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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로랑스 드빌레르의 4권의 책 중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읽게 됐으니 말이다. 만일 역 순으로 읽어나갔다면, 다른 저서들을 읽는 것이 두려웠을 듯하다.
스스로 ‘가치 혼란의 시대’라 말하며, 생각의 중요성을 떠벌렸지만 정작 비판적 사고나 성찰보다는 순응과 적응의 태도로 일관했기에 그렇다. “또 얼마나 힘들게 하려고...” 하는 느낌(?)이었기에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반성과 성찰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수치심이나 죄책감보다는 목욕탕에서 오래 묵은 때를 밀고 나와 느끼는 개운함과 밖에 나와 맞이한 햇빛으로 인해 느끼는 약간의 기분 좋은 어지럼증같았다. 간결하게 구성된 내용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심오했다. 각 꼭지에 담긴 주장을 위해 저자가 기울였을 학문적 노력과 고심을 상상해보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의미 전달을 위해 선택한 시적 혹은 은유적 표현이 그렇고, 비판과 주장에 대한 문헌과 논리적 근거들도 그랬다. “철학자가 철학했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행복에 대한 ‘시대의 주류’에 ‘도발’하고 있는 듯 느껴졌기에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가려운 곳을 ‘정밀타격(?)해 피부아래까지 긁어주는 것’같아서.
저자가 감당할 비판에 대한 두려움을 상상하게 됐다. 하지만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조롱과 비판’만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철학자인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 선택한 저자의 ‘결단’과 ‘직진’하는 모습은 지지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역자 후기는 책을 이해함에 있어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약간의 설명과 자기변호”를 위해 후기를 남긴다고 하지만 겸손에서 나온 표현이라 생각한다. 후기의 내용은 책 전체에 대한 해설에 가깝다.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프랑스어 원제목이 가진 단어적 의미와 저자의 의도를 일목요연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간결한 요약은 책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또 다른 요약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한다. 번역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이기도 하겠으나 역자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본문보다 먼저 읽어야할 이유다.
사족: 하나, 심미적 위로의 메시지가 ‘1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와 목표를 그 곳에 두면, 책을 읽어나가기 많이 불편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둘, 로랑스 드빌레르의 작품에 관심이 깊어지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날개를 보니 같은 출판사에서 저자의 <파스칼의 철학: 불안의 원리>를 근간으로 준비 중이라니 기대됩니다. 불어로는 '2022년 파스칼 탄생 600주년'을 기념해 이미 출판되었을 텐데, 원서를 읽을 수 없는 자신을 탓해봅니다. 번역자와 편집 담당자들께 응원의 박수를 미리 보냅니다. 이글을 읽으실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저자가 미주에 명시한 인용 문헌의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해주신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해당 문헌에 대한 궁금증 해결과 이후 독서 목록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은 어휘의 일대일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원저자의 의도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의도와 표현을 살리기 위해 역자가 겪었을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티끌’ 같은 사족을 추가하자면, 한 개념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80쪽, “신앙인에게 행복이란 ‘정당화되고 구원받은 삶’의 동의어일 따름이지만,” 이란 문장입니다. 외국어 능력 부족으로 원문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추정컨대, 원문은 라틴어로 'Justificatio', 영어로는'Justification'이지 않을까합니다. 이는 신학 용어로 보통 ‘의화(義化)’라고 번역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사도 바울)의 로마서에 근거를 둔 구원 개념을 일컫습니다. 즉 ‘의화되고 구원받은 삶’이 신학적으로는 적합한 표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섣부른 추정으로 혼란을 드렸다면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저의 오만함을 탓해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