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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에서 에밀리 디킨슨까지, 존 밀턴에서 월트 휘트먼까지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한 영미 여성 문학사, 무려 천백 페이지가 넘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었다면, 이 책 역시 자연스럽게 읽게 된다. 이 책은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가 19세기 여성 작가들에 대해 파고들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후 40년 만에 펴낸 신작이니 말이다.
이번에는 무대를 19세기에서 현대, 즉 1950년부터 2020년까지의 세계로 옮겨왔다. 그리고 '세상이 요동칠 때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독려해주는 듯한 여성 작가들을 불러들인다. 실비아 플라스, 존 디디온, 에이드리언 리치,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등 읽고 쓰고 맞서 싸운 여성들의 계보가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전작이 워낙 방대한 분량이었기에, 육백 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이 가뿐하게 느껴지지만, 5주간 Mad Writing Club으로 읽게 되어 차근차근 나눠서 읽었다.
1950년대를 다루는 1부의 1장과 2장, 1960년대를 다루는 3장과 4장에 이어 1970년대가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가부장제에 저항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2만여 명의 여성들이 미국 여성 참정권 획득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평등 시위'를 벌이며 1970년 여름이 시작되었다. 하원에서 성평등 헌법 수정안이 짧은 토론 끝에 통과되었고, 케이트 밀릿이나 수전 손택 같은 논객들은 가족 로맨스를 해체했으며, 토니 모리슨과 에리카 종부터 리타 메이 브라운에 이르는 소설가들은 여성을 쇠약해지게 만드는 성 역할에 대해 분석했다. 그야말로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을 마비시키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상태를 야기하는 억압에 대한 충격적인 각성이 시작되는 1970년대였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지만, 우리가 읽고 쓰는 것도 우리다.' 문장이 여운처럼 길게 가슴에 남았다.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 수전 손택의 <O 이야기>,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 마거릿 애트우드 <신탁받은 여자>, 실비아 플러스의 <벨 자> 등에서 여성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회화 과정을 주제로 여성의 삶에 대해 묘사했다. 예전에는 '정상적이고' '규범적으로' 보였던 모든 것이 기이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피비린내 나지만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역사는 바로 가부장제의 역사이자 우리가 깨어나 벗어나려 애쓰는 악몽과도 같은 제도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1950년대에서 시작해 폭발하는 1960년대, 깨어난 1970년대를 거쳐 이번 주에는 페미니즘을 다시 쓴 1980년대와 1990년대, 후퇴와 부활의 2000년대에 이르렀다.
"이론의 여지 없이 누구나 받아야 하는 존중을 위해 싸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는 N.K.제미신이 '부서진 대지' 3부작을 쓰고 책을 헌정한 대상들에 대해 밝힌 말이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 이 작품의 의미하는 바와 영향력에 대해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갑게 읽었다. 여성의 생각과 언어가 거부되던 시대에 의문을 품고 반기를 든 여성 작가와 예술가들의 계보는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언어'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열정적인 분노를 강력한 글쓰기로 승화시킨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Mad Writing Club 5주차가 되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다시 첫 장을 살펴보고 싶어 졌다. 이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항의 행진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글을 쓴다'고 서두를 열었다. 2017년 1월 2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 있었던 항의 시위인 여성 행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직접적인 시위 참가가 불가능해 나름의 연대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았던 것이 바로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 거였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제2물결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위해 대표적 여성들(시인, 소설가, 극작가, 가수, 저널리스트, 이론가 들)을 선별하면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가 19세기 여성 작가들에 대해 파고들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후 40년 만에 펴낸 신작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이야기의 무대가 19세기에서 현대, 즉 1950년부터 2020년까지의 세계로 옮겨왔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실비아 플라스, 존 디디온, 에이드리언 리치, 어슐러 르 귄, 수전 손택, 토니 모리슨 등 읽고 쓰고 맞서 싸운 여성들의 서사는 그 자체로 뭉클해지는 뭔가가 있었다. 우리와 우리의 많은 친구들은 유리 천장을 깨부수고, 깨진 유리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미쳐 있다. 현실은 여전히 미친 듯 화가 나고 혼란스럽고 반발감이 치솟게 우리를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가기 위해선, 읽기와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었다면, 이 책 <여전히 미쳐 있는>도 놓치지 말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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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인지 자연스럽고도 자주 듣게 되었다. 오늘 만난 <여전히 미쳐 있는>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 이후 40년 만에 두 저자의 책이다. 40년 전이나 지금 여성 운동은 어떻게 변해 있었나? 1950년 대 페미니즘 운동은 미비했지만 그 씨앗이 되기에 충분히 들끓기 시작했다. 여성의 기준은 남성과 다르게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모습만을 강조하던 시기에서 이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려는 과정이 시작이 되었지만 그 앞길은 넘어야 할 장애가 많았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힐러리 로댐을 시작으로 페미니즘의 운동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시인과 소설가 등 여성 문학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은 단순히 여성 인권만이 아니라 인종차별과 성차별까지 넘어선다. 이를 보면 혐오의 시작 그 뿌리는 하나였고 그것이 위로 올라오면서 여성과 인종, 성에 대한 차별로 나누어졌다.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의 분노는 오래전부터 시작이 되었지만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시인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실비아 플라스는 남편보다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녀의 시에 대한 해설은 미국 내에서도 살아생전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고 중요한 것은 시를 통해 억압된 여성의 목소리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여성 문학인들은 이렇게 소신껏 작품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고, 음악으로 목소리를 낸 예술가들도 있었다. '블랙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있는 데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을 생각할 때 전체적은 여성 운동이라 생각을 했지만 이민족으로 이뤄진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를 생각하면 그 안에는 백인과 흑인, 라틴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흑인 인권에 대해 소리가 높아질 때 그 안에서는 여성 흑인의 입장은 흑인 남성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학교에 갈 수도 없고, 개인적인 공간이 없음을 써 내려갈 때 흑인 여성은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흑인 남성의 성차별이라는 짐을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그 안에는 흑인과 여성차별 속에서 혼란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 속엔 음악가인 니나 시몬이 있었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텍스트와 다른 도구로서 시몬의 음악은 흑인으로서 여성으로 가지게 된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 인물이다.
특히, 미국 내에서 베트남전 반전운동으로 여성운동이 더 움직이게 되었고 나아가 성 혁명으로까지 이어진다. 인권 운동은 여성뿐만 아니라 젠더 운동도 포함을 하고 있다. 여성 강간 사건에 대한 내용은 사건을 다룬 다른 책에서도 종종 읽기도 하는 데 왜 피해자인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가해자인 남성은 반대일까? 그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성에 대한 인식을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것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미국 최초 프로파일러를 창시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앤 울버트 버지스는 피해자인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가가야 하는 인식을 바꾼 여성이다. 사람들은 변화가 큰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작은 것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 1970년 대 와서야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지만 그전까지는 아직 걸어가는 과정이었다. 여성 참정권 획득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이란... 선진국이니 당연히 여성 인권 역시 빨랐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리고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성 혁명이 일어나고 가정생활에만 살아야 했던 여성의 삶은 차차 그 틀을 벗어나려는 파동을 일으켰다.
가부장제의 특징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구분 된다는 점인데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에서 이런 구분의 뿌리는 '신화적 요소'가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부양한 남성에게 의존한다는 것, 인간 삶의 해악이 여성 때문에 생겨났으니 반드시 남성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영어 문법에서도 성차별이 존재하는 데 모든 인간을 지칭하는 man, 사람들을 의미하는 men, 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땐 he라고 한다. 애써 뭐 문법까지 차별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적었듯이 작은 이런 행위가 점점 스며들 때 너무나 자연스럽게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여성 문학인들은 sf를 통해 더 여성 운동과 인권에 대해 발설하기 시작한다.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수전 손택, 앨리스 워커, N.K 제미신 , 버니지아 울프 등 그들의 문장으로 비극이 되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중 앤 카슨은 '소리'로 성차별이 되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인류가 발전한 이후 여성의 존재는 영웅이 아닌 다른 존재로도 그려내지는 것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때론 이런 모습이 점점 여성의 삶을 조여들게 한다는 자체가 무섭다.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커 갈수록 문제는 오히려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같은 여성임에도 다른 여성을 비하는 것이 늘어나는 데 이를 보면 안타깝다.
그리고 이런 여성 해방 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16년 트럼프와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힐러리 로댐)은 패했고, 그 후 트럼프는 오바마에게 패했다. 최초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백인 남성들은 백인, 남성, 기독교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단체에 가입했고 트럼프는 난동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운동을 더 크게 퍼져갔고 앨리슨 벡델로 인해 어미니 세대 역시 어머니들조차 딸들의 가치를 깎아내렸음을 알게 된다. 동시에, 여성의 심리가 아닌 신체적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룬 이브 엔슬러는 V-데이를 창설했다. 이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고문은 여성의 일생을 짓밟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는 동안 고통을 준 것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의 운동의 시작은 인권이었고, 엔슬러의 V-데이와 '10억 명 궐기'는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을 요약한 것임을 저자는 말한다. 이란의 강제적인 베일 착용 반대 운동, 투병 중임에도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주의와 맞서 싸운 오드리 로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누스바우의 활동 등 책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성들의 행진에 나의 시야가 좁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면서 페미니즘을 이끌었던 여성들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뒤를 이은 또 다른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는 인종과 여성 인권이 아닌 환경 보호에 나서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그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자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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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들>도 그 두께 때문에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는데 <여전히 미쳐있는>을 읽으려니 조금 겁이 났다. 어렵기도 해서 읽는 속도가 무척 더뎠지만 걱정했던 것과 굉장한 흥미를 가지고 독서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시대 속 '인물들'을 따라 1950년대 이후의 여성 운동을 쭉 따라걷다보면 어느새 내가 서있는 바로 이 지점에 와닿아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바로, 여전히 미쳐있는 바로 그 여자들인 것이다. 페미니즘을 하면서, 아니, 그냥 이 시대를 여성으로서 살아가기만 해도 조각조각 만나게 되는 문구들('생각하는 여자는 괴물들과 함께 잔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가 이 지도의 어디쯤에 있는지 알게 되었고, 실비아 플라스부터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NK 제미신까지 내가 좋아하는 여성 작가들이 만들어나간 길들과, 글로리아 스타이넘에서 카멀라 해리스에 이르기까지 삶으로 여성 운동을 보여준 인물들이 빛내는 이정표들을 더듬어 나가며 이 책이 가진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특히 낸시 펠로시를 다룬 파트에서 트럼프의 연설문을 찢은 에피소드를 밝힌 뒤 그가 그저 미친 여자인 것이 아니라 타당한 이유로 '여전히' 미쳐있고 그건 우리(작가들)도 마찬가지라고 쓴 문장이 이 책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었다. 전율이 일었다. 이 한 문장으로 그동안 모호하게 느껴지던 이 책의 문구들이 한순간 마음속으로 꽂혀들어왔다. 비록 원하는 만큼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마친 뒤 마음에 파동이 인다.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미쳐있다. 그저 미친 것이 아니라 타당한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이 가부장적이고 미소지니적인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이 책을 펼쳐보자. 그들이 만든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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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히 미쳐 있는 / 산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 류경희 / 북하우스
이 시기(구체적으로 이 정권,,,이 세계의 신자유주의와 반지성주의의 광풍, 그 저류에 면면한 미소지니, 그리고 기후 위기)를 어떻게 미치지 않고 지날 수 있을까.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미션이다. 이때 마침 당도한 큰 언니들의 전언, 눈물이 핑 돌도록, 반갑다. 자상하게도 길기까지 하다. (그래도,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아쉽겠지)
전언의 타이틀, 에누리 없다. 여전히 미쳐 있는. 현실의 여전한 ‘폭력과 부조리함’, 그 현실을 사는 여성들의 불같은 ‘분노’, 그 현실에 짓밟히지 않겠다는 각오로서의 ‘광기’. 미친 현실에 두 눈 부릅뜨고, 화염처럼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결기. 현상과 증상으로서의 가부장제의 광기, 그에 대한 반응과 다짐으로서의 여성들의 광기. 미친 네이밍. 이런 작가들과 이런 글들이 계속 출몰하는 한, 전자의 광기는 후자의 광기에 소실되어 한 줌 재가 될 것이다.
트럼프 취임식 다음날 시위에 신체적 장애로 나가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다른 연대의 방법을 궁리하다가 이 책의 집필로 마음을 보태기로 했다는 두 작가의 담담한 고백은 감동적이다.
2017년 이 당시 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는 각각 대략 81세, 73세였다. 그리고 5년 후, 두 작가는 그 연대의 다짐을, 이렇게 멋진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으며 지켰다. 두 학자의 삶의 모습, 열정에 숙연하다.
작가들은 제2페미니즘의 성공과 실패에 당혹스러웠다며, 이 책의 집필 목적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우리가 여전히 분노로 미쳐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미래를 쌓기 위해서, 우리는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프롤로그에 거명된 #케이트쇼팽, #조라닐허스턴, #샬럿퍼킨스길먼, 에고, 오랜만에 이 이름들을 들으니, 마음이 뜨겁네. 목차에 있는 여성들은 또 어떤가. 새삼 앞선 많은 여성들의 그늘 안에, 내가 살고 있구나 싶다. 올 해 읽은 많은 여성 작가들의 글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가슴이 따뜻해져.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안 이후,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여전히 그 여자는 미쳐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두 작가는 그 여자에 대해, 그 여자가 사는 세계에 대해, 그 여자의 광기에 대해 침착하게 조근조근, 재치있게 유머를 잃지 않으며, 눈을 땔 수 없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이 요동칠 때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독려해주는 듯한 작가들을 불러들였다. 우리는 그 저명한 여성들의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생애에도 끌렸다. 그들의 삶이 그 자신들이 피와 살을 지닌 현실 세계의 여성으로서 개인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삼을 때 직면했던 문제들을 극화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경합하고, 뒤흔들고, 지지해야 한다” “ 세상이 요동칠 때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
이 책이, 이 책 속의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리고 이 두 명의 위대한 작가,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전하는 격려이다.
이 책이, 이 책 속의 많은 여성 작가들이, 그리고 이 두 명의 위대한 여성, 작가,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미쳐가는 세계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미친 척 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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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가부장제에 저항하다 p.239 1970년대에 가장 폭넓게 읽힌 소설 중 하나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여성성의 모순은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서술자를 광기로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아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는 원래 1963년 런던에서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자살하기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이 작품이 발표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주저했으며, 미국에서의 출간에 대해서는 한층 더 불안해했다. 이 소설은 마침내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엇갈린 평가를 받거나 열혈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열혈 독자 다수는 이 작품의 플롯이 플라스 자신의 애틋한 개인사를 따르고 있고 그녀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詩 - 그 시절에
사람들은 말하리라, 그 시절에, 우리는 놓쳐버렸다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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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_샌드라길버트, 수전구바 여성의 생각과 언어가 거부되던 시대에 의문을 품고 반기를 든 여성 작가와 예술가들. 이 작품을 통해 여성으로서 규정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발화한 여성 작가들의 계보와 투쟁, 희망의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여성문학의 발자취로부터 현 시대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공부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굉장히 뜻깊었다. 특히 갈등과 모순이 거침없이 드러나는 세계를 살았던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싸움에 지쳐있을지도 모를 누군가가 위로 받기를 바란다는 편집자님의 글은 여성문학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일대기를 빠짐없이 읽고 기록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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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주간 매드라이팅클럽 서포터즈로 활동을 했어요..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한 역사책 같은 느낌이에요.. 처음엔 내용이 어렵다는 생각에 한장 넘기는 것 조차 힘들었는데..미션 수행을 하면서 한주한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이 책의 매력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매주 마케터의 같이 읽고 싶은 챕터..를 천천히 따라서 읽다보니 5주차가 된 지금.. 첫장부터 다시금 천천히 읽어보고 있어요. 잘 알지 못했던 여성작가들의 분노와 그 분노를 글로 쓰게 된 배경을 알고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걸 이번에 많이 느끼게 되었어요. 책에 나오는 많은 작가들이 있고 작품이 있는데.. 그중 그냥 스치듯 읽었던 책들도 그 당시의 분위기와 배경을 알고 보고 다시한번 생각을하며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시 책은 그냥 읽어도 좋고.. 그런 기분을 이번 책을 통해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고. 누구든 이 책을 읽는다면 다들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 저는 이 책의 작가들처럼 위대한 글을 쓸 수는 없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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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가족의 가치”라는 미명 아래 레이건 행정부에 여성운동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했고, 에이즈 감염병 관리를 내팽개쳤다. ..... 댄 퀘일 부통령은 ....... 그는 레이건 대통령과 우파 종교인들이 장려했던 “가족의 가치”를 들먹이기도 했다. 가족의 신성함을 이런 식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그리고 결혼을 할 수 없는 레즈비언들과 게이들을 위하여,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운동 확장에 나섰다._p379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여전히 미쳐있는>을 긴 호흡으로 읽으면서, 여성운동, 페미니즘의 갈등과 변화, 숨겨져 있었던 사연들, 사회적 인식, 문화, 사상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답답했었던 부분들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정점은 <9장, 상아탑 벽장의 안과 밖>이 아닌가 싶다. 페미니즘, 여성운동의 테두리를 넘어 성정체성에 대한 규정된 틀에 맞선 행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학과 인물 속에서 가부장제 문화를 짚어내고 분석해주는 글은 역시나 심도 있어서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내게는 앤 카슨이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다양한 정체성이 여전히 거부당하는 현실을 실질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아직도 진행중인 이 독서는 한 번으로 다 끝나지 않을 것 같다.
_“페미니즘은 죽었는가?” 잡지의 표지가 암시하는 바에 의하면, 만약 페미니즘이 아직 죽은 것이 아니라 해도 분명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태라는 것이었다. 비록 이런 예측은 많은 사람들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었음을 앞으로 알게 될 것이다._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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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제나 투쟁하며 사랑한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래로 내 세계에서 페미니스트란 언제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서 정의되었던 대로,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즉, 인간 평등을 추구하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이 아직 '성평등주의' 따위가 아닌 '페미니즘'인 이유는 여전히 여성들이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회운동은 당연하게도, 약자의 이름을 하고 있다.
▶ 아직도 페미니즘을 믿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마치 페미니즘이 진실 반지나 애완용 돌이라도 되는 것처럼 묻는다니까요. _ 헬렌 레디, 『나라는 여자: 회고록』 (2005)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비단 믿음이나 사상의 차원에서만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섹스와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성별의 인간이 평등을 이루는 것을 바라고, 그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개인적 믿음의 영역에서 사적인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자들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쓰기 전 고등학교 때 쓰던 블로그를 뒤적이다 2018년,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고 쓴 서평에 '속에 담은 것을 꺼내어 진실을 말하려면, 인간이 진정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성이 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위해 성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인간이 불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화내는 것에 눈살 찌푸려서는 안 된다. 인간은 성낼 권리를 가진다.'라고 썼던 것을 발견했다. 그때도 완전히 명확하진 않았지만 알고 있었던 거다. 페미니스트는 평등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고, 그러므로 평등할 때까지 싸울 것이고, 그러므로 여전히 미쳐 있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미쳐 있을 것임을.
▶ 여자로 태어났다는 게 끔찍한 비극이다. 수태된 순간부터 나는 가슴이 솟아오르고 페니스나 음낭 대신에 난소를 갖게 될 운명이었다. 내 모든 행동과 생각과 감정의 범위가 피할 길 없는 여성성에 의해 엄격하게 제약당할 운명이었다. 그래, 길거리의 패거리들, 선원들, 군인들, 술집 단골들 사이에 섞이고 싶다는 내 절실한 욕망, (…) 그 모든 욕망이 내가 소녀라는 사실, 늘 공격당하거나 두들겨 맞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망쳐진다. 남자와 남자의 삶에 대한 내 절실한 호기심이, 빈번히도 그들을 유혹하려는 욕망이나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유인책으로 오해받는다. 오, 맙소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깊게,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데. 확 트인 벌판에 나가 잠을 자고, 서부를 마음대로 여행하고, 밤에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_ 『여전히 미쳐 있는』 56쪽 中,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장
여성은 오랫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잃어왔다. 표면적으로는 성별 상관없이 평등한 세상이 도래한 듯 보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들은 여전히 딸에게 밤길 조심할 것, 너무 짧거나 살갗이 많이 드러나는 옷을 입지 말 것, 낯선 사람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고 훈계를 새겨들은 딸들은 통금 시간을 지켜 귀가하고 여름에는 민소매와 반바지로 드러난 팔다리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지 눈살 찌푸려야 하며 갑작스러운 습격에 대비한 호신용 물품을 지니곤 한다. 위험에 맞선 여성은 더욱 기민하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며, 그러한 점에 기반해 어떤 꼰대들은 자세나 몸가짐, 심지어는 도덕성까지도 들먹이며 잘 모르는 여성들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이 밤길을 걸으며 달을 구경하거나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 앨릭스 컴퍼트가 개사한 가사 속에서 엄마는 딸에게 전국유색 인종연맹 시위 행진에 나가면 부디 조심하라면서 "그들이 너를 흔들고 굴려서 / 침대로 밀어넣을지 모르니까"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딸은 "핸드백 안에는 벽돌을, 속옷 안에는 가시철망을 넣는 식으로" 무장해서 자신의 순결을 지킬 생각이다. _ 『여전히 미쳐 있는』 143쪽 中
위험한 세계에 발을 들였다가 피해를 보게 되면 세간의 시선은 피해자에게로 쏠린다. 왜 조심하지 않아서, 가만히 있질 못해서 험한 꼴 당했느냐는 식으로 되려 피해자를 힐난한다. 사실 여성들은 정말 오랫동안 조심하면서 몸을 움츠려왔는데도. 세상이 정말 평등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하는데, 우리는 참 오랫동안 그렇게 몸을 줄이고 줄여 왔다. '모든 행동과 생각과 감정의 범위가 피할 길 없는 여성성에 의해 엄격하게 제약'당해 왔다. 그것은 실비아 플라스가 살아가던 1950년대부터 사실이었으며, 내가 삶을 영위하고 있는 2020년대에도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본질은 남아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은 도무지 그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 잊고 살 수가 없다. 잊을 만하면 삶의 곳곳에서 누군가 요구한다. 애교나 조신함, 무조건적인 모성과 같은, 해묵은 여성성과 여성다움을. 뻔한 이야기지만, 반복해 말하는 똑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변화하려면 다시 한 번 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않다고, 하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 성내고 싸울 거라고.
나는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차별을 미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그 시대엔 작가도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라는 말을 듣는 게 제일 싫었다. 2년 전, 1950년대 한국 시인 전봉건의 시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는 여성의 신체 부위와 속옷 등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으며 일종의 페티시즘 양상을 보이는 시를 썼다. 작품에서 여성은 유방을 드러내고 자신을 꽃이라 말하고 있었으며, 여성 이미지는 화자의 성적 욕망에 환상성과 극적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든다. 나희덕은 연구에서 ‘실제로 전봉건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의 관능적 이미지는 환상을 통해 시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환상 속의 ‘너’ 또는 ‘그녀’는 현실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모호한 감각적 인상에 의해 환기되는 존재다.’라고 말하며 전봉건 시 속 여성 이미지의 실제를 밝힌다.
하지만 어떤 학우들은 여성의 신체를 물화하는 남성 작가의 창작 양상에 대해서, 현대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논란이 될 수 있으나 작품이 1950년대에 쓰였음을 잊어서는 안 되며, 작가가 어떤 시대를 살아왔는지 고려해서 시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문학 작품을 해석할 때 시대상 및 작가의 삶을 고려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전봉건이 여성을 사물화하는 시를 썼음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덜 평등한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은 그만큼 평등할 권리도 잃는가? 사회가 평등을 찾지 못했다 해서 인간의 가치가 달라지며 차별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여성의 몸은 2020년대 여성의 몸과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으며, 전자가 후자보다 무가치하지도 않다. 2020년대 작가의 작품에도 여성의 가슴은 어김없이 사물화된 채 소환되고 여성의 신체 일부는 모성과 환상성 표현을 위해 수단이 된다. 여성의 몸을 알지 못한 채 여성의 생리현상을 제멋대로 서술하는 남성 작가도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도저히 현재의 차별을 작품성으로 미화하고 용인할 수 없다. 과거의 차별 또한 마찬가지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더불어 그 안에 존재했던 불평등 또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전봉건이 여성을 사물화하는 시를 썼다면, 실비아 플라스는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던지고 갇혀 있던 여성들의 현실을 그리는 시를 썼다. 그녀는 "나는 꾸준히 일만 하는 일벌이 아니야 / 여러 해 동안 먼지만 먹고 살아왔어 / 내 빽빽한 털들로 접시를 닦아왔고."라고 쓰며 자신을 옥죄어왔던 공허한 가정생활에 대해 말한다.
▶ 이것이 바로 그녀를 거의 "질식시켰던" 가정생활이었다. 코트그린의 실제 먼지 속에서뿐만 아니라 그 집의 오랜 과거라는 비유적 먼지 속에서, 남편을 위해 가정을 꾸리고 그의 시를 대신 타이핑하고 그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의 식기를 설거지하면서 들이마신 실제 먼지와 비유적인 먼지 속에서 그녀는 질식해갔다. 마침내 이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내게는 되찾아야 할 자아가 있어, 여왕벌처럼." _ 『여전히 미쳐 있는』 118쪽 中
▶ 살아 있는 인형, 너는 어디서나 본다. 그것은 잘 한다, 거기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지원자'에 등장하는 아내는 '살아 있는 인형'이자 '그것(it)'으로 칭해진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에서도 여성은 사물화되어 나타나지만,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성적 환상성을 충족시키는 존재로서 그려지지 않는다. 그녀의 시에서 여성은 무생물으로 표현되나 여전히 살아 있다. 이것은 수동적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아내들에 대한, 현실의 폭로다.
1950년대, 실비아 플라스가 살던 미국에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과 고정관념이 팽배해 있었다. 당시 널리 읽힌 『현대 여성: 잃어버린 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일수록 성 기능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자녀에게까지 피해를 주게 되며,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는 (…) 여성으로서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다." 신경증 환자가 결혼해 어머니가 되면 "거부" 또는 "지배"를 통해 비행청소년과 범죄자를 길러낸다. "과도한 애정"을 퍼부어 거세된 "겁쟁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기능장애의 원인으로 손꼽히는 것이 여성의 "병적일 만큼 강렬한 자아 추구"였다. (『여전히 미쳐 있는』 69쪽 참조) 완전히 비과학적이며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안다. 하지만 1950년대엔 그렇지 않았고 거짓이 오히려 정답이었으며, 여성은 그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며 성공한 여성이었던 실비아 플라스는 더욱 괴로워했고 고뇌했다.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 작가로서의 삶, 아내로서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 그 중 하나를 택하길 원치 않았고 그 모든 것이 자신이라 믿었으나 세상은 그런 여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대, 아직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미덕이며 사회에 대한 이바지라 생각하는 이가 있다. 불과 몇 달 전에도 삶에 보탬이 되는 조언이랍시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고 - 어쩌면 그는 그의 입장대로 화가 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 그래서 『에이징 솔로』 리뷰에 썼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부정적인 선택이 아니며, 그리 말하고픈 것도 아니다. 홀로 사는 삶, 결혼해 아이를 낳지 않는 삶, 결혼해 아이를 낳는 삶, 동성 커플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거나 혹은 입양해서 기르는 삶 등… 모두 인정받아야 할 한 개인의 인생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모두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끌어안고 태어났는데 왜 누군가는 편안히 생을 영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숨막혀 질식하며 겨우 살아가야만 하는가. 다시 글의 초반부에서 이야기했던 페미니스트의 정의로 돌아가서, 본래 인간은 태어난 한 존엄성을 지니며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평등하지 않은' 순간을 맞닥뜨린다. 성별의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연령, 장애, 인종, 학력 등 인간을 구분하고 규정하는 많은 기준과 잣대에 따라서 어떤 이는 강자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약자가 된다. 벨 훅스의 말처럼 '페미니스트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존엄성과 인권은, 날 때부터 존재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일관적으로 존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윌러드 부인은 버디를 에스더와 결혼시키려 애쓰면서, 에스더에게 쿠키를 자르고 굽는 1950년대의 가정주부가 되라고 권한다. "남자라는 존재는 뭐냐 하면 말이야, 미래를 향해 쏘아올리는 화살이란다." 윌러드 부인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그리고 여자라는 존재는 뭐냐 하면 말이야, 그 화살을 쏘는 발사대지." 그러나 에스더가 원하는 것은 그녀 스스로 미래를 향하는 화살이 되는 것이다. _ 『여전히 미쳐 있는』 242쪽 中
나는 발사대 없이도 미래를 향해 돌진할 수 있는 화살이 될 테야. 여성이건 남성이건, 꿈을 가진 자라면 그리 생각할 텐데. 2020년대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로 '쿠키를 자르고 굽는 1950년대의 가정주부 며느리'를 원하는 시부모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많은 경우, '열린 사고'를 지닌 어른들이라 여겨진다. 과거의 당연함을 탈피하고 모두가 평등한 쪽으로 사고하게 됨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게 두렵다. 여성이라면 집안일에 능통하고 요리를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탓에 어릴 적부터 직접 요리하는 걸 원치 않았다. '시집 가서 남편 차려주려면, 제사상 차리려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습관성 충고가 싫었고 그런 충고를 따르며 살고 싶지 않았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가부장제를 답습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 산 사람이 죽어가는 세계가 이대로 존재해도 괜찮은가…. 성인이 된 후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야 겨우 밥을 하기 시작했고, 간단한 요리를 하면서 음식이란 나 자신을 배부르게 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당연한 것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참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줄곧 생각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미쳐 있는』을 읽고, 매드 라이팅 클럽을 통해 여성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극복과 성장을 다룬 글을 쓰면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여성의 이야기를 할 때,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야기가 그리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여성의 이야기는 곧 사람의 이야기이며, 그러므로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개인의 이야기를 모으고 모아 인류와 세계의 서사로 확장시키는 작업이다. 이는 비단 여성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남성의 이야기는 다분히 권력적이며 아버지적이다. 이러한 남성 이미지의 활용은 수많은 남성들의 목소리 또한 지우고 있다. 현대의 어떤 차별과 혐오는 굉장히 중층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을 다중적으로 고립시킨다. 우리는 이따금 우리가 왜 고립되었는지도 모른 채 홀로가 된다. 때로는 타의에 의해 밀려나 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기 십상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또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것이 페미니즘이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미친 여자들은 필연적으로 미친 남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_ 『여전히 미쳐 있는』 500쪽 中
스물두 살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맨다 고먼은 취임식 무대에서 빼어난 시를 낭송하면서, 그날과 같은 참사는 그냥 지나칠 수도 지나쳐서도 안 될 것이라고,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세대는 후퇴할 수 없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겁을 집어먹었다고 해서 다시 뒤로 돌아가거나/가로막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만나고 행진하고 발버둥치고 투쟁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온 페미니즘 활동가 모두 이 시인이 이런 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 내용을 그대로 메아리치게 할 것이다. _ 『여전히 미쳐 있는』 500쪽
※ 『여전히 미쳐 있는』 서포터즈 Mad Writing Club 활동을 위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서점 등록 서평은 2~5주차 리뷰를 모두 이용하여 재구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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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있는>은 1950년대를 시작으로 1990년를 지나 21세기까지 여성 활동가들의 삶과 그들이 쓴 글을 분석하고 비평한 글입니다. 1950년대의 실비아 플러스, 에이드리언 리치, 오드리 로드. 1970년대의 수전 손택, 글로리아 스타이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토니 모리슨, 글로리아 안살두아, 주디아 바틀러, 21세기에는 앨리슨 벡델, 글로디아 랭킨, 레베카 솔닛이 있습니다. ? 저는 5주동안 읽으면서 각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그 시대를 앞서 여성들의 적극적 표현이 분출되는 몸부림의 변화를 쭉 살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가 절로 얻은 자유가 아님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렵게 얻은 ‘자유’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 같은 요즘 상황이 그려지며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다시 어떤 여성 운동이 태동하고 있을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저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도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 ?많은 분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