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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어떤 사람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야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책이나 영화와 같은 간접 매체를 통해 우리는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없이 많은 인연보다 더 결정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책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이 책에서 우리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칼 라거펠트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도대체 무엇으로 유명한 사람인가? 디자이너, 죽은 샤넬을 살려낸 남자, 동성애자, 독설가, 나이 80에 다이어트에 성공한 남자, 셀럽을 거느리고(?) 다니는 왕 셀럽, 지드래곤과 같이 사진 찍었다고 뉴스에 나오는 남자.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그에게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모든 것이 반짝! 하고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과거의 찬사에 파묻혀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가 가장 즐겨하는 것은 과거에 이루어놓은 것을 철저하게 부수는 것이다. 그가 철저히 거부하는 것은 'normal'이다. 그가 가장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사탕발림'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그가 말하듯이 "그는 썩어 없어지는 존재이며, 그의 말도 마찬가지로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말은 더욱 소중하다. 언제 우지끈 깨질지 모르는 얇은 얼음판 위를 쌩! 하고 지나가듯이 그는 이 책 하나를 남겼다. 그렇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라거펠트의 한 자락을 움커 잡았다. 라거펠트를 읽는다는 것은, 베토벤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전율과 감동,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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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들.. 디자이너들이 일이 힘들다고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쏟아내는 걸 들을 때마다 내가 하는 말. "그냥 옷일 뿐이야. 오버하지 마!" 나는 초창기 코코 샤넬을 좋아한다. 한 마디로 반항과 과감함 자체였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오페라 초연 전날 저녁, 온수시가 사고로 폭발하는 통에 샤넬의 멋진 머리카락이 타버리자 거침없이 잘라 버린 것이다. 나는 그녀의 재미있는 악동 기질과 지성도 사랑한다. 컬렉션을 만들 때만다 내가 떠올리는 영감은 바로 그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