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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12년-선량한 사람도 제도가 만들어낸 또 다른 노예가 될 수 있어
"노예12년-선량한 사람도 제도가 만들어낸 또 다른 노예가 될 수 있어" 내용보기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해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이 쓴 <톰아저씨네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은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와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미국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당시 미국은 공업이 발달해 값싼 흑인노동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북부와 목화, 사탕수수 등 농업의 발달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한 남부
"노예12년-선량한 사람도 제도가 만들어낸 또 다른 노예가 될 수 있어" 내용보기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해리엇 비처 스토우 부인이 쓴 톰아저씨네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은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와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미국 남북 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당시 미국은 공업이 발달해 값싼 흑인노동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북부와 목화, 사탕수수 등 농업의 발달로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한 남부가 노예제를 두고 19개의 비노예주와 15개의 노예주로 나뉘어져 있었다. 북부의 지도자였던 링컨이 톰아저씨네 오두막집에 감명을 받아 스토우 부인을 초청한 자리에서 생각보다 작고 왜소한 스토우 부인을 보고 당신이 남북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요?”라고 말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톰아저씨네 오두막집이 평등사상을 가진 백인에 의해 기술된 소설로 휴머니즘적 가치를 짙게 풍기는 책이라면, <노예12은 자유인에서 노예로 살며 겪었던 채찍의 공포를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려내 인간이 만들어낸 비인간적 제도의 참상에 더욱 초점을 두고 있는 대필 자서전이다.

 

 

12의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흑인)은 노예 자유주인 뉴욕 시민으로 아내와 아들, 딸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다. 바이올린 연주에도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던 노섭은 어느 날 공연을 미끼로 다가온 두 명의 백인 남자에 의해 납치되어 노예주인 남부에 팔려가 이후 노섭이라는 이름 대신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넓은 영토에 목화밭과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남부의 농장주에게는 당시의 노예 판매금지법이 오히려 자유인을 납치해서라도 노예로 부리게 되는 편법으로 작용하게 되고, 이에 노섭과 같은 희생자가 부지기수로 발생하게 된 것이다. 한순간에 가족과 이름을 잃은 채 처참한 가축인간으로 살아야했던 노섭은 자신이 본래 자유인이라는 주장이 혹독한 매질과 감금으로 이어짐을 깨닫는 순간부터 입을 닫고는 충실한 노예로 지내며 탈출 기회를 엿보며 살아간다. 제목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 12년 간의 억울한 노예 생활을 이겨낸 노섭은 인내와 용기, 신념과 지혜를 발휘해 결국 자유인의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은 그가 자유인의 신분을 되찾는데 도움을 준 헨리 노섭의 제안으로 이루어졌으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대필 자서전 성격이 강한 만큼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야기는 비록 노섭 본인이 아닐지라도 19세기 노예상인부터 영문도 모른 채 팔려온 흑인노예와 노예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의 한 단면과도 같다.

노섭 자신이 당시 노예들의 생활을 가축인간으로 표현했을 정도로 대부분의 노예주는 흑인노예를 감금과 폭행, 폭언 등 인간 이하의 대상으로 무자비하게 다루었으며, 노섭 역시 첫 번째 주인인 포드를 제외하고는 두 번째 주인인 티비츠와 세 번째 주인인 엡스에게서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노섭과 마찬가지로 자유인 신분에서 노예로 팔려온 일라이자는 그녀의 아들, 딸이 서로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는 바람에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야위어가다 끝내는 주인들의 눈밖에 나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밝은 성격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흑인 노예 페치는 바이유 뵈프의 잔인한 주인 엡스에게 욕정의 대상이요, 그 아내에게는 질투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지라 둘 사이의 희생물로 웃음을 잃어가는 모진 삶을 살아간다.

에는 플랫으로 살아야 했던 그가 노예 생활 중 경험한 목화밭과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재배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부분이 있는데 비참한 노예제의 실상은 물론이요, 당대의 농업 기술과 생활문화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19세기 남부의 목화 재배에 관한 사료로써도 꽤나 유용할 것 같다. 물론 그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채찍의 공포에 시달리며 하루 목화수확량을 채워야했던 그들의 비명 소리이겠지만.

날카로운 채찍질 소리와 그보다 더 날카로운 노예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남부의 목화밭과 사탕수수 농장은 더 이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풍요로운 남부 풍경만으로 남지는 않을 것 같다.

을 읽다보니 독서의 초점이 '자유를 되찾기 위한 노섭의 끈질긴 의지'에서 '노예제의 폐단'으로 이어지더니 최종 종착역은 '제도의 노예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로 이동해가면서 부분 부분 궁금한 부분이 생겨났다.

그중 노섭이 여러 차례 강조하듯 말한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관한 미국의 독립 선언서 내용이 궁금해 찾아보니 핵심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177674일에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문의 내용은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대한 이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건국이념을 만들었던 당시의 이상주의자들은 인도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노예12에서 플랫의 첫 번째 주인이었던 윌리엄 포드가 이와 유사한 인물이 아닐까? 인간적이고 신사적이며 신앙심이 깊어 노예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던 포드조차도 노예제라는 뿌리 깊은 관습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모순을 지닌 백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섭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 노예소유자가 잔인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그가 몸담고 있는 체제의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채찍은 노예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 배우기 때문에, 그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된다.(p200)'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인간이 만든 제도와 체제의 굴레는 당대만이 아닌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고로 ​참으로 신중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독자로서 이 부분에 특히 방점을 두는 글로 마무리하는 것은 아무리 선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관습의 힘과 제도적 환경에 대해서는 무비판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을 읽고 있을 무렵 사회적으로는 전남 신안염전 현대판 노예가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며 한동안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현대판 노예를 다룬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시공간을 초월해 수법의 잔인성과 비인간적 학대, 폐쇄적이고 고입된 환경을 이용한 온 마을의 감시 체계 등은 <노예12>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인 '노예제'는 이미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돼 후세대에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명과 자유와 평등에 대해 그 부당함과 잔인성을 이성적인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하여 야만보다는 문명에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과거의 노예제는 분명 인류차원에서 부끄러운 행태로 남을 것이 자명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음성적인 노예제가 자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종종 목도하게 된다.

현실적인 필요는 관념적인 이상을 쉽게 무너뜨리​며, 심리적으로는 거부감이 있을지언정 현실적으로는 소극적 동조자로서의 모습을 취하게 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플랫'이 노예로 지냈던 남부의 루이지애나는 개인 소유로써의 노예 개념보다는 주 전체가 노예를 감시, 감독, 처분하는 공적 관리체계로 똘똘 뭉친 집단소유로써의 개념을 보임으로써 노예제를 더 공공히 만드는 효과를 가져오게 한다.노예 탈출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결정적인 덫은 마을 전체가 노예제를 위해 협력하는 집단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안 염전 노예들의 사례 역시 마을주민은 물론이요, 지역 공무원조차 이들을 탈출을 감시하고 방해하지 않았던가?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모두가 누리기 위해서는 감정적 공분을 넘어 부당한 시스템에 저항하고 함께 바꿔가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라야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드니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개인의 역할에 더욱 큰 책임을 느끼게 된다. ​ 

y*****m 2014.03.13.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예 12년》 '인간답다'는 것에 대한 아픈 진실.
"《노예 12년》 '인간답다'는 것에 대한 아픈 진실."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소설 원작을 읽기 전에 스티브 매퀸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  인상적인 장면이 꽤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여운이 남았던 장면은 솔로몬이 만난 여러 주인 중에 온정적인 주인이었던 포드의 아래에 있었을 때의 한 씬 이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농장주의 환심을 샀다고 분노하는 백인 감독이 플랫에게 시비를 걸다 그에게 두들겨 맞자, 동료들
"《노예 12년》 '인간답다'는 것에 대한 아픈 진실."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소설 원작을 읽기 전에 스티브 매퀸 감독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  인상적인 장면이 꽤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여운이 남았던 장면은 솔로몬이 만난 여러 주인 중에 온정적인 주인이었던 포드의 아래에 있었을 때의 한 씬 이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농장주의 환심을 샀다고 분노하는 백인 감독이 플랫에게 시비를 걸다 그에게 두들겨 맞자, 동료들을 데려와 그를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다. 다행히 감독보다 윗사람인 감독관이 재산보호 차원에서 그를 막아 목숨은 건지게 되지만, 농장주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그대로 나무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 장면은 꽤 긴 롱 테이크로 이어지는데, 솔로몬은 다리가 간신히 발끝만 땅에 닿은 채 목이 매달려 버둥거린다.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그 불편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애처롭게 그의 목숨이 매달려 있는 동안 다른 노예들은 일상의 일과를 그대로 이어가고, 그의 등 뒤로 아이들은 천진하게 뛰어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선한 농장주의 호의를 받으며 잠시나마 자유인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솔로몬의 의지가 완전히 꺽어버리는 장면이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이렇게 끔찍한 노예제도가 자행되고 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너무도 평화로운 일상이 펼쳐지고 있던 세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여전히 나는 한낮의 태양 아래 서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낡이 밝기 훨씬 전부터 빵 한 조각도 먹은 게 없었다. 통증으로, 또 갈증으로, 또 배고픔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그날처럼 태양이 하늘에서 그렇게 느리게 움직인 적이 없었고, 그날처럼 태양이 그렇게 뜨겁고 사나운 햇살을 퍼부은 적이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혼미한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왔다-을 했는지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긴긴 하루 동안, 자기 주인 밑에서 먹고, 입고, 채찍질당하거나 보호받는 남부의 노예들이 북부의 자유로운 흑인들보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만 말해 두겠다.

 

이 작품은 자유로운 뉴욕 시민이자 바이올리스트였던 솔로몬 노섭이 워싱턴 시에서 1841년 납치되어 루이지애나의 레드 강 근처 한 목화 농장에서 1853년 구출되기까지의 12년 동안의 일을 담고 있다. 단순히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예의 수난만 다룬 게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 주는 풍부한 소재와 묘사들이 넘쳐 소설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게다가 최근에 국내에서도 비슷한 뉴스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었다. 지난 2월 전남 신안군에 있는 외딴 섬에서 현대판 노예인 일명 '섬 노예' 2명이 구출되는 일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지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이었다는데,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심했었다. 지적 장애인인 채 모씨는 10여 년을 넘게 공사판에서 일일 노동자로 일을 하고 노숙생활을 하다가 직업소개소 고씨의 꾀임에 넘어가 신안 염전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염전 주인인 홍씨는 5년을 넘게 그에게 월급은 한 푼도 주지 않은 채 쇠파이프로 구타하기도 하는 등 매일매일 노예처럼 부렸다고 한다. 다른 한명인 김모씨는 카드 빚 때문에 노숙생활을 하던 중 역시 고씨의 꾀임에 넘어가 섬으로 왔고, 그들은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했다고 한다. 19세기 초의 노예제도가 비단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21세기에도 버젓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니, 뉴스를 보면서 더욱 솔로몬 노섭이 겪었던 경험들이 생생하게 다가와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다.

 

불행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상의 슬픔이 끝나려 할 때 죽음에 대한 명상-지치고 힘든 몸을 위한 안식처로서의 무덤에 대한 명상-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자꾸 거기에 빠지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명상은 위기의 순간에는 사라진다. 죽을힘을 다하는 사람은 무시무시한죽음의 대왕앞에서 두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생명은 소중하다.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도 생명을 위해 싸운다. 그 순간 나에게, 노예가 되어 학대 받는 나에게 생명은 소중했다.

 

자유인 솔로몬과 노예 플랫이라는 두 사람의 삶을 살았던 한 흑인 남자의 마치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그렇게 '실화'라는 임팩트 만큼이나 문학적인 가치를 남겨준다. 솔로몬은 일자리를 구해준다는 두 명의 백인에게 속아 워싱턴으로 갔다 납치되어 노예상에게 팔린다. 그리고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12년간 노예라는 굴레가 씌어진 채 살게 된다. 물론 악덕 백인 주인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온화하고 인정 많은 포드 주인 밑에서도 있었으나, 결국 그도 솔로몬을 지켜주지는 못한다. 그 역시 독자인 우리처럼 무기력한 역사 속의 방관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노예 주인들이 모두 악한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선한 사람도 노예제 아래에서 무책임한 절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얼마든지 악인이 될 수 있고, 악한 사람이라고 종교적 혹은 도적적 감화에 따라 선인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 모두 플랫을 비롯한 흑인노예들의 고통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만,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소설을 읽으면서도 역시 등장인물들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그들의 고통을 그저 지켜보는 방관자의 느낌이 크게 들어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그가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것은, 천신만고 끝에 플랫이 솔로몬 노섭의 이름과 신분으로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고통을 탈출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것으로 그저 해피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노예상인들을 법정에 고소했지만, 그들은 솔로몬이 자유인 신분임을 몰랐다고 변명함으로써 무혐의로 풀려난다. 이후 솔로몬은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 강연과 연설을 하던 중 행방 불명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의 사망 연도나 원인은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간과하면 안 되는 부분은, 한 사람의 드라마틱한 삶과 탈출 서사가 아니라, 끝없는 고통을 견디며 노예로 살았던 이들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무능, 방관자로서의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r*******n 2014.03.31.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오직 자유만을 향한 시간, 12년
"오직 자유만을 향한 시간, 12년" 내용보기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다. 어떤 경우에라도 인권을 침해하고 유린해서는 안 된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간이 인간을 소유물로 삼는 잔혹한 행위는 소설로도 만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다. 한데 12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2014년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다.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12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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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누구나 존엄한 존재다. 어떤 경우에라도 인권을 침해하고 유린해서는 안 된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간이 인간을 소유물로 삼는 잔혹한 행위는 소설로도 만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다. 한데 12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사람이 있다. 2014년 제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이다. 영화의 원작인 이 책은 12년 동안 노예로 살았던 솔로몬 노섭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노섭은 아내와 세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뉴욕에 살았다. 1841년 미국의 뉴욕엔 노예제는 없었다. 그러니 솔로몬 노섭은 흑인이었지만 분명 자유인이었다. 그런 그가 단 하루 만에 자유인 솔로몬 노섭이 아닌 노예 플랫이 되었다. 일자리 주선을 핑계로 접근한 이들에게 납치되어 노예 수용소로 보내진다. 노섭은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거센 구타뿐이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었고 그는 플랫이 되어 포드에게 팔려간다. 노예의 삶은 시작되었고 노섭은 자유를 찾아 가족으로 돌아갈 희망을 위해 살아간다.

 

 책은 노예 플랫으로 살아온 12년을 순차적으로 그려낸다. 노섭은 자신이 경험한 그 시간, 인간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여러 곳으로 팔려가야 했던 참담한 삶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고통스러웠던 시간, 함께 생활했던 노예들의 실상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1840년대 미국 남부 백인들의 사고와 벌목지, 목화밭, 사탕수수 밭 등 그가 머물렀던 농장의 지리나 환경을 묘사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을 감행했지만 다시 붙잡혀 매질을 당하는 이들에게 자유는 잡을 수 없는 꿈이었다. 누구라도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의 거친 분노와 슬픔의 절규를 느낄 것이다.

 

 ‘동트기 전부터 잠잘 시간까지 채찍의 날카로운 소리와, 노예들의 비명은 엡스의 농장에서 목화 따는 시기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들린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다.’ 177쪽

 

 설령 체험이라 해도 단 하루도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의지대로 판단하고 자유롭게 살아온 노섭이다. 이토록 참혹하게 플랫으로 살아야 했던 시간, 그를 견디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주인의 눈을 피해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는 가족 같은 노예들, 자신의 재산인 노예의 마음을 처지와 마음을 인정하고 대한 착한 주인들, 비인간적인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소수의 백인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플랫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험을 감당한 채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캐나다 사람 배스가 그렇다. 

 만약, 플랫의 말을 들어준 배스가 없었더라면 그의 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솔로몬 노섭이 아닌 플랫으로 고난으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무참하다. 이처럼 글로 만나는 일도 매우 힘든데 영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대면하는 건 더욱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궁금한 장면이 있다. 노예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시간 크리스마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플랫의 눈에 비친 풍경이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들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들의 검은 얼굴이 순수하고 기쁨 넘치는 행복으로 환하게 밝혀진다. 검은 피부색과 대조를 이루는 상아색 치아들은 기다란 탁자 전체에 길고 하얀 두 개의 줄을 만들어 보인다. 수많은 눈들이 풍성한 판자 위를 황홀하게 돌아간다. 키득거리는 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 칼과 포크와 질그릇이 딸각거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209쪽



r*********s 2014.03.16.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노예제도에 대한 참혹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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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도용 금지*     작년 나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과 노예 문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실화를 다룬 영화이기에 그 아픔이 더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분노하게 만드는 주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영화 <노예 12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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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도용 금지*

 

 

작년 나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라는 영화를 봤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과 노예 문제를 다루고 있었는데, 실화를 다룬 영화이기에 그 아픔이 더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언제나 분노하게 만드는 주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영화 <노예 12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던 날, 나는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책을 먼저 읽지 않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양한 출판사에서 원작을 출간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미 다른 출판사의 책을 통해 먼저 <노예 12년>을 만났고, 연달아 이번에는 <열린책들>의 번역으로  읽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출판사를 달리해서 만나려고 한 것은 다른 고전을 읽을 때 같은 내용임에도 출판사에 따라 번역에서 주는 느낌이 꽤나 다르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중점을 둔 것은 영화와 원작과의 비교, 다른 출판사와의 번역의 비교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번역의 비교를 위해 두 책을 펼쳐 놓고 차이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을 다시 읽어 보면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 두 출판사의 번역에서 주는 느낌이 다른 부분이 많았고, 심지어 미묘하지만 차이를 보이는 번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열린책들의 책에서는 좀 더 자세한 번역과 해설이 눈에 띄었다. 이전의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집자 서문'을 만날 수 있었고, 이야기 중간중간 모르는 부분을 독자에게 좀 더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고, 특히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 흐름에 따라 있었던 중요한 일들을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이 큰 차이로 다가왔다. 또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을 표시하는 데에서도 차이가 나는 부분이 많았는 데, 이 리뷰에서는 열린책들을 기준으로 한다.

 

자유인으로 태어나, 자유 주에서 30년 넘게 자유의 축복을 누리고 살았던 솔로몬 노섭은 노예 상태로 12년을 살아오다 자유의 품으로 돌아온 이후, 여러 주에서 커져가는 노예제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직접 목격한 것, 경험한 것에 한해서 노예제의 실상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자신이 목격한 것에 한해서만 이야기한다는 이 말이, 소설보다도 더 현실에서 잔혹한 노예제의 문제점을 독자들에게 더 와 닿게 한다.

 

솔로몬 노섭의 아버지는 노예로 태어났으나 근면 성실함으로 존경을 받으며, 자식들에게 같은 조건의 아이들이 받는 수준을 뛰어넘는 교육을 시키고, 선거권을 얻을 만큼 재산을 불렸다. 그리고 노예라는 신분에서 자유인으로 신분을 바꿀 수 있었고, 솔로몬은 태어났을 때부터 노예가 아닌 자유인의 신분이었다.

 

나는 북부의 자유로운 공기를 숨 쉬며 살아왔던 터라,

내 가슴에도 백인들의 가슴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 p. 33

 

앤 햄프턴과 결혼을 하고 농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세 아이를 낳으며 바이올린 실력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던 솔로몬은 행복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일자리를 구하던 중 서커스에서 일한다는 메릴 브라운과 에이브럼 해밀턴이라는 두 남자를 만나면서 그가 지금껏 자유인으로 지내온 그 행복이 끔찍한 노예의 삶으로 변하고 만다.

 

친절하게 솔로몬에게 접근했던 두 사람을 만난 후 자유인 증명서도 사라진 상태에서 납치가 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노예상인 버치는 자유인이라 주장하는 노섭을 향해 채찍질로 대응했다. 그가 갇힌 노예 수용소는 자유와 평등을 자랑하는 의원들이 있는 의회 의사당 근처. 그곳에 자유를 뺏긴, 이제는 노예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솔로몬은 자신이 노예가 아닌 것이 증명만 되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아아! 그때까지 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인간이 탐욕을 좇아 어느 정도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 p. 53

 

그 작은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결국 다른 사연들로 함께 수용소에 있었던 노예들과 노예제가 시행중인 남부 리치먼드로 팔려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첫 주인인 침례교전도사인 윌리엄 포드를 만나게 된다. 포드에 대해 솔로몬은 다정하고 고결하며 노예 생활의 밝은 면만 바라볼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한다. 단지 포드처럼 다정한 사람이 노예제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노예제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는 해악을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는 인간의 도덕적 권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른 환경, 다른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다면, 그의 의식은 틀림없이 달라졌을 것이다, - p.95

 

그렇다.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잘못된 제도도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게,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포드에게 충심을 다하려는 노섭은 포드의 재정이 악화되며 포드와 정반대인 티비츠에게 팔려가고 만다. 이 순간은 노섭에게 있어 가장 불행한 날이었고 목숨을 빼앗겨 버릴 일들도 겪는다. 그리고 티비츠는 이제 노섭의 마지막 주인이 될 에드윈 엡스에게 솔로몬을 판다. 여기서 노섭은 목화밭과 사탕수수 밭을 오가며 노예가 겪어야 할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모두 겪는다. 엡스를 주인으로 모시는 동안 두려움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태로 존재하는 노예제가

그들이 지닌 인간적이고 훌륭한 감정들을 야수화 시키는 경향이 있다 - p.199

 

노예 소유자가 잔인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그가 몸 담고 있는 체제의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 내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 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채찍은 노예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가 쉽지 않게 된다. - p. 200

 

노예제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체제의 문제로 바라보는 노섭은 어른의 아버지가 잔혹하게 노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이 노예들의 고통과 슬픔에 무감각해지고, 당연한 듯 노예를 학대하는 인성으로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도 지켜본다. 자유인에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어 버린 노섭은 잔혹한 노예 생활에서 구해 줄 자신을 위해 위험도 무릅쓰는 배스를 만나고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한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자유인이었던 그를 납치한 자들에 대해 죄가 인정되지 않고 오히려 노섭이 고소를 당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마지막까지 분노를 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 인종차별과 고통받고 있는 노예들의 생활상을 실제 그 모든 것을 겪은 솔로몬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얼마만큼 잔혹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잔혹함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받아들인 상황들이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도 없게 만든다. 인종 차별이나 노예제도가 아직까지 행해지고 있음에 현재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니 역시나 영화에는 생략된 부분이나. 책에서 보다 더 강조된 부분이 있었고, 영화에서 있었던 장면이 책에도 있지만 인물은 다른 사람인 경우도 있었다. 또한 영화에서는 솔로몬이 시도했던 몇 번의 탈출계획이 생략되어 있기도 했다. 책을 통해 영화에서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기에 역시 영화보다는 원작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출판사의 경우도 각각 번역이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고, 아예 다른 내용으로 각각 차이를 보이는 번역 부분도 있었다. 어쩌면 책의 맥락상 그냥 넘길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가 있다. 하지만 솔로몬이 자신의 입으로 사실임을 밝히기 위해 실제 인물의 이름이나 지역의 이름까지 밝힐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데, 똑같은 내용에도 번역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혼란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열린책들의 번역이 좀 풀어놓은 느낌이 있고, 그래서 약간 매끄럽게 넘어가는 것보다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영화와 다른 번역의 책을 만나면서 개인적으로는 깊이 있게 만나게 된 작품이었다.

 

 

 

 

 

 

s****g 2014.03.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의 욕망과 그 피폐한 진실에 관해서, 노예 12년
"인간의 욕망과 그 피폐한 진실에 관해서, 노예 12년" 내용보기
아르's Review      동일한 책을 이렇게 연달아 읽은 적도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이미 읽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읽는 이들을 보면서 ‘책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과 ‘구태여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에 각기 다른 출판사, 각기 다른 번역자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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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동일한 책을 이렇게 연달아 읽은 적도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이미 읽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읽는 이들을 보면서 책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과 구태여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에 각기 다른 출판사, 각기 다른 번역자를 통해서 번역된 것을 읽어보니, 이렇게 읽는 다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미와 서로를 비교해서 읽는 재미, 그리고 원문을 번역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작품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배울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나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발간된노예 12은 이전에 읽었던 책에 비해서 원만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기도 하거니와 문체 역시 이전의 것들보다는 훨씬 와 닿는 느낌이라서 주인공인 솔로먼 노섭에 이입되어 한층 심도 있게 이 책에 빠져 볼 수 있었다.

 평범한 한 가장의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알콩달콩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가족이 있었으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서 매일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저 오늘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그에게 어둠의 손길이 드리우는 그 순간, 만약 그가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재능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는 이 험난한 시련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순간 그의 곁에 가족들이 있었더라면 이 끔찍한 일들은 시작되지 않았을까? 라는 헛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된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이지만 그를 비롯해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노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이들에게 이제서나마 그 송구함을 덜고 싶었기 때문인 듯 하다. 그에게 펼쳐질 나날들이 얼마나 끔찍했는지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같은 인간으로서 그의 눈 앞에 펼쳐지는 시련들은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무참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신랄한 기록이었으며 그 시간을 보낸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을 일깨우게 덮을 수 없는 진실이었다. 어찌되었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서 떠났던 그의 여정은 12년 동안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으며 한 인간이 아닌 노예로서 자유나 스스로에 대한 주권이 박탈된 채 살아야만 했다.

날마다 한 번 이상 채찍질이 없이는 지나가지 않았다. 채찍질 벌은 목화의 무게를 잴 때 실시되었다. 무게를 채우지 못한 죄인은 밖으로 끌려가 옷이 벗겨진 채, 바닥에 엎드려서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 동트기 전부터 잠잘 시간까지 채찍의 날카로운 소리와 노예들의 비명은 엡스의 농장에서 목화를 따는 시기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들린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다. -본문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하기 이전에 그가 탈출하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어떻게든 저항을 해서 도망을 치든, 다른 이들에게 도와 달라는 했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를 사람이 아닌 철저히 물건이자 돈으로 보고 있는 노예상들은 노섭은 인간이기 이전에 그들에게 부를 전해주는 자원이었으며 그리하여 그가 자유인이었던 것조차 은폐시키기 위해 그를 감금하는 것은 물론 그가 자유인이라는 진실을 입밖에 꺼내기만 하려 하면 몽둥이 찜질로 다시는 진실을 말할 수 없도록 엄포를 놓고 있었다.

 자유인을 노예로 파는 행위의 위험성과 그에 따르는 처벌은 나보다도 그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자기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를 똑똑히 알고 있었고 내 입을 막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희생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생긴다면, 내 목숨은 깃털만큼의 무게도 안 나갈 것이었다. 틀림없이, 그는 자기가 했던 말 그대로 할 작정이었다. –본문

그렇다면 그가 노예로 팔려간 이후 그의 주인에게, 자신은 원래 자유인이며 납치와 감금에 의해 이 곳에 팔려 온 것이니, 노예가 아닌 나에게 자유를 달라고 고백하는 것을 어떠했을까? 노예의 주인들은 노예상에게 노예를 구입하기 위해서 몇 백에서 몇 천 달러를 지급하고서는 그들을 사들이게 된다. 참고로 노섭, 아니 플랫이 노예 생활을 하면서 14불이라는 금액을 모았을 때 그 곳에서 가장 부자인 노예로 칭송 받았던 당시의 물가를 추측해 보건대 몇 백, 몇 천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들인 노예가 알고 보니 자유인이라서 그를 풀어줘야 한다면, 노예상에게 지불했던 비용 조차도 회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은 그 비용이 고스란히 손실이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자유인이지만 노예로 속박되어 버린 그 자를 안고 있는 주인들은 자신의 손실을 감내하는 대신 더 깊숙한 오지로 그 자를 팔아 넘기는 일이 다반수라고 한다. 어찌되었건 자신이 손해를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익으로 점철된 이 모든 관계의 굴레 속에서 가장 나약한 노예들은 모든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간, 아니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무한한 채찍질과 썩어가는 베이컨과 사료용으로나 먹는 옥수수가 전부였다. 그들에게 노예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상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주인을 위해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집중해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했으며 열심히 하든 하지 않든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고와 격려가 아닌 고된 노동과 폭력뿐이었다.

 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향력과 인맥들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는 노예제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는 해악을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는 도덕적 권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이전의 조상들과 똑 같은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과 똑 같은 빛으로 사물을 보았다. 다른 환경, 다른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다면, 그의 의식은 틀림없이 달라졌을 것이다.  본문

 종교와 노예제도가 양립하고 있던 그 때의 상황을 바라보노라면 어찌하여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을까, 라며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노섭은 그 순간의 원망마저도 그들에게 돌리는 대신 당시의 시대상을 탓하고 있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내려져 오던 관습이자 관례였던 노예제도에 대해서 주인들은 스스로 참혹한 주체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주인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는데, 나는 노섭과 같이 그 암울했던 시대를 몸소 견뎌온 것도 아니요, 그 상황에 연계되어 있던 지인도 아니지만은 노섭처럼 그들을 향한 무한한 이해는 커녕 분노만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조용히 덮어두기에는 너무도 끔찍했던 시간들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다시 가족의 품 안으로 돌아왔고 당시 그를 노예로 팔아 넘겼던 이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며 그에게 채찍을 퍼부었던 주인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을 종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몇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만연해 있는, 노예라는 이름만 사라졌을 뿐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에 대한 이야기들 마주할 때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명 주인이라는 자들에게 당신에게 어떠한 권리가 주어졌기에 이들에게 이 참혹한 일들을 가하는지에 대해 물어야만 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피폐시키는 이 만행이 더 이상은 당연시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이토록 자신의 것으로 군림하며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수 많은 사람들의 입과 눈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히길 바라는 바이다.   

  

 

 

아르's 추천목록

 

『잃어버린 날들』 / 장미정저

 

 

 

독서 기간 : 2014.03.10~03.12

 

by 아르

 

 



p********1 2014.03.13.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도 인정한 영화의 원작-노예 12년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도 인정한 영화의 원작-노예 12년" 내용보기
노예의 개념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으로 없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판 노예들은 우리의 어두운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 얼마전 뉴스에 나온 섬마을에 갇혀 있었던 장애우의 노동착취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렸다. 노예의 주된 목적은 아무래도 노동을 하기 위한 인력이다. <노예 12년>은 실제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자유의 몸인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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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개념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으로 없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현대판 노예들은 우리의 어두운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 얼마전 뉴스에 나온 섬마을에 갇혀 있었던 장애우의 노동착취는 현대판 노예제라고 불렸다. 노예의 주된 목적은 아무래도 노동을 하기 위한 인력이다. <노예 12년>은 실제 노예제도가 존재했던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자유의 몸인 솔로몬 노섭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자리를 찼던 중 납치되어 노예 생활을 한 것이다. 1841년 미국 워싱턴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단지 아내와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하러 갔지만 '플랫'이라는 흑인이 되어 노예수용소에서, 목화밭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플랫은 자신의 이름인 솔로몬 노섭을 찾을 수 있었다. <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의 기록이다.

 

누군가에 의해 가족과 떨어지고 자유마저도 누리지 못하게 된 솔로몬 노섭은 자신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노예 농장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가졌을까? 장장 12년의 세월은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도 약하게 만들 수 있는 긴 세월이다. 솔로몬의 가족 역시 다른 노예들처럼 노예였지만, 자유의 몸이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자유인이었다. 분명 자유인에 성(姓, Last name)을 가진 미국시민이었다.

 

 

 

 

그런데 노섭은 백인들에게 납치되어 '플랫'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노예의 이름이었다. 갑자기 몸이 아픈 노섭의 자유인 증명서를 없앤 백인들이 노섭을 노예 수용소로 보낸다. 그리고 노예로 팔았다. 백인들은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흑인을 노예로 사고팔았고, 엄마와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으려 다른 곳으로 팔기도 한다. 아무리 노섭이 자신은 자유인이라고 해도 이미 그의 이름은 '플랫'이었다. 노섭은 뉴올리언즈의 농장으로 갔다. 땅을 일구면서도 손과 발은 사슬에 묶여 있었고 도망가지 못하게 채찍으로 때리기도 했다.

 


노섭도 점점 노예생활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12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목화밭에서 자유인이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노섭의 12년 노예생활을 보면서 백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그들의 인생을 짓밟고 빼앗았는지 잘 보여준다. 노섭 역시 오랜 노예생활로 자존감과 정체성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하얗고 순백이라 생각하는 목화밭 아래에는 노예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피흘림과 절규, 분노 등이 숨어있었다.  

   


 

이달의 사락 s********3 2014.03.03.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노예 12년]자유를 찾기까지 12년
"[노예 12년]자유를 찾기까지 12년"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영화 <노예 12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라 더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영화로는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책으로 만나봅니다. 표지의 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감히 그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해한다고 말할수는 없겠죠.      <노예 12년>은 평범한 삶을 살던 솔로몬 노섭이 12년
"[노예 12년]자유를 찾기까지 12년" 내용보기

많은 사람들이 영화 <노예 12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라 더 관심이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영화로는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책으로 만나봅니다. 표지의 손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감히 그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해한다고 말할수는 없겠죠. 

 

 

<노예 12년>은 평범한 삶을 살던 솔로몬 노섭이 12년의 노예 생활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1853년 '뉴욕 타임스' 1면에 소개되고 이후 3개월만에 책으로 출간 되었다고 합니다.

 

뉴욕 시민 솔로몬 노섭, 위싱턴시에서 1841년 납치되어 루이지애나의 레드 강 근처

한 목화농장에서 1853년 구출되기까지

 

표지에 있는 띠지의 이 한 문장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가 어느날 노예가 된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은 없고 그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 정말 처절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누구를 원망할수 있을까요. 누구 탓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아버지를 도와 농장일을 하며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솔로몬 노섭. 바이올린은 운명에 대한 고통스러운 상념들을 잊게 해준 까닭에 위안의 근원이 됩니다. 1829년 크리스마스에 흑인 처녀 앤 햄프턴과 결혼하여 엘리자베스, 마거릿, 알론조 세 자녀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1841년 그에게 이해할수 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메릴 브라운과 에이브럼 해밀턴이라 소개하는 두 사람이 솔로몬을 찾아 옵니다. 서커스단과 연결되어 있어 뉴욕까지 간다면 매일 1달러를 주고 야간 공연 연주때는 3달러를 추가로 준다고 제안합니다.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따라 나섭니다. 누구보다 친절하고 항상 솔로몬을 챙겨주는 두 사람. 일을 하지 못할때도 돈을 챙겨주니 그들을 믿지 않을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그들의 계략인 것입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해를 입힌 적도, 법을 어긴 적도 없는 뉴욕의 자유 시민이 이렇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본문 44쪽

 

이제 솔로몬 노섭은 없습니다. 이제는 노예 '플랫'만 있을 뿐입니다. 노예 상인 제임스 H.버치가 인수인에게 제출한 이름은 솔로몬이 아닌 플랫인 것입니다. 이제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정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여러 곳에 팔려가며 하루종일 일만 죽어라 합니다. 왜 맞는지 이유조차 알수 없을 정도로 채찍질에 익숙해집니다. 그에게 자유는 찾아올까요. 언제까지 이렇게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12년의 노예 생활은 정말 처절합니다. 목화밭에서 가지 하나만 부러뜨려도 25대나 맞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50대, 심지어는 500대까지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늘 도주를 생각하지만 그에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자전적 이야기라는 것에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습니다. 영화나 책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노예들의 삶이 어떠한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마주하며 흥분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분명 노예제도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나 우리들 뒤에 숨어서 이러한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혹 방송에서 나오는 그들은 솔로몬의 주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어딘가에서 솔로몬 아니 플랫처럼 자신의 권리를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유라는 이름을 가져다 주어야하지 않을까요. 더이상 이런 비인간적인 일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n******e 2014.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자유에 대한 뜨거운 열망, 지금도 어디선가 부르짖고 있을.. [노예 12년 - 솔로몬 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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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Reading                                                                                                                          ​인간이 자유를 침해당하는 사례는 현대인 지금도 간혹 일어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하고 추악한 억압 중 하나는 '노예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일본의 위안부와 나치의 학살 등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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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fter Reading                                                                                                                 
 
 
 
  ​인간이 자유를 침해당하는 사례는 현대인 지금도 간혹 일어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하고 추악한 억압 중 하나는 '노예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일본의 위안부와 나치의 학살 등을 떠올린다.) '인간'이라는 이름 하에 왜 등급이 나눠져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당신들보다 우월하다."라는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배짱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최근에 읽은 '만델라 평전'에서도 '노예제도'는 끔찍한 모습으로 설명된다. 1800년대, 미국에서 '노예 해방령'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남부의 농장 쪽에서는 오랫동안 극심한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때 아마도, '솔로몬 노섭'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북부에 살고 있던, '자유인' 증명서를 받은 흑인이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길에서 납치되어 자유를 짓밟히고 노예로 팔리게 된다.
  ​그 12년 동안의 일기가 바로 <노예 12년>이다. 그러니까, 이건 저자의 실제 경험이 담긴 에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봐왔던 노예 소설들과는  - 어릴 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등 - 다른 무언가를 전달한다. 여러 주인들을 거치면서 힘든 노동을 겪고, 거의 동물 취급을 당하는 다른 노예들을 목격한 장면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장 특별한 점은 화자의 특수성에서 나온 것인데, 태어날 때부터 고된 노동과 핍박을 받아온 여타 많은 노예들과는 달리 노섭은 자유인이었고 (흑인이었지만 법적 제도를 통해 인권을 보장받았다 ) 결혼을 해서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운하를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고, 똑똑하고 바이올린마저 멋지게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도 "자유에 대한, 백인과의 똑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가 있었다.' 그래서 노섭은 어떤 권력에의 음모로 노예가 되고,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해낸 이 책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런 정신력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크나큰 원동력이 되었다.
  ​'노예 제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장면들, 흉악한 주인이 온갖 이유를 만들어 노예들을 억압하는 장면들은 이 책 속에서도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등장하지만, 예외적인 장면들도 등장한다. 저자 솔로몬 노섭이 만난 주인들 (그를 산)의 경우, 포악하고 인간이길 포기한 주인들이 있는 반면에 몇 년 동안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었던 주인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예들의 재주를 인정하고, 적당한 노동과 휴식을 주고 인간으로서 보살핀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 굳어진 마음을 조금 풀어내릴 수는 있었지만, 여기에도 역시 의문은 남는다. 그들에게 적당한 대우를 해주더라도, 그들을 '소유하는 것' 그 자체에 인권 유린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러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려면 많은 말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제도를 행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인간적인 행동이든, 비인간적인 행동이든 '노예 제도'는 그 자체로서 야만적이고 상상하지 못할 끔찍한 제도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다.
 
  노예로서의 삶. 솔로몬 노섭이 경험하고 목격한 그들의 삶은 글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과 행실 모두에서 바람직한 여성 노예 '패치'가 인간으로서 가장 모욕적인 처벌을 받았을 때, 노섭과 동료들은 천국 - 노예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들에게는 지상낙원인 - 으로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고통이 아니며, 오히려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시련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노예 12년> 속의 '노섭'은 비로소 자유를 찾은 모습으로 결말을 맞이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를 완벽하게 되찾지 못했다. 책이 많이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어떤 강연장에서는 야유마저 받았다고 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노섭의, 책에 나온 이후의 삶을 부정적으로 추측한다. 다시 납치되어 노예로 되돌아갔거나, 가난으로 인해 죽었거나, 살해되었거나,라는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견해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이런 추측들이 난무한다. 그에게도 '자유'는 죽음으로서만 넘어설 수 있는, 높고 높은 언덕이었던 것일까.
 
  자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음으로서만 되찾을 수 있는 그들의 자유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 것인가. "잃어버리기는 너무도 쉽고 되찾기는 너무도 어려운" '자유'.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자유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왜 세상은 이토록 부조리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공평할 순 없는 것일까.
 
 
 
​  Underline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자유에 대한 비밀스러운 욕구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러 몇몇은 도주하겠다는 아주 뜨거운 열망을 표현했고, 그걸 실현할 최선의 방법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붙잡혀서 돌아가게 될 때의 처벌을 그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어떤 경우가 됐뜬 분명히, 처벌의 두려움이 그들의 시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북부의 자유로운 공기를 숨 쉬며 살아왔던 터라, 내 가슴에도 백인들의 가슴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감정과 정서가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나보다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 적어도 그중 일부와는 지능도 다를 게 없다는 걸 똑똑히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비참하게 노예로 살아간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무지했다. 아니 어쩌면 너무 독립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노예제의 원칙을 지지하거나 인정하는 법률 혹은 그런 종교의 정당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랑스레 말할 수 있지만, 나를 찾아온 어느 누구에게도 기회를 엿보라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33p)
 
  불행한 삶을 살아오면서, 여러 번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지상의 슬픔이 끝나려 할 때 죽음에 대한 명상 - 지치고 힘든 몸을 위한 안식처로서의 무덤에 대한 명상 - 이 편안하게 느껴져서 자꾸 거기에 빠지게 되는 순간들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명상은 위기의 순간에는 사라진다. 죽을 힘을 다하는 사람은 무시무시한 <죽음의 대왕> 앞에서 두려움 없이 버틸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생명은 소중하다.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도 생명을 위해 싸운다. 그 순간 나에게, 노예가 되어 학대받는 나에게 생명은 소중했다. (136p)
  ​나는 그날 하루 온종일 내가 겪은 다양한 두려움과 감정에 관해 캐물었고, 언제든 기도하고 싶은 때가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온 세상에서 버림받은 느낌이었으며, 내내 마음속으로 기도했다고 대답했다. 그럴 때면 인간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창조주를 향하기 마련이지, 라고 그는 말했다. 잘나가고, 다치거나 두려울 일이 없을 때면 사람은 신을 기억하지 않으며, 신을 부정하게 되지만, 그러나 사람을 위험의 한가운데 놓고 도움의 손길을 막아 버리고, 그 앞에 무덤을 열어 놓으면 - 그제야, 고난의 시간이 닥쳐서야, 비웃으며 믿지 않던 그 사람은 신의 품 외에는 다른 희망이나 피난처, 안전한 곳이 없다고 느끼며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150p)
  비인간적인 주인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인간적인 주인들도 있을 것이다. - 헐벗고 반쯤 굶주린 비참한 노예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잘 입고 잘 먹고 행복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목격한 그런 부당함과 비인간성을 용인하는 제도는 잔인하고 불공평하고 야만적인 제도이다. 비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또는 그렇지 않게 묘사하는 소설을 쓸 수는 있다. - 어쩌면 진지한 척 엄숙한 태도로, 무지라는 축복을 자세하게 열거할 수도 있다 - 노예 생활의 즐거움에 관해 안락의자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밭에서 노예와 함께 일하도록 해보라 - 노예들과 오두막에서 같이 자고 - 곡물 껍질을 같이 먹도록 해보라.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짓밟히도록 해보라. 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갖고 돌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가련한 노예의 마음을 알도록 해보라 - 노예의 비밀스러운 생각들 - 백인이 듣는 곳에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생각을 알아보도록 해보라. 밤에 깨어있는 노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해보라 - <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관해 노예와 진심 어린 믿음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보라. 그러면 노예들 100명 가운데 99명은 충분히 똑똑해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 자신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자유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201p)
 
 


p********1 2014.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예 12년_영화보다 책이 특별한 이유
"노예 12년_영화보다 책이 특별한 이유" 내용보기
<< 노예 12년 >> _솔로몬 노섭 지음       '노예 12년'은 이 한페이지면 모든 내용이 정리된 것이다.그래서 줄거리보다. 책을 꼭 읽어보길 바라는 추천글을 쓰고 싶다. 영화 노예 12년은 본 사람이라면, 감동. 스토리의 부족함을 느껴질 것이다.그래서 책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화가 부족한 만큼 책도 그럴거라는 생각에 관심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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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12년 >>

_솔로몬 노섭 지음

 

 

 

'노예 12년'은 이 한페이지면 모든 내용이 정리된 것이다.
그래서 줄거리보다. 책을 꼭 읽어보길 바라는 추천글을 쓰고 싶다.

영화 노예 12년은 본 사람이라면, 감동. 스토리의 부족함을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책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화가 부족한 만큼 책도 그럴거라는 생각에 관심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노예 12년'을 책으로 접하길 추천한다.
책은 '문자'이지만, '영상'보다 더 풍부하다

 

내 목표는 사실들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것, 내 삶의 이야기를 과장 없이 전달 하는 것일 뿐, 

소설책 속의 이야기들이 실제보다 더 잔인한 학대나 더 가혹한 속박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_본문

 

솔직하게, 과장없이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한 명의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절제해서 덤덤한 말투로 말한다.

대신, 윌리엄 쿠퍼가 쓴 시를 하나 넣었다.

 

 

노예와 다름없이 한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가진자.

자유인이라고 으스댈수 있을까?

그리고 노예제가 해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섭이 목이 메달리는 장면이 있다...
이 사건은 솔로몬 노섭에게는 죽을만큼 힘들고 끔찍한 이였다.

 

 

그 긴긴 여름 낮 내내, 내 머리를 때리던 남부 태양의 뜨거운 햇살도,

욱신거리는 팔다리에서 오는 고통에서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손목과 발목, 그리고 팔다리의 힘줄이 붓기 시작해, 팔다리를 묶은 밧줄이 부어오른 살 속에 파묻혀 버렸다. _본문

 

 

영화에서는 이 고통을 한동안 그 메달린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나왔다.
그 긴시간과 보는 이로서는 노섭이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글보다는 덜한듯하다.

 

그리고 '포드'는 노섭에게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다.

 

 

포드 주인님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노예 생활의 밝은 면만 보아 왔었다.

포드는 우리를 흙 속으로 짓뭉개는 강압적인 손을 가진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위를 가리켰고,

우리 모두를 만드신 창조주 앞에 책임이 있는 같은 인간으로 대하며, 우리에게 다정한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_본문

 

덧 붙쳐서, 노섭은 가족만 없었더라면 그의 노예로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포드가 구해준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노섭의 포드에 대한 애정은 이정도 였다.

 

그리고 일라이자가 자식들과 헤어지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죽은 자식의 얼굴에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는 어머니들을 보아 왔다.

영원히 자식들을 묻어 버릴 흙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관 위로 떨어질 때, 무덤 속을 내려다보는 어머니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일라이자가 자식과 헤어질 때만큼 강렬하고 크 슬픔의 표현은 본 적이 없다. _본문

 

노섭의 눈으로 본 일라이자는 영화에서 느꼈던 '울보'의 느낌보다. '어머니'에 가까웠다.

 

포드의 곁에서 나온후 목화밭에서의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그곳은 ...

 

규칙 위반이라 어김없이 채찍질이 따른다.

 그렇게 또 하루의 두려움과 노동이 시작된다. 하루가 끝날 때까지 휴식 같은 건 전혀 없다.

노예는 온종일 채찍을 맞게 될까 두려워한다. 밤에는 목화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조면실로 가는 걸 두려워 한다.

잠자리에 누울 때는,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게 될까 두려워 한다.

이것이 바이유 뵈프 유역에서 목화 따는 시기 동안 노예들의 일상에 대한 사실 그대로 과장없이 말한 것이다. _본문

 

크리스마스 외에는 '두려움'만이 존재하는 곳이였다.

 

이렇게.. 노예로서의 삶의 고통의 깊이는 책이 더 깊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직도 '자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퍼의 시처럼 '한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가진자.'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노예'는 사라지지 않는다.

커피의 주 생산지였던 곳들은 현재는 노예에 의해 재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곤 하지만, 지금도 그 잔재는 존재하며

다를바 없다고 한다.

'자유'의 소중함과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의외로 더더더더 좋았던 책 ㅎㅎㅎ

 

 

 

f******2 2014.03.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예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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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손이 ㅠㅠ 영화가 기대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속에 장마다 간략 정리 되어 있는 게 꽤 소소한 재미였다. ㅋㅋ 여유만 되면 여러 출판사 버전 다 읽어 보고 싶네요! 일단 열린책들 버전은 굿! ㅋㅋㅋ 영화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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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손이 ㅠㅠ 영화가 기대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는~ 책 속에 장마다 간략 정리 되어 있는 게 꽤 소소한 재미였다. ㅋㅋ 여유만 되면 여러 출판사 버전 다 읽어 보고 싶네요! 일단 열린책들 버전은 굿! ㅋㅋㅋ 영화 보러 가야지~^^ 

m********k 2014.03.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