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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입을 가리는 걸 '마스크'라고 부르는데 이 영화(와 그 원작 시리즈)라든가 '조로' 시리즈에서도 알 수 있듯 얼굴의 결정적 부위가 커버되기만 하면 영어에서는 두루 그리 가리킨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항상 궁금했던 건, 저렇게 가리면 그게 가리는 시늉만 하는 거지 과연 위장이라는 본연의 구실을 하는지의 문제이다. 그제 리뷰한 B급 <라인 오브 듀티>(미드 아님)에서는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악당(어렸을 땐 친구)이 '얼굴을 가려도 네 눈을 보고 알았다'고 하는 대사가 있다. 한창 설움을 토하던 통에 행동에 옮길(주인공을 죽일) 시기를 놓쳐 그 여친(결국 얘도 어렸을 때 친구)에게 죽고 마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여튼 이 작은,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조로'처럼 사적(私的) 정의를 구현히고 다니는 론 레인저라는 정체 불명(사실은 극중이건 극 밖이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의 자경대원 이야기다. 조로보다는 오래되지 않았지만(그래서 그 영향관계가 어지간히 짐작되는), 대신 인디언(=북미 원주민. 요즘은 이런 것 개의치 않는다고 함) 사이드킥 한 명과 계속 같이 다닌다. 물론 이 작처럼 인디언의 대의를 옹호한다거나 그 처지에 동정하며 미국 메인스트림의 가치를 부정하는 취지는 전혀 아닌 온건 보수 스탠스이다. 이 작은 그와는 정반대로, 미국 같은 나라는 죄업 위에 세워졌고 새빨간 위선이 그 지난 역사를 채우며 아예 태어나서도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쪽이다(그 오락성에도 불구하고).
그거야 어쨌든, 영화에서 제리 브룩하이머의 코드가 바로 읽히지는 않아도(왜냐면 그의 코드는 이후 많은 오락물들이 너무도 충실히 학습, 답습했으므로), 영화가 고어 버빈스키 연출인지는 (미디어를 통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신문, 포털, 방송 등 미디어를 통해 영화 사전 정보를 접하지 않고 이렇게 십 수 년을 넘기는 게 행운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영화를 처음 보고 감독이 누군지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제 내가 <아토믹...> 포스터에서 결정적인 정보를 못 알아챈 것도 아마 그런 습관(재미를 위해 정보 습득 자제)이 몸에 붙어서일 듯하다.
사실 1990년대 같으면 TV나 신문에서 워낙 요란하게 할리웃 산 블록버스를 홍보하던 시절이니 이게 불가능하고, 지금은 한국산 컨텐츠에 자본이 많이 투입되므로 TV를 통해서는 한국 영화 소식밖에 못 접하다시피한다. (이런 시절이 올 줄이야) 포털은 본래(특히 네이버가 더 심함) 헤드라인으로 뉴스를 접하기 어려운 구조이다(정치 빼고 - 예전 구 미디어 시절보다 정치 편향성이 더 심한 것 같음). 예전에는 조선이나 한겨레라고 해도(경향은 그냥 중립이었고 문화 뉴스가 많아 가장 안심하고 보는 신문이었음. 진짜임) 다들 양심이 있어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 여튼, 이 작은 특히 <캐리비언...> 2편의 코드가 너무도 잘 '재현'되어 있어(1980년대 성룡 물의 진화라고 보면 됨) 누구라도 버빈스키 연출인지 눈치챌 수 있다. 마치 조로의 마스크에 진짜로 아무도 안 속는 것처럼 말이다. 버빈스키가 본래 이 정도로 정치적이었나 싶을 만큼 몇몇 메시지가 강한 건 좀 당혹스러워도 말이다. 아무튼 원작의 오락성과 (구태여 따지자면 반대편 성향에 가까운) 기조에 익숙한 팬들(이라면 너무 늙지 않았을까? 심지어 이세상 사람인지도 의문)은 당혹했을 만하고, 아마 젊은 층이라면 바로 그 점, 즉 캐리비언 코드가 너무 노골적으로 반복되는 것에 당혹했을 만하다. 개성(의 장점)이 잘 재현되어야지 코드가 반복되면 당연히 짜증이 날 수 있다.
나는 운 좋게도 이걸 근 십 년 후인 지금에야 TV로 보았기에, 막 개봉되었던 캐리비언의 코드에 당혹하지 않고 그 유쾌한 기억만을 떠올리며 이 정신없는 블록버스터를 잘 즐길 수 있었다. 돈도 엄청 많이 들고 신 나게 찍은 대작이 의외로 관객들에게 냉대 당하는 건 이것 말고도 이것보다 십 년 전에 찍힌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있다. 배리 소넨필드도 선배로서 버빈스키와 비슷한 과이며, 다만 그가 과학 기술 디테일에 더 관심이 깊은 반면 버빈스키는 그저 스케일 크게 놀이동산을 꾸미고 노는 어린이와도 같다. 여튼 결론은 개인적으로 캐리비언이고 뭐고 다 기억이 희미해져 갈 무렵에 보았기에 극의 장점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는 거다.
먀치 <박물관... >처럼(이건 영향 받은 게 왜 이렇게 많아?) 이 작도 밀랍인형으로 박물관에 전시된 어느 '노블 인디언'의 조상과 한 천진한 꼬마가 대화를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 '그거 다 지어낸 이야기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만큼, 이 신나는 오락물 속에 스며든 사연은 귀를 막고 눈을 감았어야 했다 싶게 처절하고 비통하다. 조니 뎁이 특유의 그 흐느적거리는 제스처를 절제하고 애는 그 나름대로 썼지만 결국 '지악 스빠로우'의 이미지를 못 벗어났는데 이건 뭐 그래도 그의 잘못은 아니다. 잭 스패로도 3편에서 특히 드러나듯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여기서도 '톤토'가 결국 동족에게서도 '정신병자' 취급 받는다는 중반부 이하의 전개가 큰 웃음을 부른다. '저걸 미쳤다고 여기면 안 돼. 저들 부족은 저런 사고방식과 가치, 그리고 신성함을 지닌 내력이 있으니까'라며 온갖 PC의 무리수를 발동해 가며 필터링하던 관객은 크게 맥이 빠지기 때문이다(이런 유머는 특히나 버빈스키가 '노린' 것이고 그런 재치와 이지적인 면 때문에 나는 이 작을 결코 폄하할 수가 없음).
이 영화는 은근 초호화 캐스팅이기도 하다. 근데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다음에 블루레이 리뷰에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게다가 영화가 워낙 길고 정성이 들여졌다 보니 숨은 문화 코드, 역사 인문 레퍼런스 포인트가 많음) 일단 여기서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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