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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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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품 내에서도 언급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유화 <인간의 조건>을 닮았다.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의 내용만으로 이 회화의 제목이 왜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 >이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거기에는 다소 그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 근거한 치밀한 숙고와 논리적인 유추해석이 필요할 듯 싶다.   그림은 단순히 바깥 풍경을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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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작품 내에서도 언급했던 르네 마그리트의 유화 <인간의 조건>을 닮았다.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의 내용만으로 이 회화의 제목이 왜 <인간의 조건 (La condition humaine) >이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거기에는 다소 그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 근거한 치밀한 숙고와 논리적인 유추해석이 필요할 듯 싶다.

 

그림은 단순히 바깥 풍경을 보여주는 문이 하나 놓어있고, 실내라고 추정되는 가까운 쪽에 캔버스가 하나 세워져있는 형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깥으로 보여지는 실제 풍경과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하나로 연결되어 마치 모두 실제 풍경처럼 보인다는 점. 거기엔 일종의 메세지가 있는 듯하다. 내 맘대로의 해석이긴 하지만, 떠오르는 건 두 개쯤.

 

하나는 우리는 실제로 보여지는 현상적 사실과 마음 속에서 제멋대로 상상한 자의적 허구를 하나로 연결해 모두 객관적 사실이라 인지하는 '인지의 오류'를 종종 범한다는 사실. 그림 속 현실의 세계에선 캔버스에 그려진 것과는 다르게 갑자기 육지가 오목하게 돌아 이어지는 만(灣)의 형태를 띨 수도, 돌연 커다란 바위가 돌출된 지형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다른 하나는 그런 '인지의 오류'가 개인적 인지능력의 한계나 그저 우발적인 우연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그린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해야하듯 인지의 오류를 유발하는 다소 '의도된 연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소신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간다고 믿어지는 통상적 삶 속에 그러한 믿음조차도 누군가에 의해 의도될 수 있다는 '음모론' 내지는 '매트릭스'적인 메세지랄까.

 

이런 해석은 짧은 식견과 무식한 용감함에 기인한 객관적으로는 전혀 신빙할 수 없는 종류의 사소한 사견이긴 하다. 그러니 너무 신중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이런 해석 하 <인간의 조건>이란 제목은 왠지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받는 느낌이다. 요즘 유명한 예능프로그램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의 조건>은 기실 '인지의 오류'와 '의도된 연출'로부터 자유로울 수없음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말이다.

 

이소설의 느낌 또한 비슷하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현존하는 실재와 자신의 내면이 추억과 바램을 토대로 해 마음대로 만들어낸 환상을 마구 뒤석어 재해석한 자신만의 세상 속을 살아간다. 그것이 마치 생각보다 냉랭하며 인정머리없는 실재 속에서 나약한 인간들이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 즉 <인간의 조건>이라도 되는 듯이.

 

아마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될 즈음인 1990년대 말에 이 작품을 접했더라면, 나는 비슷한 나이에 유사한 환경 속에서 무관하지 않은 경험을 하고 살아온 터에 사회주의 운동가라기 보다는 이상적 아나키스트와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성향을 야무지게도 잘 배합한 기질의 태인에게 보다 많은 감정이입을 느꼈을런지도 모르겠다만, 변화된 세상과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미 중년의 자리에 어느새 내동댕이쳐진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주인공, 출판사의 오너이면서도 자신을 '부장님'이라 칭해 달라는 다소 민망한 캐릭터 정서현의 시선과 생각을 자연스레 쫒게 되었다. '시간'과 '인간'의 싸움 속에서 인간이 버텨내기 위해서는 그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변화 속에서 끊임없지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일게다. 그것 또한 <인간의 조건>일지 모른다.

 

이 작품을 종으로 관통하는 키워드는 아마도 '치유' 내지는 '승화' 정도가 되겠지 싶다. 그러나 그러한 주제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는 등장인물들의 여정은 다소 비현실적이며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작가는 이러한 여정 자체가 갖는 비현실의 태생적 한계를 유려한 수사와 지극히 현실성을 띤 에피소드들 중간중간에 섞어넣음으로써 극복하려 시도한 것 같다. 이를테면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화려한 포장과 세련된 디자인 때문에 충동구매하게 만드는 마케팅 기법같은 것이랄까.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비슷한 포장과 디자인이 차용된 느낌이다. 소신에 기인한 바른 생활과 건전한 도덕적 틀, 그리고 깊이가 있어 멋진 사고체계를 가진 캐릭터들로 묘사되지만, 만일 그들이 현실세계에 현존한다면, 아마도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가는데 처절하게 실패한 탓을 세상의 더러움에 돌려버리는 염세주의자나, 자신앞에 즐비하게 나열된 괴로운 삶의 문제들을 스스로의 힘에 의해 해결하려는 의지는 내려놓은 채, 절대자 쯤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중증 공주병 환자, 그리고 젊은 여성에 대한 욕정을 매력과 지력, 재력 등으로 포장해 눌러놓고는, 그 분출의 기회만을 엿보는 느끼한 중년의 바람둥이로 비쳐질 가능성이 더 크지 싶다.

 

분명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읽는 중 고개가 끄덕여지거나 읽은 후 여운이 길게 남는 그런 작품은 솔직히 아니었다. 전경린 작가의 작품은 꽤 읽어온 터이지만, 이 작품은 초기 작품이어선지 기한에 읽어온 다른 작품들보다는 여러모로 횡- 한 구석이 많은 느낌이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지만, 제목만큼의 끌림은 읽어가며 느낄 수 없었던 소설이다.



p***i 2013.07.0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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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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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읽기 순서를 문학동네소설상으로 잡은 이유로 읽어내려간 소설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지금으로 부터 약 10년전 소설이기에 화장하지 않은 표지로 인해 쉽게 뽑아들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같이 목적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독자들에게는 특별히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다. 이나는 상사였던 정서현의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호의적인 태도에 처음엔 거부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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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읽기 순서를 문학동네소설상으로 잡은 이유로 읽어내려간 소설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지금으로 부터 약 10년전 소설이기에 화장하지 않은 표지로 인해 쉽게 뽑아들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나같이 목적성을 가지고 접근하는 독자들에게는 특별히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다.

이나는 상사였던 정서현의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호의적인 태도에 처음엔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이후의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 속에서 얻어진 태인은 그 스스로 추종자 정수의 죽음을 겪으면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하는지, 있는지를 알지 못 했다.

이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다.

진정한 자기 찾기로 부터의 삶의 진정성. 소설이 던져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나도 아릿한 기분만 느끼게 되면서 씁쓸한 맛이 나는..그런 소설이었다. 

s***9 2008.1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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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을 붙드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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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얼마 전 읽었던 은희경의 소설 속에 나왔던 비틀즈의 노래 에서 온 제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노래가 어떤 노래기에,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특별한 인상을 내게 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서현이나 태인보다는 이나와 정수의 캐릭터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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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얼마 전 읽었던 은희경의 소설 속에 나왔던 비틀즈의 노래 에서 온 제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노래가 어떤 노래기에,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하는 특별한 인상을 내게 준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서현이나 태인보다는 이나와 정수의 캐릭터가 더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나는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다. 태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기 그지 없다. 아들 진후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 하지만 태인때문에 참으로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끊이지 않는다. 태인은 80년대를 몸으로 부딪혀 살아낸 사람이다. 하지만 결국 문민정부 출범 후 갈 길을 잃고 방황한다. 투쟁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시절을 지나, 삶에 녹아든 투쟁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되며, 결국은 사랑의 힘이 가장 크다는 것을 깨닫는 인물이다. 정수는 태인을 통해 이념적인 문제에 투신하게 된 노동자 출신이다. 하지만 태인을 두고 동지애와 이성애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은 자신의 생을 스스로 접는다. 서현은 이나의 직장 상사다. 아이가 없는 것을 비관해 자살한 아내에 대한 기억을 짐으로 가지고 있다. 이나를 사랑한다. 이나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음껏 사랑하려한다. 작가도 말했듯이 결국 이 책이 말하는 건 '사랑'이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리고 그것이 누가 누구에게로 향한 것이든을 떠나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맞다. 그렇게 살아야 할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열정을 잃어버린 후라 세상에 대해 냉소적이고, 방관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은 붙드는 것이 사랑이다. 고생을 해야 사랑의 참맛을 알게 된다는 의미일까, 모든 것의 기본은 사랑이라는 뜻일까. 혼자 헷갈려본다.

[인상깊은구절]
이만 오천년이 걸려 당도한다는 별빛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던 사랑이었다. 냉이꽃 하나의 피어남, 갓 태어난 들고양이 새끼들,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초봄의 빗방울들, 그런 것들의 기다림, 그런 것들의 시간...... 이만 오천년을 품어온 내 속의 그대, 그 속의 나.
y********1 2005.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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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심혈이 돋보이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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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전경린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산다. 사실 삶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탐미적이고 광기어린 문체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가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공모에 응했던 소설인지라 더욱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 울고 싶어지고 그녀의 자폐적 성향이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아 소름이 끼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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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전경린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 산다. 사실 삶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탐미적이고 광기어린 문체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가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공모에 응했던 소설인지라 더욱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 울고 싶어지고 그녀의 자폐적 성향이 나와 너무 닮은 것 같아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 캐릭터와 여주인공인 이나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작가가 항상 마음 속에 빚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80년대 운동권에 대한 언급도 전경린 소설에서 보기 드문 설정이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우리가 꿈꾸는 여성적이면서도 남성적인 색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남자는 어디에도 없지만, 전경린 소설 속에서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i****3 2003.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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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영원한 것은... 존재의 불가능성과 남루함, 그리고 상처 때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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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80년대의 삶은 꿈이라는 부분을, 이상이라는 날개를 꺾어 버렸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돛을 잃은 배처럼 부서지는 태인, 그리고 살아 보고자 발버둥 치다 결국 현실이라는 커다란 문 앞에서 맥없이 쓰러진 정수.그런 태인을, 그가 가진 상처를 다 감싸 안아 주는 이나. 그녀는 그를 힘겹게 기다리기 보다는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처절한 모습의 사랑이라는 값싼 감정
"사랑이 영원한 것은... 존재의 불가능성과 남루함, 그리고 상처 때문이라는 것" 내용보기
힘겨운 80년대의 삶은 꿈이라는 부분을, 이상이라는 날개를 꺾어 버렸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돛을 잃은 배처럼 부서지는 태인, 그리고 살아 보고자 발버둥 치다 결국 현실이라는 커다란 문 앞에서 맥없이 쓰러진 정수.그런 태인을, 그가 가진 상처를 다 감싸 안아 주는 이나. 그녀는 그를 힘겹게 기다리기 보다는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처절한 모습의 사랑이라는 값싼 감정보다는,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상처를 보둠어 줄 수 있는 강인한 한사람으로 자신이 가진 삶을, 그녀에게 허락된 삶을 살아간다. 이제는 그녀가 그녀 삶의 주인이 되어...이나만을 바라보고 가슴 아프도록 사랑한 서현.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은 진실 때문이 아니라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이나를 이해했으며 그녀의 사랑을 공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슬프도록 저린 연민을 느끼게 한다. 안타가움과 저미는 듯한 아픔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이다. 다가서지 못하고... 차라리 이런 감정들을 모르는 남자였다면 무시할 수 있었을텐데... 사랑은... 우리가 흔히 말하고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삐뚤어진 소유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순결하고 고귀하고 행복하고 핑크빛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더렵혀진다. 그 위에 선 상처입고 불쌍하고 갈곳없는 사랑이 지지 않을 기세로 끝까지 벼텨설 수 있다. 그런 사랑이야말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처를, 다른 이의 아픔을 돌아보고 쓰다듬어 줄 수 있으리라.
b********1 2002.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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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안고 사는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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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는 여자, '태인'이라는 남자.그리고 80년대의 상처, 노동자 '정수'...그 밖의 많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인간애가 마음을 흔들어 놓던 소설이었다. 이해하기보다는 존중하는 것...그것이 훨씬 숭고하고도 깊은 사랑이었다. 전경린은 독특하고 아플만큼 구체적인 문체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인물들이 전부 비슷한 감성을 지녔던 것이 단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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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는 여자, '태인'이라는 남자.그리고 80년대의 상처, 노동자 '정수'...그 밖의 많은 인물들이 그려내는 인간애가 마음을 흔들어 놓던 소설이었다. 이해하기보다는 존중하는 것...그것이 훨씬 숭고하고도 깊은 사랑이었다. 전경린은 독특하고 아플만큼 구체적인 문체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인물들이 전부 비슷한 감성을 지녔던 것이 단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각기 다른 환경을 지닌 많은 등장 인물들이 80년대를 관통해온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지게 되는 것 또한 이 소설이 지닌 힘일 것이다. 태인의 아이를 가진채로 그를 기다렸던 여자 이나. 태인에게 이나는 마지막 보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마지막 돌아올 곳,그 마지막이라는 것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 그조차 몰랐었던 것일까. 하염없이 주고, 기다렸던 여자. 또 그 여자가 '누구의 여자'가 아닌 '나 자신'일 수 있게 도와준 남자. 정서현. 그 남자를 이해하고 지켜줬던 혜원. 시대와 삶의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부대낌,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던 책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에게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의 속성은 파멸이지.사랑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오. 어쩌면 그것은 생과 반대편에 있는 것 같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냐, 생이냐의 갈림길에서 종종 생으로의 투항을 강요당하는 것이고. 행복한 생이란 자기의 사랑과 상대의 사랑, 그리고 유실된 시간에 대한 기만을 무거운 관용으로 끌어안고 가는 서글픈 미학이지..... 나도 이대로 가볍게 살려고 했었소, 마치 조각배를 타고 흘러가듯, 무거운 것은, 생각조차도 무거운 생각은 싣지 않으려고 했소. 그것이 내가 해결한 나의 존재 방식이었지. 세상을 산보하며 지나는 듯이 마음을 주지 말자. 내게 허용된 자잘한 기쁨만을 천천히 누리자. 조금씩 맛이 다른 음식들의 섬세한 맛을 음미하며, 조금씩 생각이 다르고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아껴 만나면서, 천천히 바뀌어 가는 계절들과 흘러가는 시간에 만족하면서.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살자고 결심했었소.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바뀌었소. 이나를 만난 뒤로 그런 공허한 향유는 지푸라기처럼 구차하고 무의미해졌소. 이나가 없으면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니오.
b********n 2000.07.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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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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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경린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게 아마, 바닷가 마지막 집이었던가? 아니, 그 이전부터 문학상 수상집에 들어있던 그녀글을 몇번인가 보기는 했던 것같다. 단편을 통해 본 그녀는 글쎄,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다만, 현재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 내는 작가군중의 하나라는 것 정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신경숙의 후일 주자로 어느 문학잡지에 게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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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경린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게 아마, 바닷가 마지막 집이었던가? 아니, 그 이전부터 문학상 수상집에 들어있던 그녀글을 몇번인가 보기는 했던 것같다. 단편을 통해 본 그녀는 글쎄,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다만, 현재 잘 팔리는 책을 만들어 내는 작가군중의 하나라는 것 정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신경숙의 후일 주자로 어느 문학잡지에 게재되었던 정도.... 가끔 도서관이나 서점, 혹은 책대여점에 들어가면 묘하게 눈길을 끄는 책들이 있다. 늘 그 책을 집어드는 동작은 망설이면서도 자꾸만 눈길은 끌려가는..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가 그랬다. 전경린 이란 이름이 내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난 그 책이 날 끌고 있는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몇번째 외면하고 있음에도..... 이젠 정말 만나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은 손을 뻗게 만들었다. 최근들어 책읽기에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로선 끝까지 읽어낼 지 자신은 서지 않았지만, 그래도 견뎌보자, 읽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왠걸, 난 책을 펴들고 난 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어느 하루 때 이른 퇴근으로 주어진 한가로운 밤시간에 난 침대에 엎드린 채 책에만 시선을 주고 있었다. 운동권 소설의 후일담 형식이라는 데 거부감 없이 읽히고 있었다.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조나 완벽한 돌아섬보다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감상적인 부분이 보였고, 비약이 좀 심한 부분도 있었지만, 읽는 내내 탄탄하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글이었다. 조금은 억지스런 인물설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아프게 다가왔었다. 그 힘든 80년대를 보냈음에도 즐기는 자들과 향유 하는 자들은 따로 있다는 그 말들.... 언젠가 '그것이 알고싶다'란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그 아픔들이 고스란히 다시 내게 전해져 왔던 느낌들..지금 80년대에 그렇게 힘겹게 싸웠던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들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그저 방관자에 불과했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물음과 그 대답에 대한 부끄러움.... ........'우린 누구에게나 거위의 발같은 것이 있는 것같아. 그리고 모두에게는 자기의 웅덩이가 있어요. 피해 갈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피해가지 않아요. 그들은 차가운 웅덩이에 발을 담그고 고통과 힘을 겨루죠. 자신의 웅덩이를 피해 간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것과 겨루어본 사람은 알아요. 자기 존재속에 웅덩이보다 더 강한 거위의 발이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도 모를 기쁨이 있죠. 그들은 누가 뭐래도 진실로 살아본 사람이니까요. 난 거위의 발을 잊지 않을 거예요. 그건 다가온 운명을 피하지 않고 겨루는 힘이예요.'..................... 피해갈 수도 있었지만, 진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피하지 않고 자신의 주황색 발을 12월의 차가운 웅덩이속에 집어넣고 고통과 힘을 겨룬다고 했다. 진실로 사는 것이라..... 그것은 뒤에 나오는 다음 글과 아주 잘 연결된다. '밤이 오면 길이 그대를 데리러 갈 것이다. 그대여, 머뭇거리지 마라. 물결 위에 뜨는 죽은 아이의 몸처럼 우리 젊음이 한 흐름 속에 떠 있고, 이제 막 날개 펴는 괴로움 하나도 오래전에 예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혹은 그는 역사의 어두운 밤. 길이 자신들을 데리러 왔을 때 응했던 것이다. 길이 자신들을 데리러 왔기에.. 결말은 누가 누구랑 확연하게 맺어지거나 누가 누구를 다시 만나는 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의 희망을 주고는 있었다. 자꾸만 서로에게 가는 길이 어긋나고 있었지만, 먼 길 돌아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글속에서 섭섭했던 점은 주인공 <이나>가 그에게 맹목의 사랑을 퍼붓는 <정서현>에게 너무 많은 경제적 도움을 받는 점이었다. 물론 그녀가 여성해방주의자도 아니고 운동에 신념을 건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난 그녀가 그의 물질적 도움을 그저 별다른 것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자체가 이해할 수가 없는 점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것을 갚을 수 있으리라 했지만.. 한국사회에서 여자 혼자서 돈을 벌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 건지 최근들어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나로선,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물론 그녀는 소설을 쓰고 있고, 그래, 그 소설이 성공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의 삶을 살면서 그러기란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자신이 소설로 성공해서인지 그런 부분을 암시하는 것은 작가에 대해 좀더 현실을 분명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조심스런 질문을 던지고 싶게 한다. 그러나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녀의 중, 단편보다 훨씬 더 내마음을 끌었던 글이었다.
m******m 1999.08.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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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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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은 국내 여성 작가 중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장편 소설 중에는 '내 생애...'와 '난 유리배...'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하게된 작품이었다. 내가 전경린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련되고 예리한 표현, 때로 날카롭게 펼쳐지는 감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 감수성의 날이 좀 무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나, 서현, 태인, 정수... 현실의 잣대로 재면 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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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은 국내 여성 작가 중 제일 좋아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장편 소설 중에는 '내 생애...'와 '난 유리배...'에 이어 세 번째로 접하게된 작품이었다. 내가 전경린을 좋아하는 이유는 세련되고 예리한 표현, 때로 날카롭게 펼쳐지는 감수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 감수성의 날이 좀 무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나, 서현, 태인, 정수... 현실의 잣대로 재면 제각각의 인물들인데 어찌된일인지 넷의 색깔은 모두 흡사해서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작품은 일관성을 잃지 않으며 유유히 흘러가지만 같은 이유로 소설이 주는 재미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었다. 작품성을 배재하더라도 단순, 명료, 확고한 결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흐릿한 마무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운동권 세대의 후일담'이란 소재라면 역시 공지영이 한 수 위인듯 하다.
0********y 2002.03.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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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주관적인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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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980년대를 아픔의 세월로 보내신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한국의 1980년대는 별나게 특별하다. 대학에 입학해 접하게 되는 그 80년대는 사실에 따르는 아픔을 논하기 이전에 80(팔공)대 학번을 지닌 선배들에 의해서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80년대 학번이 아닌 것이 죄인의 첫 번째 조건이 되는 양 움츠리고 학교를 다녔던 많은 우리(90년대에 입학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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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980년대를 아픔의 세월로 보내신 여러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한국의 1980년대는 별나게 특별하다. 대학에 입학해 접하게 되는 그 80년대는 사실에 따르는 아픔을 논하기 이전에 80(팔공)대 학번을 지닌 선배들에 의해서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80년대 학번이 아닌 것이 죄인의 첫 번째 조건이 되는 양 움츠리고 학교를 다녔던 많은 우리(90년대에 입학을 한 사람들 중 몇몇)에게는 더욱 그렇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그 부담감으로부터 '안녕,빠이빠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그들과의 만남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서 남녀 작가 중 운동권이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80년대를 아프게 보냈던 작가들이 만들어낸 책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특권의식이 별 거부감 없이 다가온 문학 작품들은 그 수를 꼽기 힘들만큼 드물다. 그 중 전경린의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는 다행스럽게(?) 아니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주인공인 이나가 말한 부분들은 왠지 잠을 잘 수가 없게 만들었다. 왜 그런 것일까. 소설일 뿐인데. 사랑이라는 소재를 주원료로 만들어 평소에 경멸해 마지않던 트랜드 드라마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되는 소설일 뿐인데. 읽는 사람에게 지적인 허영심을 더 채워주는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 것이 다인데. 지금까지의 횡설수설은 이 책을 다 읽고 첫 번째로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가 이 글을 읽으면 정말 '알지도 못하는 어느 독자가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구나' 생각할 정도로 근거 없는 비난일지도 모른다. 허나 많은 문학작품들이 읽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그 본질조차도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이 문학 작품을 내 식으로 소화했다는 것을 밝힌다. 어떤 편견이 숨어 있건간에.

[인상깊은구절]
전경린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 : 생에 대해 강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막연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요. --- 모든 것은 하나의 태도였다. 허락할 수도 없고 단절되지도 않는 현실에 대한 완강한 불허의 태도,현실이 폭력적이면 그 태도도 폭력적이고 현실이 음험하면 그 태도도 음험하다. 그리고 행실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면 그 태도도 가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무어라 해도 이나의 눈에는 그랬다. --- 약해서지. 글이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현실적인 무기가 되기를 요구하는 시대를 지나오면서 난 글을 잃었어. 내 체질 자체가 투사적이지 않았고 묵묵히 모멸을 겪으며 자기의 문학세계를 수호할 만큼 강하지도 않았던 셈이지. 글을 포기한 뒤로, 난 이제 모든 것에 대해 그다지 심각해지지 않아요. 그냥 존재하기로 했어요.
y****0 2000.10.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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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감성이라는 메스로 난도질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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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반복해서 하는 일이 많다. 특히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금 읽는 습관이 생겼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문득 반복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전경린의 초기작인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경린의 소설은 너무 오랫동안 주춤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기작에 비해, 최근에 나온 소설은 수사의 화려함이 극치에 달하고 있고 감성의 날카로운 메스를 양손에 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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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반복해서 하는 일이 많다. 특히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금 읽는 습관이 생겼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때문일까, 문득 반복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전경린의 초기작인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경린의 소설은 너무 오랫동안 주춤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기작에 비해, 최근에 나온 소설은 수사의 화려함이 극치에 달하고 있고 감성의 날카로운 메스를 양손에 쥐고 있지만, 인물의 설정이 대부분 비정상적으로 비틀려져 있고, 일상을 아무 이유없이 파탄으로 몰고 가고, 너무 인위적인 설정과 문체들에 약간씩 식상한 기분이 들려고 한다. 이젠 제법 많이 알려지고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 작가의 한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톡톡히 한 거 같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글쎄…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정말 초기작다운 감수성으로 접근한 한편의 '근사하다만 연애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형식은 80년대 운동권 활동가들의 후일담 소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인물들의 균형이나 배치, 여리고 우수에 젖은 감정의 서툰 터치들을 보면 이 책은 우울한 80년대를 거쳐온 군상들을 살며시 등에 업은 근사하게 포장된 연애소설임이 틀림없다. 이 소설은 인물을 중심으로 이끌어 가는 소설이기 때문에 인물의 감정이나 행동의 구도가 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들을 보면, 격동의 80년대를 거치며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지향하려다 패잔병처럼 내려앉은 삶을 사는 태인, 그리고 그를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사랑으로 오래 기다리며 감싸는 여자 김이나, 태인에 의해 의식화되어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며 사랑하는 노동자 출신 정수,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나에게 지고지순한 순정을 바치는 정서현… 사실, 이 인물들의 구도 자체가 너무 인위적이고 비약이 심하며 통속적이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통해 어떤 아픔의 시간들을 반추해 보고 그 상처들을 치유하길 원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인물들의 구도로는 그러한 접근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그러기엔, 태인이나 정수라는 인물들을 재배치해야하는 해프닝을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통속적인 연애소설로는 썩 무리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것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작가의 욕심이 너무 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시대의 아픔과 통속적인 사랑이 한 데 뒤섞여, 결국 작가의 욕구만 강하게 분출된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픔을 좀더 아픔답게, 사랑을 좀더 사랑답게 그릴 수 없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서도 치명적인 결점이리라 생각된다. 아픔을 미화하기 전에, 좀더 인물간의 관계 설정이나 구도를 절실하게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비현실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작가답게,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도 비현실적인 현실에서 그저 아픔 주위만 맴도며 사랑 주위만 맴돌며 우두커니들 서있는 거 같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난처하고 민망한 순간들을 자주 접하면서, 시대의 아픔이라는 이름으로,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현실을 난도질하는, 작가 전경린이 저 감성적인 메스를 언제 놓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2********t 2003.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