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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은 시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프롤로그의 동화부터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상상은 다소 구체적이다. 프롤로그의 동화는 <바벨>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을 다 읽은 뒤에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면 색다른 기분이 들며 전율이 인다. 소재는 신선하고 재밌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 속에서 바벨의 시대를 살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바벨의 시대를 그려내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이 군데군데 숨어있는데, 이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물들은 입체적이다. 주인공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마저 입체적이고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인물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주어진 것도 좋았다. 바벨은 그 제목처럼 성서/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의 오마주다. 바벨탑 이야기는 이미 많은 문화적 컨텐츠에서 다뤄지고 있는 만큼 진부한 소재가 되기 쉬운데, '펠릿'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신선함을 더했다. 또한, 시적인 문장은 <바벨>속 세상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참신하고 거대한 세계관을 끌어가는 뒷심이 부족하다고 느껴져서 아쉬웠다. <바벨>의 장대한 서사가 중간부터 갑자기 흔한 사랑 이야기로 변모하고, 그러한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