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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 바다를 꿈꾸는 건 일상이다. 바다를 떠올리기만 해도 시원한 기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늘 서성이던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키운다. 바다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부서지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진 게 없는 생이 부끄럽지도 않다. 해가 지는 풍경을 마주하며 나를 돌아보는 순간, 뜨거운 황홀감에 빠져든다. 예전과 다르게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나는 행복하다. 그러니 자연의 비밀을 아는 사람 김영갑의 생은 행복했을 것이다.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글이 아닌 사진으로 익숙한 책이다. 내게는 그랬다. 사진을 통해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보았고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려 했다. 사진으로 들어가 안갯속을 걷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180쪽)
사진과 함께 글을 읽기는 처음이다. 사진을 업으로 알고 혼자 살다가 루게릭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했고 갤러리 ‘두모악’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제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꿈꾸었는지는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기와 다를 바 없는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그가 찍은 제주의 풍경을 보니 이전과 다른 사진이 되었다. 자신의 전부를 걸만한 대상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불꽃같은 삶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든 자신을 지키며 살고자 했던 생을 누군가는 고단하고 비루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행복하다 말한다. 같은 듯 다른 사진, 뭐라 말을 거드는 듯 귀를 기울이게 되는 사진, 복잡한 생각을 말끔하게 걷어내는 풍경,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시선을 빨아들인 사진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어렵고 힘겹게 찍은 사진을 나는 이렇게 쉽고 간편하게 봐도 괜찮은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이라는 공간에서 온몸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김영갑은 이방인이며, 경계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초를 겪고도 그곳에 머물고 싶었던 건 제주가 그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간첩신고를 받고 경찰서에 오가고 암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사람들에게 애원을 해야 했던 시간들, 모두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제주를 사랑했는지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연인을 바라보듯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뜨거운지 말이다. ‘장마철이면 안개 짙은 날 치자꽃 향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맛은 유별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보름달을 보면서 마시는 차 맛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80쪽)
‘마라도는 참으로 아름다워서 좋다. 섬 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십 분만 걸으면 동서남북 원하는 곳에 가 닿을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은 보고 또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롭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늘 섬이 그리웠다.’ (152쪽)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천국이자 낙원이다. 루게릭 진단을 받고 염원했던 갤러리를 운영하며 남은 생을 그곳에서 평온하게 살았던 그가 남긴 풍경은 삶이었다.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의 글과 사진을 통해 행복의 맛을 맛볼 수 있어 고맙다. 분주한 일상을 떠나 한적한 휴가지를 찾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쉼과 평화를 전해준다.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오늘도 어제처럼 편안하다. 하루가 편안하도록 오늘도 하나에 몰입한다. 절망의 끝에서 한 발로 서 있는 나를 유혹하는 것은 오직 마음의 평화이다. 평화만이 나를 설레게 한다.’ (1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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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그가 있었네 이 책은 《숲으로간 미술관》 에 소개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대한 부분에서, 제주도의 멋진 풍경을 담은 파노라마 사진이 가득 담겨있다는 말에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다가 이번에 읽게된 책이다.
출처 : 「김영갑갤러리두모악」 홈페이지 (http://www.dumoak.co.kr/) 내 사진은 ‘외로움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그 심술궂은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은 멀리서 씨앗들을 한 움큼씩 가져와 내게 잘 보이려 아양을 떤다. 나는 그 바람을 품에 안고 사시사철 함께 중산간 초원을 떠돈다. 책 속에 담긴 사진들은 시선을 확~ 잡아 끄는 강렬함을 뿜어내지만, 작가의 이야기는 참으로 담담하고, 의연하고, 때론 다정하게 전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그 한 순간을 담기 위해 철저히 자신을 고립시키고 오직 사진에만 매달리는 작가의 모습에서는, 나 같은 범인은 흉내내기는 커녕,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지극한 탐미에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제주도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곳곳에 묻어난다.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척박한 산속 움막에서의 가난한 생활도, 어느 무엇도, 사진에 대한 열정만을 꺾을 수 없었지만, 결국 그는 루게릭병을 얻고 만다. 그리고 6년의 투병 끝에 그가 점점 퇴화되어가는 근육을 움직여가며 직접 세운 두모악 갤러리 앞마당에 한 줌의 재로 뿌려졌다. 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노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점심시간에 책을 보고 있으니, 지나가던 한 부장님이 엄청 관심을 보이신다. 그러곤, 김영갑 작가의 사진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몇년 전에는 실제로 제주도에 여러번 가서 사진을 보고 실제 작가가 그 사진들을 찍은 포인트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집에 사다 놓은 카메라 장비 값이 2000만원이 넘을거라는 말도 덧붙이며...).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된 직접 찍었다는 멋진 사진도 보여 준다. 〈김영갑,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런 제목으로 책 한권 내보라고 말하곤, 둘이 같이 크게 웃었다. 아, 이렇게 예술가의 삶은 사람들을 통해 계속 살아가고 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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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김영갑이라는 이름을 알게된 건 친구와 제주 여행을 하면서였다. 표선읍 민박에 묵으며 만난 한 중년 신사분이 갤러리 두모악을 가보라며 추천을 해주신 것이다. 사실 그 전에는 김영갑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작품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갤러리 두모악. 그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놓고 떠난 사람. 제주에 미쳐 심지어 사랑하는 여인도 다 떨치고 20년을 제주에 은거하며 궁핍하게 살면서도 오로지 사진에만 몰두한 사람. 루 게릭이라는 치료약조차 없는 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갤러리를 만든 사람. 이런 그의 사연만으로도 눈물나게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김영갑의 사진에 감동을 받는 건 그의 지극한 제주 사랑이 사진 너머로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제주의 바람과 안개를 화면에 고스란히 담아낸 그의 사진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무언가 특별한 느낌이 있다. 제주에서 느낀 물기 머금은 공기와 안개, 소금기 섞인 바람... 그 느낌을 그대로 담은 그의 사진이 나는 마냥 좋았다. 아마 이젠 다시 찾기 어려운 제주의 원초적이고 투박한 아름다움이 그의 사진에 남아있기 때문에 더 마음이 끌렸던 건 아닐지. 그는 가난한 예술가의 생활을 가감없이 담담하게 이 책에서 풀어놓는다. 그가 제주에서 어떻게 생활하였고,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는지, 또 갤러리는 어떻게 세웠는지, 루 게릭병과 싸우는 과정은 어떠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면, '제주가 뭐라고, 사진이 뭐라고' 라는 생각도 잠깐 들지만.. 그가 남긴 사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아... 이래서 예술에 미치는 거구나. 예술 하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늘 극한으로 내몰았던 그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다만 안타깝다거나 애처롭다거나 하는 동정의 시선을 그가 원하진 않았으리란 것, 작품 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그 속에서 감동을 받길 원했으리란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사진에 관한 이야기 외에 그가 함께 한 제주 사람들 이야기도 따뜻하고 편안하다. 아쉬운 점을 딱 하나 꼽자면 그의 작품 특성상 파노라마 형태의 긴 사진이 담긴 것이 많은데 두 페이지에 걸쳐 싣다보니 몇 작품은 가운데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그의 생전에도 망가져서 버린 필름이 많다는데, 그의 작품이 잘 보존이 되었다면 얼마나 많은 수작들을 또 볼 수 있었을지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바람처럼 와서 바람처럼 떠난 사람. 제주의 바람과 안개를 붙들은 사람. 김영갑을 추모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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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초에 가족여행으로 제주도에 갔더랬다. 여러 번 갔기에 되도록 처음 가는 곳으로만 일정을 짰다. 그 중의 한 곳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아담하게 자리잡은 폐교 자리에 갤러리가 세워져 있었다. 루게릭병에 걸린 그가 병든 몸을 이끌고 손수 만든 갤러리라 했다. 그 곳에 또 하나의 제주가 있었다. 바람, 오름, 바다, 나무, 구름, 풀 , 햇살, 파도, 하늘, 돌담, 꽃 그냥 아무말 없이 사진만 지켜봤다. 다른 관람객들도 거의 말이 없었다. 사진을 찍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다른 갤러리 갔으면 못찍어서 안달이었을텐데 그냥 바라만 보다가 그래도 못내 아쉬워 2~3장 찍은 걸로 기억된다. 김영갑...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갤러리 두모악에서 만난 그는 너무나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구입했다. 오늘 비로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사진을 전혀 모른다. 좋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찍고 싶은 마음이야 있지만 경제적 비용을 탓하고, 시간을 탓할 뿐이다. 그런데도 두모악에서 본 그 풍경 사진은 묘한 울림을 주었다. 이렇도록 치열한 삶을 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책을 펴기 전에 가진 당연하고도 큰 물음이었다.
책은 1.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2.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1985년부터 제주도에 정착한 후의 삶이 기술되어 있다. 오직 필름과 인화지 값을 생각하고 먹는 것, 자는 것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던 시절, 뭍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제주도에서 방을 얻기부터가 힘이 들었고 그들과 동화되는 것을 더욱 힘들었던 이야기,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버려야 했던 수많은 필름들, 제주도에서 만난 수많은 노인네들과 마라도에 살았던 두 아이에 얽힌 이야기, 끝내 불효자로 남은 자신이기에 가슴에 한이 되어버린 어머니,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와 내면의 생각들. 그리고 형제들과 지인들,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불안과 초조, 그리움과 슬픔을 달래기 위해 바느질에 몰두하는 자신의 현실까지 그냥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작업, 혈육도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는 냉정함을 넘어서는 장인 정신,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찍고 인화하는 고행의 작업들, 전기세가 아까워 불을 때지 못하고 길가의 무, 고구마 따위로 끼니를 때우며 오직 찰라의 황홀만을 좇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두렵기까지 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자신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가? 어디에나 존재하는 아름다움이지만 자신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바람 속에서, 추위 속에서, 허기 속에서, 질시와 비아냥 속에서 묵묵히 제주도의 산야를 응시하는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숙연해진다...
2장은 가슴으로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이후의 투병기가 중심이다. 여전히 그는 혼자다. 누구도 곁에 두지 않는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하지만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그냥 자연적인 치유를 선택하는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는다. 마음과 따로 노는 몸을 이끌고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고 절망의 끝에서 또 다른 새로운 길을 찾는다. '힘들고 불편해도 허락된 오늘을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이 평화롭다'고 한다. 루게릭병,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고 사라져 결국 자신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병. 그는 루게릭병에 걸려서도 내가 죽고 나면 덩그러니 남을 사진과 필름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진에 모든 것을 걸고 오직 사진만을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혈육에게조차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들에게 뭐 하나 해 준게 없기에 손을 내밀지 않는 극도의 자존심. 하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형제와 헤어지면서 사랑한다 말하고 싶지만 눈물이 흐를까봐 차마 말하지 못한, 그들과 헤어진 후에야 비로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 '어쩌면 저렇게 지독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었구나' 하고 어이없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책에는 그의 많은 유작들이 실려 있다. 제주도의 풍경들. 그가 사랑한 제주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냥 바라만 본다. 갤러리 두모악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날을 그 자리에 섰을까? 얼마나 심한 허기를 견뎠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그가 될 수 없기에... 다만 자그마한 책자 속에 담긴 그의 영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밖에...
자전적 에세이를 읽다보면 원인모를 거부감이 들 때가 있다. 뭐랄까...불현듯 읽히는 자기과시? 하지만 이 책에는 그것이 없다. 아니 있다. 하지만 처절하기에 거부감보다는 동정심이, 안타까움이,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경외감이 든다. 묘한 일이다.
언제 또 제주도에 갈 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때 제주도를 방문하더라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거치지 않고 육지로 돌아오는 일은 없으리라. 뭍사람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제주도를 사랑했던 그를 다시 만나고 오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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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하나만으로 사진기 달랑 하나만 가지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제주도에 바친 사람이 있다. 그는 김영갑. 평생 어느 것하나 제대로 소유해 보지 못했지만, 그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떻게 하면 오롯이 사진으로 닮아낼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예술혼을 불태운 사람.루게릭병에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자신의 제주도와 사진에 대한 열정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
이 책을 읽으며 열정있는 삶과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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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고마운 동료가 있었다. 사진을 좋아한다 했더니 무심코 주듯 책 한 권을 주었다. 한참 두었다가 읽었는데, 외롭고 열정적이고 진실한 사진가의 이야기와 사진들이 담겨 있었다. 언제 제주에 가면 여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십년이 지난 것이다. 김영갑갤러리에 가보지 않아도 가본 느낌을 주는 책이니 추천하지만, 가기 전후 본다면 더 좋을 책이다. 사진에 대해 모르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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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입니다. 사진작가의 에세이라고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감동을 준 책입니다.
김영갑 사진작가는 1985년에 제주도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제주도의 풍경과 근처 섬, 마라도까지 제주도를 마음 깊이 사랑한 분입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지내며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에 있는 남의 밭의 작물들을 캐서 먹었습니다. 그렇게 사진에만 미쳐서 살아가던 그에게 몸이 조금씩 말썽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영양실조 아니면 풍토병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워낙에 가난했고, 전기가 아까워 일인용 전기장판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니 몸에 문제가 생긴 것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답니다. 병원을 찾아갔으나 의사들은 간이 나빠서, 기력이 허해서, 장이 상해서 등의 여러 소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다 삼 년 넘게 작가를 괴롭히던 통증의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이른바 루게릭 병으로 길어야 오 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알려진 병입니다. 치료 약도 없는 퇴행성 질환이지요. 그때부터 루게릭 병과 작가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이런저런 치료를 하고, 음식도 가려먹고, 서울의 큰 병원에 매주 치료를 받기도 하는 등의 수고를 들였지만 몸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작가는 사진 갤러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저 오늘 하루만, 한 주만, 한 달만,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만 해볼 생각으로요. 죽을 넘기기도 힘에 부치는 몸으로 사진 갤러리를 감독하고, 꾸미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시골 마을 폐교를 이용해 2002년 여름 공사를 시작한 지 일 년 만에 '김영갑 사진 갤러리 두모악'을 완공했습니다. 전시 공간이 완성되고, 앞 공간을 정원 겸 산책로로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갤러리가 완성되자 주위 사람들은 누가 찾아오겠냐며 걱정했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제주의 아름다움에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작가에게 내일이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허락된 것은 오늘 하루, 그 하루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으면 된답니다. 그러다 보면 아픔도 잊힌다고요.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통증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통증을 잊으려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또 다른 하루가 허락되면 또 다른 일을 찾습니다.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오늘도 어제처럼 편안합니다. 하루가 편안하도록 오늘도 하루에 몰입하는 작가. 그의 열정과 사랑이 자신의 갤러리 두모악에 사진으로 풍경으로 남았습니다.
여유가 있어 사진 찍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줄이고, 필름과 인화지를 샀고, 그것마저 살 돈이 없으면 막일을 해서 돈을 모아 샀습니다. 그렇게 제주도를 찍고 인화한 작품으로 매년 사진전을 열었고, 그곳엔 사진작가도 없고, 제목도 없습니다. 그냥 사진만 있을 뿐이죠. 그렇게 10년을 넘게 사진에만 미친 김영갑 작가가 루게릭 병으로 아플 때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사진 갤러리를 만든 일입니다. 그전까지 망설였지만 이제부턴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갔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일 없이 말이죠.
'몸이 점점 굳어가도 해야 할 무언가가 있는 하루는 절망적이지 않다. 설레는 가슴으로 내일을 기다리면 하루가 편안하게 흘러간다.' (p.240)
작가처럼 이렇게 미친 듯이 몰입할 그 무언가가 있었는지,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찾아보렵니다. 이제 제주도를 가면 꼭 가야 할 장소가 생겼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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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4년을 살면서 가장 많이 갔던 곳이 김영갑 갤러리이였다. 처음엔 갤러리의 따뜻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제주 사진에 마음이 끌렸는데, 이 책을 본 이후론 김영갑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오름. 숲. 구름. 비. 바람을 사랑했던 사람. 사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 제주의 자연과 사진이 전부였던 사람. 제주의 자연이 훼손되는 아픈 현실. 제주제2공항건설 추진 반대!!! 지금이라도 제주의 자연이 보존되길 바랍니다.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 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 (P. 37) “시인들은 일상의 평범한 언어로 시를 창작한다. 시인들은 평범한 주변의 이야기들을 아주 쉬운 언어로 새롭게 승화한다. 시인들이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움을 표현하듯, 나도 눈에 익숙해진 평범한 풍경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P.129-130) “사시사철 똑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카메라, 동일한 방법, 동일한 목적으로 촬영해도 사진가마다 사진이 다르다. 어떤 순간이나 이미지를 상상하고 원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쉽게 기다림에 대한 보상받을 수도 있고,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상상력이 빈곤한 사진작가는 작업을 적당히 마무리하기 위해 기술적인 장치에 의존한다. 자연을 소재로 하는 풍경 사진도 작가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킬 수 있다. 우연히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지만 철저한 준비 뒤에 얻는 사진의 감동을 따라갈 수는 없다.” (P. 144) “떠나는 사람들은 떠난 뒤에 가끔 섬을 그리워하지만, 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단조로운 생활에 사람이 늘 그립다. 늘 혼자인 나는 외로울 때가 있다. 육지에서 온 손님이 떠난 뒤에는 한동안 사람을 그리워하며 산다. 바쁜 도회지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겠지만, 한가롭게 지내는 나는 손님들과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이 한동안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정처 없이 떠돌곤 한다.” (P. 149) “자연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자연 속을 맴돕니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동안만은 아무리 작은 욕심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P. 166) “내가 사진을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리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셔터를 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한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똑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은 같은 계절이라도 날씨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다. 사람의 감정이 고여 있지 않고 늘 변화하듯, 자연도 순간순간 모습을 달리 보여준다. 그러기에 일 년 열두 달 같은 장소에서 바라보아도 늘 새로운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의 조화란 그렇듯 오묘하고 경이로운 것이다.” (P. 180-181) “찾아보면 돈이 없어도 즐길 거리는 곳곳에 널려 있다. 철 따라 피어나는 야생화와 곤충, 나무, 돌...자연의 모든 것이 나의 동무였다. 그것들이 싫증나면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들판으로 오름으로 바다로 흘렀다. 흐르다 보면 가슴 벅찬 감동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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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주도에 여행 가서 김영갑 갤러리에 다녀왔는데 아름다운 제주도의 사진들이 참 인상적이었다. 찾아보니 이분의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이 있어 고민하지 않고 바로 구입하였다. 제주도가 이렇게 상업적으로 무분별하게 개발되기 전부터 유명하지 않은 관광지까지 구석구석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분의 제주도에 대한 사랑이 절로 느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진들을 남겨주셔서 참 감사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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