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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희의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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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 원짜리 연구서가 가야할 길정가 12만 원에 달하는 이런 ‘초호화판 & 특대형 & 양장’ 전기를 소장할 만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주인공에 대한 엄청난 팬심을 품은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정도 투자를 결심한 배경에는 단순히 커피 테이블에 올려놓을 만한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하다는 일차원적 동기가 아닌, 진정 흠모하는 한 화가의 삶에 대해 빠
"고종희의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내용보기



12만 원짜리 연구서가 가야할 길

정가 12만 원에 달하는 이런 ‘초호화판 & 특대형 & 양장’ 전기를 소장할 만한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주인공에 대한 엄청난 팬심을 품은 사람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정도 투자를 결심한 배경에는 단순히 커피 테이블에 올려놓을 만한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하다는 일차원적 동기가 아닌, 진정 흠모하는 한 화가의 삶에 대해 빠짐없이 알고 싶다는 순수한 지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고종희 교수가 스스로 “평생을 바친 미술사 연구에 대한 열정의 결과물(8p)”이라고 자부한 이 책이 그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일단 저자가 새롭게 밝혀낸 사실이나 통설과 다르게 논쟁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없다. 저자는 기존 카라바조 관련 저술들을 다시금 잘 모아 (초호화판 도판과 함께) 예쁘게 정리하고, 거기에 직접 발품을 팔며 느낀 소소한 단상을 살짝 얹었을 뿐이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이름을 딴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가 실제로는 밀라노 출생이라는 사실이 이 책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대단한 발견이라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사실이 소수의 학자만 알음알음 알고 있는 간과된 진실 같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 서고에 딱 두 권의 카라바조 전기가 있는데, 두 책 모두 카라바조가 밀라노 출생이라는 점을 정확히 언급하고 있다. 이 책들은 대단한 학술서도 아니고 각각 2008년과 2016년에 출판된 대중서일 뿐이다. 이처럼 오래전에 명확히 밝혀지고 공표된 사실인데도 저자는 2022년 여름에 카라바조의 출생지가 왜곡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며, 심지어 “이 책이 출간되면 카라바조의 출생지는 우리나라에서도 밀라노로 바로잡힐 것(7p)”이라고 전망한다. 자의식이 과하다.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평생 모를 것이다. 그리고 사실 평생 몰라도 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새로운 기록의 발견이나 과학적 분석이 뒷받침되지 않다 보니 2kg이 넘는 이 육중한 책의 상당한 지면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 작품 분석이다. 그리고 이 작품 분석 안에서도 저자의 억측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카라바조가 어디서 어떤 작품을 보았고,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둥의 추론이 이어지지만 적절한 문헌적 근거는 뒷받침되지 않는다. 작품 속 전반적 구도나 인물의 자세 표현 등이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같은 대가의 작품과 비슷한데, 당대에는 대가의 작품들이 판화로 널리 유통되어 카라바조가 이를 쉽게 참고할 수 있었으리라는 추측에 기반한 분석이 대부분이다. 특히 ‘그림을 훔치다’ 장은 카라바조가 대가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인데, 특정 그림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도상과 당대에 어느 정도 규범화된 표현을 답습한 도상이 뒤섞여 있어 저자의 분석을 신뢰하기 어렵다. 이처럼 짜 맞춰진 계보학은 미술사가들의 선입견과 엘리트 의식이 다분히 개입되므로 어느 정도 걸러가며 수용해야 한다.

작품 분석은 대체로 과학적 분석보다는 찬사 일변도로 흐른다. 소장 및 복원 이력, 진위 논란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미술사가로서 형식분석이나 도상학적 해석도 가미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미사여구가 총동원되며 카라바조를 상찬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심지어 카라바조 작품의 복제품은 대부분 자신이나 제자들이 제작한 공식 복제작이며 위작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카라바조 작품을 “제대로 복제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인물의 영혼까지 그려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247p)”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카라바조가 너무 위대해서 복제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인데, 신화화의 정도가 지나치다. 이런 식의 일축은 복제된 작품의 경위와 진위를 파악하려는 과학적 혹은 문헌학적 시도들을 폄하하거나 억누를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 생태계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미술사가는 영혼 감별사가 아니다.

지나치게 종교적 교훈으로 흘러가는 분석도 이 책을 진지한 미술사 연구서로 인정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작품 배경이 되는 성경의 내용을 어린이 성경만화식 대화체로 길게 풀어 쓴 대목(예: 117-118p)을 보면 이것이 미술사 연구서인지 성화집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비평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미술사의 학문적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학자적 객관성은 유지해야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 문화예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종교적 열정은 잘 알겠지만, 그 정서가 미술사 연구서에 표현될 때 연구결과의 객관적 진실성이 흔들릴 수 있음은 각오해야 한다.

새로운 문헌이 발굴되지 않았더라도 차라리 작품 복원이나 과학적 분석 과정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들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를 보강했다면 카라바조 작품세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방대한 분량 가운데 엑스레이 촬영 이미지는 단 한 장만 수록되었다(116p). 이와 같은 최신의 분석 결과물들이 분명 어딘가 더 있을 텐데, 그런 과학적 접근이 이 방대한 연구서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우리가 오랜 시간 카라바조 연구에 전념한 학자로부터 듣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오늘날 전해지는 소수의 카라바조 작품들, 그중에서도 특히 본인이나 제자들이 복제했다고 추정되는 작품들은 정말 진품의 가치를 지닐까? 그 복제작들 가운데 가치의 위계가 존재하나? 미묘한 표현상의 차이는 무엇이고 왜 발생했는가? 카라바조가 작품을 구상하고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수정되거나 실현되지 못했거나 망설였거나 폐기한 부분은 무엇일까? 이처럼 카라바조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질문들은 이 2kg짜리 책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오늘날 카라바조가 직접 남긴 기록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상당 부분 이미 공개된 과거의 문헌을 바탕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겠지만, 새로운 문헌의 발견이나 최신의 과학적 기법을 통해 밝혀낼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저자는 신앙심과 신비화의 안경으로 카라바조를 바라봤다. 과학적 근거로 바로크의 창시자를 새롭게 조명할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나마 카라바조의 초기 스승인 시모네 페테르차노(Simone Peterzano)가 티치아노의 제자였다는 점, 그러니까 카라바조가 미술사 계보상으로 티치아노의 직계 손자뻘 된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은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베네치아의 찬란한 빛이 카라바조를 거쳐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경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카라바조의 아버지가 마을 영주의 집사였고, 어머니는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한 점도 의의가 있었다. 카라바조는 분명 당대 누구라도 단박에 사로잡을만한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였지만, 그가 숱한 악행 속에서도 작품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순히 실력만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후원자로 든든히 버티고 선 콜론나 가문을 비롯한 귀족과 추기경들이 든든히 뒤를 받쳐준 덕분이었다. 카라바조의 천성 자체가 자유분방하고 다혈질적이며, 혁신가적 면모가 다분했겠지만,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배경에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후원자들은 카라바조를 다그쳤고, 한편으로 보호해주면서 짧은 생애 동안 역작들을 최대한으로 뽑아냈다. 그러다 선을 넘어 결국 카라바조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데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비호하는 막강한 세력이 없었다면, 카라바조가 살인에 이를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젊은 나이에 요절할 이유도 없었지 않았을까? 물론 그렇게까지 극한에 몰리지 않았다면 「다윗과 골리앗(1607)」 같은 역작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 우리가 그를 바로크 회화의 창시자로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운의 천재 예술가를 돌아볼 때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예술가가 겪은 고난은 본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었으나, 남겨진 인류에게는 크나큰 선물이 되곤 한다.


편집상의 사소한 아쉬움도 남는다. 일단 도판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도판 위에는 쪽번호를 기재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본문을 읽으며 동시에 도판을 참조하기가 상당히 번거롭다. 미세하게라도 쪽번호를 기재해 줄 순 없었나? 사소한 실수들도 눈에 띈다. 136쪽에 기재된 「보르고의 화재」 쪽번호는 130쪽이 아니라 138쪽이 맞다. 또한, 본문에서 소장처를 표기할 때는 일관된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288p)’라는 용어와 ‘국립 미술관(315p)’이라는 용어가 혼재되는데 내셔널갤러리가 타당한 표기로 보인다. 그 미술관은 국립이 아니니까. 좀스러워 보이지만 자고로 12만 원짜리 책이라면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어서는 안 될 터. 정가의 무게를 견뎌라.



YES마니아 : 플래티넘 s*****s 2025.02.04.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