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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해방 전후,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우리나라 단편 소설을 공부했다. 그때 만났던 소설 속 주인공은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하는 국민들이었고, 또 하나는 해방이후 이념의 갈등으로 고뇌하는 지식인들이었다. 우리의 전통을 고수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르크스의 공평한 분배에 매력을 느껴, 공산주의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우리 식의 교육을 통해 월북한 사람들을 죄다 빨갱이, 간첩이라고 배웠지만, 월북한 사람들이 모두 간첩이자 빨갱이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산주의 이념이 국민들에게 더 옳다고 생각했고, 그게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그쪽 이념을 선택했을 사람들.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는 당사자만 알지 않을까? 가끔 뉴스를 통해 듣는 우익과 좌익의 이야기는 너무 과격하고 무차별적이다. 내가 선택한 이념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되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다. 좋은 점을 취해 같이 발전해 나가면 좋으련만... 세상 참 어렵기만 하다. 해방 전후 단편 소설을 공부해서 일까? 누구보다 똑똑하고, 누구보다 공부 잘 했던 그 당시 지식인 한준호를 보면서 묘한 답답함을 느낀다. 착하고 성실하며 심지어 머리도 좋은 한준호. 그는 당시 어렵다던 프랑스에 유학했던 사람이다. 유학이후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다 마칠 수는 없었지만 당시 그는 한국에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한 때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해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북한의 의용군에 지원 입대한 것이 준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1963년 서울 돈암동 산동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작가, 작가의 친구인 관수, 그리고 관수의 형인 준호 형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줄거리다. 돈암동 산동네에 수도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이권 다툼과 비리가 발생한다. 또한 수도 사업의 감사일을 맡던 준호 형이 국가 고위 공무원이 되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딜 수 없어하는 모습은 해방 이후 지식인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배운 사람이라는 지식인들이 어떤 생각과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진다면 함부로 행동해서도, 무조건 부를 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일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부가 집중되고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그런 혜택이 일부에게 돌아가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꼿꼿한 성정으로 불편한 마음을 내보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참에 크게 한방을 갖고 싶었던 사람들은 아귀처럼 달려들어 자신에게 온 이익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한 국민들만 그런 이익의 막차에 오르지 못했을 뿐. 그 결정이 실수란 건 시간이 지난 후에 알 수 있어. 결정할 당시엔 모르지 (책표지) 고뇌하는 양심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두고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정부의 정책을 비롯하여 모든 정책에 대해서 도전을 하는 경우에는 분명이 자신은 직장에서 쫓겨나서 폐인으로 내동댕이쳐진다는 사실을 형은 알고 있었다. (137) 공부를 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남아 있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만 실제는 그럴 수 없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니까.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흔들리지 않게 갖고 가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이 국가를 위해 좋은 것인지 구분하고, 알고, 그리고 행동할 수 있는 것. 이 사회에 행동하는 양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서울 것 같다. 나의 이 신념이, 혹은 생각이 고집이나 불통이 되는 것은 아닌지. 중편 소설 쯤 되는 것 같은 이 책.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와 우리나라 그리고 내 주변을.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리더십의 부재를 이야기 한다. 어떤 리더십을 가진 리더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이 많은 대한민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