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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대승기신론』은 '대승의 가르침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키는 논서'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평래 교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믿음을 일으키는 논서'라고 본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두 해석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 저자는 그저 '대승'에 '중생심'을 대입해 푼 것이다. 독창적인 풀이는 결코 아닌데 '서론'에다 그런 식으로 썼다. 중생심이 곧 대승이고, 진여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을 만한 독자에겐 이미 상식 아닌가 말이다. 그나마 냇 킹 콜이 부르는 <투 영(Too Young)>의 노랫말이 강설에 등장한 것은 좀 의외였다.
저자의 '강설'에서 일차적 불만은 무턱대고 출현하는 '싼쓰끄리뜨'다. 2005년 한국불교학회의 불교학술용어 표준화안 싼쓰끄리뜨 발음표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낯설기 그지 없다. 샤끼야무니, 마하야나, 니르와나, 까르마 정도는 이해하겠다. 그러나 보디쌋뜨와마하쌋뜨와나, 마하와이로짜나, 아미따유쓰, 슈리말라데위씽하나다경 등등은 해도 너무했다. 한역으로도 충분한 해석에, 아니 한역이 오히려 이해를 높여주는 해석에 굳이 한국인에게 생소한 싼쓰끄리뜨 용어를 빈번하게 갖다붙이는 일은 사족이라고 본다. 그런 사족을 저자는 매우 태연하게 자주 범한다. 불교연구에서 한역 텍스트를 중심에 두지 않고 싼쓰끄리뜨 용어로 치환해 사용하길 즐기는 것은 어리석은 소치다. 그리고 강설과 용어해설에 서로 중복되는 내용이 너무 많다. 편집에서 좀더 과감하게 잘라냈어야 한다. 『대승기신론』은 인도의 아슈와고샤(馬鳴)가 싼쓰끄리뜨어로 쓴 것을 기원 550년 경에 인도의 유명한 경전 번역가인 빠라마르타(眞諦, 499-569)가 한역한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혹자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실제로 저술한 이가 중국 섭론종의 개조인 빠라마르타인데 단지 저자를 아슈와고샤로 가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신론의 삼대 표준 주석서는 수나라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 523-92)의 『대승기신론의소』, 신라 원효(元曉, 617-86)의 『대승기신론소』, 당나라 법장(法藏, 643-712)의 『대승기신론의기』이다.
기신론에서 이(理)로서의 존재방식인 진여법신은 자성청정심(인격적 존재방식), 여래장(번뇌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적 존재방식), 각(주체적 존재방식)으로 설명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