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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집단이라 말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 과연 그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 얼마나 성의껏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것일까? 시민 위에 군림하며 시민들을 얕잡아 보았던 것은 아닐까? 높은 사람들에게 아부하고, 낮은 사람들에게는 무시의 말로 혹 상처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 평범하게 살아 온 시민이 한 순간 살인범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무죄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이후의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얼굴에 큰 반점이 있어 소심하기만 했던 마사후미. 그런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타인이 보기에 미인은 아니지만 마음이 따스한 여자다. 어느 날 회사 과장이 자신의 연인 유리에에게 기분 나쁜 말을 내 뱉고, 그 모습을 참을 수 없었던 마사후미는 순간 화가나 과장의 멱살을 잡는다. 그때 손님이 찾아와 어영부영 사건은 무마되지만 다음날 이치세 과장은 싸늘한 주검으로 나타난다. 이 사건을 담당한 이사야마 형사는 자백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증거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증거나 증언 따위는 덤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해서든 자백을 받아 내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짜맞추기식 수사를 하기 시작한다. 알리바이를 무너뜨리고 약점을 잡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이사야마에 의해 마사후미는 살인자가 된다. 믿었던 변호사나 검사, 판사 역시 한 번 찍힌 살인자의 낙인을 벗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마사후미는 재판 과정에서 수 없이 좌절하고 실망한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나오는 그날. 그들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하는데...
평범한 사람이 한순간에 살인자가 되는 길. 이렇게 쉬워도 되는 것일까? 증언이나 증거 역시 얼마든지 날조하고, 카더라 통신을 진짜로 만드는 사람. 그게 형사라니.. 그것도 검거 율이 좋은.. 만약 그 억울한 누명이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그렇게 차갑고 무섭게 상대를 몰아 세울 수 있을까?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과는 다른 사복 입은 형사들. 내 주변에 형사가 없어서 그들의 이미지가 어떤지 잘 모른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형사들은 때론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형사가 있는가 하면, 저렇게 곱상해서 형사 할 수 있겠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미지를 가진 형사든, 사건 수첩을 들이미는 형사가 곁에 있다면 과히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난폭한 형사가 자꾸만 자백을 강요하고, 증언 한 친구를 협박하며 조금이라도 다른 말을 내 뱉게 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조그만 말실수를 꼬투리 잡아 불리한 증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치가 떨렸다. 피상적인 정의감이 지금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었다. (175) 증언을 한 사람은 알까? 자신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차가운 창살 안에 넣는 일임을.. 형사에 의해, 판사, 변호사, 검사에 의해 마사후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마사후미는 전혀 무죄일 리 없는 사람이 된다. 경찰과 검찰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이 된 마사후미. 하지만 법정에서 체포된 사람은 진짜 마사후미다. 진짜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징역은 당연한 인과응보 일 수 있지만 무고한 사람에게는 억울함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복수를 하는 마사후미.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진짜 살인자가 되어 버린 마사후미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이 사회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검찰과 경찰이 만들어낸 각본으로 살인자가 되어 버린 마사후미로 인해 이 가족은 철저히 부서진다. 견딜 수 없었던 아버지와 약혼이 깨진 누나. 그리고 마사후미의 약혼녀. 아들의 무죄를 믿는 어머니까지.. 철저히 부서진 이 집안을 검찰과 경찰은 책임질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절절한 모성애를 보고 그 가족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누쿠이 도쿠로. 무거운 주제로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의 이야기는 늘 많은 생각의 꺼리들을 던져 준다. 좋은 직업을 가진 기득권층이라 할 만한 그들이 선량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한편의 각본을 본 것 같아 씁쓸하다.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해 주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이야기도 좋고 내용도 좋았는데 왜 이렇게 오타가 많은지... 이게 제일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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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함께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선 굵은 전작들 덕분에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오케이!”라는 기대감과 신뢰감을 함께 갖게 됐습니다. ‘잿빛 무지개’는 누명과 복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대했던 대로 누쿠이 도쿠로의 매력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 어찌 보면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형식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번에 달릴 수 있었습니다. (다만,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 덕분에 책읽기가 참 불편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사족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법 없이도 살 것 같던 한 평범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으로 체포되고, 1심과 2심을 거쳐 최고재판소, 즉 대법원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습니다. 명백한 오판이고 억울한 누명이었지만, 전근대적인 강압수사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형사는 자백을 강요했고,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한 원칙주의자 검사는 ‘강요된 자백’에 매달려 진실을 외면했으며, 빗나간 영웅심에 사로잡힌 목격자는 어설픈 증언으로 오판과 누명을 공고히 했고, 의욕 따위는 개나 줘버린 무기력한 변호사는 자신의 의뢰인을 방치했으며, 그 결과,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고지식한 판사는 별 생각 없이 유죄를 선고합니다. 6년 동안 사회에서 격리됐던 평범한 청년 에기 마사후미가 자유의 몸이 되어 돌아왔을 때, 그의 가족은 이미 완벽하게 박살나고 해체된 상태였습니다. 직장과 이웃은 그의 가족들을 추방했고, 추방당한 가족들은 자살과 의절을 통해 스스로 절멸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유일하게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믿어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에기 마사후미는 자신의 무지개를 잿빛으로 만든 이들을 향해 복수의 길을 떠납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들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만들어낸 ‘진퇴양난에 처한 캐릭터들’ 덕분인데, 그들을 포위한 상황들이 워낙 극단적이거나 자포자기하고 싶을 만큼 강고한데다 분노, 연민, 증오로 이어지는 그들의 감정은 날것처럼 생생하고, 거기에 사실감을 높여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까지 가미되다 보니 읽는 독자 입장에서 묵직한 추를 마음 한쪽에 달아놓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할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잿빛 무지개’에서 살인죄를 뒤집어쓴 에기 마사후미는 지금껏 봐온 누쿠이 도쿠로의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직장에서의 해고, 연인과의 이별, 가족의 해체를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가 전대미문의 복수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은 너무나 당연해보인 나머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그를 응원하고 보호하고픈 욕구까지 일으킵니다. 동시에, 체포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그의 누명을 차곡차곡 완성시킨 후 6년의 옥살이와 함께 가족의 해체를 제공한 ‘주범들’은 각자 맡은 챕터들을 통해 에기 마사후미와 독자의 ‘도대체 왜 그랬어?’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하지만 그 대답들이란 대부분 초라하거나, 구차하거나, 이기적이기 짝이 없어서 그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에기 마사후미에 대한 안타까움을 배가시킵니다. 에기 마사후미를 쫓는 형사 야마나만이 독자들을 위로해주는데, 아무도 들추려 하지 않는 7년 전 사건의 진실을 캐는 것과 함께 막장으로 폭주하는 에기 마사후미를 멈추게 하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 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누쿠이 도쿠로는 형사 야마나를 통해 ‘복수’에 대한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복수는 진정 회한을 풀어줄 유일한 길인지? 복수가 아니라면 무엇을 통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누쿠이 도쿠로의 전작들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개운한 기분이 들진 않았습니다. ‘내가 에기 마사후미였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에기 마사후미가 있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이 누쿠이 도쿠로 작품의 매력이고, ‘잿빛 무지개’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비교적 심플한 이야기 구조를 지녔음에도 파괴력에 있어서는 여느 작품 못잖은 힘을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에기 마사후미와 그의 연인 유리에가 나눴던 짧지만 행복했던, 진정한 무지개를 꿈꿨던 순간이 너무 애틋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조금 긴 사족 :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무성의한 편집에 의해 훼손된 것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화가 나는 일입니다. 오역과 오타로 범벅이 된 번역서가 보기 드문 현상은 아니지만 ‘잿빛 무지개’는 그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어선 경우입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는가 하면, 초등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오타는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페이지에 서너 개씩 보이는 띄어쓰기 오류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습니다. 등장인물의 개명(?)이 가장 심각했던 두 가지 경우를 보면, 이사야마는 ‘아사야마’, ‘이시야마’, ‘이사야와’로, 야마나는 ‘야마다’, ‘야마하’, ‘야마니’로 바뀌곤 합니다. ‘근무하시니면서’, ‘가혹한 조건이에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이 갈망하는’, ‘매력 없는 사람으로 낚인 찍혀’, ‘자기가 싫어하할 것을 알았기..’ 등 단순 오타만 해도 수십 군데가 넘었고, 번역자의 문제인지, 출판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표현들도 있습니다. - ‘아키야마가 큰 소리에 놀라 아키야마가 얼굴을 들었다.’ - ‘분명으므로 그의 수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 ‘10시 이후에 있을 재판과 관련된 담당할 재판기록도 읽어둬야 했다.’ - ‘하루에의 왜 몸에서 비누냄새가 났다.’ - ‘7년 전이 낳은 사건 암담한 결과가 이 집에 응축된 듯 했다.’ - ‘자신이 후회 없이 다음 살았다고 생각한 만큼...’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페이지 여백이며 글자 크기부터 이해 안 되는 편집을 목격했고, 첫 페이지부터 주인공의 이름이 잘못 표기된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편집을 했고, 얼마나 오타가 튀어나오나 보자, 하고 체크해본 것인데, 이곳에 다 옮겨 적을 수 없을 만큼 오타와 비문이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책’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무성의하고 양식 없는 편집의 결과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아마 100페이지도 못 가서 책을 집어던졌을 것입니다. 책은 ‘상품’이지만 동시에 ‘작품’이며, 그것을 낸 출판사의 ‘얼굴’일 텐데, 이런 결과물을 독자들 앞에 내놓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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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라는 이름만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처음에 눈에 거슬리는 띄어쓰기가 있다 하더라도 참고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졌고 이름이 바뀌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상한 데서 띄어쓰던 문장은 뒤쪽에서는 이상한 데서 붙여 써버림으로써 잘못된 편집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검수를 안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래서 대형 출판사의 책을 선호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요즘은 대형출판사의 책들도 오타가 있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려 해도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타를 표시해두기는 했지만 사실 띄어쓰기 오류는 이 외에도 너무 많아서 그냥 넘긴 것도 많다. 이야기는 역시나 누쿠이 도쿠로 다운 선택이다 라는 생각이다. 앞에 있는 제목에서 거의 핵심을 찔러주고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면? 그것이 핵심이다. 여기 에기 마사후미라는 사람이 있다. 그저 조용한 사람이었다. 한쪽 볼에 큰 반점이 있어서 놀림도 많이 받았던 그런 사람이었다. 회사에 취직을 했어도 그 포지션은 그대로였다. 그런 그가 상사의 멱살을 잡은 것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모욕했기 때문이었다. 그날따라 왜 그랬을까. 하던대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모든 것은 다 바뀌었을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그날 그 상사가 죽었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온 형사들은 처음에는 다 일반적으로 물어보는 듯 했지만 마사후미가 그와 다툼이 있었던 것. 낚시터에 갔다고 한 그의 알리바이를 명확히 증명해 줄 무언가가 없다는 것 등을 이유로 그를 임의동행하고 집요하게 취조한 결과 말도 안되는 사건진술서를 받아내고 그를 용의자가 아닌 범인으로 몰아간다. 그렇게 그는 억울한 피해자가 되었다. 목차가 굉장히 신기하게 편집이 되었다. 형사, 검사, 변호사, 판사, 목격자로 이어지는 목차는 아래 부분에 part0으로 시작하는 다른 목차가 중간에 끼어 있다. 페이지 순으로 편집해 놓은 것이 아니다. 즉 형사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파트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이런 편집이 자칫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또 작가가 기가 막히게 연결점을 두었다. 전반적으로는 각 차례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파트에서는 마사후미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사실 조금만 집중하면 범인의 정체는 금방 밝혀낼 수 있다. 나 또한 연속되는 사건들에서 어느 정도는 유추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이 누구인가 중요하지가 않았다. 이 경우는. 처음에 나오는 형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분개했고 그 분개함이 계속 검사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단 말인가.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끝까지 잘못 끼우고 그 상태로 밖을 돌아다니는 이 행태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격분했다. 그리고 마사후미에게도 화가 났다. 처음부터 아니라고 주장했어야 했다. 물론 그도 그렇게 했지만 결국엔 굴복했다. 잘못된 판정은 어떻게 해서라도 굽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 굽혀졌을 때 일어난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내가 무죄함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굴복하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또 바뀌었을지 어떻게 아는가. 그래서 더 답답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잡아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제발 억울한 용의자는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범인을 꼭 잡아야 하는 그 마음은 절대로 이해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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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중소기업 직원 에기. 동요 유리에와 사랑을 키워 가는 데. 그녀를 괴롭히는 상사와 다툼을 하는 데 그 날 밤 그는 시체가 되 버리면서 살인범으로 몰린다. 유죄가 확정되고 다행히 6년을 복역한다. 그러나 그 이후 사건수사 형사, 검사, 무능햇던 변호사 그리고 판사들이 죽어 나간다.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던 형사 마나마, 복수의 완결편인 목격자가 살해되는 것을 가까스로 막는다. 에기의 복수와 그에 더해 지는 모성애...
역시 이누이 도코로다. 400페이지 빼곡한 내용을 하나도 지루하지 않게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 우울함을 놓치지 않는다. 화자를 돌아 가면서 각자 그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우울함을 잘 그려 낸다. 어저께 본 미나토 가나에의 고교입시도 같은 방식인 데,실력차이가 많이 난다..
늘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과 고민하는 모습, 수렁에서 빠져 나려오는 절박함을 잘 보여 준다. 거기에 양념으로 판사의 자기 와이프 하나에가 집배원과 바람을 피는 부분은 보너스로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별 6개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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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랑 크게 엮이지 않고 혼자 조용히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관 엮이게 된 것은 연애를 시작하면서였습니다. 자기 앞가림은 혼자 하던 남자는, 여자친구가 상사에게 모욕을 받자 그만 분을 참지 못하고, 상사의 멱살을 잡고 맙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고, 다음날 상사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합니다. 뭐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니까, 아무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정의로운 것이니까요. 벌은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실적지상주의의 경찰로 부터입니다. 관심법을 연마한 경찰은 대뜸 상황을 파악하더니, 범인을 바로 지목해냅니다. 정황 증거, 그리고 어수룩한 정의감에 넘치는 목격자, 그리고 어떻게든 빨리 범인을 잡아 내서 보너스를 타려는 닳고 달은 경찰.. 이들은 서로의 사정으로 남자에게 거짓 자백서를 만들게 합니다. 숙달된 경찰의 고문으로 만들어진 자백서... 남자는 그런 억지 자백은 검찰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사회생활을 잘못하는 친구 없을 것 같은 용의자의 말 보다는 뻔뻔하고 능글맞은 경찰의 말을 믿었습니다. "어떤 미친놈이 자기가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해?" 검사는 자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억울함을 무시하고, 경찰이 만든 자백서를 토대로 재판을 진행합니다. 남자는 변호사가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을 돈으로만 환산하는 변호사에게 이미 자백을 해버린 피고인의 억울함은 귀찮기만 합니다. "이미 자백까지 해놓고선 왜그래요? 그냥 시원하게 인정하면, 형량거래로 조금만 살다 나오게 해줄테니, 수임료나 넉넉하게 주쇼" 변호사는 뻔한 범죄자에게 제일 도움이 되는 최소의 형량을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빨리 끝내야 또 다른 사건을 수임받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임금에 대한 노동이었습니다. 남자는 변호사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돈을 받고서 형량이나 흥정하다니. 진실과 정의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 이제 남자는 판사만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판사도, 이미 자백문이 있고, 검사는 당연한 증거가 있는 살인자라고 지목하고 변호사도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형량이나 감해달라고 하고, 이 상황에서 혼자 결백을 주장하며, 경찰, 검사, 변호사, 목격자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자의 말을 들어줄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형이 집행되고, 남자는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형을 살고 나온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풍비박산난 가족... 하나뿐인 누나는 파혼당한 뒤 종적을 알 수 없고, 아버지는 자살하고, 약혼자는 떠나버리고, 엄마 혼자 막노동을 하면서 겨우 겨우 하루 벌이를 하며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뭐 인생이란게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출소를 견뎌왔는데, 이 꼴을 보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자신의 복수를 해 나갑니다. 판사를, 변호사를, 검사를, 목격자를, 형사를 말이지요.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들에게 억울하게 망가진 남자의 인생이란 그냥 스쳐지나간 한명의 범죄자의 인생일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복수는 성공적이지도 않습니다. 도중에 남자도 목숨을 잃게 되고, 그 남자의 의지를 이어, 혼자 남은 엄마가 마무리를 짓다가 경찰에 잡히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누구 하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없었던, 그냥 자기 나름의 분야에서 정의를 찾으며 여태까지 하던데로 해 왔던 사람들이지만, 그 결과 억울한 사람의 인생을 날려버린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시스템의 변화? 그냥... 사적인 복수... 결국 자신의 목숨과 남은 가족을 모조리 불태워버릴 수 밖에 없는 사적인 복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우울한 이야기였습니다만, 눈을 돌릴 수는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색이 잘 들어나는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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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무지개 만일 당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면? 미래는 무지개처럼 빛났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 이 책은 표지등의 책 디자인이 안티라는 말이 튀어나오고만다. 책을 다 읽고나니 그런 느낌이 확 한번에 달라지긴 했지만 내용을 접하기 전에는 손이 잘 가질 않는 책이었던 건 사실이다. 요즘 출간되는 책들이 책의 분위기와 내용들을 잘 보여주는 소장하고 싶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 속에서 빛을 내기 힘들었던 책이 아니었나싶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말음이 든다. 책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책을 집어 들어 읽기까지 외면이 한몫한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의 첫인상은 내가 이 깊은 이야기들을 읽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게 할 수도 있었기에! 안티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누쿠이 도쿠로 작가의 특유의 사회파 미스터리 풍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기에 이 책의 겉모습을 보고 내려놓았다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한 남자가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찬란한 무지개빛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7년전 자백을 강요한 형사, 냉철한 검사, 불성실한 변호사, 일탈을 꿈꾸던 목격자에 의해 그의 인생은 잿빛 무지개가 되어 버렸다. 나는 죽이지 않았다! 남자는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소심했던 아버지는 사회생활에 고립되자 우울증에 걸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누나는 파혼을 당해 가족을 버린다.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은 자신을 배신자라고 불러달라며 헤어지자 말한다.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 하루 아침에 그는 살인자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쁜 짓은 하면 안 돼. 이렇게 늘 누군가가 보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잡아떼고 순순히 자백하는 게 좋을 거야. 이만한 증거면 네 부모도 의심할 걸? 네가 하는 말은 이제 그 누구도 안 믿을 거야. 누구도 말이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짓말을 언제까지 지껄일 셈이야?" - 146page
억울한 누명을 쓴 자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진짜 범인을 밝히려는 일반적인 구성과는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사람들 형사, 검사, 변호사, 목격자 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한명 한명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남자의 복수를 끝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나쁜 행동을 한 사람들이지만 각 개인의 사연을 듣고 나면 그들 나름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볼 수가 있다. 그 처지는 공감하지만 누군가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고 하지않았던가 악의건 그렇지 않건간에 자신이 무심코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은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복수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건 허용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살인자의 누명을 써버린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더이상 도망갈 수 없는 벼랑으로 몰린 상황이란 걸 격하게 느끼게 된다. 안타깝다. 비극적인 예상외의 결말이라는 말에 그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는데 그 결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온 한 남자, 결혼해서 평범하게 행복한 가족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잘못된 판결로 인해 겪은 일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더 암담해지고 만다. 누쿠이 도쿠로 작가의 책은 읽고나면 정말 암울한 생각들로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어지는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때문이 아닐까.
주인공의 억울함이 마지막 결말이 책을 놓고 난 지금까지 진하게 마음에 남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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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有)
누쿠이 도쿠로의 복수소설. 덮고 나서. 그의 유명작품. [통곡]도 생각났다. 주인공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붙이는데. 누쿠이 작가에게 느끼는 점은. 그것에 자비심을 거의 느낄수 없다는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까지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 잿빛무지개도 그 예외 아닌. 참 누쿠이작가다운 소설이다.
+++ 그저 생을 조용히 살던 남자 마사후미는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감옥에 들어간다.
이후,그를 그 상황으로 몰고간 형사 - 검사 - 변호사 - 판사 - 목격자 순으로 죽거나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이 다섯은 모두 저마다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줍잖은 정의감. 내지 충실한 직업의식.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 정도가 아닌. 아마도 그 직업에 속한 사람들 90%가 그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평범하고. 무리없이 보인다. (그래서 더. 통렬한 사회적 메시지를 품고있는 듯싶다)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반대편-특히 약자의 가능성에서 생각해 볼 상상력은 없는. 자신의 매정한 시선속에 갇힌 인물들.
형-법조-일반인 그 각자의 입장을 디테일하게 풀어내는 누쿠이작가 솜씨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점이다.
인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트릭면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다소는 쉬운감이 있었지만. 재미읽게 읽혔다.
무지개와 잿빛은 공존할수 없다고 사회는 개인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약자는 답없을 복수로서 사회에 대답한다.
+++++ 글자가 좀 작고 오탈자가 좀있으나. (성급히 인쇄된 듯)내용을 읽기에 너무 거슬릴정도는 아니었다.
+++++++ 트릭면에서는 좀 아쉬움이 있다. 칼로 찌르고 확인하지 못해. 집앞에서 진을 친다는 야쿠자의 설정이 그렇다. 서술트릭 소설의 쫀득한 반전감 보다 (반전이 물론 있다! ) 하지만. 사회고발의 면에 무게중심이 있는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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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굉장히 재밌게 본 사람으로서 기대감을 갖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근데 어라?? 책을 펼치는 순간 일단 너무 크게 실망했습니다. 활자 크기가 왜 이리 작나요? 표지는 매우 세련됐는데 내부 활자가 작아서 <잿빛 무지개>에 약간 실망했습니다. 혹시 이 서평을 접하신다면 출판사는 다음부터 이런 점을 꼭 출판에 반영해주길 바랍니다. <잿빛 무지개> 소재와 내용은 아주 맘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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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명을 씌운자들에 대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좀 우울하게 다가온다. 자백을 강요한 형사, 예리하고 냉철한 검사, 불성실한 변호사 차례차례~~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기 과연 누가 그들 모자를 욕할수 있겠는가
스토리는 후반부로 갈수록 높아져 가는데, 무수한 오타와 문맥에 맞지 않는 번역들이 눈에 많이 거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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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 있어 불량품이란 건 어떤 존재일까? 인쇄가 뭉개져 있거나 페이지가 빠져 있으며 혹은 찢어진 종이가 있는 책은 과연 무엇이라 부르는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잿빛 무지개]는 그런 이유가 아닌 다른 의미로 내게 불량품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숱은 번역적인 문제와 오타들이 만들어낸 말 그대로 보자면 어쩌면 편집의 불량이 아닌가 싶다. 과연 이런 걸 불량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한창 재미나게 읽고 있는 작가 누쿠이 도쿠로에게 독자로서 미안함마저 생기게 만드는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이사야마' - '이시야마'
'이사야마'의 이름을 여러 차례 '이시야마'와 함께 병행해서 책에 등장하는데 심한 경우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윗줄에서는 '이사야마'라 적어 놓고는 그다음 줄에서는 ''이시야마'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일단 나는 처음에 '이사야마'라고 적혀 있어서 '이사야마'가 옳은 표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시야마'가 맞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맞는 이름 표기일까? 미궁 같은 이름 표기이다.
회의가 끝나자 가이즈카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했다. 그는 이사야마를 연장자로 판단하고 예의를 갖추었다. ... 나이 어린 녀석한테 무시당할 수도 있다고 각오했는데 상대가 오히려 몸을 낮추니 다행이었다. "이사야마 경사입니다." 이시야마는 상대의 내려다보는 모습에 불쾌감이 느껴졌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다.' 이시야마가 가이즈카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 P. 19~20
실제 어쩌면 작가가 이렇게 썼고 번역은 제대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장에서 보면 가이즈카가 먼저 연장자로 예의를 갖춰 먼저 다가와 인사를 했다고 그래서 분명 "다행이었다"라고 적어놓고는 바로 이어지는 문장에 내려다보는 모습에 불쾌감을 느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문장이 완성된 것일까?
"저 정도라면 알리바이가 증명된 게 아닌가요?" 가이즈카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 이사야마는 규동을 입으로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저런 불확실한 증언은 알리바이가 될 수 없어." P. 32
영어의 문장에 있어 물은 이가 부정으로 묻든 긍정으로 묻든 아닌 것은 No라고 대답한다고 옛날에 배운 것 같다. 가이즈카의 물음에 대한 이사야마의 대답은 물론 아니라고 말을 하는데, 물론이란 표현은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 정도라면~"이라는 표현으로 봐서는 가이즈카는 알리바이가 증명되었다고 보는 것인데 이사야마는 물론이지라고 말을 받으며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고 말을 한다. 내가 격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규동집을 나와 얌전히 이사야마를 뒤따랐다. P. 33
아키아먀가 큰 소리에 놀라 아키야마가 얼굴을 들었다. P. 37~38
이사야마는 동기가 밝혀지자마자 이사야마는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P. 72
역시 과장님은 역시 내가 죽였나? P. 146
이제 살아 계신 분은 이제 이시마네 판사님밖에 P. 318
한 문장 안에 반복되는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이 너무 많아 모두 다 적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라다씨도 공장에서 근무하시니면서 ... P. 36
가이즈키는 이사야마의 방침에 반대하는 않았지만 ... P. 39
이사야마는 참 알 수 없는 녀석이라는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P. 45
반드시 하라다를 자백을 받아내기로 다짐했다. P. 50
고니시는 이사야마와 같은관할서 소속이었다. 분명으므로 그의 수사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P. 236
뜨거운 감정에 이끌려렸다고는 P. 292
7년 전이 낳은 사건 암담한 결과가 P. 312
야마나는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 들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P 329
자신이 후회 없이 다음 살았다고 생각한 P. 350
그 어떤 모험하고 싶지 않았다. P. 350
이런 식의 인쇄상의 문제들도 제법 있다.
사실 음식물이나 우리가 구매 후 몸에 닿아 이상을 만들어내는 제품이 아닌 이상에는 우리는 그리 불량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가구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느껴지는 정도의 불량은 정상품으로 교체를 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은? 인쇄가 다 같이 되어 있는 이 책의 불량에 대해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다. 청하에서 나온 [잿빛 무지개] 책 중에서 내가 산 책이 불량률 몇 퍼센트 안에 드는 그런 이유라면 ...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어떤 면에서는 어느 작가의 책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와서는 이상한 활자를 품은 책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작가로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에 대한 아픔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이상한 생각도 해본다.
어떤 이는 그렇게 말을 할지도 모른다. 책, 그중에서도 그냥 시간이나 때울만한 소설을 가지고 뭐 그러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조사가 빠지거나 첨가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실 문장으로 읽다 보면 대부분 그리 어렵지 않게 읽고 넘어갈 수는 있다. 그런데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니 예술이니 작가의 자식이니 그 딴 거 다 떠나서 분명 이 책은 청하 출판사에서 만들어낸 상품이고 누군가는 값을 치르고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품이 이런 모습일 때 불량품을 돈 받고 팔려 했다거나 불량품을 돈 주고 산 느낌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한국에 다른 나라의 작품을 번역해서 출판이 된다면 한국에 출판된 누쿠이 도쿠로의 [잿빛 무지개]는 번역가 이수미씨의 작품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번역가 이수미씨는 과연 자신이 번역을 한 책이 어떤 모습으로 시장에 나갈지 한번 읽어보기는 했을까?
그리고 출판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지는 못하지만, 책이란 것이 한 권 만들어져 도서 시장에 나오기까지 완성본에 대해 출판사는 읽는 검토를 해보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출판 시스템을 모른다 하더라도, 나 역시 글을 쓰면서 무수한 오타와 잘못된 혹은 틀린 문장을 작곤 한다. 하지만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책에 대해서 만큼은 그 상품이 올바르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심혈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사의 직업관이 아닐까 싶다. 청하는 90년 대에 제법 유명한 출판사로 알고 있었는데 왠지 그 신뢰감마저 떨어지는 게 만드는 책을 만들었단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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