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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사인 '나'는 재미 교포인 '폴'을 사랑한다. 남들이 연애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나'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백수린의 소설 「폴링 인 폴」의 갈래를 정한다면 연애 소설쯤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읽어가다가 그러니까 소설의 중반부에서 후반부로 달려가는 부분에선 연애 소설을 쓰고 쉼표 찍고 성장 소설이라고 하나 더 써도 틀린 건 아니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었다. 소설은 한국어 회화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한국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재미 교포 '폴'과 교사 일에 회의를 느껴 삶이 심드렁해지는 걸 지켜 보는 '나'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십 대 중반인 남자와 삼십 대 중반인 여자. 나이 차이가 뭐 어때서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어려 보이기 위해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는 정도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할 뿐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짝사랑 진행 중인 '나'는 '폴'에게 마음을 전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한국어 수업에서 만난 일본인 유리꼬를 사랑한다는 '폴'에게 '나'가 한다는 말은 겨우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을 하냐니. 「폴링 인 폴」의 '나'는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폴'을 대책 없이 좋아해 놓고서. 그래놓고 오피스 아워 내내 자신의 이야기를 내내 들어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오래전 폴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도 왜 영화감독의 꿈을 접었느냐 했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 것이다. 교포들의 역사는 narrative적으로 진부하죠. 모든 집의 역사가 다 다르지만 이야기로 만들고 나면 결국 모두 cliche예요. 처음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는데, 너무 뻔해. 그래서 관뒀어요. 폴은 그 말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백수린, 「폴링 인 폴」中에서) '폴'에게 빠진 소설의 제목대로 '폴링 인 폴' 하고 있는 「폴링 인 폴」은 뻔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을 '사랑에 빠지다'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의 반대 표현은 '사랑에 스며들다'이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게 과연 사랑인가 의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다. 그러다 완전히 사랑에 젖은 자신을 보며 사랑에 빠져버렸군 깨닫는 것이다. 두 표현이 가지는 공통점이란 결과적으로 사랑을 한다라는 결말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사랑은 특별하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생애 최초라고 자부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진부하고 식상해서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의 전개로 나아가는 것을 봐야 한다. 영화감독의 꿈을 접게 된 이유를 말하는 '폴'의 말에서 '나'는 현재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란 클리셰 범벅인 것이라서 술자리에서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랑에 빠졌다고 선언하는 이의 신나고 발랄한 모습은 삶이라는 서사 안에서 술 먹고 울고 멀쩡한 차의 백미러를 부수는 로맨스 장르에서 액션 장르로 선회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이와 언어의 차이가 문제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반하는 지점에서 어긋난 「폴링 인 폴」의 '나'의 사랑 이야기는 한 시절을 꿈꾸게 하고 타인의 삶에 격려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의 키가 한 뼘쯤 자란 '나'의 성장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폴, 왜 나한데 이 이야기를 해준 거야? 술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내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폴의 답이 그 순간 떠올랐다. 왠지 선생님만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줄 것 같았어요. 도대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수많은 취객들 사이에 마주앉자, 폴이 들려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지금, 삶이란 신파와 진부, 통속과 전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말해질 수밖에 없는 것들에 의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백수린, 「폴링 인 폴」中에서) 말해질 수밖에 없는 통속에 의해서 삶은 유지된다, 고 '나'는 삶의 정의 하나를 챙겼다. 비록 '폴'과 다정한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의 한국 이름을 묻고 말할 수 있는 만큼 힘껏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로 사랑을 대신 표현한다. 한 직장에 7년을 다니고 있는데 이제서야 겨우 나의 통속과 신파를 조금씩 꺼내게 되었다. 내가 가진 진부를 겁도 없이 내보이다가 몇 번 크게 당한 기억이 있었지만 삶이라는 시간이 계속되면 망각의 신이 찾아온다. 분노와 고통의 기억이 사라지고 다시 사람에게 기대는 나약한 나의 슬픔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폴링 인 폴」은 믿음에 대한 소설이다. 우는 사람을 보면 손수건을 내밀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진심을 내보이는 사람에 대한 소설.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고 웃으며 말하는 짝사랑 남자에게 '안녕'을 빌어주는 예쁜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사랑에 빠지다'와 비슷한 말은 '사람에 빠지다'라고 돌리고 돌려서 말하는 소설 「폴링 인 폴」에 폴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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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첫 단편집인 폴링 인 폴은 같은 얘기인 듯 다른 이야기들이 묶여있는 책이다. 백수린 작가는 '언어'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전 정용준 작가의 단편선인 <가나>, 장편 소설 <바벨>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비슷하다는 것은 다만 정용준 작가와 백수린 작가가 언어, 언어의 상실을 통해 언어의 기능성과 동시에 소통의 상징으로서의 언어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의 가장 서두에 자리한 '감자의 실종'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섞인 실어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감자의 실종'은 이 책의 전체적인 주제의식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왜 사람은 언어를 잃는가, 언어를 잃은 사람은 그로 하여금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이 단편소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감자'를 비롯한 몇몇 단어를 잃어버린 주인공은 언어 사용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소통 도구인 언어의 결함이 소통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주인공은 말하는 것에 공포심을 느끼고 입을 닫는다. 그리고 점차 말하는 법을 잊어간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이 책의 다른 단편에 숨어 있다. 다른 상황에 놓여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비슷하기도 한 그 글은, 백수린 작가의 등단작인 <거짓말 연습>이 있다. 주인공은 해외에 거주하며 소통 문제를 겪고, 언어를 더이상 말하지 않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결국 타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든, 정확한 의미 전달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그저 말하는 것'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프랑스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노파에게 한국말로 자신의 얘기를 터놓는데, 인상깊은 것은 그것이 주인공이 프랑스에 온 뒤로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터 놓는 장면이라는 것이다. 노파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리 만무하지만, 단지 말하는 것만으로 주인공은 후련한 마음을 느낀다. 더듬더듬 프랑스어로 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이전보다 노파와 가까워졌다는 느낌까지 받는다. 여기서 백수린 작가는 언어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이 두 단편에서는, 언어는 그저 말해지는 것만으로도 발화자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성을 가진다. 모든 단편에서 백수린 작가의 외국 생활이 묻어나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색이 강하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는 분명 큰 장점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개별적인 글마다의 색이 옅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게 읽히기도 한다. 첫단편선인 만큼 다음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들로 언어에 대해서 탐구해갈지 궁금해지는 작가이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문장이 언어를 탐구하는 이야기들과 퍽 잘 어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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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백수린 소설 백수린 저 | 문학동네 | 2014년 02월 07일
“내가 온전히 발음할 수 없고, 폴의 부모도 온전히 발음할 수 없을 그 이름, Junchan. 그라는 사람은 준찬과 Junchan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었다. 나는 이번엔 폴의 발음을 교전해주지 않았다. 비록 내가 그의 이름을 그가 발음하는 대로 부를 수 없더라도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나는 믿었으므로.” [출처] 백수린, 『폴링인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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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주의) <여름의 빌라>를 통해 백수린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사실 <여름의 빌라>는 표지가 너무너무너무 내 취향으로 환상적이게 예뻐서 작가 이름이나 제목도 안 보고 샀던 책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효과로 그 책이 좋아서 백수린 작가님을 검색해보게 되었고 <폴링 인 폴>이라는 이름이 예뻐서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 되었다. <감자의 실종>은 언어의 상실, 혹은 단어 개념의 상실이라는 소재가 너무 기발하고 신박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했는데 감자와 강아지라니, 읽으면 읽을수록 웃기면서도 두려워졌다. <자전거 도둑>은 유쾌하면서도 내면 심리는 너무도 냉철하게 꼬집어서 외면할 도리가 없었다. 정말로 주변에 이런 애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물론 여자 셋이 동거하는 집에 수시로 남친을 데려오는 행동 자체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건 배려와 예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표제작인 <폴링 인 폴>! 제목도 예뻐서 굉장히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 외로 애틋하고 먹먹했다. 어쩌면 그리움, 추억, 이런 것들을 저자가 담담히 풀어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백수린 작가님의 등단 당선작인 <거짓말 연습>이다. 왜냐하면 구구절절 너무도 공감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아마도 유학, 혹은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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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백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에겐 절실함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없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다는. 난 자존심이 센 여자였고 다치고 싶지도 않았다. 적당히 방어막을 치고 선도 빨리 긋고 정리도 빨리했다. 다른 이는 어떨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내겐 아픈 사랑의 기억이 없다.
사랑에 조금 건조해서일까. 어찌 되었든 난 처음에 이 글을 읽고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한 여자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폴의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just의 느낌이었다. 선생과 학생 사이. 자주 만나 그냥 정든 사이. 그래서 무얼 써야 할는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그녀가 덤덤히 말을 하고 있지만 얼마나 아팠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들켰다가는 두 번 다시 폴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p.74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절실한 사연을 나는 진부하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그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폴의 연민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인들의 정서인 '정'이 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모성애까지 발동한 것인지도. 폴의 아버지도 폴도 유리꼬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연민. 그들 사이에 결코 끼어들 수 없음을 알았을 그녀. 누나라는 호칭으로 남아서 여전히 폴을 보고자 했던 그녀의 짝사랑에 가슴이 찌릿했다. 순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단편이 떠올라 그런 생각까지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