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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워진 시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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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것이 실화인지 픽션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녀가 연작 시리즈로 발표했던 '원미동 사람들'이 너무나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냄새나는 밑바닥까지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내는 그녀의 말솜씨에 책을 잡으면 후딱 다 읽어 치우기 일쑤인데, 이 책의 수록작품인 '숨은 꽃'도 소설 속 황녀가 부는 단소 가락처럼 그렇게 내 마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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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소설을 읽다보면 이것이 실화인지 픽션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녀가 연작 시리즈로 발표했던 '원미동 사람들'이 너무나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냄새나는 밑바닥까지 너무나 리얼하게 그려내는 그녀의 말솜씨에 책을 잡으면 후딱 다 읽어 치우기 일쑤인데, 이 책의 수록작품인 '숨은 꽃'도 소설 속 황녀가 부는 단소 가락처럼 그렇게 내 마음 속에 울려 퍼졌다. 작가가 처녀 시절, 낙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시절 학부형으로 만났던 김종구라는 사람과 대학 시절 은근한 동경의 시선을 보냈던 운동권 칼린 지브란. 그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나 지식 수준은 다르지만 작가가 발견해 낸 숨은 꽃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자신은 먹지도 못하는 염소의 골을 내리치는 김종구와, 숱한 고문으로 인해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던 청와대를 운운하며 살아가는 칼린 지브란은 양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오랜 시간 동안 우리 모두가 숨겨왔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무너져 가는 절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몸부림과, 민주화라는 과업을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었던 두 숨은 꽃의 꽃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 꽃말을 알고 싶다. 한 천재가 온 힘을 다해 퍼뜨리고 다니는 꽃말을 비밀을 알고 싶다.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빠져 있는 이 미로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로는 사실 처음부터 미로였다. 그러나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지금 생각하면, 작가에게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차라리 안락 의자였다. 거기에 편안히(역시 지금 생각하면 편안히,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앉아 밤이 새도록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는다는 가냘픈 희망이 있었다.
i****3 2002.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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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 혹은 숨고 싶은 꽃 [한국소설-숨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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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숨은 꽃>은 역시 양귀자의 글이다. 가끔 문학상 수상작을 읽어 보노라면 작품보다는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수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소설들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삶과 글쓰기와 이야기가 잘 어울려 있는 상의 권위를 느끼게 할만한 작품이다. 김영현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는 이 땅의 군인이라는 신분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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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숨은 꽃>은 역시 양귀자의 글이다. 가끔 문학상 수상작을 읽어 보노라면 작품보다는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수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소설들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삶과 글쓰기와 이야기가 잘 어울려 있는 상의 권위를 느끼게 할만한 작품이다.

김영현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면서는 이 땅의 군인이라는 신분은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지, 그리고 군사 문화는 도대체 무엇인지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길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너무 무겁고 어둡다. 군인은 더 이상 백성의, 민족의 군인이 아닌 것인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박양호의 <포경선 작살수의 비애>는 대학과 교수 사회를 보여 준다. 어쩌면 이 땅에서는 교수가 교사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는 학생들이라도 편을 들어 주겠지만 교수는 학교 당국과 학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있을 것이니. 교수로서의 의식과 연구 자세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거리다.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을 공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사회, 정치를 외면하고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 불행하다.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서는 여자 작가의 작품이 남자 작가의 작품과 다소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섬세함에 있어서도 남자와 여자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여자는 왜 그럴까.

유순하의 <홍수경보>는 이 시대를 처절하게도 잘 그려냈다. 끝내 사라지지 않는 불쾌감, 찝찝함. 위기, 암흑의 시대. 사람들은 어느 한 순간도 위기를 느끼지 않은 때가 없다 했으나 항상 현재가 가장 심각하게 여겨지게 마련이다. 윤정선의 <해질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체 소설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도록 해 준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한 해의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데 제몫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추억의 영상은 한번 저장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각인되어지지 않는다. 저장된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때로는 기억과 현실을 맞추려는 덧없는 노력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이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 신뢰하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자 하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1.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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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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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초기 소설 중엔(초기 소설 만큼은) 정말 괜찮은 작품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은... 9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양귀자의 은 여로형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다... 이런 류의 소설은 대부분 여행지에서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주인공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 글의 작가, 양귀자의 자전적 소설인 것 같은 은 글쓰기의 위기를 느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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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의 초기 소설 중엔(초기 소설 만큼은) 정말 괜찮은 작품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작품은... 92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양귀자의 <숨은꽃>은 여로형 소설이다. 여행을 떠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다... 이런 류의 소설은 대부분 여행지에서의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주인공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 글의 작가, 양귀자의 자전적 소설인 것 같은 <숨은꽃>은 글쓰기의 위기를 느낀 작가의 여정을 그린 것으로 마찬 가지의 경우다. 주인공은 여행에서 만난 김종구를 통해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다. 김종구는 도시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 외에도 삽화처럼 등장하는 묵묵히 신념을 지키며 사는 가난한 의사, 지브란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등은 숨어있는 꽃으로, 주인공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게 해준다. 세상에 들어나지 않았지만 묵묵히 자기의 향을 뿜어내는, 인위적인 꾸밈없이 자연 그 자체인 숨은꽃은 주인공의 새로운 글쓰기의 모티브로 작용한다. 이 소설은 분명 작가가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작가의 문제를 소재로한 작품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 일반인들에게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는 삶을 사는 걸까? 하는 물음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아마도 한 거인을 그리려고 덤빌지도 모르겠다. 와해된 세계의 폐허 어딘가에 숨어 사는 거인, 결코 세상에 출몰하지 않는 거인의 초상, 그리고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YES마니아 : 로얄 0*****o 2000.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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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것을 찾는 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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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도 이상문학상은 양귀자의 숨은꽃이었다. 숨은꽃과 또 한편의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은 둘다 작가가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 였다. 화자가 작가로 나오는 형식이랑 옛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아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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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도 이상문학상은 양귀자의 숨은꽃이었다. 숨은꽃과 또 한편의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은 둘다 작가가 화자로 나오는 이야기 였다. 화자가 작가로 나오는 형식이랑 옛날을 회상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한계령 책속에 나오는 양희은의 한계령 가사.. 이 가사랑 너무 어울리는 내용의 글이었다. 어느 정도 탄탄한 기반위에서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는 사람들. 나를 중심으로 떠나간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예전을 회상하고 친구의 한통화의 전화로 나와 식구들의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고 윗세대 사람들의 허전함 내지는 허무함을 이제는 공감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글들이었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모두 이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구절]
*숨은꽃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 나마 만져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한계령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노래를 만났다. 노래를 만나는 꿈을 꿀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밤에 나는 처음 알았다. 노래 속에서 또한 나는 어두운 잿빛 하늘 아래의 황량한 산을 오르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지쳐 있었고 제각기 무거운 짐 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짐 꾸러미의 무게에 짓눌려 등은 휘어졌는데, 고갯마루는 가파르고 헤쳐야 할 잡목은 억세기만 하였다. 목을 축일 샘도 없고 다리를 쉴 수 있는 풀밭도 보이지 않는 고친 숲에서 그들은 오직. 무거운 발자국만 앞으로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a*****4 2000.1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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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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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은 마치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행문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 속에는 한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던 소설 속의 '나'가 귀신사에 다녀오면서 겪은 일, 그리고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기억들이 녹아들어 있다. 귀신사에서 우연히 만난 김종구는 반가워하며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김종구의 집에서 그의 아내 황녀의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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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은 마치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행문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 속에는 한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던 소설 속의 '나'가 귀신사에 다녀오면서 겪은 일, 그리고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기억들이 녹아들어 있다. 귀신사에서 우연히 만난 김종구는 반가워하며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김종구의 집에서 그의 아내 황녀의 단소 소리에 푹 빠져들게 되고, 아내의 단소 가락을 음미하던 김종구가 흘리는 눈물에서 진실한 인간 내부의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군데군데에는 주인공(일인칭 화자)이 과거에 바닷가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지켜보았던 김종구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펼쳐진다. 염소머리를 빠개 놓고는 자신은 입에 대지도 않고, 염소골에 정신없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사람들 사이를 말없이 빠져나가던 김종구……. 어느 안개가 자욱하던 날,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배들을 선착장으로 불러모으기 위해 맨 나중까지 남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우렁찬 징소리를 울리던 김종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김종구는 진정한 선(善)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구와의 재회 후 기차 속에서 떠올리는 '나'의 생각들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아니, 결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아직도 삶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으며, 출구에 대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있으므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삶……. 그것은 어쩌면 사각형으로 닫혀진 복잡한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는 과정이 아닐까.출구는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현상에 사로잡혀 아무리 헤매다닌다 해도 닫혀진 미로 속에 출구가 있을 턱이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일 게다. 세상에서, 그리고 내면에서 우리는 감추어져 있었던 숨은 꽃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모두 벗겨낸 그 곳, 그 곳에는 원시적인 생명력을 지닌 꽃 한 송이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투명한 문이 하늘을 향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리라. 평면적인 미로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을 드높은 창공으로 이끄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한 이치를 깨달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 그리고 문학이 가지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한다.

[인상깊은구절]
마 병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바는 아니었지만 그후 은기가 있을 동안까지는 원대 복귀를 하지 않았던 것은 틀림없었다. 십일우러로 접어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호나자들은 스팀이 들어오는 병실에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들처럼 낄낄거리며 눈내리는 풍경을 구경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극히 단순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세상의 모양을 한꺼번에 바꾸어 놓았다. "말 마시오. 눈이라면 참말로 지긋지긋해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운전병 출신 있소?"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생긴 사내가 별로 지긋지긋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동계 훈련 땐데 내가 몰고 가던 트럭이 그만 눈구덩이에 빠져버렸지 뭡니까. 부식 운반하던 차였어요, 내가 가지 않으면 우리 부대원 전체가 쫄쫄 굶고 있지 않으면 안될 판이었지요. 햐, 그때 날은 어두워 오지..." "제발, 좀 조용히 하고 눈 구경 좀 합시다." 누가 그의 말허리를 자르며 면박을 주듯이 말했다. "씨팔, 내가 눈을 막고 있소, 코를 막고 있소? 애인 생각나거든 변소깐에나 갔다 오슈."
j*****n 2001.04.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