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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영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쓴 작가로서 가장 먼저 만난 작가 중 한사람인 헨리나우웬 그의 책을 읽을때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망, 그리고 위안을 곧잘 받고 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이미 정독하고 심취해서 읽어내려갔다고 하더라도 책장 한켠에 꽂아둔채로 의기소침하거나 위로가 필요할때면 그저 바라보거나, 혹은 밑줄그어 읽어내려갔던 문장을 찾아 읽으면서 헨리나우웬이 직접 전해주는듯한 위로를 받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저서를 읽어내려가면서 내가 그에게서 받은 위로가 어떠한 종류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두란노 독서클럽을 통해 다양한 영적 선배들이나 지도자들의 배움 가득한 책들을 만나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헨리나우웬의 저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두번째 만남이다. 그의 "영성시리즈" 중에서 지난번 <삶의 영성>에 이은 두번째 영성이야기 ... <돌봄의 영성> 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 이 책 <돌봄의 영성> 을 선택해서 읽기 시작할때만해도 내 나름대로 이 책이 대충 이런 이야기이겠거니 ... 짐작한 바 없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고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내가 예상했던 내용과는 사뭇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어가던 점이 인상깊다. 그러나 헨리나우웬의 다른 저서들이 그러하듯, 이 책 <돌봄의 영성> 또한 헨리나우웬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 자비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신 그분의 마음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알게해주는 책이었다.
우리는 곧잘 "돌본다"라고 하면 뭔가 베풀것이 있거나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물질적, 시간적, 정신적으로 희생을 하며 베풀어준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헨리나우웬은 돌봄 (care) 의 핵심의미를 "애통하다, 함께 부르짖다" 라고 정의한다. 즉,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돌봄의 의미가 "치료"적인 차원에 집중해있는 반면, 헨리나우웬이, 그리고 그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돌봄이란 "긍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헨리나우웬 사역의 가장 큰 한 축이기도 한 일련의 여러 봉사활동과 더불어 특히 하버드 교수라는 명망있고 권위또한 있는 자리를 내려놓고 1986년 데이브레이크에서 만난 '아담'과의 조우 속에서 그가 얻은 깨달음일것이다. 혼자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상생활은 물론, 생명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은 활동조차 할 수 없고 여기에 제대로 된 언어구사도 되지 않으며 기껏 발작을 일으키는 정도가 본인의 뜻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인 아담이었지만 헨리나우웬은 아담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진실한 우정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에게서 평온함을 얻기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돌봄"이란 돌봄을 행하는 사람을 통해 돌봄을 받는 사람이 큰 도움을 얻고 힘을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움을 베푸는 사람 또한 돌봄을 받는이로 하여금 일종의 얻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했다. 이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사귐이 바탕한 돌봄의 과정을 통해 마치 씨실과 날실이 서로 만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천을 짜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베풀것이 있는 사람이 베풂이 필요한 어떤이에게 돌봄을 행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베푸는 사람이 베품을 당하는 사람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그러나 결핍되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움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 두 사람 속에 특별한 관계를 심어놓으신듯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로까지 이어지기 위해 진정한 돌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헨리나우웬은 "긍휼"과 "경청"을 이야기하는데 대해 정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돌봄은 어떠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눈물 흘리고 함께 아파할 수 있는 긍휼이 필요하며 이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 긍휼한 마음은 상대방의 아픔에 자연 경청할 수 있게 해주는데 돌봄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나의 아픔을 누군가 조건없이 경청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헨리나우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로 고난받는 사람들과 연대를 이루는 능력을 꼽으면서 이런 긍휼의 마음은 결코 비판하는 마음과는 공존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요 근래 가슴아픈 일을 경험하면서 과연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것인가 ... 바로 비판이 아닌 긍휼이 필요한 때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베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건,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돌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것이다. 그러나 기계적 물리적으로 어떠한 '능력'이 있는것이 아니라, 진실한 돌봄은 상대방의 아픔과 비통,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도와 더불어 상대방의 아픔을 보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감성 그리고 그러한 감성에 따라 상대방의 사연과 아픔을 집중해서 들어주는 경청 아픈사람을 고치는 의사와 같은 '기술적'인 능력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충분히 진정한 돌봄을 베풀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이해하면서 나는 조건이 맞지 않아서 누군가를 돌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성립되지 않는지도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나아가 돌보는 사람이 오히려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서 받는 긍정적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도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문득 한달에 한번 다녀오는 봉사활동에 있어서 활동이 끝나고 느껴지는 그 뿌듯함 ... 그 마음의 정체가 바로 내가 그 봉사활동 대상자들을 통해 받는 부분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웬지 뿌듯해서는 안될것 같은, 스스로를 가증스럽다는 부정적 감정을 품게 했던 생각들이 사실은 내가 돌봄을 받은 그 대상자들로부터 받아 얻은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진 능력이나 재산, 시간적 여유등이 많진 않지만 그렇기때문에 어떤 특정한 돌봄에 대해 일면 제한적인 능력밖에 갖지 못하겠지만, 그대신 내 안에 돌봄을 위한 '긍휼'이 차고 넘치면 그런 물질적, 시간적인 부분이 결코 줄 수 없는 돌봄이 가능해질 것이며 더불어 내가 얼마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그들'에게서 돌봄을 또한 '받는' 입장이 되어 돌봄을 받는 은혜 또한 경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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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헨리 나우웬은 캐나다의 발달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 살면서 경험되어졌던 돌봄의 영성을 실천했던 분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몸소 실천했던 분이다.
헨리 나우웬은 라르쉬에 정착하여 아담을 책임지고 돌볼으로 자신의 부족한 것을 한없이 깨달았다. 그는 아담을 돌보면서 그와 주고 받은 시간속에서 돌봄의 영성이 실제화된 것이다. 그는 시간을 내서 남을 돌보는 사람이다.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과 도롬을 받는 사람이 내적 치유와 해방과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다"
나우웬은 '서로 돌보는 행위를 통해 당신과 나는 큰 보물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영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가고 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은 돌봄의 경험에서라고 한다. 아담을 도우는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발견한 놀라운 것은 돌봄이다. 돌봄은 서로에 대한 깊은 우정을 낳으면서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보고 인정해 가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의 글에서 우리는 아담을 만난다. 그는 장애인이다. 그가 나우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우웬이 주관적인 감정변화에 따른 결과물을 여러책을 통해 펼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렇지만 나우웬은 아담과의 관계속에서 수많은 보물을 찾아간다.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밟는다.
이 책에서는 아담을 돌보면서 찾은 보물을 말하고 있다. 그 보물이 '돌봄'이다. 돌봄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관계와 내적치유, 내면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돌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된 것이 예수님의 삶에서 찾는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돌봄의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이다.
나우웬은 돌봄을 통해 영생에 이르는 훈련까지 연결한다. 한 사람을 돌보는 인간다운 모습에서 영생에 이르는 돌봄까지 연결지어 가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것이며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돌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영적으로만 해석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인간적인 내면을 바라보게 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든 육체적 필요가 있을 때, 영적으로 고갈되면서 갈등되어지는 순간속에 고민할 때 등을 짧지만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돌봄은 하나님의 사랑이다는 것이다.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게 되는 아름다운 여정을 이 책을 통해 걷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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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의 일상의 예배 조건없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하루 돌봄의 영성
누군가를 돌본다는것은 희생이 따른다. 사랑의 마음이 함께 동반될때에는 더욱 더 돌봄의 의미와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이 기쁨으로 만족을 얻을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교수이며 종교지도자로 여러지역과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눔과 돌봄을 베풀고 있는데 그중 아담을 돌봄을 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소명과 하나님의 긍휼을 통하여 영적인 소명을 다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삶을 살아 가고 있는것 같다.
이글을 읽으면서 어느해에 노인병원에 가서 봉사를 한적 있었는데 그곳에는 치매환자와 뇌졸증 등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중증환자들 였는데 정말 그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대단해 보였다. 정말 대 소변을 가리지 못하기에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줘야 하며 또한 식사를 도와 주고 틈틈히 말벗도 되어 주어야 한다. 저자의 마음처럼 그들을 내가 돌봄을 주는게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 돌봄을 받고 위로를 받고 사랑을 배운다는 말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저 아픈사람들은 돌보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데 하나님이 긍휼의 마음이 없을때는 힘듦이란 단어만 있을것 같다. 도와주어서 그들이 기쁘고 도움을 줬다는것으로 인해 만족이 있을테지만 돌봄은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그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마음을 나눌수 있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족 부모 형제 이웃들을 돌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병상에 누워만 있게 된다면 스트레스와 함께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정신적인 힘겨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한 가족들의 아픔과 힘듦도 정말 크게 다가올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의 마음과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마음을 품고 그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을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갈때에도 늘 갖고 나누고 베풀어 갈때 하나님의 깊은 영성의 참예하리라 생각해본다. 인간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이다. 그 연약함으로 돌봄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을 깊이 만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는 복과 긍휼의 마음이 더욱 필요하고 절실할 때임을 느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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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은 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자리를 돌연 그만두고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새로운 부르심에 순종을 결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 하나 하나를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몸소 보여주는 내용들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성찰하게 만들고 있다. 조건 없이 사랑받고 사랑하는 하루의 이야기를 그린 돌봄의 영성 또한 돌봄에 대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돌봄에 관한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있다. 헨리 나우웬의 일상의 예배3 인 돌봄의 영성은 라르쉬 공동체의 일원인 아담을 책임지고 돌보는 가운데 돌봄에 대한 깨달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얼마되지 않았을 때 아담을 책임지고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담은 몇가지 장애 외에 언어 장애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돌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과의 만남을 통해서 헨리는 자신이 미쳐 깨닫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돌봄의 영성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 책에 귀중한 돌봄의 영성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내적 치유와 해방과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다. 다시 말하면 돌봄은 받는 사람만 돌보는 사람에 의해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돌보는 사람까지도 변화와 도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돌보는 사람이나 돌봄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 강한 면도 있고 약한 면도 있다. 그래서 돌보는 관계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을 열고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돌봄이다. 그래서 돌봄이란 깨어지고 무력한 사람들의 세상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연약한 사람들끼리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만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별로 얻어지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그런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헨리의 생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섬기려는 대상에게서 오히려 나에게로 하나님이 복이 오는 것이다. 결국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이 상대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다. 돌봄의 영성은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피력한다. 긍휼은 소명이다. 긍휼은 행동이다. 긍휼은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긍휼은 넘쳐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돌봄을 주고 받을 때 그곳에 천국이 임한다. 돌봄을 베푸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의 관계야말로 쌍방의 치유라는 완전히 새로운 역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것이다. 이 시대는 돌봄이 참 많이 필요한 시대이다. 헨리 나우웬이 들려주는 돌봄의 영성을 동해서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돌봄의 긍휼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역사를 써내려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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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의 비결은 자기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가에 달려있다.의.식.주가 해결이 되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안일에 빠져 살아가는 나태한 영의 실체를 경험하게되고 이것이 계속적으로 실생활에 진행이 되면서 믿음이란 존재의 부재를 보게 된다.헨리 나우웬의 돌봄의 영성은 이러한 자신을 추스려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하는 일상을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남을 돌보기를 꺼리는 마음이 있다.물론 이것은 상대를 치료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더 큰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즉 상대의 고난과 고통과 불안을 공감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함께 부르짖으려면,나 자신의 고난과 고통과 불안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풍요속의 빈곤,영적인 해갈을 만족시켜주는 헨리 나우웬의 이 책은 축복의 변두리에서 갈등하는 크리스천에게 조언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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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일생을 생각해 보면, 결국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어 있고, 자신이 어른이 되면 또 누군가를 보살펴 주는 입장에 서 있다가, 결국에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돌봄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 그리고 이제는 내가 부모라는 자리에서 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보살피고 있는 입장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지, 보살핌, 돌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아담을 보살피던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에는 아담으로부터 자신이 돌봄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돌봄이라고 하는 것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모습들이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한 사람을 돌보면서 그 사람의 입장에 서보게 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만, 또 누군가를 돌보게 되는 경우들이 있지만, 결국은 이 돌봄을 통해서도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 받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돌봄을 통해서 나 자신이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내 자신도 한없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에까지 우리의 사고가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이 다하기까지, 죽기까지 우리는 돌보셨던 그 주님의 모습, 그리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우리를 돌보시기를 원하셨던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깨달을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하기에 결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돌봄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의 표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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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부모, 배우자, 자식, 친구 등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이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비정상적인 양육으로 고통 받는 아이, 자녀의 예상치 못한 이상행동이나 장애로 어쩔 줄 모르는 부모, 성격차이로 갈등하며 이혼직전에 있는 부부, 싸늘한 자식의 외면으로 외로워하거나 자식의 가난으로 부양받지 못하는 노부모 등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돌봐주기 위해서 많은 봉사 단체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은 돌봐주고, 그 돌봐준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본인 스스로의 만족을 갖는다. 이 책은 존경받는 목회자, 작가, 교수이자 학자로써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10년간 장애인들을 돌본 헨리 나우웬이 평생 실천하며 체득한 제자도, 즉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과 ‘함께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돌봄이란, 깨어지고 무력한 사람들의 세상 속에 들어가 그곳에서 연약한 사람들끼리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 또한 고통당하는 사람들 곁에 있어주되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지라도 계속 같이 있어주는 것이다.”(p.24)라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진, 테러 공격, 난민의 이주, 극심한 기아 등 인간의 무수히 많은 고난이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돌보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사람이 허약해지거나 병들거나 죽는다고 해도 그 정체성은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눅6:20)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받는 형제자매인 우리 각자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로서 다른 영혼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돌봄이다. 우리는 시간을 내서 어려운 사람을 돌봐주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지 않고 내가 중심이 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중심이다 보니 어려운 영혼을 섬기고 함께하는 것을 싫어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돌봄이란 돌보는 사람이 상대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복을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천국이란 결국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우리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함께함을 누구보다 갈망하면서도 자기를 내주지 못하는 이 세대, 누구나 겪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이 세대가 꼭 일어야 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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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저자 헨리 나우웬의 저서 ‘삶의 영성’과 ‘귀향의 영성’에서 이 분의 사상과 삶에 대하여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분은 목회자, 사제, 교수, 작가로써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섬기는 일을 정법으로 한 분이다. 특히 3년간 하버드대학교 신학부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서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10년간 장애인들을 돌보다가 생을 마감한 분이다.
‘돌봄의 영성’ 누군가 약하고 병든 이를 돌보는 일에서 찾고 발견되는 영성 정도로 이해하면서 이 책을 펼친다. 이 분의 책은 두꺽거나 복잡하지 않다. 간명하게 필요한 글자와 문장들로 엮여져서 읽기에는 수월하지만, 정리된 내용은 깊이가 있어서 빠르게 읽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돌보고 간호할 때, 간호가 필요한 사람은 당연히 나를 신뢰할 거라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일러 준다. 효과적인 돌봄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입장과 의사를 존중하는 자세와 경청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이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하나의 베틀에 두 가지 색상의 실을 걸어 놓고 새로운 무늬를 짜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돌봄이란 고통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고통을 나누는 일이라고 설명해 준다. [치유란 무엇보다 마음을 따뜻하게 비우는 일이다. 그래야 고통당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 줄 수 있다.(61페이지)
도움을 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당혹스럽고 수모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다른 이가 도와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더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긍휼한 마음으로 다른 이를 돌보려면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내면의 아픔에 늘 공감해야 하고, 그들이 독특하게 복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도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인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 받는 지극히 인간적인 교류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지신의 정체성을 더욱 온전히 붙들 수 있다는 것이다.
돌본다는 영어 CARE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지만, 그 핵심의 의미는 ‘애통하다, 함께 부르짖다’이다. 이는 결국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하여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과 죄악을 담당해 주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내려 오셨다. 즉 임마누엘-함께 하심-로 오신 분이시다.
[우리는 자신의 회의와 두려움을 인식하는 정도만큼만 다른 이를 돌볼 수 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 참된 해방을 얻어, 비로소 돌봄을 베풀거나 받는 자리에 온전히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돌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삶을 훨씬 넓고 풍부하게 이해한다는 뜻이란다. 돌봄이 참으로 활력을 줄 수 있으려면, 돌봄을 영생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경험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움켜쥐라고 주신 소유물이 아니라 나누라고 주신 선물이다] [돌봄을 주고받을 때 그곳에 천국이 임한다]고 결론짓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돌봄이란 힘이 있거나 여유가 있는 이가 그렇지 못한 이를 도와주거나 부축해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는데, 돌봄에 이렇게 깊은 통찰과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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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두란노 헨리나우웬 시리즈 중 1권이었던 삶의 영성이 너무나 좋아서 그 시리즈 중 3번째인 돌봄의 영성을 선택하게 되었다죠 ^^
<헨리 나우웬의 일상의 예배 시리즈>
1. 삶의 영성 2. 귀향의 영성 3. 돌봄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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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돌봄을 직업으로 하고 계신 분들이거나 돌봄의 사역으로 인해 지치신 분들, 혹은 돌봄의 사역을 막 시작하려는 분들께 딱 적합한 책이에요 이 책의 출발이, 존경받는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삶을 산 헨리나우웬이 1996년 심장마비로 소천하기 전까지 약 10년 동안 캐나다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살면서 체험하고 느낀 돌봄의 삶이거든요
헨리나우웬은 평생을 회자, 사제, 교수, 작가로서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전업으로 삼아왔지만 장애인을 돌보는...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직접 케어해보는 삶은 살아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만난 아담과의 교제가 무척이나 힘들어했습니다
힘들었던 첫만남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 아니 오히려 사랑을 배로 받게 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그 출발은 작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가장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때는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해준 순간들이었다. '나는 당신의 고통을 없애 줄 수 없습니다. 문제의 해답을 내놓을 수도 없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할 수 있습니다. 당신을 혼자 두지 않고 최대한 끝까지 붙들어주겠습니다.' ....슬픔과 고통을 혼자서 당하지 않아도 되는축복. 그것이 바로 긍휼이라는 선물이다 "
멀쩡한 사람이 멀쩡하지 않은 사람을 돌볼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언가를 해주어야한다는 압박감인데 그걸 버리고 그냥 같이 있어주고 함께 감정을 나누는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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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나우웬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긍휼의 삶의 요소를 제시했다.
1. 기쁨을 주고받는 훈련 2. 자신과 상대방을 정확히 인식하는 훈련 3. 진심으로 듣는 훈련 4. 내면의 아픔에 공감하는 훈련 5. 정체성을 회복하는 훈련
아직 나로썬 돌봄의 훈련이 되지 않았고 이런 현장에 투입된 경험도 없기에 삶의 적용은 크게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돌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변화되었던 것같다.
돌봄이란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기꺼이 함께 나누는 것이란걸
헨리나우웬은 아울러,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움켜쥐라고 주신 소유물이 아니라 나누라고주신 선물이란 걸 깨닫으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시대의 가장 비참한 단면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고통과 고난을 이전 어느때보다 많이 알면서거기에 점점 더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 어느때보다 많이 알수 있지만 우리의 것을 내어놓거나 나누지 못하는 매정한 시대임이 틀림없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진다는 것...
아직 나로선 여전히 이기적이고 어떻게 나누어야할지 시작도 모르는 생초짜이지만 조금이라도 내안에 갖힌 눈을 밖으로 돌려서 나누고 돌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한 활동을 통해서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기때문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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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나우웬의 일상의 예배 시리즈 중 세번째 책, 돌봄의 영성.
요즘 국가적으로 슬픈 사고가 있고 나서 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그들 생각이 났다.
목차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1. 긍휼은 소명이다 -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영성 2. 긍휼은 행동이다 - 진실한 관계로 들어가는 영성 3. 긍휼은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 당면한 현실을 온전히 품는 영성 4. 긍휼은 넘쳐흐르는 것이다 - 날마다 사랑을 공급받는 영성
돌봄을 주고받을 때 그곳에 천국이 임한다
돌봄(care)이란, 병들고 혼란스럽고 외롭고 고립되고 잊힌 사람들과 함께 부르짖는 것이다.
즉 그들의 고통이 내 마음속에도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정성을 쏟고,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헨리나우웬은 돌봄은 돌보는 사람이나, 돌봄을 받는 사람이나 다 똑같이 연약한 사람들이고,
그 속에서 교제를 나누고 내적 치유와 해방과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라고 정의한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는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받는 사람보다 우위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한쪽의 희생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봉사를 하거나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돌보는 상황들을 돌이켜보면
한쪽의 희생이라면 그들이 금방 번아웃 되어 끝까지 지속하지 못할 것 같다.
나도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헨리나우웬의 말이 더 이해가 되었다.
다른 이들을 돌보는 우리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음을 인식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심히 공감이 되었다.
특히나 돌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가족일때, 우리는 때론 돌보는 이에게 무제한적인 헌신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그렇기에 돌보는 사람은 괴리감과 죄책감,수치심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욱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보는 사람은 돌봄을 받는 사람의 내면의 아품에 공감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두려움, 그 상황에서 남을 신뢰해야 한다는 감정까지.
그렇기에 돌보는 사람은 돌봄을 받는 사람의 내면까지 깊게 이해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비참한 단면 중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고통과 고난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이 알면서
거기에 점점 더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더욱 그렇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그리고 많은 SNS를 통해서 사고 소식을 접하고, 실시간으로 뉴스가 계속 올라오는데
함께 슬퍼하고 그 슬픔과 고통을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각종 악성댓글과 비난들로 아픔을 당한 가족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어찌보면 그들의 고통과 고난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돌봄의 핵심 의미는 '애통하다, 함께 부르짖다'인데, 이는 무엇보다도 고난당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지금은 휴직중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회의 약한 사람들, 저소득층, 노인들을 케어하는 일이다 보니 이 말이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다.
돌봄을 받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액션을 취해주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우리가 그들의 상황과 고통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공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하지만 때론 내가 하는것이 '일' 이다보니 공감해주기 보다는 그 다음단계로 얼른 넘어가려고 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났던 그들과 그들의 상황,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리고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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