 이루지 않을까를 내심 기대하면서 읽어나갔다.
사실 대만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지난번에 베트남 작가가쓴 소설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제3국'에 대한 작품들의 번역이 아직은 많이 엉성하다고 단정짓게 되었는데 이 소설은 번역이 아주 훌륭하게 잘 된것같다. 문장이 쉽고 읽기에 수월했고, 마치 한글 원작인것처럼 분위기와 유머러스함이 한국정서에 딱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생각했던것 보다 므흣한 장면은 별로 없었다. ㅠ 아무래도 고교 교사인 작가의 의도는 3류 빨간색 소설보다는 열일곱살 고2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세상의 이중적이고 양면적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것 같다. 회의와 실망, 염세적인 분위기가 소설 곳곳에 묻어난다.
그렇지만 사람의 정체성이란건 애초에 단일한 존재로 가정했던것 부터가 오류가 아닐까? 아마도 주인공 우지룬은 '교사라면 마땅히...이래야 되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래야 된다' 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던건 아닐까/ 마치 단일한 존재라는 허구를 믿으면서 말이다..
그랬기때문에 선생들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믿었던 수위실 영감의 속물같은 모습을 받아들일수 없었던게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상대를 평가할때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부분을 보면서 단정지을때가 많다.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에 대한 구분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나 자기자신을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는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임에도.. 앞에서는 이런 모습인데, 뒤에서는 이런 모습이다.. 라는 양면성/이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인간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건 자기가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굳이 프로이트가 말한 심리적방어기제인 투사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리라..
묘사가 재밌고, 고교 선생님들이야말로 학생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가장 어려울듯한데..작가에 대한 신뢰가 싹트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싶다 ^^ |
|
『모텔의 도시』를 읽고 도서에는 여러 장르가 있지만 더 많이 보는 분야가 에세이류나 자기계발류였다. 아무래도 쉽게 접근할 수가 있고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더 좋은 정보나 자료 등을 얻어서 현장에 활용할 목적이었다. 소설은 간간이 보는 편이다. 그런데 역시 문학의 가장 본류는 소설이라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비록 작가의 천부적인 능력의 결과라고 보지만 내용 자체가 우리 인간사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작가 나름대로 전개하여 소설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함께 하는 한 가족으로 만드는 매력이 가장 농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다른 책이야 얼마든지 앞뒤 중간 등을 오가면서 읽을 수도 있지만 소설은 처음 시작하면 끝까지 보아야 그 내용이 들어오면서 소설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에 읽은 소설들이 그래서 참으로 흥미는 물론이고 소설에서 의미하는 우리 인간사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이 소설은 자유중국(=대만)의 현대 소설이다. 예전에는 정말 가깝게 느껴지고 자주 언급됐던 나라였지만 최근에는 중국과의 너무 활발한 교류 영향으로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진다. 오래 만에 대하는 대만 사회 모습과 함께 특히 청소년들의 상황을 통해 함께 나누면서 새로운 희망을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결국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등학생 우지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한 현 사회와 학교를 비판하면서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헤쳐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꽤 감동적이었다. 같은 아시아권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도 거의 비슷한 모습이라 생각하니 더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대만의 3의 도시 타이중을 배경으로 하여서 주인공의 어려운 가정환경, 즉 부모가 없는 그래서 큰 아버지 집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한 가족이라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랑스런 모습을 통해서 그 이후 전개되는 학교생활에서나 학교를 그만 두고 사회생활 등을 하면서도 그 사랑의 모습을 느껴가는 모습들이 독자들의 얼굴을 밝게 만들고 있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 하에서 이를 잘 극복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시 짧았지만 강렬했던 아버지, 무조건적인 큰아버지 가족들의 따스한 가족애가 큰 바탕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확고한 길을 닦아 나가는 주인공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아무리 사회가 주변 여건이 힘들게 하더라도 얼마든지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산 교훈을 남기고 있는 이 소설은 특히 우리 청소년들이 꼭 한 번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목을 보고 내용의 생각이 전혀 달랐지만 바로 이것이 작가의 무한한 창작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만의 큰 문학상의 대상작품이라는 것이 마음에 쏙 들어온다. 소설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어 행복하였다. |
|
처음 책을 펼친 순간, 약간 삐뚤어진 듯한 표현에 불쾌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장 넘기다 보면 주인공 소년의 시선을 빌어 표출된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는 생생한 표현에 감탄하게 되고 작가의 직설적이고 통쾌한 문체에 어느새 길들여질 것이다.
말 잘 듣는 학생들을 선호하고 성적을 우선시하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교육임을 꼬집으며,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표현할 만큼 학교는 우지룬에게 희망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 표현에 왠지 공감이 가는 것이 씁쓸하다. 불쾌증후군인 그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비평의 대상이다.
어이없는 사건과 오해를 발판으로 하지만 사춘기라서 저질렀을 수도 있는 자퇴와 가출은 우지룬에게 있어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었다. 사회 경험은 확실히 제대로 인생 공부는 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다.
우리나라의 80~90년대 학교의 수업 방식을 대만 고교생 우지룬이 어찌 알았을까 싶을 만큼, 발전의 기간이 길지 않은 개발도상국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대를 반영하고 풍자하여 문학 역사적으로도 큰 의의가 될 것 같은 이 소설은 우리나라 근대문학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타이중이라는 도시의 모습을 풍속화처럼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대만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
《모텔의 도시》
나의 열일곱 살은 어땠었나?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신입생이었지. 학교에 갓 입학 한 후 윤리 수업시간 때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가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유가 무어냐고. 그리고 바로 당신이 친절하게 답하셨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라고. 나는 그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확하게 고등학교에 '공부를 하기위해서' 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내 목적은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하고 그저 그 나이에 알맞은 성장의 시기를 보내기위해 고등학교에 들어온 것이었다. 내 목표는 분명했다. 또한 내 꿈을 실현시킬 과정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그 모든 목적과 다짐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 란 한마디로 산산히 부서진 것이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모두 똑같은 목적과 이유를 정해주신 것이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그 말에 반항하는 것으로 보냈다. 나는 대학에 가기위해 고등학교에 온 것이 아니고, 내 꿈을 위한 과정의 일부분일 뿐임을 늘 증명하려 애썼던 것 같다. 친구들은 그 말에 동의하는 듯 별 미동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고. 나는 그 시절의 반항기 그대로의 삶을 지금도 살고 있다. 이미 20년이 지났는데 왜 그 말과 그 때 교실의 분위기, 그 때 느꼈던 감정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대학 또한 성적에 맞추거나 남들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과에 진학하지 않았다. 내 성적이 뭐 이리저리 고민할 수준도 아니었지만 역시 나는 내 주관에 맞게 과를 정하고 진학했고, 그 후 4년 또한 뜨겁고 절실하게 보냈다.
세상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우리 갈 길을 친절히 정해준 것처럼, 그렇게 끼워 맞춘 듯 돌아간다. 학교나 사회나 형태가 다를 뿐 결국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돈과 권력은 늘 가까이 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갖가지 폭력 또한 너무나 당연한 듯 여기고 살아간다. 우리를 보고하려고 만들어 놓은 공권력 또한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움직일 뿐이며, 이 책의 주인공 같은, 열일곱의 나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사회의 부적응자로, 소외당한채로 살아갈 뿐이다. 더 이상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의 몸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처럼 우리는 서서히 사회의 부조리에 물들어 가며,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오물보다도 더 더럽기 일쑤다.
그나저나 모텔은 이런 도시의 배설구일까, 해방구일까? 누구는 교미를 하고, 누구는 자살을 하기위해, 자신의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숨어드는 곳. 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이런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해방구를 찾아 이곳에 숨어든다면 왜 자신의 삶을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며, 배설구와 일탈의 장소라면 우리는 왜 이런 곳을 만들어야 할 만큼 억압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은 돈과 권력에 따라 차별이 난무하는 학교를 뛰쳐나와 친구의 도움으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열일곱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학교나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 속 장황하고 불필요한 미사여구만큼 이 사회는 이상한 옷을 입은 곳이다.
|
|
이 책을 한 마디로 하면 성장소설……이라고 쓰다가 멈췄다. 왠지 주인공 우지룬이 나와서 "꼰대같은 소리 집어치워"라고, "성장이니 청춘이니 어른들 편의대로 우리를 규정짓는 그런 단어들을 너까지 쓰다니. 헐." 이럴 것만 같다.
'헐', '머저리'가 난무하는 이 책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처음엔 '인터넷 소설 같아...일기장 보고 있는 것 같아...' 싶다가 나중에는 나도 우지룬과 같이 '헐..'하게 되는 매력을 가진 책이다. 책을 읽는다기보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다양한 구어체(?) 농담들이 있다. 진지하게 긋는 밑줄 보다는, 책 구석구석에 낙서같이 남긴 ㅋㅋㅋ가 많았다.
이 책에서 '학교'는 아주 노골적으로 '까인다'.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꼰대'들을 보다가, 이 책의 작가가 바로 그 꼰대(고등학교 선생)임을 알게 되었을 때 '헉. 선생님이 이렇게 쓰면 어떡해..?' 쓸데없는 걱정(?)까지 들 정도다. 지나고나면 '그 때가 좋았지' 싶지만, 당시에는 학교가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열일곱 살 소년 우지룬의 모습에서 나의 사춘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지룬의 세계에는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 불평많은 우지룬은 겉으로는 틱틱 대고, 무관심한 척 굴지만 사실 끊임없이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을 기대한다. <소오강호>의 영호충이 되고 싶다는 우지룬은 많은 어른을 만나면서 "이 사람이 내게 독고구검을 전수할 무림의 절대 고수 풍청양인가?" 기대하지만, 늘 그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 수위 할아버지, 베스트셀러 작가, 모텔에서 여자를 불러달라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손님, 명품백에 열을 올리는 세 명의 여선생 등 그의 주위에는 진정한 어른이 없다. 우리는 우지룬처럼 돈 많고 사연 많은 친구를 갖고 있지도 않고, 우연히 명문고에 입학할 머리도 없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그와 공감할 수 있다 -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의 부재. 아이에서 자라나 어른이 되기 전의 주변인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어른이'들. 그들이 있는 곳이 대만이든 한국이든 러시아든 에티오피아든, 모든 '어른이'들의 앞에 이 '부재'가 떡하니 서 있다. 세상은 불쾌하고 더럽고 위선적이고 부조리한 것처럼 보인다. 완벽해야 할 것 같은 어른들이 어딘가 다들 부족해보인다. 김창완이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하고 다녔다는 그 질문이 목까지 차오른다. 왜 사세요?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왜 사는지' 대답해주지 못한다. 결국 우지룬을 포함해서 우리는 스스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모텔의 도시'에서 살아남는 법은 뭘까? 그 후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우리의 재산을 나누어 제 주머니 속에 넣고 우리의 양분을 빨아먹을 것이며, (...) 출마했다가 낙선한 사람들도 친애하는 여우와 공작들을 옆에 끼고 은밀한 곳에서 교배하고 그들과 교배한 여우와 공작들에게 떡고물을 떨어뜨려 줄 것이며, 자칫 실수로 그들의 성을 사용하는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아무 일 없는 듯 우리들 틈에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와 큰 관계가 없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410-411쪽)
우지룬의 해답은 희망차지도, 새롭지도, 대단히 교훈적이지도 않다. '세상은 알고보면 살만하다'라든가, '인간은 악한만큼 착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싶이 세상 참 더럽다'에서 그의 해답은 시작한다. 그런데도 그의 이러한 대답이 내게 와닿았던 건, 그가 이제 더 이상 세상 밖으로 나와 그 곳을 관망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세상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내는 것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설 중반부에서 우지룬은 아카오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아카오는 선생이나 학교 아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자신이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습관이다. 아카오 자신도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그와 내가 다른 점이다. 비록 우리가 그들을 똑같이 싫어하기는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우지룬, 그게 네 습관이야!' 말해주고 싶었다. 소설 내내 우지룬은 자신은 그 학교의 학생이 아니라는 듯, 모텔의 도시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듯 말하는 습관을 보였다. 꼰대, 머저리 등으로 사람들을 단순화하여 묘사하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자신을 '관찰자'로 만드는 태도. 아카오가 '나는 너희와 달라' 라는 생각에서 그 태도를 견지했다면, 우지룬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 때문에 세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꾸 밖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 그의 해답을 보니 우지룬이 이제 비로소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관찰자에서 벗어나 정말 그 속에서 '살아내기'를 시작한 우지룬이 보인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입니다 :) |
|
대만 소설은 처음인데 대만판 호밀밭파수꾼? 광고성 버블인지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 호밀밭을 능가할지..
'오늘이 주말인데 빈 방이 있겠냐?' 하는 조소어린 말을 날리는 속내 비틀린 애어른이다. 우지룬은 시종일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또라니', '머저리'라고 말한다. 불쾌증후근의 징조. 초등학교때부터 다닌 학교는 모두 정신병원보다 욕지기가 나는 것이라 할 정도이다.
'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어 선생들은 왜 그렇게 따분하게 수업을 하고 틀에 박힌 시험문제를 낼까? 도대체 빌어먹을 문파의 돌팔이 시조가 그런 제자들을 길러낸 걸까? 그들의 수업을 들으면 교과서를 당장 변기에 처넣고 싶은 충동이 치민다.'
공부에 목메는 우리나라나 대만 같은 정서를 느끼리라 여겼지만 이 정도로 학교를 참담한 곳으로 느끼는 줄은 몰랐다. 학교와 사회를 보는 눈에 긍정이라는 희망이 없어서 책을 읽는 내내 불안했다. 모텔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학교를 떠나 사회에서 자신과 사회 그리고 지옥 같은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호밀밭의 파수꾼'과 닮아있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싶다는 주인공 홀튼을 연상하게 한다. 우지른은 모텔에서 일하면서 경험으로 혹은 내면 탐색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에 대해 야기한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불편하고 불안한 십대의 이야기였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만드는 사람들은 반성도 하지 않고 여전히 강압과 억압으로 일관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했다. |
|
내가 학교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걸까? 나이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책에서 표현하고 있는 꼰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엄청나게 뜨고 있다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서 뭔가 싶어 찾아봤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모텔의 도시'라는 책 제목 역시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청소년 소설이라 일단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힐끔거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보다는 상실의 시대가 더 많이 떠오르더라. 비슷한 듯 다른, 그러면서도 왠지 또 비슷한 느낌.
소설속 주인공 나(우지룬)는 열일곱살 고등학생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얼굴도 모르며 큰아버지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름 성적이 좋아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학교 공부와 성적은 관심밖이 되었다. 성적에 열 올리는 꼰대 교사와 학교공부와는 담을 쌓은 게임 중독자 머저리 친구들과는 무관하게 혼자 겉도는 학교 생활을 하다가 결국 누군가가 자행한 폭죽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버린다. 그렇게 학교를 나오고 가출을 하고 친구를 찾아 가 얻은 일자리가 모텔.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된 공간이 모텔인 것은 아니다. 또 모텔이 성욕을 해소하려는 공간의 의미로만 비유되면서 쓰인 글도 아니다. “여기 오는 손님 중 열의 아홉은 섹스하러 오지만 나머지 한 명은 자살하러 와. 자살하러 온 손님 열 명 중 대략 한 명만 진짜로 자살을 시도하고, 진짜로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중 최소한 아홉 명은 죽기 전에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해. 무턱대고 빈방으로 들여보내기만 하면 그걸로 내 일은 끝이다 생각하면 안 돼.”(278) 그러니까 이건 모텔의 종업원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말이 될 수도 있지만 학교의 꼰대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우는 비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야 하는 학생들을 무턱대고 졸업만 시키는 것으로 할일을 끝냈다고 하는 것도 직무유기인 것이지 않은가. 이야기의 줄거리를 보자면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의 의미를 살펴보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열일곱 청춘이 가질 수 있는 고민과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우리와 가까운 대만 작가의 작품이어서 그런지 익숙한 풍경이나 이름도 자주 나온다. 물론 그 말속에 담겨있는 비아냥거림의 비유가 편치만은 않지만. 그래도 그러한 것들 역시 책을 읽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니 이 책은 이러한 자잘한 재미와 함께 '모텔의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의 초상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
|
"꼰대와 머저리가 득실거리는 학교를 뒤로한 채 오늘도 나는 모텔의 도시로 향한다."
![]()
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에 모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우지룬. 우리나라 나이로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인 아이가 학교가 아닌 모텔에서 반지르르하게 젤을 발라 넘긴 머리에 그럴싸한 정장 차림을 하고 모텔로 들어오는 차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받고 있다.
학교와 관련된 모든 것은 허무하게 느끼는 아이. 스스로 '불쾌증후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와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엄마. 두 분의 자리를 대신 한 것은 큰아버지 부부이다. 하지만 우지룬의 마음까지는 채워주지 못한다. 도대체 우지룬은 학교가 왜 싫은것일까. '또라이'들이 득시글대는 곳이라 마음 편히 있을수 없다고 한다. 우지룬은 시종일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또라니', '머저리'라고 말한다. 초등학교때부터 다닌 학교는 모두 정신병원보다 욕지기가 나는 것이라 할 정도이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어 선생들은 왜 그렇게 따분하게 수업을 하고 틀에 박힌 시험문제를 낼까? 도대체 빌어먹을 문파의 돌팔이 시조가 그런 제자들을 길러낸 걸까? 그들의 수업을 들으면 교과서를 당장 변기에 처넣고 싶은 충동이 치민다. - 본문 86쪽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들도 어느정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며 학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가끔 창살없는 감옥처럼 느껴질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내내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제도를 부정하고 밖으로 나간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내면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하게 될까봐 내심 걱정을 하게 된다.
다른 아이들과는 분명 다른 특별함이 있는 아이다. 학교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어떻게 받아들여할지 난감한 능력이다. 여자애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처녀인지 아닌지 구별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능력을 가졌다는 특별함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학교 안에서 냄새들이 우지룬이 참을수 없도록 지독하게 난다는 것이다. 그 냄새가 난다는 것은 결국 아이들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해준다. 문득 소설속 이야기라 이런 아이들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인지 걱정스럽게 읽을수 밖에 없다. 가끔은 책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이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작품이 각인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미 나 이외의 세상은 물론이고 내 몸과 영혼 속에도 수많은 작은 허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내 안에 나보다 더 겁 많고 졸렬한 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기 ?문이다.- 본문 411쪽
자신을 숨막히게 하는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우지룬 앞에 장애물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밖으로 나온 세상은 학교 안의 세상보다 더 비참하고 처절한 곳이라는 것을 하나씩 알게 된다.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열일곱, 열여덟살의 우지룬이 치뤄내야 하는 성장통은 앞으로 살아가며, 나이가 들어가며 거쳐야할 아픔못지 않게 큰 것이다.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학교가 아닌 밖에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방황을 할수 있다. 다만, 그 방황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청소년 소설이 소재가 더 다양한 경우가 많아서 자주 읽는데 이 책은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 시리즈이다. 제목이 상당히 궁금증을 자아내는 책이라는 점에서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이 대만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극찬을 받았다고 하니 더 궁금했던게 사실이다.
솔직히 오래전『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다지 감동이나 인상을 받지 못했던게 사실이여서 언론에서『호밀밭의 파수꾼』이 어떠하다라고 말하면 잘 매치가 안되지만 워낙에 의미있게 거론된다는 것은 알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던 것이다.
'불쾌증후군'이라는 말을 『모텔의 도시』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는데 이 말은 앞에 다른 증상이나 상황들이 결합되어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은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우지룬의 경우에는 청결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게 아닐까 싶게 더러움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칭 '불쾌증후군' 환자인것 같다.
대만의 내륙도시 타이중의 배경으로 열일곱 살 우지룬은 학교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결국 학교를 나와 버린다. 그렇게 갈곳이 없어진 우지룬을 아카오라는 친구가 일할 곳을 소개해 준다. 그렇게 해서 우지룬은 레스토랑과 모텔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을 돌봐 준 큰아버지의 집을 나와서 '모텔의 도시'로 들어선 우지룬의 눈에 비친 세계는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림의 세계이며, 이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무협소설 속 인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지룬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어떻게 보면 무기력하고 꿈조차도 없는 10대의 청소년이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고,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우지룬의 이야기가 평범한듯 하면서도 그 자신만의 가치를 지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