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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아닌 양반가의 여식이 춤을 추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던 시대에 파격 그 자체였던 한 여성의 #도전스토리 가 담겨있다. 춤에 대한 열정과 도전하기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마음, 우리 조선의 것을 표현하려한 한 예술가의 고민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펼쳐진다. 꿈과 기회 어린시절 배움에 대한 열망과, 나이맞지않아 진학에 어려움을 겪은 일, 집안 사정과 따뜻한 보살핌을 주시던 분과의 눈물의 이별 등이 본인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일찌기 동경에서 공부한 오빠를 통해 무용을 만나게 된 계기와, 우연한 기회를 통해 서울에 공연온 석정선생을 만나 제자로 들어가게 된 이야기는 너무나 기적같고도 신기하게 다가오는 사연이었다. 또한, 일본에서의 배움후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귀국후엔 독자적인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할 정도로 강단있는 여성이었다니 놀랍다. 편지글 정신적 스승이자, 멘토였던 오빠와의 편지글은 퍽 인상적이었다. 예술에 대한 열정, 사그라지지않는 열심, 고민과 질문을 담은 최승희의 편지에 이어지는 최승일의 편지는 오빠로서의 사랑, 멘토로서의 신념과 가르침이 모두 들어있어 너무 좋았다. (55~7) 조선의 호흡, 조선의 리듬이 무엇인지 끝없는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양풍무용과 조선무용 모두를 아우르려는 학술적 열심, 민족의 정신을 표현하려는 조선인 무용가로서의 치열한 분투, 어려운 시대의 와중에도 세계를 누비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이 그녀의 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편지의 말미마다 자만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찐 오빠의 조언도 참 정답고 뭉클하다. 기고문 무용과 예술에 대한 최승희 본인의 글과 함께, 일본인 스승님인 석정선생의 애정어린 기고문, 야마모토의 응원하는 글, 민족무용가로서 최승희에게 더욱 발전하여 달라는 부탁의 말 무용평론가의 글, 무용가로서 더욱 발전하길 응원하는 이화전문학교 교수의 글 등이 함께 실려있어, 당시 최승희를 바라보는 각계각층에서 관심과 동시대인의 시선을 엿볼수 있었다. 해방 후에 친일 행적이 문제되어 남편, 오빠와 함께 월북하게 되고, 무용연구소를 설립 활동중에 북한의 체제하에서 숙청당하여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책은 1937년 출간된 원본을 복원한 복각본으로,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전의 최승희의 모습을 담고있다. 현대무용을 배웠지만 오히려 조선의 춤을 연구하며 이사도라 덩컨을 뛰어넘으려는 열정을 가졌던 최승희.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현대무용을 연구하고 성장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만나는 책읽기였다. P 55 군함은 나라를 위하야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조선의 리듬,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가지고 서양으로 싸흠을 하러 건너갑니다. 아 나는 기뿜니다. 용기백배입니다. P 56 오빠 저는 생각해요. 어떤 경운라도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고 그 민족의 예술도 결단코 망하지를 안는다고요. 애급이 망하였으나 그 민족과 그 민족의 예술은 망하지 아니하였으며 유대는 망하였으나 그민족은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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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 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세계의 무희' 최승희의 자서전을 복원한 한정판 복각본으로 소중한 자료로 평소 평전과 자서전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반가운 책입니다. 이 책은 1937년 7월 이문당에서 발행한 초판본을 원형 및 색감을 그대로 살려내어 최승희 자서전 복각본을 통해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기억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최승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책이자, 소장품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승희는 1911년 11월 24일 경성에서 해주 최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연구생으로 입단합니다. 3년 동안의 과정을 마치고 경성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중 문사로 이름을 날리며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가 잦았던 안막과 결혼하고 다시 이시이 바쿠의 문하로 들어가서 1934년 첫 단독 공연을 개최하며 당대 최고의 무용가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150회가 넘는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일약 ‘세계의 무희’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해방이 되자 남편을 따라 북으로 건너가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열고 민족무용 연구와 제자 양성에 주력했고 이후 남편 안막은 ‘반당종파분자’로 숙청되었고, 최승희 역시 명확한 기록 없이 숙청되었다는 소문만 남아있습니다.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렵니다.”
1920년대 조선,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 식민지 조선의 틀을 깨고 나온 무용가 최승희
전설의 춤꾼 최승희의 일생은 결혼으로 인한 중요한 변곡점을 맞습니다. 최승희의 남편 안막은 최승희의 일본인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따서 결혼 후 개명하게 됩니다. 안막은 북한에서 문화 선정성 부장을 지냈을 만큼 거물급 인사였고 결혼 당시에는 일본 와세다대 노문과에 다니는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최승희가 남편 안막과 결혼한 것은 오빠 최승일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승희는 성장기에 오빠 최승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최승희는 “나의 성격은 승일 오빠로부터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라고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빠는 나에게 사물에 대한 정당한 관찰과 이해의 길을 열어주고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주저하지말고 나가거라 한번 정하였거든 곁눈질하지 말고 나가거라> 오빠는 이와 같이 나를 격려하였다고 책에는 나옵니다. 지금 오빠의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옳은말이고 오빠가 하는 행동이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를 아니하냐?
“이 밤은 나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인상 깊은 밤이었다. 동라의 소리가 나자 불이 꺼지고 <제라진>을 통하야 코발도의 빛과 그린의 빛이 교차하는 가운데 무슨 곡인지 장중한 피아노의<메로디>가 시작되면서 석정 막시의 독무이 시작된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 북미,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은 그 시대를 생각하면 대단한 일입니다.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일명 ‘세계의 무희’ 최승희의 자서전이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 그대로 복원되어 출간됐습니다. 월북 예술가인 최승희는 사회 분위기 속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그간의 많은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 없어졌습니다. 1937년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었고,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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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모임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1920년대 조선에서 활동한 무용가 최승희의 삶과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조선의 시대적 혼란과 격변 속에서 한 여성 예술가가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무용을 통해 동양과 서양 그리고 시대를 연결하려 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책 전반에 걸쳐 최승희의 개인적 고뇌와 예술적 열정,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빛난 그녀의 도전 정신이 느껴집니다. 특히, 단순한 자서전을 넘어 여성 예술가로서 겪었던 차별과 투쟁,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성장과 자기 성찰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감동을 줍니다. 또한, 무용이라는 예술 장르가 가진 리듬과 몸짓을 통해 조선과 동양의 정체성을 표현하려 했던 그녀의 철학과 예술관도 인상적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역사나 예술사적 사실을 넘어 한 인간의 내면과 그가 속한 순간의 시대 정신, 그리고 예술이 가진 힘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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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최승희 자서전 복각본_최승희_소명출판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무용가 최승희를 이 시대의 BTS였다고 했다. 그 당시에 세계적인 스타였고 파급력이 엄청난 분이셨다. 뚜렷한 이목구비는 미녀상이었으며 무려 170Cm에 육박하던 키는 동서양을 통틀어 장신이었다.
사실 이분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끌렸고 1930년대에 나왔던 오래된 책을 복각본으로 만든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놀랐던 건 복각본인 줄도 모르고 책을 펼치니 세로로 쓰인 글에 당황스러웠다. 오래된 옛 글이라 현대어로서 읽히기 힘든 단어가 많았고 중간을 넘어서면 한자어가 해석 없이 나와서 다 읽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이해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셨다. 책의 첫 부분엔 무용가 최승희의 귀한 사진이 있었으며 정말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책이었다.
‘최승희 자서전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보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남편의 강력한 권유로 월북을 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도 말렸고 이승만 대통령까지 편지를 전하며 극구 반대했으며 무당에게 찾아가서 점까지 봐서 안 가는 게 좋다고 했음에도 떠났다. 물론 끌려갔다기보다는 당시 김일성이 엄청나게 최승희를 밀어줘서 금전적인 부분 때문일 거라는 얘기가 많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녀의 애제자와 남편의 동생이 남한으로 내려가기 전에 최승희에게도 함께 가길 권유했으나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역시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던 남편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처음엔 부유하게 살았으나 남편이 북에서 역적으로 몰려 숙청당하고 최승희마저 1969년도 이후로 종적이 감춰져서 행방이 묘연했고 결국은 숙청을 당했다는 얘기만 전해지게 되었다. 지금은 오래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무용가 최승희는 당찬 성격에 김일성에게도 자기 할 말을 다했던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우리나라 무용 역사에 끼친 영향은 상당히 비중 있기에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귀한 자서전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최승희라는 무용가가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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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자서전> 복각본 / 소명출판 솔직히 말해 최승희라는 이름이 사실 좀 낯선 게 사실이다. 뒤늦게 그녀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알면 알수록 대단한 인물이며 격동의 시대를 의미있는 살았던 신여성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부터 100년도 전인 1920년대 조선의 리듬으로 불린 무용가였다. 이 책은 1937년 초판본 오리지널 복각 한정판으로 그때의 느낌 그대로 재현했다. 때문에 처음 책을 받아보면 세로로 쓰인 글이나 재질의 느낌을 그대로 남긴 탓에 조금 당황하고 어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옛스러운 느낌만으로 시대가 느껴지고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 마다 당시의 자료 그대로를 살펴보는 느낌이 참 정겹게도 느껴진다.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를 지금의 시대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조선은 여성의 몸으로 기생이 아니고서야 춤을 춘다는 것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런데 최승희는 식민지 조선의 틀을 넘어 무용가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는 최승희는 신식교육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의 덕으로 그나마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2번이나 월반을 하고 남들보다 일찍 졸업했다. 훗날 남매가 모두 월북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지만 취소를 당하고 오빠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모두의 이목을 받고 파격적으로 일본의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하게 되는 최승희.
이 최승희 자서전엔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어 있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그 이전의 열정이 살아있는 무용 예술가인 최승희를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복각본이라는 게 보면 볼수록 상당히 고풍스러움이 묻어난다. 그것 그대로 재현할 순 없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껴지는 게 내용도 그렇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념적으로 다소 논란이 여겨지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일단 무용수 최승의 만으로 자서전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좋은 기회라 생각되는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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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출판 (펴냄)
오랫동안 잊혀져있던 최승희 무용가(1911~1969). 최승희는 누구인가? 궁금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먼저 그의 경력을 검색해 보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는 직함이 먼저 눈에 띈다. 월북한 무용가, 안무가, 문화예술인..... 세계가 사랑한 무용가 최승희. 먼 나라 남미까지 공연을 다녔고 박수 갈채를 받은 여신, 피카소, 가와바타 야스나리 외 많은 문화 예술 지식인들이 인정한 뮤즈이자 예술가 최승희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승희. 한학자인 아버지 최준현은 딸을 숙명여학교를 보낼 정도로 신식교육에 관심 많은 분이었다. 동기들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2번이나 월반해서 결국 2년 일찍 졸업한 최승희. 남매가 셋 다 월북하는 바람에 최승희의 집은 거의 풍비박산이라고 한다. 다행인지 언니의 자녀가 최승희의 핏줄로 유일하게 남아있다.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으나, 연령 미달로 입학 취소되자 좌절한 그녀에게 오빠는 제안한다. 무용을 해보라고!!! 당대 사회상을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이다. 최승희는 세간의 이목을 받으며 홀연 일본의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단하게 된다. 우수한 무용 실력으로 인정받은 최승의는 고국에 돌아와 치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의 무용에 대한 인식은 어두웠다.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유교 사회!!!
최승희는 어떤 종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통 무용을 배우기 위해 권번의 기생으로부터 사사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신여성이자 모던 걸, 패셔니스타인 최승희 개인으로 봤을 때 정말 매력적인 분이다.
이번 신간은 1937년 이문당에서 발행한 판본의 원형을 그대로 복간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1930년대 세로로 된 글자, 한자가 많아서 한자를 잘 모르는 나는 읽기 힘들었다 ㅎㅎㅎㅎ수록사진에 너무나 앳돼 보이는 최승희의 모습, 무용하는 모습, 한복 외에 정말 다양한 복장으로 카메라 앞에 선 최승희의 모습은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물론 친일의 기록, 북한으로 월북한 이후 행적으로 인해 최승희는 긴 시간 동안 대중들에게 잊힌 사람이 되었다. 자발적 친일인지 아닌지 그 유족의 의견분분한데 글쎄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아! 최승희 외에도 많은 유명인들의 끝없는 친일파 논쟁, 여전하다....
이념이 다시 강조되는 시대다.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문제로 마음이 안 좋다. 남과 북, 좌와 우로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권 행보에 정말 신물이 난다. 나라의 독립을 이끈 인물을 어떤 식으로든 흠집 내기 위한, 이념을 위한 이념, 논쟁을 위한 논쟁이 되어버린 시대에 절망한다.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최승희자서전, #소명출판, #최승희, #친일파인명사전, #월북무용가, #월북예술가, #친일파, #무용가, #자서전, #평전, #최승희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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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서전을 보는 일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오롯이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최승희 자서전 복각본" 은 요즘의 자서전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른, 마치 옛 고전의 책자들을 대하는 듯 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 글과 자서전이라고 보기 보다는 일기를 쓴듯 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최승희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제는 지난 인물들에 대한 현재 사람들의 이슈화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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