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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웰 단편선」은 콜드웰을 잘 알려준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특징적인, 가장 그다운 작품 12편을 만날 수 있었다.
어스킨 콜드웰은 1903년 미국 조지아 주의 한 벽촌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미국작가였다.
20세기의 작가이기도 한 그의 수록된 작품은 미국의 역사까지 훔쳐볼 수 있었다.
말도둑의 결말은 결국 잡혀가는 것일까. 무죄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죄를 뒤집어쓴 채 잡혀가는 것일까.
내가 만약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봤다.
나 같으면 끝까지 죄를 시인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말도둑에 나오는 주인공은 너무 쉽게 포기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 이유가 만나고 있던 그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의에 맞는 행동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약속을 지키는 남자라는 것을 증명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사랑을 잃게 만든 행동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갈 것이고 그가 보여준 약속 따위는 잊게 될 것이다. 너무 허무하지 않나 싶다.
콜드웰 단편선 중 처음 나오는 이 작품은 이후에 나오는 작품들 중에서 제일 무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우물 속의 흑인(보커스)은 결국 그 우물 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줄 로빈슨이 원하는 대로 개 두 마리를 주었더라면 우물 속에서 나왔을까?
그건 로빈슨이라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 흑인(보커스)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닌가 싶다.
그깟 개 두 마리를 준다고 해도 우물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말이다.
너무 미련한 생각을 했다고 그 보커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우물 속에서 더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우물 속에서 빠져 나왔을까. 궁금하기는 하다.
야화(野火)에 나오는 칼 애보트도 미련한 사람의 인물이다.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는 그런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인물.
아마 나중에는 남의 충고는 잘 들을 지도 모르겠다. 한번 호되게 당했으면 다음 번에는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겠지.
“어디를 보나 스웨덴 사람”은 1933년도 예일 리뷰 소설상을 탄 그의 등용문적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경을 써서 읽어보았다.
스웨덴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인가. 사람들이 선입견으로 똘똘 뭉쳐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어떤 피해를 받았었는지는 모르지만 짐과 프로스트부인은 스웨덴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끼 든 스웨덴 사람이 튀어나올 때는 읽는 나로서도 무섭게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 글에 나오는 스웨덴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일을 하려는 사람들로 비춰졌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크리스티 터커의 최후는 예전에 본 뿌리라는 영화를 떠오르게 해주었다.
흑인을 아무렇지 않게 죽여 놓고서도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백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흑인은 백인에게 있어서 인간이 아니었다. 그냥 소모품이고 그냥 장난으로 죽여도 되는 존재로 보였다.
그렇게 쓰여진 작품으로 보인다.
남부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소작농인 흑인들. 그들을 부려먹는 백인 농장주들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비참한 흑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볼 작품은 “떠오르는 해에 무릎 끓어라” 인데 이 글을 옮긴이도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정도로 잘 된 작품이다.
백인들의 폭력과 그 밑에서 죽어간 흑인들을 잘 묘사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숨어 있어서 나중에 책을 덮고 난 후 헛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믿고 말한 것인데 그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해서 죽인 그는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기를 도와준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폭력에 동조한 그는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갈까.
12편의 작품들 속 인물들은 고집 세고 남의 충고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폭력적이며 그 폭력에 동조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이 인물들이 콜드웰을 이야기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장편보다는 단편의 명수라고 한다. 나에게 있어서 이 12편의 작품을 읽고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를 알게 해준 이정표 역할은 톡톡히 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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