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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학의 세계사』는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책이다. 첫부분은 스기타 겐파쿠의 『난학사시』를 번역한 글이고, 두번째 부분은 <열대의 일본, 중화적 세계를 넘어 유럽으로>라는 논문이다. 저자는 뒤의 논문을 이해하는데 『난학사시』를 아는 게 필수적이라고 하고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두 부분은 사실 별개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난학사시』는 해부학 책인 『타펠 아나토미아』를 번역하여 『해체신서』를 냄으로써 본격적인 난학(蘭學)을 시작한 스기타 겐파쿠가 나이가 들어 『해체신서』를 번역할 즈음의 사정을 회고한 책이다. 그러니까 난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철저하게 자신의 시각에서 밝힌 책이다. 따라서 난학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이면서, 또 지극히 개인적으로 왜곡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관해서 타이먼 스크리치는 『에도의 몸을 열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스기타 겐파쿠는 『난학사시』의 유명한 문장에서 서양의 도보를 보면 개복된 실물의 사체를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는 그가 최초의 해부에 입회했던 문제의 그날의 경위를 순서에 따라 기록한 기술 자체도 신용하기 힘들다." (171쪽) "자기 성화(聖化)의 이야기 중심에 누가 뭐래도 자신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중략) 겐파쿠에게는 자신밖에 안중에 없었다." (172쪽) 이처럼 『난학사시』가 난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왜곡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 책이 『난학의 세계사』에서 더 중요한 저자의 논문에 가장 중요한 자료일 정도로 대등하게 넣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 보여진다. 또한 논문에서 저자가 펼치는 논지, 즉 일본의 난학이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는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난학사시』의 번역을 반드시 읽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완전히 수긍할 수는 없다. 그래도 논문 <열대의 일본>은 충분히 읽을 만하다. 이 논문이 총체성을 띠고 있지 않은 느낌은 분명하고, 그래서 아직은 물음 정도, 혹은 발제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만, 중요한 물음, 의미 있는 발제인 것만큼은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난학을 단순히 번역 작업이라거나 어떤 한 분야의 부흥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열대를 통해 세계와 만나 변화하는 과정으로서 난학을 보고 있다. 중화적 관점을 버리고, 세계와 만나는 통로로서 해부학을, 지리학을, 박물학을 취한 것이다. (난학이 일본이 세계와 만나는 중요한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것 자체가 어떤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지는, 저자는 선언할 뿐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관심을 가지고 볼 만한 것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조선의 실학과 일본의 난학을 비교한 부분이다. 사실 이 비교는 동일한 층위를 갖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실학(實學)은 그 실체가 당시에는 뚜렷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실학이라는 명칭도 한참 후에야 부여된 것이고, 우리가 이른바 실학자라고 부르는 인물들도 그들이 같은 흐름 속에 있다고 거의 의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난학(蘭學)은 그렇지 않다. 난학이라는 이름부터 그들이 부여했고, 난학자들은 그들이 난학자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 대상으로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실학과 난학이 조선과 일본의 비슷한 시기, 변화의 시기에 그 변화를 추동하고자 했던 흐름으로서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이 완벽히 반대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둘은 비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보인다. 저자는 몇 가지가 실학이 난학과 달랐다고 본다. 우선은 실학자들이 중국만을 바라보고, 서양도 중국을 통해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열대 동남아시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 실학자들은 사대부 계급이었던 반면에 난학자들은 사무라이 계급이었다는 점. 그래서 실학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번역이라든가, 의술, 기술 같은 것을 자신들의 분야라 여기지 않았다. 따라서 실학자들은 손과 발을 쓰지 않았다. 또한 실학자들은 한문으로 사회화하였던 데 반하여 난학자들은 일본어로 사회화하였다는 점 역시 다른 점이었다(우리는 일본 난학자들이 번역어를 받아들여 우리의 사고 체계가 형성되었다). 청각(聽覺)의 실학과 시각(始覺)의 난학도 비교된다.
난학이 시대는 고종석이 빛나는 장면이라 극찬할 만하다. 그 귀결이 제국주의였고, 식민주의였다는 데는 씁쓸함이 남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그 난학의 전개를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15.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