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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리아디란지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서번트 증후군..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증상은 불치의 병이고 다른이의 도움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0.01%의 확률이 닥친 이유는 특별한 원인이 없다. 죄가 많아서도, 가족의 누군가의 병 때문도 아닌, 알 수 없는 이유가 가족에게 들어온 것이다. 책에는 장애아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11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엄마, 그런데 ... 오늘 꼭 하늘나라 가야해? 다음에 가면 안돼? 엄마, 나는 다음에 가면 좋겠는데....’ 경기를 하는 아이들 안고, 아무것도 모르는 딸과 함께 자살을 시도하려던 엄마의 이야기 이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 어린 아들을 발작을 하게 만들고 지적장애와 발달 장애까지 오게 만들었다. 결국 엄마는 두 번이나 자살시도를 한다. 장애는 장애물과는 다르다. 극복하면 없어지는 장애물이 아닌 것이다. 많은 경우, 평생 가족의 돌봄이 필요하며, 가족중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냥 새롭게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웅덩이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책 안에는 쉽게 넘길 수 없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아프게 그려져 있다. ‘엄마가 저를 많이 꼬집었어요. 너무 잘난 형제들 사이에 장애가 있는 딸이 있는 게 엄마에게는 상쳐였고, 그 상처를 만든 딸이 미웠던 거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골무형성증이라는 장애가 딸에게까지 이어지자,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받았던 마음의 상처까지 떠오르는 엄마의 이야기다. 장애는 한 개인이, 가족이 감당하기엔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도 무거운 짐인 것이다. 지난 연말 TV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복지정책에 대해 난상 토론을 가졌었다. 그들에게 복지는 표였고, 돈이었으며, 레토릭이었다. 1년이 지나자 복지는 비용으로만 취급되고 있는 것만 보고도 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가족들에겐 그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알라딘의 램프의 거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복지는 현상이나 정책이 아니라 얼굴을 보고 나누는 대화가 먼저다. 책을 덮으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찾아봐야할 현실이고 기억해야할 이웃들의 이야기 였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 뿐만 아니라 복지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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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의학관련 전공을 가진 나조차도 모르는 장애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제 곧 의료인이 될 준비를 마쳤지만 아직도 이 책에 나온 아이들을 대할때면 공부를 한 나조차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때가 많았다.
장애를 가진 어른들은 물론이고 보호자의 도움을 거의 24시간 받고 있는 아이들도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별 고민없이 선택하는 학교조차도 장애를 가진 부모들과 아이들은 일반학교에 진학할것인지 특수학교에 진학할것인지 꽤나 오랜시간 동안 고민해야하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우리가 편하게 하는 외출조차도 그들에게는 꽤나 큰 일이 된다는 것은 말할것도 없다.
게다가 집밖의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나 불편한 시설들, 제도들을 마주할때면 아이들의 부모들이 얼마나 힘든 마음이 들까..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에는 항상 특별한 아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는 자폐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와 짝이 되어 소풍을 갔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친구와 같은 반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전공과 직업때문에 특별한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아이를 맡은 선생님은 좋은 분이었지만 통합교육이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부족한것 같다는 이 책의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내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가 생각났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들 중 하나는 고등학교 때 우리반에 있던 친구가 돌발행동을 보일때에 친구들도, 선생님도 어찌할 줄 몰라 얼어버렸던 일이다.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려면 참 많은 것을 고민해야하고 보낸 이후에도 걱정들은 끝나지 않는다. 그 친구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특수교육을 전공하지 않아도 말이다.
지금 당장 모든 국민이 교육받는 것이 어렵다면 장애를 가진 아이와 같이 생활하게 되는 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부터 기본적인 교육이라도 받는다면 아이도 부모도 조금 더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간단한 교육이라도 받았다면 우리 교실에서 같이 생활하던 그 친구에게도 우리에게도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 친구를 괴롭히거나 나쁜짓을 하는 일은 우리 반에서 없었지만 그 친구가 우리 반 안에서 우리와 함께 뒤섞여 완전하게 어울려 지내지는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 덕분에 부끄러운 마음도 생겼지만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특별한 이들을 대해야 하는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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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라는 제목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제목이다.
한손안에서 무수한 사랑이 뻣어나오는 것을 보면서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는 말이 시각적으로 처린된 듯하다.분수처럼 끝도 없이 나온다.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이란다. 이걸 과연 글로써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첫장을 열다보면 한가족 한가족을 만날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읽기가 힘들다.
눈물이 너무나 많은 것도 문제지만 나에게 자애아라는 단어가 낯설지는 않다. 아이 학교 친구들은 학급마다 한명씩 있었고 작은 아이의 반의 장애아는 할머니의 보살핌이 힘들어져서 장애 학교로 떠났다.
일반학급에 수업으로 통합 수업과 분별 수업으로 그들을 함께 했지만 이해도 가기도 하면서도 차라리 장애 학교가서 적절한 교육을 받는 것이 좋을 듯 한 과정을 많이 봐았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워낙 특수 학급이 유명해져서 많은 장애아가 오게 되어서 때로는 비장애아가 힘든 경우가 생기도 했던 적이 여러번 생기게 되면서 장애아에 대한 생각과 그들의 고충은 조금은 알 수 있는 처지인지라 읽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린지 한줄한줄 읽으면서 힘들다는 것을 떠나서 처음에는 부모들의 원망이 지나서 사랑으로 그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애아라는 편으로 내가 포장하지 않았나 했다.
특히나 읽다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장애아들을 늘 내가 중성적인 사람으로 대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지워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여자 아이가 생리를 하면서 그 거부감을 남자 아이 앞에서 했던것을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남자아이의 자위라는 것을 전혀 생각을 못했더라는 것을 잊었고 나의 어릴적 중학교 친구중에 장애아가 있었는데 그러한 사건이 학교에 있었던을 잊었다.
장애아가 남자고 여자라는 것을 우리는 성에 대해 무디고 꼭 결혼 해야 하나하고 물었던것이 얼마나 그들을 인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선을 긋고 보았는지를 반성하게 만들면서 그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얼마나 우리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지를...단지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입으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읽으면서 그들을 사람 자체로 보게 되면서 가족들의 고충을 느낄수 있었는데 특히 아빠와 그들의 형제 자매의 고충을 너무나 몰랐다.
또한 쌍둥이 장애아를 보는 순간 엄마가 아빠가 얼마나 큰 잘못으로 아이를 장애아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는 그 부모의 시각을 직접 그들의 입으로 듣고 있노라니 너무나 우리가 아닐하게 내뱉었던 말이 아니었는지를 눈물로 반성과 그들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하면서 나도 그 범주안에서 같이 살아가야 할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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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아이의 사랑스러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그건 꿈에 불과하다. 아이는 끊임없이 자라 어른이 되고 마침내 부모를 떠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범한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내 아이보다 하루 더 늦게 죽는 게 소망이라 말하는 이들, 한 번 즈음은 삶이 너무 버거워 극단적인 생각을 품기도 했던 이들. 그들은 장애아를 둔 가족들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아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가 못하다. 개개인에게 장애에 대해 물으면 굉장히 관대한 듯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들은 마땅히 배려 받아야 하고, 그들을 위해 보다 질 높은 제도가 확충되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막상 현실에서 장애를 접했을 때 그들은 달라진다. 부모가 어떻게 교육을 시켰길래 아이가 저토록 버릇이 없느냐며 삿대질을 하고, 피해를 주지 말고 어서 이 자리를 떠나달라고 종용한다. 상대가 아이의 장애에 대해 양해를 구해도 소용없다. 오히려 장애가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며 큰소리를 치기 일쑤다. 갈 길이 먼 사회로 인해 장애아 가족들은 시름시름 앓는다. 게다가 그들을 위한 제도 역시 미흡하다. 치료를 받으면 낫는 여타의 질병과 달리 장애는 없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다. 제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함께 해야 한다. 증세의 완화를 위해 혹은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돕기 위한 교육이나 프로그램은 상당히 고가다. 웬만한 경제력이 아니고서는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한결같이 조금은 특별한 제 아이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한없이 베풀어도 부족하기만 한 것 같은 아이를 통해 부모로서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 했다. 더디지만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는 아이로부터 희망을 발견하고 있는 이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장애를 바라보느라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이었다. 사회는 그것을 부족함이라 불렀지만 내게 그것은 이기심의 반대편에 놓은 무언가였다. 저마다 제 밥그릇 찾기에 몰두하는 시대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불안에 떤다. 그게 제 약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필요한 배려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마음 속으로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막상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조차도 솔직하지가 못하다. 하지만 장애아들은 달랐다. 세련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꾸밈이 없었다.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에게서 난 천국을 보았다. 하루가 고되고 지치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은 솟아났다.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는 아이는 역으로 우리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장애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본인이 힘들도 가족이 힘들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장애를 지닌 채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게 쉽지가 않다. 이 책이 소개한 많은 가족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축에 든다. 아무래도 장애아에게만 계속해서 관심을 두게 되니 다른 가족들로서는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다. 배우자와 헤어지고 장애를 지니지 않은 자녀가 비틀거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홀로 남은 부모 중 한 사람은 모든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가족의 이해와 배려는 장애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큰 힘을 준다. 많이 미안하기야 하겠지만 소중한 이들이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은 또 다른 사랑을 낳는다. 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등 책을 통해 처음 들은 것들도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병명은 접할 기회조차 드물 것이다. 아니, 수시로 듣는 뇌성마비나 자폐성 장애 등도 우리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진심어린 공감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일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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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어쩌다 이렇게 되었소?” 지하철에서 가끔씩 들리는 소리이다. 대개 중년 여성이나 노인들이 장애 자녀와 함께 탄 엄마에게 물을 때가 많다. 그러나 느닷없이 질문을 받은 이의 표정은 좋지 않다. 측은한 표정의 동정 투 말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 마뜩찮을 것이다. 부질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이러한 물음은 관심이기는 커녕, 지극히 개인적인‘호기심’일 뿐이다. 상대의 아픈 상처만 되살리는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행위이다. 관심이란,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행위이지, 개인적인 궁금함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아 가족들의 힘든 육아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 출신의 김혜원씨가 <나같은 늙은이 찾아줘서 고마워>에 이어 두 번째로 펴냈다. 전작에 이어 그의 관심은 계속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있었고, 그들의 아픔과 가족들의 고충을 조명했다. “앞으로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낯선 시선을 거두고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때까지 그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관심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뇌성마비, 자폐, 뇌병변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병명들. 이 책은 이러한 병을 가진 11명의 청소년들과 그 보호자에 대한 취재기이다. 그들의 일상은 대부분 어머니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졌고, 나아가 가족들 모두의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24시간을 고스란히 바쳐야 하고, 그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 역시 아내의 내조를 잊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웃들은 어떠한가? 한 어머니는 “엄마들도 말로는 사이좋게 놀라고 타이르지만 이내 하나둘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버립니다”고 서러움을 토해냈다. 아마도 교육 수준이 높은 인텔리 대중의 이중적 모습이리라.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이해하는 척 말하지만, 자신과 직접 연관될 때 그 관계의 끈을 지속시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 속에서 모든 어려움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었고 개인의 짐이었다. ‘통합교육’을 내세우는 현행 교육제도도 혹평의 대상이었다. 장애아가 일반 학생과 같이 교육받을 수 있게 한 특수학급이 오히려 서로를 분리시키고, 놀림과 차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물론 제도나 교사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기대이다. 일반 법조인들이 고시에 출제되지 않는 노동법을 잘 모르듯이, 장애인 교육은 일반 교사들에게도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다. 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보듬지 않는 아이들을 학교가 알아서 잘 해줄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물론 장애아 양육을 위해선 일차적으로 가족들의 애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도 있어야 한다. 저자처럼 휴일에 자녀와 함께 장애인 복지시설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러한 활동은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니다. 아렌트(H. Arendt)의 시각으로 보면 진정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인간의‘행위(action)'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사적인 노력은 모두 개인적 차원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공적 부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족들, 그리고 사회의 많은 선량한 개인들에게만 그러한 역할을 떠 넘긴 체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닐까?‘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장애인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을 가족에게 맡기는 나라. 철저히 공적 부조를 외면하는 나라. 그러면서 그 여력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나라. 대체 누구를 위한 성장이며 발전인가?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의 민낯이다. 사회구성원에 대한 보호와 의무를 모두 개인에게 떠맡기는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합계출산률 1.17명이라는 통계수치가 잘 말해준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인 자녀와 부모의 얘기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대상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소수 종교인, 성적 소수자, 소수 인종 등등 장애인 못지않은 소수자는 얼마든지 있다. 이 땅에서 이들은 모두 약자이며 타자이다. 그 존재와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한 엄마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정작 힘들고 괴로운 건 위태롭고 느리게 커가는 아이가 아니에요. 비장애인들의 불편한 시선이죠. 편견도 동정도 싫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면 고맙겠어요.”이 엄마의 말처럼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를 염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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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나 영화들의 대부분은 장애를 가진 당사자의 극복내지는 인생 이야기가 중심이죠. 이 책 역시 그런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제의 시선이 좀 다르네요. '장애'를 가진 본인도 힘겹지만 그를 케어하는 부모 그중에 특히나 24시간을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힘겨움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담았다는데에 많은 공감을 갑니다. 저 역시 대학 재학시절 다이빙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되었고 제 옆에 그림자처럼 계시던 어머니의 고통과 힘겨움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울림이 크네요. 장애아를 가진 대부분의 가정에서 벌이는 큰 오류중에 하나는 장애아를 완치하겠다는 염원으로 올인한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선천적 장애라면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죄인양 더욱 아이들에게 올인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자연히 다른 가족들은 소외감은 커지게 되고 가족의 갈등을 넘어 붕괴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문제는 장애를 수용하지 못하는 가족을 바라봐야 하는 장애아 당사자의 상처는 이루말할 수 없이 거대할 수 밖에 없지요. 이런 문제들을 가족들의 이야기를 적절하면서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가 장애가 있다면 그들은 무조건적 희생을 알게모르게 강요하게 되는데 이런 일들로 심각한 마음의 상처가 될 수 밖에 없고 치료 또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서울 모 복지관에서 만난 이십대 중반의 청년은 자존감이 거의 바닥 수준이었는데 누나는 알만한 방송국의 작가로 활동하지만 누나와는 갈등이 너무 심해 누나와 함께 밥을 먹어본적이 기억에 없을 정도라지요. 자신에게만 어머니가 정성을 쏟다보니 사춘기에 접어든 누나는 자신을 끔찍히도 싫어 했다면서 그 감정의 골이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진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또는 경계성 장애라고 지적수준이 약간 떨어진다는 검사결과에 '조금만 하면 될것 같다'는 부모의 절박한 바람으로 어릴때부터 병원에 학원에 심한 학습을 강요하다보니 아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아예 자폐성 장애로 발전해 버려 다른 사람과 눈도 맞추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 아이도 봤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며 한가지 아쉬운 점을 느끼게 됐습니다. 여러 부모들이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요약하자면 자신의 아이, 장애아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중증장애인이긴 하지만 전 좀 다른 생각이네요. 장애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다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다름"을 다르게 보지 말아달라고 하면 이또한 불편한 생각들을 만들어 내곘지요. "다름"은 다름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장애 본인이든 가족이든 또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 역시도. 그 다름을 수용하지 못해 "편견"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장애는 그 다름이 가져오는 "불편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배려를, 도와야 할 것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받으면 되는 그런 마음이 서로에게 자연스러워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본인의 장애를 수용하고 그 장애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가족을 포함해서 사회가 돕는다면 장애는 그닥 특별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으로생각합니다. 또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하는 시기가 오면 많은 걱정과 갈등을 합니다. 이 책에도 소개되었듯 특수학교보다는 통합교육을 시킬 수 있는 일반학교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아이들은 왕따나 놀림, 폭행 등에 노출 될 위험이 높음은 당연합니다. 아직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아이들에게는 자신보다 약한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부분이 잘못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중학교 입학해서 아이들에게 '못생겼다'는 이유로 심한 폭행과 따돌림으로 정신과 입원치료까지 받고 5년이 넘은 지금도 집밖으로 나오는걸 두려워합니다. 길에서 누군가와 눈만 마주쳐도 자신을 못생겼다고 욕한다고 생각하고 자신 스스로도 괴물처럼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이십대 초반의 여성은 누가보다 못생기지 않고 평범했는데 말이죠.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사회 구성원이라면 읽고 함께 공감해야 할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장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무조건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대상이 아닌 그냥 이웃이라는 점을 꼭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 두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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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항상 가까이에 있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아직도 소외와 차별 가운데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4일 앞둔 16일에는 故 송국현씨가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화재로 인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 했습니다. 1급 장애인에게만 주어지던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는데요, 장애인 등급제와 관련된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기대합니다.
누구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겪는 불편과 심리적 고통이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故 송국현 씨의 안타까운 사고가 가족의 돌봄을 벗어나 독립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부모들의 마음은 더욱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기 마련일 것입니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에서는 밀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밀알학교(발달장애아 특수학교)에서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장애인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성마비, 자폐, 뇌병변 등의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과 그 이름조차 생소하고 기억하기 어려운 서번트 증후군, 코넬리아디란지 증후군,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등 11가정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책의 부제는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입니다. 네 – 당연히 가족과 장애아가 경험하는 슬픈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하지만 우울하게 그런 상황에서 절망하고 낙담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과 사랑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장애아 가족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몇 가정의 이야기만 소개하며 함께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세준이의 장애를 인정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일반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통합반에 다니도록 했죠. 엄마의 욕심일지 모르지만, 보통의 아이들과 섞여 있다 보면 우리 아이도 행복하게 보통 아이들처럼 자랄 거라고 기대를 했죠. 특히 자폐증 아이들은 모방행동이 두드러지는데, 똑똑한 아이들을 따라 하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그 아이들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던 거예요.” - 71쪽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지만 세준이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뇌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중 아주 소수에게만 나타난다는 서번트 증후군은 음악, 미술, 계산, 암기 등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나타내는 증상이지요. 일부 영화에서도 이런 재능을 가진 장애아를 주인공으로 다루기도 해서인지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왜곡된 사실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대학에서 장애인 관련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심정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만 당시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장애 3급)이 장애아 부모들이 범하게 되는 몇 가지 실수에 대해 강의하셨던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첫째, 세준이 어머니가 고백한 내용처럼 장애아가 일반학교에 진학하면 일반 아이들처럼 자라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입니다. 부모로서 당연히 기대하고 바라는 변화이겠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부모를 위해 더 나은 판단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세준이 어머니도 학교에서 아이가 왕따를 당하고 놀림을 받자 밀알학교로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세준이 만의 특성을 살려주기 위해 엄마가 사회복지와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세준이의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준이는 제가 ‘엄마’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아이에요. 엄마의 무진장한 노력을 원하는 아이고, 그런 노력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이죠. 내가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 엄마의 존재감을 확실히 인지시켜주는 아이예요. 엄마를 바랄 때 보이는 세준이의 반짝이는 눈빛, 행복해하는 모습, 처음 입을 열어 ‘어머니’라고 불렀을 때의 기쁨 ...... 또 다른 뭔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이런 것들이 저를 움직이게 해요.” - 74쪽
두 번째로 장애아 가족이 범하게 되는 실수는 자신의 아이를 ‘비정상적인 아이’로 취급한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장애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비정상적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게 반응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야만 아이를 위한 최적의 교육을 마련해줄 수 있고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들의 심적, 육체적 고통도 감해질 수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되는 장애아 부모들은 거의 이런 상황을 거칩니다. 생각해보면 장애아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전부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까요. 공통적으로 다른 가족(남편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미안함, 장애아 아이가 커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걱정,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소개된 장애아 가정을 바라보며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면 이정도까지 힘든 상황을 겪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장애아 아이가 자신의 자녀라는 사실을 진정 ‘기쁨과 감사’로 여기는 부모들. 이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란 얼마나 절망적이고 자기 자신조차 잘 살피지 못하는지요 –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도 있고, 남들보다 안정된 인생을 살고 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마음을 졸이며 스스로 힘든 인생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비유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신체와 올바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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