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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낯설 다. 랭스턴 휴즈(1902-1967)에게는 흑인 문학의 거장이라는 찬사가 붙는다.
1902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화물선 선실보이와 같은 하층 직업을 전전했지만 삶에 대한 연민과 꿈을 잃지 않았다. 삶을 긍정적으로 살았음이 어둡지만 따스한 그의 작품 속에 잘 드러난다. 한때 부친의 강요로 콜롬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이 아니라 할렘가와 술집들을 떠돌며 흑인들의 삶과 비애를 몸으로 배웠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랭스턴 휴즈는 꽤 알려졌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인물이다. 그는 흑인만이 천부적으로 지녀온 흑인성의 정수 '소울'에 대하여 제일 처음 자긍을 노래한 시인이다.
'미국인이지만 그러나 흑인'. 사람이지만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했던 흑인들이 흥얼거리는 재즈를 통하여 고통과 애통, 곤혹스러게 살았던 흑인들을 노래했다. 고통과 애통이 배어있는 인간이면서 인간답지 못했던 흑인들의 흑인성, 하지만 어떤 백인 문화보다도 더 위대했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아프리카를 드러내고자 전심을 다했다.
사람의 사람다움이 인간 삶의 기본이듯이 휴즈는 흑인의 흑인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 생각했고, 긍지로 여겼다. 흑인의 흑인다움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쳐 곤혹과 비애,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흑인들의 희망과 전진 진보를 위하여 미국을 돌아다녔다.
억압과 차별의 부당함을 읊었고, 희망을 노래했기에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그의 문학이 친근하게 읽혀짐으로써 '흑인문학의 외교관'이라 불리워졌다. 그가 남긴 시 몇 편을 소개한다.
<니그로> 나는 니그로 밤이 검은 것처럼 검고 나의 아프리카 한복판처럼 검다
시저는 나에게 문지방 닦으라 했고 나는 워싱턴의 구두도 닦았다
내 손에서 피라미드 섰고 울워드 빌딩의 미장이 일도 했지
아프리카에서 조지아에 이르는 길에 내 서러운 노래 말고 랙타임(재즈)이 내 입에서 나왔지
벨기에 놈들 콩고 강에서 내 손목 자르고 백인들 미시시피 강에서 여전히 린치를 가한다
밤이 검은 것처럼 검고 나는 아프리카 한복판처럼 검다.
<할렘 강 환상곡>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할렘강으로의 나들이 하지만 나 죽은들 누가 서운해 할까
<민주주의>
"네가 네 스스로를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너를 노예로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백인들은 항상 흑인들을 천하다고 여겼고, 세뇌했을 것이다. 세뇌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당연히 그렇다고 말이다.
랭스턴은 이를 깼다. 흑인은 노예가 당연하다는 생각을 철저히 깼다. 그는 흑인들에게 너 자신을 존중하라고 했다. 백인과 같이 흑인도 동일한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는 힘이다.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세뇌키는 것도 힘이지만, 흑인들 스스로가 자유인임을 깨닫는 것도 힘이다.
시인인 랭스턴은 이를 알았다. 흑인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힘을 알았다. 그는 흑인들, 나아가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존중할 것, 서로를 존중할 것을 노래했다. 존 프랭클린은 <노예에서 자유민으로>에서 랭스턴 휴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항 시인이지만, 흑인의 질곡과 고통, 애통을 노래했지만 그는 비굴하지 않았다. 자학을 노래하지 않았다. 울분을 분노로 발하지 않았다. 그는 질곡과 고통, 애통, 울분을 흑인의 흑인다움, 곧 흑인이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노래했다.
"당신은 학생들에게 피부색의 한계를 초월하여, 누구든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본문 128쪽)
피부색의 한계를 초월하여, 누구든, 흑인일지라도 그가 사람이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랭스턴 휴즈는 지극히 낮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언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과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데 쓰이 않으면 안 된다."(194쪽)
그가 남긴 시편들을 보면 당당했고, 자유했다. 언어를 통하여 믿음과 자신감을 노래하였고, 사람을 노래했다. 비참함에 애통하고, 고통과 질곡에 스스로를 자학하는 이들에게 랭스턴 휴즈는 당당함과 자존감을 심어 주었다. 그는 정말 '사람'을 노래했다. 오늘 우리가 그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