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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서 읽은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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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서관에서 빌린  권명은 시인의 동시집이다. 내가 동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읽어도 금방 이해를 못 한다. 동시뿐만 아니라 시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동시보다는 차라리 어른들의 시가 좋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횡성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 소설, 수필, 평론 등을 막론하고, 나는 향토 작가의 작품은 즐겨 읽는다.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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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서관에서 빌린  권명은 시인의 동시집이다. 내가 동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읽어도 금방 이해를 못 한다. 동시뿐만 아니라 시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에도 동시보다는 차라리 어른들의 시가 좋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횡성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 소설, 수필, 평론 등을 막론하고, 나는 향토 작가의 작품은 즐겨 읽는다. 그것이 이웃의 정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이 작품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시인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시인과 직접적인 만남은 없었지만 나는 시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횡성은 작은 고장이니 문인도 많지 않다. 여러 시화전을 통해서 시인의 작품을 종종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시화전에서 본 작품들은 동시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시인이 동시를 썼다는 것이 의외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시인은 강원아동문학회 동시 부문에서 신인작가상을 받았고, 아동문학 동시 부문에서도 신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동시를 열심히 쓰고 있다고 하니, 시인에게 동시는 낯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어쩌다 본 시화전에서 시인의 이름을 보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쓰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본 시화전의 작품도 동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권명은'이란 시인도 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어찌 권명은 시인뿐일까? 내가 아는 향토 문인들의 이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마음대로 헤아린 경우가 많았으리라는 반성을 했다.

 

둘째, 첫 작품에서부터 몰입했다. 첫 작품은 「더 좋다」이다. 서사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므로 한편의 동화를 읽는 듯 작품 속의 상황이 바로 그려졌다. 작중 화자는 다문화가정의 소년이다. 엄마는 필리핀인인데, 유치원 때 집을 나갔다고 한다. 아빠는 농사짓는데다 매일 술만 마시니, 아이는 대부분 혼자 집에 있다고 한다. 그러다 열나고 아프니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손잡고 병원에 왔다고 한다.

 

"술주정뱅이 아빠라도

둘이라서 좋다

병원에라도 손잡고

같이 오니 좋다 (「더 좋다」 4연)"

 

글쎄, 나는 다른 의미에서 '더 좋다'라고 느꼈다. 다른 동리에 살 때 비슷한 환경의 아이를 본 적이 있다. 그 집의 환경이 이 작품과 비슷했다. 어쩌다 그 집의 아이가 아플 때는 담임 교사가 데리고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밥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가 혼자 해 먹고 있고, 가끔 담임교사가 급식에서 남은 반찬을 챙겨 준다고 한다. 집에 갈 때마다 꼭 한 끼 정도의 분량만……. 급식 반찬을 먹고 잘못되면 큰일이니 저녁에 먹을 정도만 주고, 아이에게 신신당부한다고 한다. 혹시 남으면 바로 버리라고……. 그 아이에 비하면 작중화자는 정말로 '더 좋다'가 아니겠는가?

 

문득 지금은 고등학생 정도 되었을 그 아이가 잘 자라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가 귀한 시대가 아닌가? 그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모두 '더 좋다'라고 느끼게 되기를 뭉클한 마음속에서 빌었다.

 

셋째, 작품마다 가슴에 와닿았다. 두 번째 작품은 「논다」이다. 이런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할머니 뭐 하구 있어?

응 나야 놀구 있지

부추 쪼매 다듬으며 논다 (「논다」 1연)"

 

다음 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할머니는 콩을 다듬으면서도 논다고 하고, 마당에서 풀을 뽑으면서도 논다고 하며,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논다'라고 대답한단다.

 

문득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가 생각났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서 대충 한 끼를 때워도,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해도, 배부르다면서 식구들 먹이면서 자신은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엄마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그렇게 사셨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넷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났다. 그 작품의 부제가 '지금은 어른이 된 사람들을 위한 동화'였던가? 동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작품은 아이들보다는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동화였다. 권명은 작가의 이 작품들도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학창 시절의 내가, 아니 청년 시절의 내가 읽었어도 이 작품들이 나를 몰입하게 했을까? 성장한 뒤에야 떠나신 부모님이 우리 형제를 어떻게 키웠는지를 알게 되었고, 우리 주위에 정말 힘들게 사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책장을 넘기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린 듯하다.

 

어찌 생텍쥐페리의 동화나 권명은 시인의 동시만 그럴까? . 어린 시절에 박목월의 동시 「물새알 산새알」이나, 마해송의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 작품들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교사가 된 뒤에 교과서에서 다루면서 새로운 느낌을 들었다. 「물새알 산새알」에서는 삶의 이치를 깨달았고, 「바위나리와 아기별」에서는 사랑의 힘을 느꼈다. 어쩌면 대부분의 동화나 동시들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섯째, 표제작인 「꼭이요 꼭꼭」을 읽으면서 시인의 긍정적인 생각을 느꼈다. 시인은 아침에 '꼬끼요 꼬꼬'라고 우는 닭 소리를 '꼭이요 꼭꼭'으로 들었다. 빨리 일어나라고, 늦잠 자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는 소리란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그 소리가 '꽉이요 꽉꽉'하면서 두 발로 몸을 짓누르는 압박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을 수 있는 소리를 긍정적으로 듣는 것……. 시인의 열린 마음이라고 할까. 「꼭이요 꼭꼭」 전문은 이렇다.

 

"마당 가 닭장에서

아침이면 닭이 운다

꼬끼요 꼬꼬

꼭이요 꼭꼭

 

빨리 일어나요

꼭이요

 

늦잠 자면 안 돼요

꼭이요

뭐 십 분만 더 잔다고요?

그럼 딱 십 분 만이에요

꼭이요 꼭꼭

 

오늘은 정말

지각하면 안 돼요

꼭이요 꼭꼭

 

자꾸 다짐을 받는다

꼬끼요 꼬꼬

꼭이요 꼭꼭 (「꼭이요 꼭꼭」 전문) "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내 생각에는……, 부모나 교사가 먼저 읽고 느낀 뒤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어떨까 싶다. 나의 느낌으로는 이 책의 작품 대부분이 어른들에게 더 가까이 와닿는 정서를 지닌 듯하다. 책을 통해서 부모와 자녀가, 교사와 어린이가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서로의 생각을 넓히면서 교학상장(敎學相長: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함)의 효과를 거둔다면 시인이 기대했던 이상의 결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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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2023.10.22. 신고 공감 4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