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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닝 망켈은 케네스 브래너 주연의 TV 드라마로도 제작된 바 있는 경찰관 발란데르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의 문학가이다. 10 편의 발란데르 시리즈는 한국에서 모두 발간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다. 이 책은 그 발란데르 시리즈에 속하지 않으며 헨닝 망켈의 작품 중 발란데르 이외로는 내가 처음 읽은 작품이기도 하다. (발란데르 시리즈 중 일부가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대부분 절판된 상태이다.) 드라마도 꽤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책의 원제인 KINESEN은 스웨덴어로 중국, 중국인이라고 한다. 망켈은 책의 원제에서부터 책에서 다룰 주 소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소설은 2006년의 스웨덴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배경을 들추면서 19세기의 중국, 중국인과 2006년의 중국, 중국인이 소설 전체를 감싼다. 스웨덴의 한적한 마을 헤셰발렌에서 무려 19명이나 칼로 난자당해 죽는다. 같은 마을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셋뿐이다. 죽은 19명의 Family Name은 세 가지로 일종의 집성촌 같다. 이 소식을 접한 헬싱보리의 판사 비르기타 로슬린은 살해당한 이들의 이름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와의 연관성을 발견한다. 비르기타는 현장을 방문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빨간 리본을 찾은 후 그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점점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이런 학살의 배경에는 14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두 집안―확대해서 보면 서구와 중국―의 악연이 자리 잡고 있다. 망켈은 이 악연의 내력을 설명하는데 많은 쪽을 할애한다.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서구에 대한 반감을 이해시키기 위한 글쓰기라고 받아들였다. 긴 설명 후 소설은 다시 2006년의 세계로 돌아온다. 중국 내의 사상 대립이 특정 인물―대표적으로 친남매인 훙취와 야뤼―들을 통해 대변되고 중국의 세계화 전략의 일단이 보인다. 헤셰발렌의 학살은 중국이 과거를 이해하는 방식의 하나로 비쳐진다. 비르기타는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소설 속에는 몇 가지 이해 안 되거나 억지스럽다고 여겨지는 장면들이 있다. 비르기타가 베이징 시내에서 폭행당하고 가방을 빼앗긴 후 훙취가 찾아주는 내용은 끝내 그 배경을 알려주지 않는다. 야뤼가 훙취를 죽이는 장면은 야뤼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감안해도 억지스럽다. 동기가 너무 약해보이기 때문이다. 헤셰발렌에서 벌어진 학살의 의미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사자들도 아니고 140년 이상이 흐른 시점에서 그 집안 모두도 아닌 나이든 일부를 살해하는 게 누군가의 복수심을 충족시킨다고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해도 지나친 억지 설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이 대량 학살과 그에 이어지는 내용을 다룬 스릴러물이기는 하지만 망켈은 내용 중에 소설이 나올 시점의 중국의 행보에 대해 일종의 경보를 울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구 열강들에 의해 핍박받고 약탈당한 후 그 인민들은 타국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근대의 아픈 역사를 지닌 중국이다. 그런데 그 중국이 최근 보이는 움직임은 과거의 서구 열강들처럼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제국주의의 모습을 한 채 겉으로는 웃지만 실제로는 약한 국가들―기실은 그 국가들을 지배하는 독재자들―을 포섭하고 중국의 문제를 이들에 떠넘기는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소설을 빌어 한다는 뉘앙스를 느낀다. 훙취와 야뤼의 대립은 중국의 권력 상층부 내에서 벌어지는 사상과 정책 논쟁을 묘사했다고 여겨진다. 간략하게 다루어지지만 농민의 소외와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 및 공업 개발의 한계 등 중국 경제성장의 이면에 숨은 문제에 대해서는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자료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정도로 중국을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 망켈은 오랜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극단을 운영하고 아프리카를 서구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소설이 얼마만큼의 현실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국의 농민 수백만 명을 아프리카로 이주시켜 아프리카의 농업 발전에 기여토록 하겠다는 소설 속 중국의 모습은 망켈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보았던 부정적인 중국의 모습을 상당 부분 반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망켈은 책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현실을 바탕으로 썼다고 토로했다. 중국이 가는 길은 어디로 연결될까?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는 모습이나 그보다 훨씬 심한 탄압이 이루어지는 위구르의 상황을 보면 망켈이 보고 싶지 않던 길―야뤼의 최후는 그런 망켈의 바램을 드러냈다고 본다―로 깊숙이 들어섰다고 보인다. 그 길이 빨리 닫히기 바란다.
P.S. 1 여성인 비르기타가 남편 스타판과 대화할 때 비르기타는 계속 존대를 하고 스타판은 줄창 반말로 응대한다. 번역의 문제일 텐데 몹시 불편하다. 그렇게 번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책이 2014년 2월에 처음 나왔는데 그때의 한국은 이게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낙후된 사회였던가? 아, 지금의 한국은 2014년보다 오히려 더 낙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별과 혐오와 적대가 난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P.S. 2 제발 발란데르 시리즈 10편 모두가 한 출판사에서 제대로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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