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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하다. 나는 소란한 것을 좋아하고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첫문장부터 매혹적이라니. 흔히 사람들은 첫 문장을 보면 안다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그렇듯이. 아마 이 소설을 대하는첫 느낌은 내게 그만큼이나 강렬했다. '소란하다'는 말을 이렇게나 한참이나 곰곰거리게 하다니. 소설 속 '나'는 이미 소란한 곳에서는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좋아한단다. 소란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구나","그렇겠구나" ,"그럴 수 있겠구나" ......뒤집어도 말이 된다는 걸. 소란한 것을 기피하는게 당연하다 여긴게 오히려 이상할 수 있겠다. 살다보니 당연하게 어디있다고 말이다. 나 역시 소란해지는 중심에 자주 있다. 타고난 목청탓이다. 우렁차다. 게다가 직업적으로 훈련되어진 말투까지 더해져 귀에 쏙쏙 박히는 목소리다. 소란의 장본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낭패만큼이나 덕을 본 일도 많았다. 하지만 소설 속 '나',동주의 소란은 달랐다. 학교폭력이다. 피해자인 '나'에게 가해자인 승규는 아무 때나 불쑥 동전을 허공에 던지며 물었다. "앞? 뒤?" "앞"대답과 동시에 승규가 '나'의 뺨을 후려치고 나면 주변은 극도로 소란해진단다. 하지만 뺨을 맞는 것이 특별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그러면 무엇이 부끄러웠다는 건가.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관성이 죽도록 죽을만치 부끄럽단다. 이 부분이 쓰리게 오래 다가왔다. 나에게 승규는 없었지만 수직적 위계 속에 매몰되어 관성처럼 행동한 적이 어디 한둘이랴. 분란을 일으키는게 두려워서,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서, 착한 척 위선을 떨거나, 지는게 이기는 거야라는 위용에 빠져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비겁했다. 차이는 부끄러운줄 조차 의식하지 않은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가해자 승규는 옥상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그 걸로 승규와 '나'의 수직적 위계는 끝이 난다. 더이상 관성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승규와 둘이 있었던 그날 옥상에서의 일. 그날의 진실을 묻는 물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진실보다 가혹한 상상, 현실보다 더한 혹독한 상상에서 도망치지도 못했다. 매순간 필사적이고 진심이었기에 더 힘들었을 '나'를, '미도파'찻집의 소란함 속에 숨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우산 속에 피해있어야하는 '나'를 본다.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 그날로 부터, 그 기억으로 부터, 기억을 상기시키는 여자로 부터, 무심히 던져지는 사람들의 말로부터 지켜주고싶다. 견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커다란 우산이고싶다. 죽은자에 대한 애도가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살아남은 자를 위한 애도의 방식이다. 그 심리이다. 공식처럼 누구나 겪을 ,겪어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접근이 새롭다. 섬세하다. "사람이 잘못 알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라는 말에 이어서 "그건 대수로운 일이다. 사람에 대한 말은 어떤 것이든 다 대수롭다." 소설 속 말처럼 작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 대수로운 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듯 조심스럽게 세밀히 파헤치는 시선엔 남은 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함께 죽을만치 부끄러움을 견뎌내고 지켜낸 듯한 마음이다. 한껏 진심이다.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 대상수상작 역시는 역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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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관”에는 가보았으나, 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처음이였다. 벌써 24회인데,, 이제서야 알다니.. 처음으로 읽어본 수상작품들은 내게 꽤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각 작품들이 지금의 현실과 꽤 맞닿아있었다. 사회라는 구성속에서 배타적이고 폭력적이 되어가는 지금을 소설 속에서 읽을수 있어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것 같다. 그래서 아팠고, 그래서 조금은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이 주는 위안은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것, 그리고 이후에는 그것이 어느덧 희미한 현실이 될 것이라는 말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희미함이 위안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상작품인 “애도의 방식”. 주위의 소란은 싫지만 이미 소란한 곳은 자신에게 향해지는 눈길을 피할 수 있기에 찾아낸 미도파 찻집에 정착한 주인공 동주. 그런 동주를 찾아온 여자. 그리고 집요하게 묻는다. 자신의 아이의 마지막을. 동주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그저 묵묵하게 견디다, 더이상 견딜 수 없던 그때, 동전의 앞뒤가 아닌 ‘호랑이’라 말한다. 그리고 일어난 사건. 분명 피해자였음에도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에게 꽂힌 시선을 동주는 건뎌낼 수가 없었다. 나는 제목인 “애도의 방식”이 동주가 그 친구를 보내는 방식이고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방식은 동주가 과거의 자신을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가진 아픔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여자가 조각조각 내어버린 함박 스테이크와 동주가 끄끝내 말하지 않은 그 일 모두 각자가 스스로를 애도하고 있는 방식임을 그래서 그 시간을 견디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아팠지만, 동주도 그 여자도 모두 어떻게든 현실을 살고 있고, 살고 있어서 흐르는 시간이 그들에게 그 시간을 희미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게 인상적이였던 또다른 작품 “자작나무 숲”. 쓰레기 호더인 할머니와 ‘나’. ‘나’는 오로지 할머니의 집을 상속받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다. 그 꿈은 엄마로부터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가끔 TV에나오는 쓰레기를 꽉꽉 채워넣은 집을 치워주는 영상을 보면서, 그 역시 병이라고 말하고, 그런 분을 치료해주고, 집을 치워주는 영상을 보면서 나는 왜.일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 하지만 “자작나무 숲”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하나도 버릴게 없지 않니…’p.195 라는글이 쿡하고 박혔다. 어떤 상실감.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는 공허함이 표출된 형태. 우리가 SNS에서 ‘좋아요’를 갈구하고, 그러기위해 하는 모든 행동과 그닥 다를바 없는 상태와 너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심리는 개연성이나 어떤 서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자체를 이해하고 싶은 타인의 감정일 뿐이지, 그이를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기위한 감정은 아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주인공인 ‘나’ 역시 할머니가 죽고나서야, 묻고 싶어졌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뭐를 그리 ‘자작자작’ 태우고 싶어졌는지 말이다.
어느때보다 공감을 말하면서도, 점점 더 배타적이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 공감이라는 말 뒤에 숨어 어느때보다 타인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내는 지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 것일지 말이다. ”잘사는 사람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라는 대사가 있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잘사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임에도 그 어느 시대보다 내가 아닌 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그런 우리에게 전하는 애도, 그런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 그리고 다시 생각케 하는 단어 공감. 책은 그런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래서 아팠지만, 이 시간 역시 지나갈 것이라는 안도를 느끼는 것일까.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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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국내 작가님들의 멋진 작품들 잘 봤습니다. 수상작품집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작가님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어떤 작품이 좋았다라고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수상작품집 내 모든 작품들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작품들이었습니다~! |
| 50이 넘어가며 인문서적이나 전공분야도서에 심취해 쫒기듯 한발앞서려 돌뿌리에 걸려넘지듯 살아온듯 하다. Ai같은 이진법화된 인간이 되려나 두려움에 나를 돌이키고 살펴보기 위해 사람 소리 들리는 일상의 단편을 찾던차에 이 분류의 문외한이던 내게 이효석 선생의 이름으로 수상받은 작품집이 눈에 띄어 읽었다..안보윤 작가를 비롯해 여러 작가분들의 호흡을 따라가며 잠시 숨고르고 세상을 명상하듯 살펴보며 나를 끼워 짝맞춰 보며 나의 일상을 반추해 볼수 있었던 좋은 선택이고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
| 보기 드문 젊은 작가의 최고 작품 앧의 방식은 왜 애도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의 방실인지를 보여준다 절제된 문체와 구성 방식은 근 현대 작가의 수준작 못지 않은 아니 교과서에 나오는 기성작가를 능가하는 역잘이라 할 수있다 어쭙잖은 여타의 젊은 기성작가에게 분말을 요하는 수작이다 안보윤 작가만의 개성있는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된 이 시대의 고민을 공유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