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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작가의 소설 "하나코는 없다"를 읽기 위해 산 책이다. 책에 수록되어 있는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도 좋았지만, 최윤 작가의 소설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이 "하나코는 없다"길래 처음에는 하나코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 여자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코가 유난히 예뻐 하나코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여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말을 보면 하나코는 이탈리아에서 성공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어 귀국을 하는데, 그 장면이 어찌나 통쾌했는지 모른다.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그녀의 존재가 사실은 그렇게나 뚜렷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쾌감이란.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최윤은 현대의 사회적 이슈를 세련되게 잘 다루는 작가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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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급한 일을 몇 개 끝내고 나니 여유를 가지고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소설은 대체로 장편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지만, 최윤의 소설은 어쩐지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이 더 읽혀지고 내게는 장편보다 단편이 더더욱 길게 느껴지곤 한다. 그 분의 소설은 한 소설집에 묶여져서 전체로 포괄 할 수 있는 가 하면 작가가 [숲 속의 빈터]와 같은 소설은 그냥 따로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때로는 독립적으로 그렇게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아직 열려지지 않은 그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고 열고 난 후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하지 않고 만나게 하는 그녀의 소설이 참으로 좋았다. 한 동안 어떤 소설들은 텅 빈방에 나 혼자 남겨놓은 듯한 느낌도 주곤 하였지만 말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94년도에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는 10년이 지나서야 찾아온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좀 더 일찍 경험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서야 찾아온 이 모든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하여 나는 감사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또 내가 커버린 만큼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언정..[하나코는 없다]라는 작품을 읽기전에 생각을 했던 것은 단순히 일본여인이 한 사람 등장하겠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구지 작품을 그리지 않더라도 내게는 어떠한 스파크로든 작용을 하리라 생각을 했었다. 단편의 좋은 점은 작품 전체의 구성을 돌이켜보는데 있어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하나코는 없다]는 하나코를 아는 여러사람들 중의 '그'라는 사람이 소설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낯선 곳에서 시작되는 물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배경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낸다. 그가 찾아온 곳은 베니치아이다. 소설은 '모자' 무역업을 하던 그가 대학시절과 사회초년의 시절을 지나 중년에 접어들면서 무역차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 일로 시작된다. 그는 사업차이기 이전에 이전에 친구 K로부터 예전에 그들과 함께 어울리던 '하나코'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어느날 갑자기 이탈리아로 도망쳐오듯 아내에게 출장 소식을 알리지도 않고 베네치아로 오게 된다.
하나코라는 이름은 그와 그의 무리들 J,P,K 등이 함께 '장진자'라는 그녀의 이름 대신에 부친 이름이었다. 왜 그들은 그녀에게 하나코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우연히 붙여진 이름, 그녀의 코가 눈의 띌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하나코의 존재와도 무관하지 않은 그러한 일본식의 별명으로 불리어지고 있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 대학시절 그들은 그들의 무리 중 어느 한명의 소개로 하나코를 알게 된다. 하나코는 그들의 모임이 있을 때 마다 항상 함께 했는데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항상 그녀가 그녀의 친구를 한명 데리고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종종 그들은 여럿이 모여서 자신의 일상을 나눌 때도 하나코는 옆에 있었지만 그녀의 이력에 대해서도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으며 그리고 그녀가 특별히 그녀의 일로 관심을 끌게 하는 적도 없이 그렇게 지내는 사이었다. 종종 그들이 각각 따로 하나코와 만나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털어놓기는 하였지만 그녀는 그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온전히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녀는 일종의 탈출구와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것은 그녀보다는 자신들의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 그래서 그녀가 필요한 것과 같이 보였다. 그녀는 만인의 연인이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각각 결혼을 할 때에도 그녀에게 일부러라도 연락을 하지 않는 그런 사이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날 그들의 곁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사실이 일어난 일을 알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야기를 쉽사 꺼내지도 않았으며 사회초년생 시절의 객기에서 비롯된 극히 긴장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어느 덧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생겨버린 그 일을 그들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고 중 세월을 지나면서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부딪혀 잊어진 것처럼 그렇게 지냈다. 어느 누구도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일을 그리치고 난 뒤에야 지쳐 있는 자신들의 영혼을 보게 되었고 조용한 일상속에 스며 있는 자신들의 폭력성을 경험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그들은 각각 우연히 듣게된 하나코의 소식에 출장을 핑계삼아 이탈리아로 가지만 정작 그들은 하나코를 예전처럼 만나지도 대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주인공 그 역시 하나코를 만나기 위해서 수소문을 하였고 전화통화도 하였다. 그녀는 디자이너가 되어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잘 있냐고 물었고 괜찮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직도 저를 그렇게 모르시겠어요." 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그에게 꼭 오라고 그러지만 그는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들처럼 출장을 다녀온 이야기를 허풍을 섞어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처럼 그녀와 있었던 이야기는 쏙 빼어버린다. 그들은 이전처럼 하나코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도, 그렇다고 그녀가 자신들 이전처럼 대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그것은 세월의 흐름과 그들의 만만의 공백이상의 것이 존재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며칠 후 그는 머리속에서 맴도는 그녀가 전화로 전한 아직도 자신을 그렇게 모르겠냐는 말을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느 잡지에 소개된 글과 함께 그녀의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를 보게 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의자'를 디자인하는 성공하는 캐리어우먼이 되어 국내로 들어오는 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녀의 곁에는 이전에 그녀와 함께 늘 붙어다니던 친구도 함께 임을 알게 된다. 그녀와 그녀의 친구는 그들에게 자신의 동업자이가도 하고 동반자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 소설을 보고 '페미니즘 적인 요소가 아주 강한 영화'라고 말을 한다고 하였다. 그들이 그저 평범한 일상에 편승해서 때로는 과거를 회상하며 큰소리 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때 그녀는 성공한 모습으로 그녀의 친구를 동반자라는 메시지로서 여성 스스로가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기 이전에 강자와 약자의 관계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여성으로서 한 번 이 책을 읽었고, 읽고나서는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해지는 그 일들이 때로는 한 사람의 영혼에 지이지 못한 상처를 줄 수가 있다. 그들과 그녀가 마지막 낙동강까지 중고차를 타고 흘러가서 어느 민박집에서 있었던 일을 읽는 부분에서 솔직히 나 역시도 그렇게 당혹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받은 그 수치심을 그들도 알았고 그것은 그들의 아무 생각없이 행해진 객기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한 상처였던 것이다. 최윤의 소설에서는 전쟁이나 총칼이 없이도 나타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그녀의 세계관을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성공을 하고 돌아온 이전에 그들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하나코'에서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하나코는 없다]는 소설의 제목은 그들이 규정하고 그들이 그녀에게 행했던 그런 하나코는 없다는 허상에 대하여 말을 한다. 그들이 규정한 하나코는 없지만, 그녀 장진자는 존재했고 그렇게 그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던 그녀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 다시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소설은 관계의 허상에 대하여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코'는 익명에 가까운 존재로 실제의 관게속에서 그녀를, 혹은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를, 생각하기 이전에 스스로 관계의 허상에서 자신들을 내맡겼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는 소설속에서 '모자'의 무역업을 하고 그녀는 '의자'를 디자인한다. 모자와 의자는 우리에게 있어 무언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화장을 안하고 가벼운 만남을 가질 때 가끔 우리는 모자를 쓰기도 하고 급한 마음에 머리를 감지 못하였을 때 모자를 푸욱 눌러쓰고 나가기도 한다. 소설속에서는 그 뿐만이 아니라 그의 친구도 '모자' 동업을 하는 것으로 나온 것을 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보다는 무언가 가리고 나아가는... 그리고 그녀는 늘 그들과 개별적인 만남을 가질 때 편안한 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그녀는 언제나 그들에게 있어 '편안한 의자'로서의 역할을 가져왔던 것이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됨으로서 비로소 자신들이 가진 허상의 관계를 보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읽고나면 그다지 편안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이 최윤의 소설이다. 그렇지만 놓고 싶지 않은 것 역시도 그녀의 소설이다. 마치 로제 그르니에의 소설이 그토록 읽는 동안 마음의 언저리에 무수한 흐트러진 물거울을 만들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제 우리 개개인에게 소설에서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을 안다. 그녀의 소설은 그래서 살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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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의 소설은 언제나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냥 건성으로 눈만 따라가면서 읽다간 낭패보기 쉽상이다. 아직 두 개의 작품밖에 접하지 않은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가소롭지만, 진짜 데면데면 읽고서 책을 덮으면 하나도 기억에 안 남는다. 하나코는 장진자라는 여자의 별명이다. 장진자라는 본인도 모르게, 그녀와 만남을 가지는 남정네들이 부르는 그들만의 암호이다. 이 암호는 소설 속 화자의 말처럼 왜색이 짙다. 나도 이 때문에 98년에 접한 이 책의 제목만을 보고 단순히 일본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하나 나왔나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장진자의 코가 오똑하고 예뻐, 별명을 만들었다는데, 얼마나 코가 아름답길래, 콕 찍어 하나코라 했을까, 소설 속에서는 나탈리우드의 코를 연상시킨다고 묘사했다. 하나코 그녀는 현재 이탈리아의 유명한 의자 디자이너가 되어 있다. 성공한 그녀의 인생.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남정네들의 무리 중 한 명이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한 여대생을 소개한다. 키가 유난히 작고, 낮은 목소리로 그들의 대화에 무리 없이 끼여들고, 이마를 왼쪽으로 기웃하면서, 가끔 논리를 벗어난 그들이 객기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 심각하게 질문을 던지는 여자였다. 남정네들의 모임에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든지, 각자 사귀고 있는 여자와의 까다로운 심리전에 지쳐 있을 때, 또는 그렇고 그런 각자의 얼굴에 조금은 싫증이 나지만 안 볼 수 없는 관성 때문에 만나서 술잔이나 기울이게 되는 그런 모임이 있을 때 그들은 하나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어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지, 조각을 하는지, 혹은 이런 모든 것을 다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하나코는 어떤 일을 계기로 남정네들의 모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남정네들은 이제 졸업을 하게 되어 직장인으로 탈바꿈된다. 사흘 간의 연휴, 그들 중 두 명의 중고자동차 구입, 이것을 계기로 이들은 여행을 떠난다. 원래는 바다로 향하려 했지만, 운전연습 겸 무작정 내려온 곳이 낙동강 가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장거리 여정인지라 이야깃거리가 고갈된 이들은 도착한 숙소에서 노래를 불렀다. 돌아가면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변질되기 시작하는 분위기 속에 당혹감을 숨기고 앉아, 조용히 술잔을 비우는 하나코와 하나코의 여자 친구에게 모두가 집중적으로 노래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하나코가 그런 자리에서 노래라면 질색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던 그들이었고 또 노래에 하나코가 빵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그들이었다. 강요는 점점 수위를 넘어 협박으로 변해갔다. 누군가는 술병을 벽에 던졌고, 누구는 고함을 내질렀으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얼마동안의 이런 실랑이가 계속 되어도 말리는 이 없었고, 당황해하는 하나코를 보고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순식간에 퍼져 전반적인 광란의 웃음이 되었고, 이는 벌을 서는 두 여자에게도 감염돼 울음인지 웃음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찡그린 표정의 웃음을 유도했다. 그녀들은 가방과 외투를 챙겨 그 곳을 떠났다.
왜 그 남자들은 이런 시덥지 않은 짓을 했을까? 언제나 편안하게 그들은 대해줬고, 고민거리도 거리낌없이 들어줬으며, 가슴을 찡하게 하는 편지도 보내줬고 특히 남들과는 달리 깊이 있고 철학적이며 고상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우쭐대게 만들어 주던 하나코였는데, 그들에게 그런 존재인 그녀에게 왜 상처를 주는 행동을 했을까? 단순히 취기 때문이라고만 답변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여러 번 읽고도 "작가가 말하려는 것이 뭘까!" 계속 헷갈린다. 자기 생각 분명하고 똑 부러지고 현명하고 고상함을 지닌 여성 하나코를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론 시키는 말에 복종하는 여자의 모습을 하나코에게 강요한 남정네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경종인지, 집단의 광기 앞에 개인은 힘없고 우스워지는 존재라는 것인지, 아님 이 모두를 포함하는 것인지...
하나코는 그들의 모임에서 센스 있게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며 그들의 고민과 희로애락을 같이 했는데 그들은 하나코의 성격을 알면서도 왜 그것을 건드렸을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고, 그럼 왜 그때 중심을 지키지 못했을까하고 후회하지는 않는가, 하나코는 없다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면 문제는 끝나는가... 아마 이탈리아에 출장 간 그의 느낌이 그 때의 사태와 그 이후를 대변하리라 본다.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그녀와 연락이 닿아 전화 통화를 하는 소설 속 화자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이 다 예전과 같아도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목소리도 아니고 어조가 덜 친절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는 정말 반가운 기색으로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가. 그는 갑자기 힘이 조금 빠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왜 그는 힘이 빠졌을까? 그녀가 그때의 일을 가슴속에 담아 둔 채 복수의 칼날을 갈며, 혹 그들에게 연락이 왔을 때 땍땍거렸어야 정상이고 그렇게 했어야만 자신들의 죄책감이 녹아들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앞으로도 가슴 속 한 켠에 하나코에 대한 미안함을 계속 담고 살아가야 할 것 같기에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인상깊은구절] '그렇게 날 몰라요?'라고 전화로 말하던 하나코의 음성은 가끔 유령의 목소리처럼 그의 귓가에 울리기도 했다. |
| 요즘 뛰엄 뛰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읽고 있다. 어느새, 94년으로 넘어왔다. 계속 안 쓰다가 94년판에 대한 리뷰를 쓰는 지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코는 없다'때문이다. 아주 잘 쓴 소설이기 때문에. 정말 잘 썼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사실, 이런 작품이 이 작품집에 실린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 할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지금까지의 불온한 의심을 완전히 덜어내어 주었다. 고맙다. 리뷰를 쓰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계속 읽다보니 80년대 초입에서 90년대 초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국 중단편 소설의 흐름을 대충 보게 되었다.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소설의 경향이 어떻든, 소설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반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감동이 의외로 컸다. 다시 한 번 '하나코는 없다'는 정말 잘 쓴 작품이다. |
| 어느 순간에 자연스레 어울리게 된 여자 하나코. 누구의 소개 였는지도 모르지만 그여잔 그 남자들의 모임에 감초처럼 필요한 존재가 되고...그 남자들은 그 여자에게 자신의 비밀까지 모두 말할 정도로 의지 하게 된다. 그 여자가 없어도 그 여자 얘기를 하고,그 여자가 준 편지를 가지고 서로 읽어주는....어떻게 보면 평범한 여자에게 대한 관심이 좀 지나치다 싶기까지하게.. 그렇게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 관해 아는건 단지 조각쪽에서 일을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밖에 없는것 같은 여자친구 한명과 다닌다는것이 전부다. 자신의 비밀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것이 말이다.그리고 그녀를 코가 오똑하다는 이유로 하나코라 자기끼리 칭하며 끊임 없는 관심을 표한다. 어느 날 그들은 신문기사에서 그녀와 그녀의 친구가 나온 기사를 발견한다. '동양의 매력을 의자에 담은 한쌍의 디자이너,귀국전야 인터뷰' 그녀들이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독립하기까지의 과정도 쓰여있었다.그녀는 그 남자들과의 만남 외에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너무도 완벽하게.... 나도 하나코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그런 여자.어떤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여자.그런 여자가 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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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코... 이름보다는 하나코라는 별명으로 기억되는 그녀. 말 그대로 코가 무지 잘생긴 그녀... 그들과는 대학졸업시절 만나기 시작하여 어느 날 우연히 떠난 여행지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그러면서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이름으로 안불리워지고 하나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어느날 우연히 잡지에서 보게되는 유명한 디자이너 코너에서 하나코와 그녀의 친구를 보게 되는데... 하나코가 없다는 의미는? 그들이 아는 그녀 즉 하나코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녀들이 이제는 자신들과는 약간은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뜻인지?
신경숙의 빈집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며 항상 빈집을 찾아 가는 남자 이야기.. 돌아올지 기약도 없는 그녀를 기다리며 언제나 어떻게 그렇게 찾아 갈 수 있는지.. [인상깊은구절] 하나코. 그것은 그들만의 암호였다. 한 여자를 지칭하기 위한 그들 사이의 암호. 한 여자가 있었다. 물론 그 여자에게도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그드의 도시적 감상에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암호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하나코 앞에서 그녀를 별명으로 부른 적도 없다. 그들 끼리만 모였을 때, 지루하고 전망없는 하루 저녁 술자리에서 그녀를 지칭하느라 우연히 튀어나온 농담조의 이 별명이 암호가 되었다. ~ 그녀는 코가 아주 예뻤다. 그녀의 용모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어떤 분위기를 전달하는 반면, 그녀의 코 하나는 정말 예뻤다. |
| 그는 베네치아를 혼자 여행하면서 대학동창 모임에 늘 합석했던 하나코라는 여자친구에 관한 기억을 되살린다. 코가 유난히 예뻐 하나코라는 별명을 얻은 장진자는 그 모임의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언제나 격의없는 친구이자 연정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관계는 대단히 모호한 것으로, 그들이 하나코에게 연락하는 이유는 이따금의 기분전환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녀는 늘 진지하게 그들을 대하는데, 그들 모두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성친구라는 미명하에 그녀는 매우 부당하게 자기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코에게만 그렇게 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나온 남자친구들의 우정도 사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피상적인 관계였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코와 그녀의 하나뿐인 것 같던 여자친구와의 관계와 잘 대비된다. 여자들의 우정에 회의를 품는 사회통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 사람은 때로는 동업자, 때로는 동반자로 함께 하며 이탈리아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성공하여 귀국한다. 즉, 남자친구들에게는 없는 듯 보였던 하나코의 실체가 그녀의 고유한 삶 속에서는 그 오똑한 콧날처럼 당당히 존재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상이라는 시인의 약간은 정체적인 분위기의 소설같기도 하지만, 이 하나코는 없다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복합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삶과 그 삶의 양면성, 이런 인간이란 동물의 잔인함을 작가는 나타내려 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
| 2005년 수상작을 읽고 두번째 읽는 작품집이다. 단순하게 보면 이번 작품집에는 ''작가''가 상당히 자주등장한다. 마치 자기이야기하듯. 요근래 들어 장편을 읽다보니, 중, 단편이 조금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다. 장편의 결망 같은것이 단편엔 없으니까. 중단편은 한가지 사건을 가지고 풀어나가고, 결말에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그짧은(어찌보면 길 수 도있지만) 글속에 결말을 집어 넣는다는것은, (종결을 짓는다면) 소설을 죽이는 일일지도 모를일이다. 그런게 단편의 매력이니까. 이번 수상집가운데는 김영현<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신경숫<빈집>이 좋았다. 글세 김문수<온천가는 길에="">도 괜찮았지만, 뭔가 무척이나 오래된 문학을 읽은 느낌이 들어서... 마치 요즘에 예전 TV프로 인생극장을 보는듯하다 할까? 정말 쟁쟁한 작가들이 많았다. 박완서씨, 공지영씨, 이문열씨, 최인호씨 한국문학을 그다지 즐겨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아도 느낄정도로... 06년도 이상문학상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제 장편을 읽어야겠다. 이상하게 충분히 목이마르다.온천가는>빈집>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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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문외한이라서 그런가. 너무 어렵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하나코가 일본여자인줄 알았더니 일본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진자가 바로 하나코라는 것. 그것도 일본이름의 花子(하나코)와는 아무 상관없이 코하나가 아주 이쁘다는 뜻이었다. 이런 충격이.....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나코의 행동도, 그리고 주인공의 행동도 그들의 친구들의 행동도... 해설에서는 집단에서의 개인의 존재 상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주인공은 왜 이탈리아까지 가서 그녀를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왔는지 J와 P는 왜 그녀를 만나지 았았는지.... 그리고 왜 하나코는 덤덤한지.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 어려운 것은 질색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질색이다. 좀더 진지해졌으면 좋겠지만 진지해지기 싫다. 단순한게 좋다. 제목도 바꾸고.... 장진자는 왜 그랬는가라든가. 존재를 잃은 개인이라든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평범한 것으로 묘사하고 잘된 글이라고 이상 문학상의 대상까지 주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 [인상깊은구절] 그날의 밤은, 생소해서 더욱 어두워 보이는 이 여행지의 밤만큼 속수무책이었던 것 같다. 그는 어둠을 등지고 무릎을 오므려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태평스러운 낮은 휘파람을 부르면서 누군가가 복도 쪽으로 빨리 지나갔다. 아래쪽의 좌석에서는 요란한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침대는 여전히 세개가 비어있었다. 로마에 내리자마자 서울에 전화를 걸리라. 그의 마음은 예전에 비해 한치도 바뀐 것이 없다고. 당신의 자리가 너무도 비어 있었노라고. 꼭 한 번 아이를 데리고 베네치아에 같이 오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