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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인지,’ ‘나의 믿음은 그저 내가 바라는 것들을 얻기 위함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믿음만으로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등은 늘 나를 사로잡는 화두였고, 늘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는 원천 같은 것이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이 책을 읽으며 결국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리고 내가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신뢰’였다는 생각이 든다. 확신을 가지는 믿음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도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태도 말이다. 신부님은 신뢰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두려움부터 정직하게 바라보라고 한다. 두려움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대화해야 할 대상이며, 삶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우리를 사람들의 인정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나의 근원을 찾도록 촉구한다. 두려움에 대처하는 영적 방법은 이 두려움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 두려움은 삶의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 두려움은 늘 하느님께로 향하도록 촉구합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저의 근원을 찾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배경으로 해야만 신뢰에 관해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견해가 일치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느낄 때에도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신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두려움과 신뢰가 전혀 무관한 것으로만 여겼던, 두려움을 우리 마음 속에서 제거해야만 하는 나약한 상태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신뢰’를 위한 ‘두려움’은 그간 텍스트로만 너무 쉽게 신뢰를 말해왔던 나를 잠시 멈춰서게 한다.
자기 신뢰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더 심오한 근원이시자 우리를 받쳐주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내가 삶의 위기를 겪더라도, 하느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각자가 겪는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할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심어놓으신 신뢰도 자신 안에서 감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우리를 내적으로 받쳐주고,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기도합니다. 신뢰는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는 중에도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이미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모든 신뢰는 또한 심오한 근원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뢰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신뢰는 심리적인 기술이나 낙관이 아니라, 신앙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둘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 고백은 삶의 위기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보장이 아니라,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과도한 걱정을 멈추게 하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 신뢰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 신뢰에 찬 마음으로 그 힘든 상황을 하느님 앞으로 가져갈 때 우리는 과도한 걱정을 멈출 수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참 나’의 개념 또한 신뢰와 깊이 연결된다. 참된 나/자기는 인간의 내적 중심을 이룹니다. 강함과 약함,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참 나’에 속합니다. 우리가 자아에서 벗어나 ‘참 나’를 향해 간다면 평정심을 더 많이 지니게 되고 더 진실해지며 더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 나의 본래적 가치는 더 심오합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상상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더 크고 새로운 자유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즉, ‘참된 나’는 강함과 약함,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함께 품은 내적 중심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나 기대에 좌우되지 않는 본래적 가치에 뿌리를 둘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됩니다.”라는 문장은 조건 없이 사랑받는 체험이 왜 신뢰의 토대가 되는지를 말해준다.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여진다는 확신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곁에 머물 수 있고, 나 자신을 참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로 흘러간다. 신뢰는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스스로에게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순간에서도 신뢰는 내려놓음과 연결된다. 아이들이 삶을 신뢰하기 위해서는 부모에게서 풀려날 자유가 필요하다는 말은 관계 속 신뢰가 얼마나 용기 있는 선택인지를 보여준다.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아들이요 딸이다. 아이들의 영혼은 당신이 들어갈 수 없는 아침의 집에서 산다.”(칼릴 지브란) 내려놓는 것과 신뢰하는 것, 이 두 가지 요소는 아이들이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 자녀는 부모에게서 풀려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튼튼한 뿌리에 대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기댈 수 있기를 바라고, 격려받기를 갈망합니다. (…) 동시에 우리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작은아들 또는 작은딸을 지지해 주고, 삶을 주도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용기를 주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성인들의 삶을 통해 신뢰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성인들은 치유의 힘을 자기 스스로의 공로로 여기지 않았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업적으로 자각했다. 그래서 성인들은 완성된 인간이라기보다 희망의 표시로 남는다. 성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서 치유의 힘이 나간 것을 자기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업적임을 자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삶의 완성과 우리의 갈망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의 표시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신뢰가 결여되었다는 것이 감지된다면, 하느님이 나를 받쳐주신다는 믿음이 이러한 부족을 메우거나 극복하게 할 수 있으며 나의 신뢰를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두려움을 없애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놓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매일의 약속처럼 들린다. 언제라도 ‘그저 믿기만’ 하면, 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그 약속이야말로 우리가 한걸음 더 앞으로, 온갖 고통과 상처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일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늘 듣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이는 우리의 두려움을 가져가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매일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것,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고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선사합니다. 하느님 안에 계속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을 더욱 강하게 이끌어 가는 힘이리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의 빛이 가장 밝게 빛난다는 말은 그래서 우리가 매순간을 희망을 품으며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구원은 ‘하느님께서 예비하신 시간에,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는 그 말을 다시금 되새기며 나의 신앙의 깊이를 한층 더해 보려 한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하느님의 빛이 가장 밝게 빛납니다.
성체성사는 삶과 죽음, 산 이들과 죽은 이들, 하늘과 땅을 갈라 놓는 것을 없앱니다. (…) 죽음은 우리를 하느님과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죽음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맺은 관계도 끊어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성찬례 때 기립니다. 신뢰는 또한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체험이라고 신부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과도하게 붙잡을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지지만, 지금 이 순간 하느님 안에 머무를 때 신뢰는 다시 숨을 쉰다. “우리에게 절망이 덮친다면, 이는 과거와 미래를 과도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마더 데레사 수녀님)
지금 이 순간, 나는 하느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분의 사랑에 감싸여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오직 하느님만이 당신의 깊은 갈망을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감싸여 있습니다.’라는 신앙 고백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계속 지켜나가야 하는지 일러주고 있다. 그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의 뜻’을 곰곰히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길일 것이다. 『신뢰,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는 신뢰를 쉽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 고통과 혼란을 통과한 뒤에야 신뢰가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가리킨다. 신뢰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태도가 아니라, 온갖 불신에 맞서 언제나 하느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삶의 방향이다. 신뢰란 온갖 불신에 맞서 언제나 하느님 편에 서는 것, 하느님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려워하는 중에도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나를 받아주시는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믿음은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줍니다. 나는 고통이나 슬픔 중에도 그분의 사랑에 감싸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어둠과 혼란을 겪게 하셨습니다. (…) 감사는 제가 교만하지 않도록 막아주고, 어떤 성과나 능력을 자랑하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나의 신앙이 무엇인지, 왜 이 신앙을 믿고, 지켜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또한 신앙에 기반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곰곰히 되돌아보게 하는 긴 ‘묵상’을 끝낸 기분이다. 신뢰란 두려움을 없애는 힘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중에도 나를 받아주시는 분을 바라보는 선택.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리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확신이다. 나는 그 신뢰를 다시 배우고 싶다. 그리고 옮긴이의 말처럼 신뢰가 깃든 풍요로순 삶을 살아가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내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 때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 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 신뢰가 생겨나고, 이 신뢰가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신뢰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신뢰를 키우고 강화하면서 영적 성장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삶, 신뢰가 깃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옮긴이의 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