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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소진은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30대가 되었다. 우리 세대의 영원한 선배. 아마 우리 세대가 '선배'나 '30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도 김소진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니 내 나이가 김소진보다 많아졌다. '아, 이런.' 예수의 나이를 지나, 김소진의 나이도 지나고 말았구나. 이 책에 실린 김소진의 사진이다. 참 오랜만이다. 김소진의 작품도 김소진의 사진도.
내가 20대일 때 가장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약속 있을 때마다 항상 서점을 약속 장소로 잡고 10분쯤 일찍 가서 김소진의 작품을 읽곤 했다.
이건 정말 아무한테도 안 했던 이야기인데, 일년을 고민하다 결국 현재의 남편과 사귀기를 결심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가 김소진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 남편이 딱 저런 분위기였다. 아마 우리 시대의 전형적인 선배들의 분위기가 아닐까 한다. 딱 저런 얼굴에 딱 저런 안경을 쓰고 딱 저런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
근데 그게 벌써 10년도 더 된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20대이던 나도 30대가 되었다.
#2 흔히 10대들은 20대를 갈망하지만, 20대들은 30대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다. 서른은 젊음과 청춘이 종말을 고하는 나이의 상징이라고 할까? 더 이상 떨리고 설레는 것이 없는 나이. 사랑이 뭔지 사람이 뭔지 알 건 이미 다 알게 되는 나이. 더 이상 기대하는 것도 없고 꿈도 없는 나이. 도대체 서른 이후의 사람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른 이후의 나도 과연 나일까? 대부분의 20대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남자들의 경우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고 학교를 다니면서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서른을 맞이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을 테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여전히 부모한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결혼하자고 고백할 능력도 없는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 나이. 뭐 그런 나이가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우리 세대는 선배들이라도 있었지만 요즘 세대는 선배도 없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 자기계발서나 책에 의존해야 하는 요즘의 20대들에게 과연 서른이란 어떤 의미일까?
#3 백지영의 '내 귀에 캔디'를 듣다 피식 웃은 기억이 난다. 백지영이 76년생이라고 하니 우리 나이로 서른 넷이다. 서른이 넘은 여성은 대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굳이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사랑에 능동적이 될 수 있다. 경제력이 있는, 자기 힘으로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성은 10대나 20대 여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남자와 데이트나 연애를 즐긴다. 이게 백지영이 보여주는 판타지다. 더구나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완벽하고 탄탄한 몸매와 탱탱한 피부를 가졌다. '서른 넘은 여자는 여자도 아니다.'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제 더 이상 서른 살의 여성은 '시집도 못 간 불쌍한 노처녀'가 아니다. 오히려 잘 생긴 남자친구를 '거느릴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
72년생 박진영은 어떤가? 이번에 나온 노래를 듣다가 '30대의 남자들이라면 많이 곰감하겠군.' 싶었다. 30대의 남자들이 문득 자기 삶을 되돌아볼 때는 딱 두 가지 경우인 것 같다. 결혼(혹은 오래된 사랑)에 실패했을 때와 일에서 실패했을 때. 성공에 목을 매고 앞만 보고 달리다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남자는 그제서야 자기의 이기심을 깨닫는다. 지금이라면 더 잘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젠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20대와 같은 사랑을 하기엔 열정도 부족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또 한 번 누군가에게 올인하는 사랑을 한다는 게. 그래서 한 사람과 하는 사랑-결국엔 결혼으로 귀착될-과 여러 사람과 즐기는 연애 사이에서 고민한다. 나랑은 그냥 즐겨라. 더 이상 사랑같은 거에 집착하지 말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남자조차도 어쩌면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4 내가 20대일 때 30대들도 이런 걸로 고민했을까? 그때 나는 20대였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속 주인공들의 고민이나 아픔에 몰입되기보다는 유치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일까? 결국은 일 혹은 사랑인데(그나마 여성들의 고민은 대개가 다 사랑)... 일 그게 뭐 별건가? 사랑 그게 뭐 대순가? 싶다. 하긴... 이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도 20대에는 그걸로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울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깐 '유치해'라고 말하는 건 이미 내가 30대하고도 중반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지금의 20대는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까? 얼마나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80년대나 90년대에 태어난 '어린 친구'들에게 50년대나 60년대에 태어난 작가들은 이미 '선배'뻘이 아니라 '부모'뻘이 되니깐. (소설가 성석제씨의 해사한 얼굴. 꽃미남이 따로 없다. 이 사진도 이 책에 실린 것인데... 결국 30대라는 나이가 그런 것 같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여전히 '풋풋한' 그런 나이.)
그럼에도 그 세대가 겪는 고민은 비슷비슷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이미 세상이, 사회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백지영의 노래를 듣다 보면 '참 많이 변했다. 그래, 더 이상 30대가 20대보다 뒤질 게 없지.' 싶다가도 박진영의 노래를 들으면 '그래. 사람 살면서 하는 고민이 다 거기서 거기지.' 싶기도 하고.
#5 암튼 누구나 다 서른이 된다. 서른이 될 당신에게, 혹은 서른이 된 당신에게, 아니면 서른을 넘긴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서른'은 어떤 의미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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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30대는 외롭다고 했다.위로는 나이드신 부모님들을 거두어야 하고 아래로는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어디에도 기댈수 없고 모든걸 짊어지고 나아가는 때이므로 말이다.
전반적으로 글들의 공통점을 보면 여자들은 스물 일곱에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결혼을 택하고 그러다가 서른이 되어 아이가 하나정도 생겨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내다가...문득 자신의 삶에 대해 딜레마를 겪게 된다.서른이라는 강을 건너려면 물살과 맞서기보다는 그저 강이 흘러감에 순응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만이 자신에게도 평안하고 주위 가족들에게도 여자로서의 역할을 다함같이 느껴진다.글에서는 서른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거나 확정짓는건 없다.아직도 휘감싸고 있는 그 정체 불명의 소용돌이를 만나게 되는 서른에 대해 누가 단정을 지을수 있을까.
스무살도 있고 쉰살도 있고 예순도 있다...그런데 서른살은 인생의 유턴점일러서 그런가 아님 중년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라 그런가 아뭏든 그냥 넘어가게 되는 나이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때 인생의 의미를 확실이 해두지 않으면 나머지 인생의 의미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되버릴것만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쩌면 이 땅의 여자들 대부분이 겪는 흔한 삼십대의 삶이란 출산과 육아의 격한 노동으로부터 시작되는것이 아닐까.(162페이지)스무살땐 검은색 트렁크를 들고 아주 멀리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생이 있을거라고 믿는다.그러나 서른 살에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아주 먼 곳에서도 같은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86페이지) 구절 하나하나가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예리하게 관찰한것을 아니 겪은것을 그대로 적어놓은 듯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아오던 방식대로 대응하려하지만 이제껏 살아보지 못한 다른 길로 이미 접어든것을 깨닫고 한동안 꿈쩍않고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게 된다.삼십대는 확실히 다른 길이다.중년이라 할수도 없고 청춘이라 할수도 없는 특별한 시기이라고 생각된다.책을 통해서 자신들이 느껴왔던 특별한 감정을 언어로 다시 확인하게 되는 시간을 가져봄이 큰 위로가 될것으로 본다.그저 내면으로만 보이지않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보면 더욱 형체가 뚜렷해져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할지 나름대로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소설을 한번 써보지 그러니? 네 삼십세를 말야 |
|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이 공전의 히트를 친 후 한때 서른살에 대해 논하는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왔던 적이 있었다. 청춘의 끝자락을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비한 것이지만 평균 수명이 높아진 지금 서른이라는 나이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가 읽어왔던 문학작품 속에서 서른의 나이는 감성과의 이별이며, 연애의 무덤이며, 순수의 변색으로 그려져왔다. 그래서 서른이 되기 전에 죽어 버리겠다고 결심하던 십대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른을 주제로한 이 소설집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고인이 된 김소진을 제외하고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관심을 끌어 모았던 젊은 작가들의 공동 작품집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작품 모두가 각자의 창작집에서 한두 번쯤 읽어본 내용이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를 음미하며 함께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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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쉰 살 ... 10단위의 나이들. 시작하고 끝이 나는 나이가 바로 10단위의 나이인 것 같다. 10대를 마무리하고 20살이 된 사람들은 고등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줄 알고 무한한 자유를 꿈꾼다. 수많은 일탈들.. 더 많은 일탈을 꿈꾸지만 용기가 없어 접어야했던 순간들 하지만 아직은 20대라는 희망.. 20대를 마무리 하고 30살이 된 사람들은 생각이 많다. 20대에 꿈꾸던 많은 것들이 이루지 못하고 30대를 맞이한다. 서른 살이 되면 무언가 하나는 이룰 줄 알았는데 별반 다른 게 없다. 하지만 무모하기만 한 나이가 지나서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눈을 뜰 수 있는 나이 같다. 난 아직 아니지만.. 30대를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마흔 살.. 40대를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쉰 살을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다. 어찌 보면 별반 다를 게 없는 또 살아가게 되는 한해 인 것을 많은 의미를 두고 유별나게 맞이하고 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스물여덟도 스물아홉도 서른도 서른하나도 서른둘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밖에 살아갈 수는 없는 한해 인 것이다. 그래서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서른을 최선을 다해 정리하고 싶다. 남은 세달 과연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할까 이것저것 생각을 한다. 그래서 ‘서른 살의 강’ 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서른 살을 보내는 것을 강으로 표현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무언가를 건너야한다는 느낌. 그리고 유유히 흘러갈 수 있는 느낌.. 책에선 유유히 보다는 건너가야 할 힘겨운 시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바라본 서른은 많은 작가들이 바라본 서른과는 많이 달랐다. 1990년대에 살아온 작가들의 서른 살과 2010년대에 서른을 맞이한 나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솔직히 다름이 있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다를 게 없었다면 내가 앞으로 경험할 모든 것들이 다른 사람과 다 같을 것 같아 싫었을 것 같다. 이제 곧 맞이할 서른의 생일엔 무엇을 할까? 고민한다. 나 나름의 대단한 사치를 해볼까 생각중이다. 한번뿐인 서른의 강을 지나 또 한 번뿐인 서른하나의 강을 보낼 생각을 하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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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집은 지금껏 읽어 온 소설집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갖종 문학상과도 느낌이 다르고 한 작가의 소설집하고도 많이 느낌이 다르다. 이렇게 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작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쓴 소설집이 별반 없어서 이 소설집이 좀 더 색다르게 느껴진게 아닌가 싶다. 우선 이 소설은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심하게 자극했다. "서른살의 강" 서른 살을 벌써 한 해나 넘긴 나는 과연 서른살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며 뭔가 싸워 이겨내려고 노력했을끼?... 이런 무수히 많은 의문들이 이 책을 잡게한 가장 큰 힘이었다. 사실 다 읽고 나서는 그다지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공감할 수 없다고 해서 작품성이 없는건 아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성석제의 '황금의 나날'이었다. 도대체 이게 서른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성석제 특유의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뭔가 몽환적인 유년기의 모습이 무척 새로웠다. 그 밖에도 은희경이나 김소진같은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글을 읽는 즐거움도 제법 컸다. 이 책에서 뭔가 서른살,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면 좀 깊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다시금 서른살을 생각해 볼 수는 있는 책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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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몇 살이냐구 묻는 질문에 계란 한판이라 대답한다는 내 친구 언니. 그 언니는 서른한살이 되었을 때에는 썰티원 베스킨라빈스라고 했다. 이젠 내가 계란 한판이라고 대답하고 다니는 나이가 되었다. 과연 서른살은 어떤 의미일까 싶어 고른 책이었다. 9명의 작가가 그 해답을 나에게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도 서른이 주는 의미를 명확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난 오늘 생각했다. 서른은 어른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인생에서 그 만큼의 몫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난 그런 모습으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 책 속의 서른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것 같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서른에서 마흔이라는 나이에 걸쳐 있는 30십대들의 이야기였다. 때로는 오랜 공부를 하는 학생으로 때로는 한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인 주부로 때로는 옛사랑을 추억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내가 어릴 적 생각했던 30대의 모습은 없었다. 모든 생활의 여유를 느끼며 내가 하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30대의 환상 말이다. 지금 현재의 불완전한 나의 모습들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 있기에 어쩌면 난 그만큼 이 책에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모습과도 같은 서른이라는 나이의 모습 말이다.
서른은 책에서도 말했듯 경계의 나이 인 것 같다. 젊음과 중년의 중간지점 말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방황도 접고, 사회에 어느 정도 순응해 맞추어 가는 초입에 있는 나이일지도...나 또한 그런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른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의 서른은 모두 불완전해 보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서른에 너무 많을 것을 부여하려 했기에 나에게 그 만큼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서른은 서른일 뿐이라 난 오늘 결론 내렸다. 서른이라는 불안함을 그대로 즐겨보기로 말이다. 그러다 보면 그 불안함 밑에 깔려 있는 내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서른살이 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나이나 마찬가지로 서른도 외로운 나이이다. -은희경 '연미와유미' 나의 삼십대는 내부의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양순석 '서른일곱, 옥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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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가 끝난다는 상상, 드디어 서른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쓸쓸해지고 스산해진다. 마치 돌아오지 못할 강이라도 건너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젊음이 아쉬워진다면 무리일까? 서른이 된다고 해서 더 이상 젊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그 단어의 중압감에 우리들은 고민하고 방황한다. 그러면서 괜히 서른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을 찾아 읽게 되는 것은 나만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서른에 즈음해서 겪게 되는 삶의 모습이 각각의 작가들에 의해서 개성적으로 채색되어 작품 속에 드러난다. 때로는대학원생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이와 남편을 둔 주부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내와 헤어진 30대 남자의 모습으로... 어느 하나 나와 닮았다거나 유사하지 않지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나도 어느새 서른의 문턱에 다다랐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명백한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나이 서른이 허무와 상실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했을 뿐... 그리고 다음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삼십세'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상깊은구절] 친구들 소식을 들었다. 몇 명은 승진을 하고 몇 명은 아기엄마가 되어 있다. 집안일이나 회사일이나 한창 바쁜 나이라서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전화가 자주 통화중이다. 옛애인이 결혼했다는 것도 전화를 통해서 들었다. 모임에 나왔는데 뒷목이 접히고 배가 나와 있더라고 한다. 주된 화제는 돌 지난 아들과 얼마 전 바꾼 자동차였고. 그에게는 시간을 살았다는 흔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시간이라는 터널을 통과한다. 내가 마지막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혼자 터널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올 때는 셋이 되어 있다. 나는 삼 년 전 그 터널에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똑같다. 여전히 혼자이고 경제적 독립도 하지 못했다. 미망이나 외로움에 대해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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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서른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몇년 후면 서른이라는 숫자적 표현과 사회에서 말하는 나이라는 개념적 약속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 즉 한 개개인으로서 인간은 자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사회적 약속에 얽매이고 그 약속을 지키게 마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른살의 나이는 객관적이던 주관적이던 인간에 있어 약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책 '서른살의 강'은 9명의 작가가 30살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인생을 돌아보고, 회고하고, 그 삶의 무게를 저울질 한다. 숫자적이고 약속으로서의 서른이 아닌 하나의 분수령으로서말이다. 이에 서른이라는 나이는 결국 어느 위치에 도달했다는 표식으로서 또한 성별의 구별, 살아온 삶의 화려함과 참혹함을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새롭게 부여한 그 의미는 나이 서른살을 통해 본 우리의 삶에 대한 본질을 말한다. 즉, 치열한 삶속의 하나의 특별한 의미로 나이 서른살은 우리에게 그리고 청춘을 벗어난 삼십대에게 "삶의 본질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상깊은구절] 아버지, 내 곁을 떠난 지 육 년째 나는 이제 삼십대의 강을 건너와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삼십대는 내부의 전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로 내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까지 치러내야 할 끝없이 외로운 내 자신과의 싸움 속에 나는 있었다. 나의 전부를 의지하였던 아버지를 읽고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서의 미미한 내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른일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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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주는 사람도 내게 말을 거는 이도 없다. 나는 다만 주저하고 돌아보고 그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서른이 어서 빨리 지나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그리고 서른하나가 되고 서른하나가 결코 지나지 않기를 가당치도 않게 그렇게 바랬다..지금 서른도 지나고 서른 하나도 지나버렸다...하지만 내게 남은 서른은...눈이 시리고..가끔 우울한 하늘빛에 바다가 그리워지는 그렇게 시린 뒷모습이다... 그리고 이제 꿈과 소망의 차이를 알아버린 초라한 코드 주머니처럼 그렇게 덩그랗기만 것.... 그들은 선택했고 그 순간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 즈음에 그들의 과거를 읽는다...이렇게 그리고 그렇게 막 말해버리고 말들이 저 공기중에서 하나하나 흩어져서 그 어떤 뜻도 품지 못하게 얼른얼른 풀어버린다..툭툭 먼지를 털 듯... [인상깊은구절] 10월 27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서른 살이 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느 나이나 마찬가지로 서른도 외로운 나이이다. 뉴카슬이 세상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고독한 장소인 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