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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방]에서 시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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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시간의 품에서 팔베개를 풀고 나온 햇살이 재잘대며 문지방을 넘는다 p 61 '아침나절 햇살 한 줌' 중에서     시알못인 제가 시집을 샀습니다. 꽉 찬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이 벅찼는지 『햇살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달걀 한 꾸러미』, 『모과향기에 실려』에 이어 임홍택 시인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전의 시들을 읽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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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시간의 품에서

팔베개를 풀고 나온 햇살이

재잘대며 문지방을 넘는다

p 61 '아침나절 햇살 한 줌' 중에서

 

 

시알못인 제가 시집을 샀습니다. 꽉 찬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이 벅찼는지 『햇살 좋은 방』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달걀 한 꾸러미』, 『모과향기에 실려』에 이어 임홍택 시인의 세 번째 시집입니다. 전의 시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햇살 좋은 방』에 이르러 시인의 심상은 더욱 농익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시집을 여는 첫 글 '時로의 초대'를 읽으며 '아! 시인은 시를 이렇게 쓰는구나!' 싶었습니다. 무의미하게 누워있던 문자들이 뒤척이며 잠을 청할 때 베개를 내밀며 다가가 보고, 익숙해지는 풍경 속으로 걸어 나오는 문자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올 때 얼른 문자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거죠.

 

아장아장 걷기도 하고 큰 걸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시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얼굴 표정이 떠올라 저까지도 살금살금 몸을 낮추고 지켜봅니다.

 

 

햇살 좋은 방에서 시를 쓴다

가장 고운 소리를 부르며 노래 부른다

시어들이 다가오며 모습을 갖춘다

받아 적는다

序詩 '時로의 초대' 중에서

 

 

이렇게 받아 적은 시가 4부까지 모두 80편입니다. 마음에 와닿는 제목의 시부터 찾아서 한편씩 읽어 봅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던 어느 유튜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집을 열어보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시인의 감성을 쫓아 햇살, 나무, 꿈, 길, 노을, 뿌리, 빗소리, 시간…… 이런 낱말들을 따라갑니다. 그 속에 숨어있는 온기와 생명 등을 발견하는 기쁨이 사람들이 시를 읽는 이유인가? 싶었습니다.

 

 

 

 

산소 탱탱하게 채우고

외발자전거를 타고 싶다

 

 

~~중략~~

 

 

캔버스에 꾸불꾸불한 물감을 짜서

오금이 저리도록 후끈한 길을 만들고 싶다

 

 

햇살로 현을 만들고

이리로 저리로 맑은 노래를 지어

코스모스 길로 달리고 싶어

배롱나무처럼 굳은살도 박이고

손금 같은 길도 씽씽 가겠지

- p 44 '외발자전거의 꿈' 중에서 -

 

 

 

시인에게 외발자전거는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의 상징일까요? 모험이란 걸 선택해 볼 여지도 없이 안정만을 향해왔던 저는 시인의 외발자전거에 올라타 어느새 코스모스 길도, 손금 같은 좁은 길도 씽씽 달리고 있습니다.

 

 


 

 

 

뽀얀 뒷금치로 꽁꽁 다져 놓았던

또는 혈관처럼 엉킨 실타래를 풀 듯

 

 

빛깔들을 손가락으로 늘이고 감고

그래서 회색 빛이 된 바람 자락

 

 

투명한 추억이 촛농이 된다

초록빛 추억이 농익은 단풍이 되어

별빛으로 질 때

 

 

투명해져 속이 훤히 보이고

가눌 수 없는 날 선 기억의 한 자락이

볼록거울 속에서 나부낀다

 

 

뒤돌아볼수록 부풀어 오르는 추억

멍든 기타 현을 조율하듯

불러본다 그 빛깔들

p 83 '오후 7시의 빛깔' 전문

 

 

 

여러 번 소리 내어 읽고서야 오후 7시의 빛깔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시의 소재가 되는 사물마다 빛이 함께 합니다. 시인에게 빛은 세상을 발견하는 도구인가 봅니다.

 

 

엉킨 실타래 같은 빛깔들은 하도 만져 회색빛이 되었는데 그 빛은 또 바람이 됩니다. 청춘의 추억은 촛농이 되고, 촛농은 단풍이 되고, 단풍은 별빛으로 지게 되는 오후 7시의 시간 앞에 우리는 섰습니다.

 

 

볼록거울 속에 나부끼는 지난 청춘의 기억을 조심스레 회상해 봅니다. 멍들었어도 빛나던 그 시절의 빛깔들을 불러보는 시인의 마음은 어느새 제 마음이 됩니다.

 

 

 

 

 

80편의 시를 천천히 읽어보며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제 눈까지 순해집니다. 시인의 마음과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이 시들은 제 시가 되었습니다.

 

시인이 마련해 놓은 「햇살 좋은 방」에서 저도 덩달아 시인이 되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g****9 2023.09.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