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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보노라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작품도 있고, 아무리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려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식견의 부족이겠지 하는 마음 뒤켠에는 작가는 도대체 왜 저런 작품을 만들게 되었을까 하는 진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는 이런 작가의 내면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솔직한 단상을 적어내려간 일상과 예술의 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아무런 하루에서 예술의 영감을 길어 올린다.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쓰인 글과 뱉어진 말. 그것이 거창하거나 길 필요도 없다. 그저 특정 상황에서 번뜩이게 하는 한두 마디. 두어 줄.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수집한 날엔 밤새 요리조리 궁리한다. 그 글과 말의 주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작가만의 어떤 것이 되도록. P.271
매일의 기록인 이 책은 이렇듯 저자의 작품에 영감을 준 수많은 일상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예술가는 이렇게 작품을 형상화하는 구나'라는 신기함과 생경함부터 이런 작고 사소한 것에서 어떻게 저런 착상을 하는지 '역시, 예술가는 다르구나'라는 감탄까지 다양한 면을 느끼고 볼 수 있다. 마치 저자의 작업실에 들어가 옆에서 보는 것처럼 일상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느끼고 볼 수 있다.
산책 중 우연히 폐가를 발견하고 그 버려진 것(쓰레기)들을 채집해서 검정 테이프로 그리드를 만들고, 주워 온 물건을 하나씩 배치하며 역시 버려진 나무를 상징하는 목탄으로 보고, 느낀 것을 함께 적어 놓는다. 어제는 쓰레기, 오늘은 작품이 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을 먼저 봤다면 작품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가 일기처럼 풀어낸 글을 따라가며 작품이 되는 과정을 보니 마치 작가와 그 길에 동참한 것처럼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것 같은 애정도 느껴진다.
작가의 노트는 그래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작가 노트 - 작품 못지않게 소중한 것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그것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서이자 통역장치이다. 특히 현대미술에서는 더더욱. -중략- 작품을 보는 관람객과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에게 그것은, 전시를 위한 부속물이기 이전에 창조물이고, 그 만든 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다. P.274
이렇게 상세한 작가노트같은 글들과 함께 제시된 작품들은 마치 코멘트가 달린 글처럼 쉽게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2012년에 시작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인터뷰>라는 저자의 작품도 마친가지다. '외로움'이란 주제로 작가 주변의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인터뷰이가 또다른 인터뷰이를 소개하는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지는 작품이다.
목판의 내용을 종이에 옮겨 찍고 종이는 전시장 벽에, 잉크 먹은 목판은 차곡차곡 쌓아 탑을 만든다. 그랬더니 그것은, 그림자도 슬퍼 보인다. 그럴리 없겠지만. 마음은 글이 되고, 그 부스러기는 봉인되고, 그것을 담은 목판은 탑이 된다. -중략-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더욱 많은 목판을 새길 것이고, 더욱 높은 탑이 쌓일 것이다. P.259~261
누군가를 이제는 보내주어야겠다는 아린 고백을 들으며 책장을 덮는다. 외로움과 한없이 침참해 들어가는 고뇌의 과정이지만 형상화와 된 예술 작품은 묵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오늘, 정진이라는 작가의 작품 속으로 한 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젠 다른 작가의 작품도 내면으로 깊이 공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그들의 작가노트 먼저 찾아봐야겠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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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정진 작가의 일상에 대한 고민과 함께 예술가로서 미술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책,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입니다.
정진 작가의 작업노트를 바탕으로 한 책에는 우리가 살면서 고민했을법한 소재들이 있어서 공감하면서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었어요.
공감이 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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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비난하기 좋은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때, 자신이 과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나? 그것은 너무 멀다. 손쉽고 가까운 것을 찾아보자. 대신할 누군가를 지목하는 일.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제물 삼는 자들이 있다. 마피아 게임 하듯.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확실한 시민 한 명을 마피아로 몰고간다. 본능인지 학습인지 헷갈리지만, 못되긴 매한가지. (-32-)
무시 , 무기, 무지
갑,질,을. 질 본인이 갑이나 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우월함이나 열등감을 상대에게 표현하는 방식. 스스로를 갑이나 을이라 규정할 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서글프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무시를 통해 표현할 까. 타인을 무시하는 것이 자신을 높이느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최고로 효과적인 방법일 텐데. (-99-)
사회적 동물
하나. 어쩌면 우리는 여러 개의 문을 가진 하나의 공간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사람들 같다. 결국 이 게임은 , 누구도 마주치지 못하고 끝이 날 것 것이다. 나 자신 조차도.
둘.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에 비추어 본다면 ,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
셋. 인간은 혼자여도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 평생 누구도 만나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해도, 고립조차 일종의 관계 같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한마디보차. 오늘의 나에겐 커다란 파장이니까. 순식간에 떠오른 예전 누군가의 한마디에, 후회와 미련 따위가 자란다. 다음 순간, 의무감과 책임감이 머리를 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그가,지금의 나를 움직인다.
넷. 파도 같은 사람들이 있다. 다채롭고 출렁이고 예측 가능과 불가능을 넘나든다. 타인들은 그들을 향해 확고한 호불호를 비치지만, 그들은 그 관심에 무관심하다. 그들의 관심사는, 말 많은 그즐이 아니다.
다섯. 인간은 섬이다. 아니다. 인간은 군도다. 아니다. 인간은 육지 안ㅇ에서 각자 고립된 존재들이다. 그런데 어차피 저수지 물 배듯 지구물 모두 빼면, 뮥지나 섬이나.
연결도 고립도 ,외로움을 막아 내지는 못할 테다. (-133-)
남들의 생각을 옮겨서 나의 책에 담아낸는 작가들보다,어설프지만, 나름 자신의 인생 경험이 담겨진 ,지혜,철학, 가치관이 오롯히 담겨져 있는 자신의 생각만으로 채워진 작가의 책은 소중하다. 그 사유가 내 사유의 어긋난다 하더라도, 조금은 불편하다고 생각된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나의 무의식을 흠집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술 에세이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우로지 작가의 생각이 담겨진 책이었다.미술과 철학이 느껴지며,그 안에서,저자가 추구하는 예술적 영혼이 어디에서 시작되엇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에는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세상을 삐딱하게 보면, 자신의 예술도 삐딱하다.오직 자신만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독자는 관객은 그것을 귀신 같이 알아차린다. 이 책에서,작가가 추구하는 철학 너머에 조화로움과 균형감각이 느껴지는 이유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종족은 그래서 항상 불완전하면서, 스스로 완전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을이면서 갑질을 한다. 자신이 갑질 당하면서,느꼈던 불편함을 누군가에게 도려주고 싶어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그것이 착각이었다고 말해 줄 때, 당장은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결국 나에게 이로움의 싹이 틀 수 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런 것이다.내 삶에 희망과 위로,치유로 채워지고, 고립감이나 외로움에 허덕이지 않도록 하는 것, 작가 스스로 예술적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왔기에 알 수 있는 그러한 예술적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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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고백이나 다짐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일상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저자 정진 작가는 펜과 붓을 필연적 좋은 친구로 삼고 작품으로 고백한다.
알 수 없는 붓의 끌림과 터치가 복잡하고 난해하여 정진 작가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파악을 버리고 그림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로만 봤을 때는 매우 간결했지만, 이어지는 정진 작가의 글을 읽고 작품을 꿰뚫어 보기 위해 한참을 쳐다보기도 했다. 작품 안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말을 들어온 정진 작가의 그림이 글과 만나면 고요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에 이런 말도 했다.
“풍덩! 절대, 고요할 수 없게.”
희망은 잘 보이는 곳에 두자면서 탁자 위에 두고 오가며 보자던 정진 작가를 유쾌한 사람으로 남기고 싶다.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이 시끌벅적 많은 말을 했으면 좋겠다. 조용히 잠재우는 건 정진 작가 글의 몫이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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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일상』은 저자 정진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적어 놓은 글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읽어도 될 글들은 아니다. 저자는 미술가로서 자신의 '쓰기'에 대한 말부터 내어놓는다. 하나는, 두서없이 뻗고 흩어지는 생각들을 부여잡기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적는 노트들이라고 한다.(p.5) 저자는 매일 생각하고 매일 작품하니, 매일 적는단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문장, 지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둔다고 말한다. 이것은 창작자에게 좋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모았다가 글도 쓰고 미술도 한다. 글쓰기와 미술의 재료로 쓴다는 말일 게다. 이것들은 저자와 세상을 향한 고백이나 다짐들, 궁금증 같은 것들이며 일상이자 고민의 흔적들이라고 털어놓는다. 삶의 어느 시기마다 흥미로웠던 것을 적어 모은다고 고백한다. 이것의 주제에는 범위가 없어 한없이 작은 입자가 되기도, 끝없이 거대한 우주가 되기도, 더 이해 못 할 자신이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 책은 글들마다 제목이 붙어 있지만 〈목차〉에 적어놓지 않았다. 목차에는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 사이에 5개의 제목만 덩그러니 적었다. 1. 「밤 12시」, 2. 「마음 풍경」, 3. 「영역 인간」, 4. 「남겨진 감정들」, 5. 「낮 12시」 등이다. 밤 12시부터 낮 12까지의 일상을 의미하는지 편의상 구분해 놓은 것인지 독자로서는 갈팡질팡하지만 책을 읽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으니 그만이다. 다만 제목에 적힌 '아무런'이란 의미를 쓴 글을 찾으려면 제목이 따로 없어 애를 먹는다.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찾아낸다. 3장(章) 「영역 인간」에 실린 글이다. 제목은 '아무러하다'이다.
아무리 보아도, 아무렇다.와 아무렇지 않다.의 차이를 모르겠다. 사전을 열심히 찾아보고, 예시를 정성껏 읽어 봐도 알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다는, 아무렇가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그 의미가 반대라는 것인데, 내게 둘은 같은 말 같다. 만약 같다면, 왜 그럴까. 아무러함과 아무렇지 않음을 구별치 못하는 나는, 드넓은 인간의 범주 안에서도, 그 극과 극의 반응을 헷갈려한다. 나를 참으로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게 인간으로서 호감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호와 불호는 극의 감정을 띠지 않으니까. (중략) -넌 항상, 당연한 걸 어려워하더라.(p.160~161)
이 책의 글들은 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문장 부호들까지 음미하면서 읽어야 하는 글들이다. 함축적 의미와 작가 자신만의 미학으로부터, 편집의 일반성은 잠시 접어 두어도 좋을 만큼, 예술에 관한 글인 동시에 생각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독자가 읽어본 바로서는 함축과 다중 의미, 부정적 표현과 뜻이 밖으로 강렬하게 드러나는 언어 등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미술을 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독자의 오판일지 모르지만 글쓰기에도 부정적 표현이나 애매모호한 표현의 글은 잘 쓰지 않는 듯하다. 문학은 함축과 은유, 상징과 다중 의미어 등을 무척 좋아하는데··· 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도 하다. 3장의 '나에게 예술'이란 글에서도 감지된다. 예술과 어머니에 대한 표현이다.
어떤 감정도 생각이나 행동도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주는 것. 몇 번이고 주는 것.
나는 그것이,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주변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지만,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 그녀를 매일 보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지만,사실 그녀는 내게 새상을 있게 한, 그 처음이다. 물론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가 함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어머니란 존재가 그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도 아니다. 그것조차, 예술과 닮았다.
저자는 '밤 12시의 이야기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자신은 밤 12시에 글을 쓴다고 암시한다. 저자는 '글을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1장 「밤 12시」의 글 속에 있다. 언어유희 같은 부분도 있지만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으면 결코 언어유희가 아니다. 앞뒤 맥락을 이어 읽어야 한 문장, 하나의 글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을 글을 쓰는 맛이고 글을 읽는 멋이다.
밤 12시에는 글을 만든다. 만든다는 동사가 멋없지만 적합하다. 단어들을 이리저리 짓고, 쌓고, 깎고, 붙이는데, 그것들을 아우르려면 만든다가 알맞다. 결국 원래의 것이 아닌 새로운 상태를 이루어 내는 것. 그리고 나의 글은 원래 멋없다. 그래서 괜찮다. (중략) 왜곡은 환영(歡迎)한다. 어차피 왜곡은 환영(幻影)이다. 밤의 시간들은 그것에 도가 텄다. 사상이나 감각의 착오를 보이게 하는 것. 그대로 두는 것이 글에 이롭다. 낮 12시가 궁금의 시간이라면, 밤 12시는 궁극(窮極)의 시간인가.
책을 뒤적이다 그림이 눈에 띄어 시선을 꽂는다. 무지개를 표현하는 듯한 유화 물감의 부드러운 선과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질감과 색감이 도드라진다. '무지개 감정'이란 글이다. 무지개 감정이란 무슨 감정이고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붉다고 하기엔 너무 파랗고, 푸르다고 하기엔 너무 빨갛다. 딱히, 보라도 아니다. 이름이 없다. 감정을 나누는 일은, 많은 시대 많은 사람들이 해온 일인데, 그것이 하나의 색으로 나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감정은 무지개를 닮았다. 기쁨도 슬픔도 여러 색을 가진다. 하나의 색을 가진 순수한 감정이 존재는 했었나?
저자의 마음은 이미 결론에 가 있다. 이렇게 표현돼 있다. "난 그런 게, 사람 같다."(p.78)
4장 「남겨진 감정들」에 유독 눈에 띄는 그림과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 '믿음'이다. 그림은 세 개의 원 안에 산을 그린 유화의 붓터치가 멋진 그림이 등장한다. 세 개의 원 안에 같은 느낌이 아니다. 오른쪽 그림과 왼쪽 그림은 분명 제대로 인쇄돼 나왔지만 가운데 그림은 접혀 세로 타원형 안에 갇힌 산이, 그나마 찌그러지고 작아진 듯 보인다. 의도적으로 가운데 산을 그렇게 보이도록 하지는 않았지만 책 제작 상 불가피한 모습이다. 불가피했지만 독자들이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 믿기 쉽다. 왜곡된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예술이 '가장' 고결한 직업이라 믿지 않는다.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 밎지 않는다. 지금 가진 그의 것이 '영원'할 것이라 믿지 않는다. 나를 믿어! 하는 대부분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믿음은 속함과 비슷하다. (중략) 믿지 않으면 분주하고 외롭지만,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
저자는 5장 「낮 12시」에서 '요즘 하는 작품'에 대해 말한다. 단 넉 줄로 썼다.
- 질서에 대한 공부 〈높고 낮음, 흐름, 깊고 얕음〉
대단한 것 말고, 스스로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질서. 일부러 줄 세우고 좌우로 정렬하는 그런 것 말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그렇게 되어지는 그런 질서.(p.320)
저자 : 정진
대기업을 퇴사하고 로드 아일랜드로 미술유학을 떠났다. 2011년 졸업 후, 계속 전업작가로 활동 중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과 방법으로, 세상의 질서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며 글 쓰고 미술 한다. “글을 쓴다는 것과 미술을 한다는 것이 교차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내게는 환희(歡喜)하다.” @jungjean_jungjean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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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세이 #미술가정진C의아무런하루 #디페랑스 #서평 … 그것이 몸을 타는 순간에는, ‘아직은 괜찮아.’ 한다. 괜찮지 않은 순간이 오고 나서야, 부족한 숨을 뱉지도 마실 수도 없는 순간이 오고 나서야, 그것을 바로 본다. 몽롱하고 어지럽고 아련해져, 되돌릴 수 없다는 확신이 포기와 손을 잡는 순간, 비로소 그것이 바로 보인다. 누군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찾아오는 이런 순간마다, 흔들어 깨워 줄 이가 있다는 것 아닐까. | 세련된 우울 95p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마음 풍경>, <영역 인간>, <남겨진 감정들>은, 작가 정진의 미술작품 제목과 동일하다. 작가는 자신을 진실로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관찰한다고 한다. <마음 풍경 시리즈>는 작가 마음의 모습을 풍경화, 산수화, 추상화 등 여러 형식의 이름을 빌어 형태를 입힌 것이다. 작품은 진경이 아닌 산수화들과 같이 허상이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고 작가의 마음 안에만 간직된 풍경이다. 그러나 이 허상에 진실의 힘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다르다. 다른 천성을 타고 났고 다른 환경을 살아간다. 우리는 같다. 단단하고 외로우며 갈등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자신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된다. 121p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전에 영역 동물이다. 인간 삶의 행태는 야생동물처럼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고 얘기한다. 생각의 기본은 유연함이고 대화의 기본은 흐름이라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각이 굳으면 거인의 모습을 한다. 거대히 바뀌지 않는다. 나의 생각이 소중할수록, 타인의 것도 그만큼 소중히 여기기라 기대하지만, 그것은 최고 지성과 영혼의 모임이라는 철학과 종교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내 것이 소중할수록, 다른 것들을 배척하고 조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 이렇게 우리는 영역 동물들이다. 남겨진 감정들, 작가 노트는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개인적이고 확실한 목적이 있다. 타인을 통해 (작가)자신을 바로 보는 것.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감정도 여러 층과 색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 그 어슴푸레한 감정의 깊이와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철저히 객관화 해야만 한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번 작품은 그 두려움을 동반한 외로움에서 시작되어 인터뷰를 위한 질문지를 만들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작가 자신을 보았다고 한다. 마음은 글이 되고, 그 부스러기는 봉인되고, 그것을 담은 목판은 탑이 된다. 서로 마주보고 진심으로 귀기울여 주는 것. 본인조차도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감정, 혹은 그저 내버려 둔 감정. 삶의 어느 시기마다 흥미로웠던 것을 적은 이 책은 미술 작품의 그림들과 함께 보며 공감과 위로가 되어 몰입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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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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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 작가들의 하루를 그려본다면 어떨까? 낮 12시 배가 고파지는 시간부터 계속 따라가자.일상 영감의 트리거 글이 나오는 시간이 12시부터라니 글과 그림이.어우러지고 여기에는 온갖 철학이 용솟음치고 있는 책이다.나름의 삶의 의미를 잘 버무려서 풀어내고 있다.그래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작기들의 삶은 어떨까? 이내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 있다.왜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말라 비틀어진 바나나 껍질 그리고 먹다남은 포도의 알맹이들...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관계에서도 식은관계와 따뜻한 관계가 있다.애매하게 남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버려야 하나 마셔야 하나 이럴땐 별것 아닌 얼음 한 줌이 식은 커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훌륭한 것 뒤에는 하찮은 일상이 자라잡고 있다.잘 속이주는 것도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다 하겠다.
미술가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그려내고 있다.예술에세이 하루가 길이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그림으로 표현하는 감정의 표현이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이다.반박자 느린 타이밍을 통해 자연스러운 것과 무시, 무기, 무지가 빚어내는 효과적인 삶의 의미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는 일상 영감의 트리거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일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글과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예술이란 창조적인 가치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대단한 일은 창조주를 버금가는 모방의 연속점에 있는 삶이다.일상의 고민들이 펜이 되고 붓이 되어 작품을 만들어 간다.수많은 스케치와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의 고뇌는 정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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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정진C의 아무런 하루>은 작가 정진의 일상의 고민의 흔적들, 예술가로서 미술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에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목차를 구성하는 '마음 풍경', '영역 인간', '남겨진 감정들'은 작가 정진의 미술작품 제목과 동일하며, 작업하며 적은 노트들을 바탕으로 하였다.
정진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지만, 자신의 일이 운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운명론자가 아니라 그것을 결정이었다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진은 어려서부터 미술작가, 글작가가 되겠다 희망한 적은 없으며, 점점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고, 순간순간 결정했다고 이야기한다. 미술과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그것들을 현실에 옮겼고, 결국 우리는 운명보다 매일의 힘을 믿는다는 정진의 글에 공감한다.
정진은 '와장창' 하고 깨어져야만 화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정진은 '파사삭' 하는 순간, 주변이 균열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것을 꽤 오랫동안, 누군가를 누군가를 참아 왔다는 것이며, 무너짐은, 짜증 섞인 찌푸림, 거슬리는 한마디, 별것 아닌 거북함에서 시작한다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정진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미술가, 그 촉발제, 작가에게 생각의 트리거는 영감이라 불리지만, 그리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을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진은 영감은 하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생각이 어느 순간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순간적으로 대입되는 것에서, 다른 하나는, 순간 튀어나오는 생각의 파편, 그것들이 빛이 날 때까지 다음어야만 무엇이 되는 두 가지 길로 찾아온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결국 영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뒤의 지속적인 시간들, 준비왼 사람에게만 보이며, 그것을 가꾸는 사람만이,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시간들보다 영감의 순간에 더욱 관심 있어 보이지만, 천부적 재능이나 행운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영감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성실력이라는 정진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정진은 자신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우리는, 타인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정진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들을 정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얼굴과 이름만 그 사람인, 그와는 다른 누군가를 만든다. 정진은 자신 안에서 상대는, 마치 소설의 등장인물들처럼 살아가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말한다. 정진은 가족조차 만들어진 타인일 수 있고, 나의 생각이, 그가 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철들다는 것은 포기의 영역으로 본인의 의지로 조절 가능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조금 혹은 많이 강요와 강제를 가진다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진은 내 것을 양보하면 철들었다 하고, 눈치 보기 시작하면 철들었다 하고, 기댈 곳 없으면 철들었다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포기의 영역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나의 의지를 꺾어 너를, 상황을, 자신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의지. 그래서 어떤 경우 포기는 배려이지만, 어떤 경우 그것은 죽임이다. 내 안의 꿈틀대는 어떤 것을 죽이고 나면, 철들었다 한다. 한동안 착한 어른이고 싶었던 나는, 곧잘 학살자였다."
정진은 예술가가 감정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한다. 정진은 물론, 그런 예술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그런 미술가가 아닐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자신의 작품이 방아쇠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정진의 글에서 예술가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미술가나 그들의 작업을 보며, 무언가를 느껴야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생각하기를 바란다. 나의 작품이 방아쇠가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의 어떤 생각을 죽이는, 당신의 어떤 생각을 깨우는."
정진은 예술이 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항상 주변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지만, 신의 대리인이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 정진은 그녀를 매일 보는 것은 생활의 일부이지만, 사실 그녀는 자신에게 세상을 있게 한, 그 처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가 함께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어머니란 존재가 그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는 것도 아니라는 것조차, 예술과 닮았다고 말한다.
"인간이 만든 것들이 모두 그렇듯, 그녀는 위대한 동시에 나약하다. 그러니 신의 프레임을 씌워 그 어깨를 무겁게 하지 말자. 그녀를 도우라. 어머니도, 예술도."
정진은 SNS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 주는 장터 같다고 말한다. 정진은 SNS에는 온갖 종류의 욕망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마치 기원전 4세기 그리스, 프락시텔레스의 조각상들을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SNS 안에는 더 멋진 내가 있고, 좋고 나쁨을 떠나 인간 본능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진실된 픽션을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최첨단의 즐거움은 항상 본능에 충실하다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선망하게 하는 그 모습 이면에, 대상의 단점을 모조리 빼버리고, 그 안을 완벽으로 채워 넣은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바랐다는, '예술에서의 영혼의 활동'은 기대할 수 없다. 어차피 예술의 영역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곳은 개인의 개성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성향이, 아름다움 안에 갇힌다. 이곳의 개성과 아름다움은 현실세계와 다른 정의를 가진다. 정확히는, 보여지고 싶은 곳만을 선별적으로 발췌한 아름다움. 마치 샤랄라하게 각색된 자전적 소설처럼, 드러낼 단점까지도 섬세하게 각색된다."
정진은 스스로의 좌표를 찍는다는 것은, 넓은 세상 속에 나를 작은 점으로 표현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알겠다는 의지라고 말한다. 정진은 나의 정서적 물리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도, 즐거운 일도 아니겠지만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바로 알면,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시작할 수 있고, 시작은 한번이 아니라 수시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전에 영역 동물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인간 삶의 형태는 야생동물처럼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산에는 호랑이가 다니는 길, 토끼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물리적 영역 뿐만 아니라 정서적 영역에서조차 정해진 길만을 다니는 듯 하다고 말한다. 정진은 내 것이 소중할수록 다른 것들을 배척하고 조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우리 대부분은 일반적인 사람들, 이렇게 우리는 영역 동물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지키려 평생을 바친다. 새로운 생명체가 발을 들여놓는 순간, 위태롭고 날카롭다.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온 생명체에 민감하다. 필요하다면 잔인할 수 있다. 그것에는 예외가 없다. 그 안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역 안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그것을 침범당하면 날선 불편함을 느끼니까. 동물들은 그 불편함을 눈에 보이게 표출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아마도 문명인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수 없나 보다. 그러니, 인간의 민감함은 동물들의 것과는 다르게 발현된다. 자라며 각자의 사회적 영역을 확보하지만, 다시금 그들만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뱀처럼 똬리를 튼다."
정진은 잃어버렸다는 것은 의미가 없는 상태의 없음이고, 버렸다는 것은 의지를 가진 상태의 없음이라고 말한다. 둘의 공통점은 현재 내게는 없다는 것이다. 정진은 우리는 꿈, 삶, 물건, 사람, 감정 등의 일부를 시간과 함께 하얗게 잊곤 한다고 말한다. 정진은 그것은 마치 마법 같아서 갑자기 없는 것이 되고, 그렇게 없는 것, 잊혀진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고뇌한다.
"인형은 49개로 하얗게 복제되었다.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흼은, 그 대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을 뜼한다. 숫자 49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 째 되는 날 지내는 재를 뜻한다. 사십구재는 윤회를 믿는 이들이, 죽은 이가 후생에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복을 비는 행위이다. 이 작품은, 종교 없는 작가가 지금 곁에 없는 것들의 명복을 비는 일종의 의식이겠다."
정진은 누군가의 질문이 내 안의 생각이나 감각을 일깨우는 경우가 있는데, 상대의 질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그것이, 처음 듣는 것도 아닌 그것이, 어느 날의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거나,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꺼내어 본 적 없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 질문에 가르치거나 일깨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소심하고 예민한 반항아인 나는 단번에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리도 생각도 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질문도 어떤 날에는 다르게 온다. 그러면 그날 저녁 그리고 그 후로 몇 날 동안, 그것은 내 글과 미술의 시작이 된다."
정진은 미술가가 직업인 자산에게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묻는다면,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고 말한다. 정진은 작가의 노트를 꼼꼼히 읽고, 작품을 천천히 보는 것, 이 두 행위가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정진은 미술이 어려운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보고, 미순을 쉬워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미술은 열린 예술이라고 말한다. 공부하지 않은 것을, 보는 순간 모두 이해하고 싶은 것은 욕심이며, 그것은 좀 염치없다고 이야기하는 정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미술을 감상하는데 공부까지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어디까지 감상하고 싶으신데요?"라고 답하는 정진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정진은 예술과 문학 좋아하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없다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나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것과 좋은 사람인 것은 비례하지 않는다. 인간성은 예술과 문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진은 예술과 문학은 항상 변화의 기회를 주고, 기회 속에 살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기회 없는 사람들의 불변보다 더 큰 슬픔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자연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사랑스러우며, 본질적으로 무섭고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것에는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정진은 자연은 의지 없이 이치를 따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의 환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산과 바다, 숲 만의 일이 아니고, 우주도 입자도 자연스러우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를 위해 서로를 돕고, 그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정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정진은 공존은 다양한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진은 작은 것과 큰 것, 연결된 것과 단절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 새 것과 헌 것 등 언뜻 반대되어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이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공존의 모습이며, 자연스러운 만물의 생존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미술의 존재 이유 한 가지는 화두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정진은 그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게 느끼게 하고 가치관이나 행동이 변화할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진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좋은 미술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주는, 더 나은 사회가 될 기회를 주는, 그런 일. 그래서,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런 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졌다는 믿음이 굳다. 미술의 힘을 믿으니까."
이 포스팅은 출판사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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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소개 글을 읽고선 미술과 관련된 책이려나 싶어 혹했다.요즘 마음 다잡을 일들이 많이 벌어져 책을 통해 쉬고싶은 마음이 컸기때문이다. 나와 같이 생각한 사람이 많을까봐 저자는 이 책이 단순한 예술가의 낭만적이거나 서정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일상과 그로부터 적어온 영감들을 담은 것이라 프롤로그에서 미리 밝힌다. 그렇다고 미술과 관련없지도 않다.글마다 함께 곁들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글을 읽는 정서에 달콤한 꿀 한스푼 더한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생활을 호기롭게 퇴사하고 늘 마음 가던 곳으로 발길을 내딛은 용감한 미술가다.그 길을 걷는 작가의 바지런함이 부럽고 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작가의 하루엔 '쓰기'와 '미술'이 있다. 낮동안 모은 이야기를 사유하고,쓰고, 내일의 미술을 기획하는 일이 밤 동안 이루어진다. 흐트러짐도 없고 정갈하고 단정하다.깔끔하지만 치열하게 사유한다. 저자의 사유와 영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책을 읽는 시간은, 저자의 깊이있는 글들에 나의 사유도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글이 태풍몰아치는 내 마음 풍경을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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