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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은 왜 문학이 인생을 닮았다고 하는 것인지... 하는 이야기였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읽는다. 시를 읽으면서도, 그림을 보면서도,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흘러가는 강줄기를 바라볼 때도 사람들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자신의 내면 풍경을 오버랩시키는 듯 하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게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섬광처럼 한 순간이 스쳐가고, 움찔 마음이 움직이지만 돌아서면 또 일상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읽기를 통해 천천히 자신의 내면과 소설 속의 세계와 소설 밖의 세계를 융합시켜준다. 발단, 전개 등등 그러한 소설의 구성법 자체가 이 과정을 유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것을 이번 책을 통해 확실히 깨닫는다.
50여편이나 되는 글이 실려 있으면, 읽고 나서도 그 독후감이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글쓴이들의 강한 필력 때문인지, 한 편 한 편의 글이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대표 필자인 장성수님의 글을 아프고 또 아름다웠다. 글을 통해 그려진 누이 추모의 마음이 절절하다. 글에는 분명히 자기치유적인 기능이나 목적이 담겨 있음을 또한 새삼 깨닫는다. 같은 맥락에서 이경진 시인의 글도 가슴에 와 닿는다. 짧은 단편 소설 한 편을 읽어가는 동안, 시인의 마음 속에 어떤 물결이 흘렀을지, 조금씩 짐작해본다. 전흥남님이 들려주는 늙은 어머님의 냄새에 관한 글 또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과연, 글이란 이처럼 책을 통해 나를 읽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곽병창, 서정섭님의 글을 읽으면서는, 나는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경험을 했다. 문학개론 시간에 배웠던 문학은 우리 삶을 반영한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를 이 두 편의 글을 통해 깨닫는다. 아파서도 읽고, 말하고 싶어서도 읽고, 또 읽으면서 배우기도 한다. 젊은 한 시절, 문학작품이야말로 우리를 인도하는 가장 탁월한 교과서였다. 최근 들어, 그만그만한 작품들, 재기발랄한 작품들, 웃거나 울고 나면 기억나지 않는 작품들이 많다. 오랫동안 기억되는 작품을 남긴 작가들에게 다시 경의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피이오른다.
함한희님의 글은 또 남달랐다. 인류학자는 소설을 이렇게 읽는구나, 새로운 독법을 배운다는 기쁨으로 글을 읽어내려갔다.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이 이 글을 읽어봤다면, 깜짝 놀라 어떻게 내 소설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냐고, 기뻐하실 것 같다. 내가 잠깐 미국에 있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부음을 접하고 문상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가 한탄스러웠었는데, 선생님 영전에 이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한용님의 글은 정통 소설 독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훌륭한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학자는 다르구나, 또 한 번 느꼈다. 내 아이들에게 꼭 읽혀주고 싶다. 송명희, 송기섭, 최시한님들의 글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통 논문을 접하게 되면 그 형식적 전개 구조가 갖는 한계로 인해 오히려 작품 이해를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진정한 고수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구나, 하는 걸 느낀다. 학생들의 소설 이해를 위해 좋은 전범이 될 만한 글이다.
송준호님의 글쓰기 입문 과정에 관한 글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이 재미가 진정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점이 반가웠다. 진정한 이야기 속에는 기교로 따라잡지 못하는 기품이 있다. 복효근, 김용택 시인의 내밀한 자기 고백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들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은 언제나 진실한 고백이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게 되었는가...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들이 고맙다. 역시 내 아이들에게 꼭 읽히고 싶다.
곧 새학기가 된다. 새학기, 학생이라면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시간... 이 책은 소설 이해에 관한 훌륭한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상-책을 읽고 TV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에서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길라잡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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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소설좀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적어도 이 분들 앞에서는 아니다. 우한용, 송하춘, 이남호, 장성수, 문순태 선생님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부터 고요한 돈강에 이르기까지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볼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거쳐 황정음의 백의 그림자까지 소설을 이처럼 쉽고 아름답게 재해독할 수 있는가.
박범신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정말 소설과 인생을 읽는 맛은 좋다! 중고등 애들이 보는 작품읽기의 수준을 완전히 떠난다. 대학교수 작가들이 자신의 생을 걸고 추억하면서, 얘기하면서, 그때 그 마음을, 소설의 이야기를, 등장인물을 하나하나 애틋하게 다시 무대로 등장시킨다.
대학교수들이 힘을 잔뜩 빼고(일부 지독하리만큼 텍스트 중심으로 쓴 몇 분도 있으나 의미 있다!) 소설을 바라보는 태도, 우리가 보지 못한 이야기, 왜 작가는 이 등장인물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 한 것인지 섬세하게 인도한다. 작가가 쓴 소설을 수준높게 다시 만나게 해 주는 순문학 정통 소설 안내서이다.
김용택 시인의 글도 멋지다. 그중 특히 설국을 쓴 김병용 소설가! 설국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이토록 애잔하고 아름답게 이 소설을 다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중고등학생부터 독서 에세이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책 정혜윤 작가의 침대와 책이나 사생활의 천재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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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이라는 좋은 제목의 책. 흔한 책 가이드와는 다르다. 책 가이드에 질렸다면 이 책은 단순히 책 소개를 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소설을 엮기도 하고, 소설의 심층 구조를 분석하기도 하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당대 사회를 어떻게 소설이 그려냈는지 설명하기도 한다. 누구나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50명의 저자가 모였는데, 그로 인한 시너지가 있는 것 같다. 몇 명의 시선이 아니라 각기 다른 50명의 시선이 있으니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미궁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소설의 미궁에서 헤맬 수 있어서 기분 좋은 독서였다. 깊은 내면의 상처를 담담히 회고하는 글들도 인상 깊었고,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연관된 일화들은 흥미로웠으며, 작품에 대한 순수한 애정도 사랑스러웠고 소설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글들은 유익했다. 나도 이제 생각해보야겠다. 누군가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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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힘』 / 강명관, 강호영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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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상가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는 자신이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 자신 내면의 세계 속 책들을 발견한 50인이 있다. 50인 중 어떤 이는 소설을 통해 그 시절의 역사를 발견하고, 어떤 이는 소설 속 아름다운 우리내의 언어를 발견했다. 또 혹자는 모호한 문학을 통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의 역사를 꺼내보고, 소설이 단순한 글의 집합체가 아닌 의식적인 실험의 산물임을 깨닫는다. 그들의 공통점은 ‘의문점’이다. 소설은 나에게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글귀, 영화, 책 등이 있기 마련이다.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왜 좋아하는 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슴에 팍 하고 와 닿는.
그리고 그 ‘좋아하는’마음에서 비롯된 글귀나 영화, 소설에 대한 말들은 작가의 고뇌, 생각 등을 공감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또 다른 생각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이 책의 매력은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50인의 저자가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친 소설에 대해서 분석만 한 책이 아니라 그 50인으로 하여금 우리가 50개의 소설을 통해 우리 자신, 우리의 현실, 우리의 ‘책’들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왜 소설은 중요한가. 왜 소설의 매력을 우리는 발견하지 못하는가. 왜 소설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면서도 읽지 않는가. 사람들은 소설의 중요성, 소설을 읽은 자와 읽지 않은 자의 차이를 여실히 알고 있다. 고로 이 책은 매력있다. 사람들이 놓치는 소설의 ‘매력’을 과감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뒤, 당신 자신에게도 물어보라. 당신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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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다양한 분야의 책 중 특히 소설을 많이 읽고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많다. 재미있는 이야기,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삶, 놀랍고 기발한 상상의 세계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그에게 영향을 미친 다른 작가 누구이며, 그에게 특별한 소설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단순한 읽기가 아닌 의미를 부여하는 소설이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작가, 예술인 50인(정도상, 복효근, 문순태 등을 제외하면 일반 독자에게는 친숙한 이름은 많지 않다)이 선정한 소설을 소개하는 책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다. 제목만 알고 있는 소설, 처음 만나는 소설, 꼼꼼하게 읽지 못한 소설, 대해 전문가의 추억과 함께 해설을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은 50인이 선택한 소설을 1부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한다, 2부 소설에서 나를 발견하다, 3부 이 소설을 말하다, 4부 나는 이렇게 읽었다, 5부 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란 주제로 들려준다. 그들이 소개한 소설은 다양하다. 필독 고전이라 불릴 세계 문학뿐 아니라, 김승옥, 박완서, 박경리, 조정래, 박범신, 황순원, 최명희, 오정희 등 한국 문학의 거장들과 황정은, 김연수, 정유정 등 인기 작가의 작품도 있다. 이번에도 내가 읽은 소설은 많지 않았다. 세상에 읽어야 할 소설은 왜 이리 많은가, 읽고 싶은 소설 목록은 줄어들지 않는다. 몇 권 되지 않는 소설을 작가는 어떻게 읽었을까, 무척 떨리는 마음으로 만났다. 그저 읽는 즐거움에 빠져 있던 내게 다소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문학이 지녀야 할 의무, 타자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했다.
‘소설이 무엇인가? 소설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성서가 아니다. 인간을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내면을 낱낱이 파헤쳐 보면 언제나 선하고 언제나 악한 사람은 없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처세하는가에 따라 옳고 그른 것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는 참으로 위대하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니. 인간이라는 존재의 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이나 고독 같은 보석을 발견하고 형상화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박경리의 『토지』- 김저운, 311쪽)
「토지」는 몇 차례의 드라마로 만났을 뿐 그 웅장한 서사를 책으로 접하는 일은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600여 명의 인물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을 전하고자 한 박경리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문득, 궁금해진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작가는 왜 소설을 쓰는 것일까? 나와 같은 독자는 왜 소설을 읽는 것일까? 삶, 죽음, 이별, 전쟁, 역사 등 다양한 주제로 만나는 소설. 소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실존과 이해에 닿고자 하는 바람이 아닐까 짐작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나 역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목소리(외침)을 담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황정은의 시선이 주목하는 곳엔 나와 닮은 사람들의 삶이 등장한다.
‘시간과 자본 앞에서 우리는 모두 무력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요? 이 젊은 작가는, 이 짧은 소설에서, 가늘고 약하고 섬세해서 오히려 믿음이 가는, 어떤 희망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한없이 따뜻해서,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이 소설을 몇 번은 더 들춰 볼 것 같습니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 김성경, 527쪽)
한 권의 같은 소설을 떠올릴 때 누군가에게는 선명한 이미지가, 누군가에겐 아팠던 시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소설, 상처를 위로하는 소설, 저마다의 애틋한 사연을 만나는 즐거움과 동시에 소설을 통해 인간에 대해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게 누군가『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란 제목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다. 아직 소설을 읽는 행위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추천할 소설 목록쯤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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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이해하는 거울로서의 소설 읽기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이제 곧 대학교수로서 정년을 맞이하는 장성수 교수의 새로운 출발, 또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글을 보냈다 한다.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은 소설과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같이하는 대학교수, 작가, 예술인 등 50인이 각자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에 대해 한 꼭지씩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답할 것인가’ 정도가 공통된 주제라고 했다. 실로 50인이 꼽은 최고의 소설은 각기 달랐고, (소설가 문순태와 전북대 국문과 교수 윤석민이 [태백산맥]을 각기 다른 관점으로 꼽은 것만이 겹칠 뿐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각각의 소설을 훑어내고 있었다. 문학사적 가치, 당대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의미,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관계, 작품의 내적구조, 한 편의 작품이 자신의 삶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 등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어져 있지만, ‘소설이란 무엇인가?’가 던지는 의미가 워낙 커다랗다 보니 이렇게 묶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하겠다.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했다는 이들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김원일의 [불의 제전], 홍석중의 [황진이], 최명희의 [혼불],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등을 꼽았다. 나처럼 그저 한가한 독서를 즐기는 이들이 아니라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소설’을 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의 독법은 비범했다. 내가 분명 다 읽은 책들인데도,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잡아내지 못했던 특별한 점을 그들은 콕콕 집어내었고, 그들의 관점에서 설명된 소설을 보니 내가 읽었던 것이 과연 같은 책 맞나 싶을 정도여서, 소설에 대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하여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문득, 나는 소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있었나...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부끄럽게도, 한국단편, 고전들은 교과서에 실린 정형화된 작품들과 작가들만 남부럽지 않게 읽어대었었고, 그 결과 맹꽁맹꽁 맹꽁이 소리만 답습하는 형편없는 소설 독자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김유정의 대표작은 당연히 [동백꽃]이라고 알고 있었으며, 그 동백꽃조차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에 나오는 동백꽃이라 생각했었는데...사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것은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뜨허억~ 국어 선생님. 도대체 저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신 건가요...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김유정의 [만무방]이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 하다며, ‘만방으로 돌아봐도 생활의 방도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는 [만무방]을꼽아준 우한용 교수 때문에 한국 단편 소설을 쉽고 만만하게 보았던 내 자신에게 그만 혀를 쯧쯧 차고 말았다. 충실한 학생으로서의 시기를 벗어나 스스로 선택해서 소설 읽기를 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는 무엇이 그리도 갈급했던지 길고 긴 장편들을 골라 읽었었다. 김용의 [영웅문]에서부터 [대망],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 뜻도 모른 채 유장한 글에 이끌려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 [장길산]...그야말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저 글자 속에서 헤엄치던 시기 였던 것 같다. 충분한 양이 채워졌다 싶은 후에는 겉멋이 들었는지 이상문학상 수상작 등의 작품을 읽다가 그 작품 속에서 몇 몇 작가를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그것이 출산과 동시에 무로 돌아가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독서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아동도서에 탐닉했고, 차츰 여유가 생긴다 싶자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면서는 서가 한 켠을 꽉 채운 추리소설에 심취했다. 아~ 이리 저리 두서 없고 심지도 없는 책읽기 도중에는 도저히 ‘소설이란 무엇인가?’ 따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저 눈으로 읽고 시간을 때우는 것에 불과한 영양가 없는 독서를 해오던 내가 이 책을 읽다가 소설가 김병용이 [설국]을 읽은 대목에서 흠칫~하고 말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기차가 신호소에 멈췄다.
설국의 첫 세 문장이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단순히 기술해 놓은 것으로만 보였다는 그. 어떤 소설을 나이나 처지에 맞춰 관심 대목만 집중적으로 읽는 ‘덜 읽기(under-reading)의 전형을 보였던 그는 2004년 어느 겨울 아타미 행 야간 기차에 앉아 있다가 틈을 채우는 일, 언어도단을 넘어서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한다. [설국]의 첫 세 문장을 되뇌다가 갑자기, 무언가 녹아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모호함으로 꽝꽝 얼어붙어 있던 그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다른 말이 스며드는 느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 별다른 삶의 지향 없이 떠도는 한 사내가 있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낯익은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지금 어디로, 왜 가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면서...질문의 깊이만큼 캄캄한 터널 속으로 쑥-빨려 들어간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그리고 갑자기 환해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기차는 갑자기 낯설기 짝이 없는, 환한 눈의 나라로 들어선 것이다 섬광처럼 눈빛이 여행자의 눈을 찌른다. 기차가 신호소에 멈췄다. 지금 여기, 갑자기 낯선 곳에...소설의 공간, 혹은 시마무라가 머물러야 할 ‘삶의 자리’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달려오던 기차는 여기, 잠시, 멈춘다. 기차는 곧, 다시, 떠날 것이다. 서둘러 내려야 할 승객이 있다. 나, 내가 내릴 차례다...-173 내가 통과하는 삶을 이해하는 거울로서 함께 하는 작품으로 [설국]이라는 소설을 꼽은 김병용의 경험이 무지 부러웠다. 나도 소설을 읽는다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바람이 생겼다. 앞으로 내게 꼭 맞는 그 광경을 보여 줄 거울같은 작품을 언제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 책을 읽게 될 것 같다. 50인이 보여 준 소설의 독법에서 단 하나. 내게 영감을 주는 독법을 드디어 찾았다. 멍청하게 눈으로만 좇는 시간 죽이기의 독서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 건졌으니 이 책은 유익한 독서의 예로 남을 것이다. 각자 50인의 독법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소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독서 하는 많은 이들에게 독서의 의미를 정립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으로 꼭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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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사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 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소설이란 '재미'와 '오락'의 기분으로 들여다 보는책... 그리고 그 내용이란 그저, 남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하는 놀라움, 또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반전과, 서스펜스가 넘치거나, 그도 아니면 대중들이 원하는 사랑과 애환의 메시지가 쭉~ 나열되어 있는 책일 뿐 이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뭐... 더욱 쉽게 말하자면 "읽어도 별로 도움이 안되니까?" 라고 정의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편견' 을 가진 나의 손에, 우연치 않게 '당당히 소설의 매력을 부르짖는 지성인들의 책'이 쥐어졌다. 국어국문학 교수, 작가, 문학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 람들이 모여, 문학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찬양하는 책,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풍요롭게 했던 소 설부터, 한국 문화사에 있어서 큰 역활을 한 소설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그 이 름도 긴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은 나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그 이름에 딱 어울리 는 내용을 담은 책이구나" 라는 감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 책 속의 50인의 인물들이 소개하는 다양한 소설들은, 그 문학인들의 '서평'과 '감상문'의 성격 에 따라서, 각각 추구하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이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소설이 가져다준 추 억의 이야기를 썼고, 또 어떤이는 한국의 사회가 가져다 준 소설의 성격의 변화에 더 비중을 두 었으며, 또 어떤이는 이 소설들이 일으킨 사회, 문학적 파장에 대한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그 렇기에 이것을 읽는 사람은, 그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 속에서, 감성을 우선 할 것인지, 이데올로 기에 공감 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어떠한 소설을 읽어 볼 것인지를 선택하 는 '자유'가 주어진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러한 내용을 들여다 보면서, 이미 한번쯤 읽었던 소설을 보고 반가운 마음을 품기도 하고, 어린시절 교과서에서만 접하였던 소설을 떠올리며, 그 내용을 곱씹어 보기도 했 다. "소설은 우리곁에 있다" 이러한 책의 문구처럼, 나의 책장에는 분명 '시골무사 이성계' '위대한 개츠비'와 같은 여러 소설들이 그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으며, 그리고 그러한 소설들 은 분명히 나에게 있어서, 전문적 지식은 전달하여 주지 않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나를 가슴떨리 게 하고, 웃게하고, 슬프게 하는 감정적인 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주었다.
나는 (한국)소설을 즐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가져다 주는 수많은 가치에 대해서 까지 눈을 감고 있지는않다. '소설은 분명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는 분명,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는 동시에, 소 설이란... 가치와 품격을 떠나서, 독자들을 감동시켜야만 그 존재 가치가 있노라고 믿 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이 50인의 문학인과 같이, 문학을 위한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다. 때문에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의 소설 의 세계는 분명 위의 주장과 같다. 지금까지 읽을 책...그리고 앞으로도 읽어 갈 책... 그렇게 나 는 나만의 문학의 세계를 구축해 갈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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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책을 좋아는 하지만 즐겨있는 편은 아니었다. 이야기라는 형식은 그나마 책 속으로 들어가기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기도 쉬웠다. 그래서 소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학업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의 맛보기 이상의 수준을 넘어가지 못햇지만.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책과는 점점 멀어졌었다. 그뒤로는 왠지 울적하면 에세이 같은 감성적인 책을 읽거나, 앞으로 내달리기 위한 자기계발서 정도가 독서의 전부였다.
정말 아득하게 멀리....소설은 나의 일상에서 사라져갔다. 딱히 왜 내가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소설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어려워서였는지.
어쩌면 그 속의 이야기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였을 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인물과 사건, 갈등... 그게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을 헤쳐나가는 것도 버거운데, 그 수많은 인물들의 그것도 가상의 이야기가 도대체 나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있는 일도 해결하기 바쁜데, 작가의 머릿 속에서 나온 픽션의 상황까지 고민하고 아파할 여유가 없었는 지도 모르겠다. 근사하게 포장을 한다면. 책 읽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던 나에는 몇 시간을 꼬박 바쳐야 하는 시간 낭비로도 생각되었던 것 같다. 책을 별로 읽지 않았으니 고르는 안목도 없었을 것이고, 많은 부분 실패를 했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도 소설을 선호하지 않는 습관이 남아 있고, 이제 그 습관은 굳어져 버린 것 같다. 책을 선택할 때 소설이 거의 위시리스트에 담겨지지 않는 것을 보면.
글을 쓰다 보니 이유가 어렴풋하게 윤곽이 잡힌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사람의 아들』,『레테의 연가』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텍스트만 쫓아내려가던 암담함.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끝나도 도대체 이 이야기가 왜 필요한 지 답답했던 그 기억이...그냥 나는 소설을 이해할 정도의 그릇은 아닌가 보다라는 결론을 스스로에게 내렸던 것 같다. 갑작스레 그때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그런데 책에 대한 관심도,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진 요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아니 읽어야겠다는 갈망이 조금씩 시작되었다. 피하고 외면하고 살았던 부분에 대한 미련도 있겠지만, 세상을 어느 정도 살다 보니 이제사 소설이 주는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소설 속에서 인간을, 삶을 발견할 수 있는 경험과 연륜이 쌓이지 않았을까. 지금 읽는다해도 문학적인 기호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소설을 통해서 나를, 사람을, 세상을, 삶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설적인 언어로 표현된 세상이 아닌 은유의 언어로 공감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싶은 이유다.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은 그래서 선택한 책이다. 나에게 소설은 정의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었는데, 문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소설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읽는 것이 제대로 읽는 것일까?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까? 소설에 대한 나의 갑갑증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55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의 책이지만 50명의 시선으로 보는 50개 아니 중복된 소설을 빼면 48개의 소설을 접하다 보니 시간 가는 것을 잊는다. 개인적인 의미이든, 사회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든 간에 1인이 단 한 편의 소설을 꼽는 형식으도 되어 있다 보니 언급된 소설들 대부분이 묵직하고 무게감있는 소설들이다. 여기에 실린 소설들만 읽어도 소설이란 무엇인지, 그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나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더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바로, '소설'을 읽는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소설'을 교과서처럼 학문처럼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타인에게 의미있는 소설이지만,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주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수많은 소설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런 소설을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 지는 아무도, 심지어 나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냥 읽으면 된다.
"내 앞에 닥칠 시간들과 그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경관이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내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나는 나대로 궁금증이 향하는 곳을 바라볼 것이고, 다른 이들은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흘러가는 시간과 사람을 바라볼 것이다. 작가들이란 그 궁금증이 어떻게 출발하여 마침내 어디에 당도하였는지를, 정돈된 언어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내게 소설을 읽는다는 일은 다양한 형태의 발견에 지속적으로 동참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7 <책을 펴내며> 中
재미있는 것은 처음 책을 펼쳐 들고, 본문을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소설을 대하는 법, 읽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의 '덧붙이는 글'을 읽으며 내용으로서의 소설 뿐만 아니라 글로서의 소설의 역할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독서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통한 독서의 방법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시인에게 그렇게 우연히 찾아와 그렇게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그런 우연을 만난 시인이 부러웠고, 그런 결정적인 시기를 공허하게 놓쳐버린 내 젊은 시절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꼭 무언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토록 미치게 빠져볼 수 있었던 그 경험이 부럽다. 그것이 소설이어서 더욱.
소설을 읽는데 정한 법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책의 구성은 1부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하다', 2부 '소설에서 나를 발견하다'와 같이 소설에서 작가를 보기도 하고,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 등 형식보다는 '인간'에 맞춘 관점으로 소설을 보는가 하면, , 3부 '이 소설을 말한다', 4부 '나는 이렇게 읽었다'처럼 소설의 구성과 문체, 사회적인 의미 등과 같은 분석적인 방법으로 읽기도 한다. <구운몽>과 같은 고전소설은 물론 <태백산맥> <임꺽정>과 같은 대하소설 뿐 아니라 5부 '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다'에서는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 정유정의 <7년의 밤>과 같은 현대로 이어지는 소설도 만나볼 수 있다.
![]() ![]() 소설이라는 이름의 대하 서사시를 보는 것만 같은 축복의 시간이었다. 비록 내가 읽은 책은 극소수지만 아니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그래서 이 책에서 필자들이 전달하고 싶은 말을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을 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소설을 마주 대하고, 그속으로 빨려들어갈 준비를 마친 것 같다. 이제 제대로 된 길을 뚜벅뚜벅 걸어서 가려한다. 아무리 힘들고 지리한 여행이 될 지라도 가는 길을 즐길 것이고, 우연히 어느 곳에 당도한다면 그 기쁨 그대로를 누릴 것이다. 나는 지금 '소설'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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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묻고 싶은 ‘소설’이란?
혹여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싶거나 노하우를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제목을 보고 이 책에 관심을 두었다면 좀 더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본 책은 작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제목인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의 뒤에 따라올 말은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나 ‘나는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썼다’가 아니라 ‘내가 본 최고의 소설,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의 ~였다’가 적당하겠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면 이 책은 대학교수, 작가, 예술인 50인이 각자 손에 꼽은 자신이 읽은 최고의 소설에 대한 감상문을 엮어 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리타분한 소설 분석 모음집 같은 것을 생각하고 지레 흥미를 잃거나 하면 안 될 일이다. 50인이라는 많은 집필자의 수만큼 그들 각자가 맡아서 분석한 소설의 종류 역시 작가의 국적과 소설의 장르, 그리고 집필된 시기를 불문하고 매우 다양하며, 그에 대한 접근방법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참고서를 보는 것 마냥 딱딱한 어조를 사용하면서도 더 이상의 이견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작품에 관해 깊이있는 해석을 첨부한 이가 있는가 하면, 작품을 처음 만났을 적의 자신을 되짚어보며 그 당시 상황을 추억하는 다소 감상적인 이도 있다. 집필자가 많은 탓에 작품 하나하나를 해석하는 어조가 제각각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소설에 대한 남의 해석을 읽는다는 얼핏 지루해 보이는 일을 그렇지 않게 만들어주는 좋은 요소이다. 혹자는 대학교수, 작가, 예술인 50인이 선정했다고 하는 표지의 문구 때문에 소설에는 흥미가 있지만 흔한 ‘선정도서 ~선’류가 아닐까 겁을 먹고 읽기도 전에 머리가 복잡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뒤죽박죽 제각의 취향과 목소리가 뒤섞인 이 책을 그저 혼란스러운 멜팅팟이 아니라 조화로운 샐러드 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1부터 5까지 몇 개의 장으로 분류해서 나눠 정리한 몫이 크다. 각 부의 소제목들을 한 번 살펴보면 1부는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하다, 2부는 소설에서 ‘나를’ 발견하다, 3부는 이 소설을 ‘말’한다, 4부는 나는 ‘이렇게’ 읽었다, 5부는 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로 되어있다. 따옴표로 강조해놓은 것은 실제로 목차에 볼드체로 진하게 표시된 부분이다.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다 보면 그저 여러 평론가들의 훌륭한 감상평을 모아놓은 것 같아 보이겠지만 모든 책들은, 특히 이 책 같은 특정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서적들은 목차를 미리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책 전체를 용이하게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렇게 소제목을 의식하고 각 부에 수록된 감상평들을 읽는다면 글쓴이에 따라 어조는 제각각일지 몰라도 하나의 통일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본 책이 소설 창작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단지 그 소설을 잘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서일 뿐인 것일까? 아니다. 나는 오히려 누군가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시중에 널린 흔한 작법서들보다 이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을 몇 번이고, 그게 어렵다면 한 번이라도 정독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소설들을 소개하는 집필자들의 어조와 글의 내용에서 자연히 각각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구조의 독특함과 매력적인 소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잘 캐치해내 자신의 글쓰기에 적용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