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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부의 위선을 질타하는 호랑이, 그속에서 느껴지는 조선인의 호랑이 사랑-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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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인분 구덩이에 빠진 선비를 호랑이가 질타하는 모습이. 의외인 것은 호랑이의 호통을 듣고 있는 선비가 욕심없고 학식깊다고 평판이 자자한 북곽선생이었다는 것이니 가히 백수의 왕다웠다. 북곽선생은 수절하며 절개가 높다는 동리자를 찾아갔다 동리자의 아들에게 들켜 달아나다가 그만 인분구덩이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겨우 그 구덩이에서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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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인분 구덩이에 빠진 선비를 호랑이가 질타하는 모습이. 의외인 것은 호랑이의 호통을 듣고 있는 선비가 욕심없고 학식깊다고 평판이 자자한 북곽선생이었다는 것이니 가히 백수의 왕다웠다.

 

북곽선생은 수절하며 절개가 높다는 동리자를 찾아갔다 동리자의 아들에게 들켜 달아나다가 그만 인분구덩이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겨우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호랑이에게 물리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반응은 결코 북곽선생을 탐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탐하기는 커녕 오히려 악취가 풍기니 가까이 오지 말라고 일갈한다.

 

북곽선생을 향한 호랑이의 호령은 통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것은 북곽선생 1인만이 아닌 허위와 위선에 가득찬 인간에 대한 일갈이었다.

 

익히 알려진 연암 박지원의 단편이지만, 겉으로만 근엄하고 도덕적인 선비, 절개를 지키는 과부인 척하는 위선을 저격하는 수위가 아주 높았다. 호랑이가 인간에게 일침을 가하는 신랄한 풍자와 조롱은, 인간과 호랑이의 도덕적 지위가 역전되는 상황을 조성했다.

북곽 선생이 하도 찌질해서인지 호랑이의 위엄이나 지혜가 너무나 돋보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북곽선생의 위선을 지적하는 동물이 왜 호랑이였을까? 호랑이는 어떻게 이렇게 조선인들에게 신뢰받는 동물이 됐을까하고.

 

호질의 시작만 봐도 조선사람들이 호랑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범은 슬기롭고 성스럽고 문무를 겸비하고 자상하고 효성스럽고 지혜가 있고 어질며 웅장하고 용맹스럽고 씩씩하고 용기가 있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호랑이와 관련한 책들을 읽는 중이다보니 풍자성보다 더 눈에 들어온 것은 이런 호랑이 사랑이었다.

한 해에 몇백명씩 호환을 당하고, 밤에는 호랑이 때문에 외출을 자제해야 했을 정도인데도,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미워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실의 호랑이는 분명 흉폭한 육식성 동물이건만, 옛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하는 호랑이에게 어떤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고  잡혀먹을까 겁을 먹지도 않게 됐으니.

 

'호질'은 양반의 위선과 허위에 대한 조롱기가 담겨 있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다가왔던 것은 호랑이에 대한 사랑이었다. 호랑이를 맹수가 아닌 친근하고 위엄있고 지혜로운 동물로 숭상하고 있는 조선인들의 정서. 물론 그 정서는 21세기인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나 역시  호랑이가 무섭지 않고 친근하게 여겨지는 걸 보면.

 

 

 

e****0 2019.01.29. 신고 공감 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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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시대의 싹을 틔운 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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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님의 작품을 한 곳에서 문고판으로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운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호질, 양반전 허생전을 대표작으로 열녀함양박씨전 광문자전까지 다른 책에서는 1,2편이 있을법직하지만, 범우사의 사르비아총서는 한작가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작품을 다 모아 둔 것입니다. 다시 허생전과 양반전을 읽으면서, 박지원님의 날카로운 시대풍자적인 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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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님의 작품을 한 곳에서 문고판으로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운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호질, 양반전 허생전을 대표작으로 열녀함양박씨전 광문자전까지 다른 책에서는 1,2편이 있을법직하지만, 범우사의 사르비아총서는 한작가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작품을 다 모아 둔 것입니다. 다시 허생전과 양반전을 읽으면서, 박지원님의 날카로운 시대풍자적인 면모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상업의 중요성에 눈을 뜨지 못한 때에 허생전에서 보여주는 자본주의라는 새 물결을 아주 거리낌없이 표현을 해 주고 있다. 허생전으 읽으면서, 19세기 당시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했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나도 당시의 사람으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또한 양반전을 보면서, 역시 계급풍자의 모습, 특히 박지원님도 양반계급 출신이면서, 이런 글을 썼다는 것에 더욱 읽기에 애착이 갑니다. 다시 예전에 시험으로 읽었던 소설들을 사르비아 총서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k***7 2001.08.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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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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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이라 보기에는 지금 시청하고 있는 상도와 비슷한 내용이다. 가난한 허생 아내의 구박에 못 이겨 장사길에 나서지만.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장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100만냥이 넘는 돈을 모으지만 그것을 다 다른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내 같으면 그정도 돈이 있다면 매일 먹고 싶은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것 했을 것이다. 아마 소설의 내용이지만 그런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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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이라 보기에는 지금 시청하고 있는 상도와 비슷한 내용이다. 가난한 허생 아내의 구박에 못 이겨 장사길에 나서지만.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장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100만냥이 넘는 돈을 모으지만 그것을 다 다른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 내 같으면 그정도 돈이 있다면 매일 먹고 싶은음식을 먹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것 했을 것이다. 아마 소설의 내용이지만 그런사람은 세상에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는 자신에 하는 일에 늘 당당하면서 그의 잔사 방법은 지금 같은 시대에는 그런장사를 했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지만 그때는 최고의 장사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조선 최고의 부자인 변대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에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허생으로 부터 배우게 된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다. 지금 대통령 선거로 각 후보자 들은 전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 일라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마음을 움직였다고 할수 없다. 정치인들은 지키지 못한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지키지 못한 약속을 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제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할수 있을까.? 지금 보고 있는 드라마 상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내가 생각 하기에는 허생이라는 인물은 진정으로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한것 같다. 또한 돈을 버는것을 싶지만 그 돈을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작가는 우리에게 보여준것 같다.
t*******u 2002.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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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ㆍ양반전 · 허생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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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노론 명문가의 소생이면서 현실 비판적인 인식을 지녔었으며, 동시에 출중한 문재(文才)를 지니고도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특이한 이력과 성향의 소유자 박지원의 창작(이설이 있습니다)이라서인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호질"은 착각하기 쉽지만 명사가 아닙니다(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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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노론 명문가의 소생이면서 현실 비판적인 인식을 지녔었으며, 동시에 출중한 문재(文才)를 지니고도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특이한 이력과 성향의 소유자 박지원의 창작(이설이 있습니다)이라서인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호질"은 착각하기 쉽지만 명사가 아닙니다(그렇다면 虎之叱 정도로 적었겠죠). "호랑이가 꾸짖다." 정도로 새겨지는 문장이죠. 이미 작품명으로 굳어진 걸 굳이 현대문으로 풀어 쓰는 것도 대단히 어색하기에 그대로 통하긴 합니다만, 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작품에는 표면적으로 (어리석은 이웃들을 잘 속인 덕인지) 수절 과부로 행세하나, 그 실질은 여럿을 둔 아들들이 모두 성(姓)이 다르다고 할 만큼 끔찍한 난행을 숨기고 있는 탕녀 동리자가 나옵니다.

동리자의 좋은 짝을 이루는 남성 캐릭터로는, 역시 썩은 위선으로 행세하는 엉터리 선비 북곽선생입니다. 그는 동리자와 밀회를 즐기다가 느닷 나타난 호랑이(산신령의 은유라는 설도 있지만, 일개 금수에게 세상 사는 이치를 훈계 받았다고 새겨아 그 풍자의 맛이 더하겠죠?)에게 혼쭐이 난 후, 간신히 체면만 지킨 채 자리를 뜹니다. 북곽선생이나 동리자가 구체적인 신변 이상이나 정신적 각성을 했다는 결말이 아니고, 그저 우스꽝스러운 봉변만 당하는 걸로 마무리되었기에, 사실 어떤 심오한 의미를 찾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이처럼 우화 형식을 빌린 풍자마저도, 지배계층인 사대부를 겨냥한 내용은 그 출판이나 유통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는 정도가 유추 가능합니다.

허생전은 매점매석의 술수를 통해 요즘 말로 시세조종(monopoly)을 하려 드는 상인층과, 현실에 대한 구체적 비전 없이 공리공담만으로 국가 자원을 허비하는 집권층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풍자를 동시에 담았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단 변부자 등의 캐릭터는 (주인공 허생 못지 않게) 개성이 강하며, 이인을 알아 보는 세속인이라는 점에서 오랜 문예적 전통을 잇는다고 하겠습니다.

연암 박지원은 이후 정조로부터 "문체 반정"의 원인 제공자로 지적될 만큼,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는 대단한 트렌드를 새로이 불러일으킨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개혁군주라고 흔히 불려지는 정조이지만, 연암(나이는 정조에게 거의 아들뻘입니다)이 시도한 이 정도의 작은 도전을 용납하지 못할 만큼 보수적인 인물이었음을 스스로 노출했습니다. 당대의 여느 학자, 산림을 능가할 만큼 대단한 교양과 재능을 지녔던 조선 최고의 수재형 임금이었던 그와, 이미 활력을 다한 채 전혀 새로운 발전의 실마리와 동력을 찾을 수 없었던 문예와 학문의 종말을 예고하는 연암의 개성이 그처럼 대립했다는 사실은, 다만 유감스럽게도 남아 있는 사료의 미비로 그 깊이 있는 추적과 재현이 어렵습니다. 정조의 자취는 <홍재전서>에서, 그리고 연암의 재기와 사상은 이 <연암집>에서 그 일부나마 새겨 볼 방법 뿐이라는 점이 아쉽네요.

v*****7 2016.02.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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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습. ''광문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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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작품으로는 ''양반전''이나 ''호질''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얼마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던가! 양반전이나 호질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듯 하니 다음으로 감명받은 광문자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박지원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충 주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작품은 그 전의 고대작품에서 영웅적 인물이나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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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 작품으로는 ''양반전''이나 ''호질''등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얼마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많던가! 양반전이나 호질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듯 하니 다음으로 감명받은 광문자전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박지원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대충 주제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작품은 그 전의 고대작품에서 영웅적 인물이나 임금의 은혜를 칭송한데에 반해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을 한 번 읽고 나서는, 작품을 읽기 전 미리 알고있는 양반풍자에 대한 내용이 맞는지 약간 의아하기도 했다. 그것은 양반들에 대한 풍자가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비렁뱅이인 광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교되어있었기 때문에 자칫 처음에는 ''광문의 성품을 본받자''라는 식의 유교적 주제로 오해하기 십상인 탓이다. 비록 양반들의 행색이나 모습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밑바닥 인생인 광문이 오히려 돈 많고 지식 많은 양반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느끼게된다. 광문은 순박하고 의로운 전형적인 착한 인간상으로 어린 시절 종루 시장바닥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고 다니는 거지들의 두목이었다. 이 까닭으로 거지들의 보금자리만을 지키고 직접 밥을 얻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추운 겨울날, 다른 아이들이 구걸을 하기 위해 나갔을 때 한 아이가 병에 걸려 가지 못하자 그 아이가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하여 직접 밥을 얻어와 아이에게 먹이려 했다. 여기서 자신이 더욱 높은 위치에 있고 자기는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도 아랫사람을 돌볼 줄 아는 의로움과 따뜻한 심성이 뭍어난다. 백성의 굶주림과 헐벗음은 생각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호의호식만을 위하는 양반들의 모습과 상응되는 듯 하다. 하지만 병든 아이는 광문이 채 밥을 갖다주기 전에 이미 죽어있었고, 돌아온 다른 아이들은 광문이 아이를 죽였다고 생각해 광문을 내쫓고 만다. 더 이상 오갈데가 없어진 광문이 동네의 어느 집으로 몰래 들어가서 도둑으로 오인 받아 붙잡히지만, 그의 순박한 말씨덕분에 오히려 주인으로부터 거적때기를 받고 풀려난다. 이에 집주인이 그를 이상하게 여겨 뒤를 밟아보았더니 다른 거지아이들이 버린 병든 아이의 시체를 광문이 남몰래 짊어지고가 슬퍼하며 묻어주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광문의 사정을 알고 광문을 의롭게 여겨 약방부자에게 추천하여 고용살이를 시킨다. 행색은 초라하고 볼 품 없지만 그의 인격이 말투 속에 자연히 묻어나 전혀 처음 보는 사람도 그를 단번에 신뢰할 수 있었고 인정 많은 성품으로 먹고 살 자리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하루는 광문이 일하던 약방에서 꽤 많은 돈이 없어진 모양이다. 약방부자는 안절부절하며 천한 거지였던 광문을 의심하지만 그것은 그의 처조카가 그들이 없는 사이에 잠시 빌려간것임이 밝혀진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점은 광문이 약방부자에게 의심을 받을 때에도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고 잠자코 일만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궁색한 변명대신 때를 기다리며 참고 인내하는 당당한 모습이 오직 이리저리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내뱉으려 하는 양반들과 대비된다. 이 사건으로 한양바닥에는 광문의 우직함과 의로움이 약방부자 통해 입소문으로 널리 퍼지게 되고, 광문은 마치 옛날의 훌륭한 사람으로 추대 받게 된다. 양반들이 자기 목적 달성과 입신양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쓰는 것과는 반대로, 높은 성품을 가진 광문은 가만히 있어도 그 자체로 널리 이름을 퍼뜨릴수 있는 것이다. 광문의 겉모습은 아주 더러웠고 추했지만,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단 한번에 남의 보증을 서는 등 남을 의심할 줄을 모르며, 자신을 위한 욕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한양의 이름난 기생조차 벼슬아치나 양반들보다도 광문을 더 높이 평가하여 그가 앞에 있어서야 춤을 추는 등의 호의를 보였다 한다. 또한 나이가 들어 남들이 장가가기를 권하였지만 자신의 추한 몰골을 생각해 아예 결혼할 마음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려면 아름다운 얼굴을 해야한다고 하며 자신의 분수를 지켰던 것이다. 사실 그러한 인품이라면 충분히 결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여기서 보듯 광문의 행색 하나 하나가 모두 양반들과 비교되어 양반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직접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광문의 인격이 양반보다도 더 나은 대접을 받게 하는 것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오직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출세를 위하여 입바른 소리를 하고 악의가 있는 행동까지 일삼는 양반들에 비해, 광문은 바르고 곧은 성품 하나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이름을 널리 알려 경제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던 것이다. 비록 비천하지만 천성이 귀하다는 양반보다도 광문이 세상사람들에게 더욱 인정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반들의 행동을 풍자했다는 광문자전. 하지만 이것은 비단 옛날 일이 아니다. 바로 현대사회에서 정말로 중요한 그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모습을 풍자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좀 더 믿을 수 있고, 좀 더 따뜻함을 가진, 그리고 좀 더 생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s****0 2003.08.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