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아내가 '타인에게 추천할 책 10권을 뽑아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집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개인적으로 끄적거려
놓았던 기록들을 살펴보며 10여 권을 골라보았죠. 지금 소개하는 『마지막 기회라니?』도 그중에 포함되었던 책입니다. 80년대 후반 BBC가
멸종위기에 처한 여러 동물들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였고, 여기에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와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이 출연하였습니다. 소개해 드리는 책은 그들에 의해 쓰인 기록입니다. 2002년에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판되었을 때 인상 깊게 읽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서문이 추가된 재발간 판본 『Last Chance to See』를 구해
2009년에 다시 인상 깊게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번역·출판되었으며, 코센릴레이북 서평을 계기로 세 번째로 인상 깊게 읽었죠.
여기에서 ‘인상 깊게’라는 표현은 ‘박장대소를 하며, 가슴이 찡해지며, 인류라는 종임을 부끄러워하며, 그리고 글로 남길 수 있는 감동에 대해
감탄하며’ 등을 묶어놓은 표현입니다. ‘나는 이런 종류의 비행기 여행을 무모할 정도로 즐거워한다. (중략) 일단 비행기에 탄 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으므로 난기류에 휩쓸린 고물 비행기에서 우지끈 뚝딱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라도 그저 마음 편히 앉아 미친 듯이 웃는 수밖에 없다. (중략) 마크는 조종실의 기기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유심히 살펴보더니, 한참 만에 그중 절반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큰소리로, 그리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웃으면서, 아마 그편이 나을 거라고 말했다. 장비가 작동하면 오히려 조종사들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속이나 썩힐 테니 차라리 저대로 버텨주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중략) 마크는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 항공사의 비행기가 추락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유, 물론이죠. 그들은 대답했다. 하지만 걱정 말아요. 벌써 몇 달째 심각한 사고는 없었으니까.’
‘그 나무는 완전히 멸종된 줄 알았던 라무스 마니아라는 야생 커피나무의 일종이었다. 1981년 레이몬드 아퀴스라는 모리셔스 출신 교사가 로드리게스 섬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모리셔스에서 멸종됐다고 알려진 열 가지 식물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선생님. 그 나무 우리 집 뒷마당에 있는데요.” (중략) 로드리게스에서는 모든 나무를 땔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베어 가지 못하도록 주변에 울타리를 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특별한 나무인 모양’이라고 생각했고, 울타리를 넘어가 가지를 잘라내고 잎을 따고 나무껍질을 벗겨갔다. (중략) 첫 번째 울타리가 소용이 없다고 판명되자 이번엔 주변에 가시철망을 둘렀다. 그리고 첫 번째 철망 주변에 두 번째 철망을 두르고, 두 번째 주변에 세 번째 철망을 두르며 울타리가 반 에이커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 녀석들을 못마땅해 하는지 모르겠네요.” (중략) “그건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네, 그래도 수백 마리가 있죠. 야생 상태에 에코 앵무가 몇 마리나 있는지 알아요? 열다섯 마리에요! 희귀하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거예요.”
‘(중략) 그래도 고릴라의 경우엔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으며 수백만 년 밀린 가족사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물론 방계일 뿐이다. (중략) 우리는 영장류 가문에서도 유인원 집안이다. 성공해서 잘살게 된 만큼 어느 모로 보나 못사는 친척들을 돌보고 보살펴야 하는 집안.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유인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중략) 우리가 유인원이라고 칭하는 건 고릴라와 두 종류의 침팬지, 그리고 보르네오와 수마트라 섬에 사는 오랑우탄 등이다. (중략) 지금은 진화의 계통도에서 고릴라와 침팬지가 우리와 갈라진 시점이 다른 유인원에 비해 훨씬 최근이라는 학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중략) 그러므로 (유인원이) 고릴라와 오랑우탄을 아우르는 분류라면 우리도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중략) 그러다 마침내 유럽에서 사람들이 건너와 정착하면서 고양이와 개와 담비와 주머니쥐를 데려왔을 때, 키위 새와 타카히, 그리고 밤 앵무새인 카카포까지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많은 새는 갑자기 죽기 살기로 뒤뚱거리며 달려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중략) 이 녀석은 시대에 뒤떨어진 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커다랗고 둥그런 녹갈색 얼굴을 보고 있으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녀석을 끌어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더글러스 애덤스 님은 두터운 매니아층의 소유자. '은하수'책은 난해하다는 평들도 더러 있어 쉽게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번 '마지막 기회라니?' 책은 재미있고 빵빵 터진다는 평들이 많아 읽기 시작. 안타깝게도 절판된 상태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작가가 동물 전문가 등과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비며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직접 만나보는 이야기. 저자의 글은 재치있고 통통 튀어 재미는 있는데 문장이 길어서 생각보다 쭉쭉 내리읽히진 않았다. 유쾌한 문장들과 대조적으로 그 내용은 안타깝고 슬펐다. 의인화를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인간과 너무나 비슷한 실버백 마운틴고릴라. 관광이 고릴라의 생존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슬픈 사실. 관광객이 없으면 고릴라의 숲속 서식지가 농업과 벌목의 용도로 완전히 파괴되거나 고릴라가 밀렵꾼의 손에 멸종될 것이므로 차라리 관광을 선택하게 된다는 현실. 또한 양쯔강에서 수천년 동안 평화롭게 살던 양쯔강 돌고래들이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 죽어간다는 이야기. 뿔 때문에 남획되는 코뿔소, 날지 못하는 새 카카포 등의 비극. 멸종을 막기 위한 몇몇 사람들의 작은 노력. 이런 상황도 전혀 모르는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 책이 쓰여진 것이 1988년 인 것 같은데, 그 사이 상황은 더 좋아졌을까. 혹시나 해서 양쯔강 돌고래를 검색해보니 이미 멸종된 것으로 공식 확인되었다니, 더글라스 애덤스는 이 탐험 이후 동물보전 운동에 힘썼다고 하는데, 이 하늘에서 양쯔강 돌고래의 멸종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안타까워 하셨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