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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년 11월에 운전중에 들은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라는 팟캐스트의 책 소개가 귀에 들어와서 구입하였다. 나의 첫 책을 작년 6월에 출간한 이후로 어떠한 내용으로 두번째 책을 낼까를 염두에 두면서 읽었다. 쉽게 읽혀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저자의 내공과 함께 글쓰기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어 나로서는 드물게 두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저자는 이 책을 15년간 예술대학 석사 과정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가지고 썼다. 저자는 한 덩어리의 소재 속에 묻혀 있는 경험을 발견하고 그것이 글로 잘 빚어지고 있는지 즉, '누가 말하고 있는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이 책을 맺으면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글쓰기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지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의 글이든 남의 글이든, 글을 읽고 평가하는 법은 가르칠 수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기술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기술은 가시적으로 필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글쓰기는 기술의 결과물도 아니고, 기술을 사용하는 활동도 아니다. 대화에 서툰 사람은 설사 언변이 아주 좋더라도 대화를 독백과 구분하지 못하기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언변을 갈고 닦아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대화에 아주 능한 사람은 말주변은 떨어질지 몰라도 대화란 서로 주고 받는 활동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대화도 글쓰기도 화술을 익힌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근본적인 개념의 문제를 등한시하고 글쓰기 기술만 가르치려 들다간 실패할 수밖에 없다. ▷ Clear and Simple as the Truth (Francis-Noel Thomas and Mark Turner) 어떤 작가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이용하여 특정한 주제를 탐구하면서 쓴 글은 에세이 이며, 특정한 주제를 이용하여 작가 자신을 탐구하고 조명하고 정의한 글은 회고록 이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에세이에서 회고록으로 인도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이 추구하는 탐구의 깊이이다. 어떤 글이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시점에 마침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글은 글을 쓴 사람의 경험을 넘어 설 수 없고, 읽는 사람의 경험을 넘어 선 글은 읽혀 지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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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2월 3일, 비상 계엄이 선포되었던 날에 나는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읽는 일에 전념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고, 그래서 나는 그날 저녁을 먹고 난 이후 자리를 뜨지 않고 내내 비비언 고닉의 책을 읽었다. 정확히 얼마간의 시간이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꽤 긴 시간 집중하였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다음 폰을 열었고, 그제야 비상 계엄이 선포된 사실을 알았다. “모든 문학 작품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상황이란 맥락이나 주변 환경, (가끔은) 플롯을 의미하며, 이야기란 작가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감정적 경험, 혹은 통찰과 지혜, 혹은 작가가 전하고픈 말이다...” (p.18) 그러니까 비상계엄선포라는 형태를 띤 12·3 내란 사태는 바로 그날 우리들 주변을 채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간 이후로 새벽까지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포고령이 발표되고, 국회의사당에 계엄군이 들이닥치고,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모이고, 경찰이 국회의원의 국회의사당 출입을 막고, 국회의원이 담을 넘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고, 계엄군이 본청에 들어가고, 정족수를 넘긴 국회의원들이 계엄해제 요구안을 가결시키는 장면을 확인했다. “... 회고록이나 에세이에서 진실을 말하는 서술자―작가가 한 조각의 경험을 구조화하기 위해 자신의 불안하고 지루한 자아에서 뽑아내는 서술자―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느꼈다. 그런 서술자가 강하고 명료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에 나는 여지없이 끌린다.” (p.33) 계엄이 해제되고 다음 날 나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하였다. 대부분이 그렇게 했다. 계엄이라는 상황은 끝이 났고 모두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의 행동에 의아하였던 최초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가슴을 쓸어내렸고 드물게 보았던 프로그램들을 유튜브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몇 권의 소설을 읽었고 리뷰를 남겼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암전...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모든 일을 떠맡는다. 누군가는 작가의 의향을, 누군가는 반대편의 생각을 전한다. 즉 누군가는 자아의 생각을, 누군가는 대치하는 타자의 생각을 대변한다. 그들 모두에게 발언권을 줌으로써 작가는 역동성을 얻는다. 논픽션 작가는 협업할 사람이 오로지 자기밖에 없다. 그러므로 작가가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역동성을 얻기 위해 찾고 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의 타자이다. 결국, 서술자가 고백이 아닌 이런 종류의 자기 연구, 즉 움직임과 목적과 극적 긴장을 안겨줄 자기 연구에 몰두할 때 비로소 작품이 구축된다. 여기서 필요한 요소는 적나라한 자기 폭로이다. 자신이 상황에 일조한 부분―즉 자신의 두려움이나 비겁함이나 자기기만―을 이해해야 역동성이 만들어진다.” (p.44) 이번 사태 전에 책을 읽고 리뷰를 적는 일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멈춘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였을 때고, 두 번째는 박근혜 탄핵의 시기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의 시기에는 책을 읽는 일조차 힘들었고, 박근혜 때에는 책은 읽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일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내란 사태 이후, 정확하게는 내란 이후에 오히려 목소리를 키우는 국민의 힘을 비롯한 극우 세력의 준동을 확인한 이후 읽기와 쓰기의 정체기를 겪고 있다. “... 회고록은 증언도 우화도 분석적 기록도 아니다. 회고록이란, 삶이라는 원료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낸 경험을 구체화하고, 사건을 변형하고, 지혜를 전달하는 자아라는 개념에 의해 통제되는 일관된 서사적 산문이다. 회고록 속의 진실은 실제 사건의 나열로 얻어지지 않는다. 작가다 당면한 경험을 마주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독자가 믿게 될 때 진실이 얻어진다. 작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그 일을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글을 짓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p.107) 대통령의 친위 구데타가 벌여 놓은 그 난장판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욱 힘겨운 것은 우리 사회의 한 축에 저렇게 당당한 극우 세력이 존재함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 되어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환이라면 좋겠다. 그들의 발악이 새로운 파시즘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서곡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고, ‘이야기’는 어느 방향으로든 뻗어나갈 수 있다. 비비언 고닉 Vivian Gornick / 상황과 이야기: 에세이와 회고록, 자전적 글쓰기에 관하여 (The Situation and the story) / 마농지 / 197쪽 / 2023 (2001) |
| 비비언 고닉의 상황과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그 속에서 보편적 이야기를 찾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저자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동시에 타인의 감정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와 ‘상황’이라는 두 축을 세밀하게 구성합니다. 각 에세이에서 작가는 글을 통해 자아를 표현하는 방식, 서사의 힘을 끌어내는 법을 탐구합니다. 글쓰기의 과정과 그로 인해 발견되는 내적 통찰이 인상적이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웁니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고, 그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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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이야기>는 에세이와 회고록에 관한 작가 "비비언 고닉"의 통찰과 설명이 담긴 책이다.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최고의 길라잡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쓴 책의 예시를 제공하면서 그 방법을 설명해 준다. 고닉은 글쓰기의 기술을 뛰어넘어 나만의 것을 모든 이가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을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긴 하지만 이게 참 이해가 알쏭달쏭하다. 내 이야기를 전달할 페르소나, 즉 화자를 만들어서 나와 거리를 둔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이야기를 쓰라는데 나는 그 거리를 둔 화자를 이렇게 이해했다. 부분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기, 2차원 입면을 보기, 3차원 조감도를 보기. 이건 모두 같은 건물이지만 다르다. 어떤 관점에서나 저마다의 특징이 있겠지만 역시 완성도적인 측면에서는 3차원의 조감도인 새의 시선이 훨씬 풍성해 보인다. 조감도. 고닉의 거리 두기를 한 페르소나를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일종의 관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공의 화자를 만들어서 소설의 형태로 만들었다면 요즘은 회고록을 더 많이 쓰는 추세라는 말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생각났다. 고양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페르소나이고 쿠샤미 선생은 나쓰메 소세키이지만 고양이는 나쓰메 소세키의 의식과 철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양이의 시선으로 나쓰메 소세키를 묘사하기도 한다. 나이지만 내가 아닌 페르소나. 다르지만 같은. 이게 참 이해가 어려웠다. 소설에서의 페르소나는 너무나 당연한 거라 이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논픽션 페르소나'. 에세이나 회고록에서의 페르소나가 선뜻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떠올리며 얼추 감이 잡히긴 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에서의 고양이 같은 존재를 고닉은 <상황과 이야기>에서 에드워드 호글랜드의 에세이 <거북이의 용기>를 예시로 드는데 (상황과 이야기 57~63P) 이 부분이 참 재밌다. 특히 이분에서는 비비언 고닉의 깔끔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가 돋보이면서 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한다. 대충 물 흐르듯이 읽으면 고닉 교수님의 바람직한 글쓰기 수업을 듣고는 에세이와 회고록을 나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닉 교수님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가르침을 주려고 이 책을 쓴 건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정리하자면 고닉이 제안하는 자전적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은 첫 번째 나는 글을 왜 쓰려고 하는가를 명확히 짚고, 두 번째 논픽션 페르소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안에 누군가는 아! 이렇게 하면 되겠는데!라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글은 역시 아무나 쓰는 게 아니군! 하고 느낄 것 같다. 나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상태로 아직도 헤매고 있다. |
| 비비언 고닉의 글은 너무 예민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글에 대해 쓴 글은 또 좋아한다.. 이런 수업 같은 글을 더 잘 쓴다고 느껴진다. 회고록을 쓰려고 할 때 이 상황과 이야기에서 나를 어떻게 분리하는지 말하는 게 가장 인상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