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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서 우울증처럼 흔한 병이 있을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날씨가 흐릴 때 혹은 기분이 울적해지면 우리는 우울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괜히 그 사람의 마음을 살폈던 거 같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우울증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극단적인 우울까지는 아니어도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의 우울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저자는 자신이 겪은 우울장애에 대하여 말한다. 우울증을 숨기기보다는 감기나, 일상적인 병처럼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기에 우울증이라는 것은 해결하기 힘든 거로 인식한다. 하지만 저자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면 분명히 효과를 보는 것이 있을 것 같다. 이걸 아는 사람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우울에 대한 글을 썼지만, 정작 우울증에 대한 해답은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주면 얼마나 좋겠냐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일 것이다. 우울장애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작업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므로 우울에서 벗어나기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작가를 이해해보자. 저자가 다섯 살 때 죽은 아빠와 ‘너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달랐을 거’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엄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혀 자살 시도를 한 후에야 병원을 나갈 수 있었다. 가정폭력과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학교폭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우울을 극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지금 우울해 죽겠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의미 없이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쪽이 나았다는 정도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배타적인 태도로 주위의 모든 인간관계를 등지고, 취미와 일들을 접어버리는 얘기가 아니다.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못 할지언정 날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는 것. 내가 생각하는 빼기의 미덕이다. (209페이지)
우울장애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는 2018년 술에 취해 다량의 수면제를 삼켜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그 무렵의 그는 진심으로 죽고 싶었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삶을 선택했다. 살아있다는 게, 숨을 쉬고 있다는 게 좋은 일이었다는 것을 느꼈기를 바랐다.
우울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서 문을 못 여는 게 아니다. 스스로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우울‘장애’라고 하는 것이다. 극도로 우울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판단이나 문제 해결 능력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믿음에 대한 되새김질이다. (220페이지)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면 내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나를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희망적인 마음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우울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왜 우울한 것인지 그 원인을 찾고 극복하려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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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느껴지는 건 아픔 그리고 공감과 이해다. 무슨 말이냐고 물어본다면 이건 몸소 겪어봐야 아는 감정이라고 하겠다. 우울이나 공황 이라는 단어는 과거에 비해 대중에게 흔히 알려져 있고 또 이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 역시 달라졌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이 두가지 감정을 늘 가지고 있고 그저, 그 깊이와 강도가 다를 뿐이라는 점이다. 몸에 상처가 나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역시 이를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쳐서 아픈 것은 병원가라고 할 뿐인데 왜 마음이 아픈 것은 이들에게 조언이라고 하면서 말을 건네는 걸까? 스스로 그 사람이 이길 수 있다고 여기는 걸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올해 내가 겪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겪어야만 알 수 있으니...정말 쉽게 타자에게 위로라고 둔갑한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을 더 알게 되었다.
[최선의 우울] 제목을 보고 무엇일까? 올 해 우울증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만난 이 책은 더 한층 깊이 생각할 것을 던져준 책이다.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서론은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자살시도와 우울증으로 병원에 갔다는 것 그리고 어릴 적 친모로 인해 정신병원에 갇혔고 거기서 탈출 시도를 했다는 나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어떤 답을 해주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날것 같은 우울증의 모습과 저자가 겪었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을 더 하게 되었고 그렇다고해서 우울과 자살에 대한 변명도 아니다. 그저, 이것이 무엇이고 그가 겪었던 감정과 더 나아가 타자에게 생각할 것을 던져 줄 뿐이다. 어느 날, 가장 행복했던 그날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했지만 실패한 후 그가 써내려간 글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 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우울하면 햇빛을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여행을 하라고...집안에만 있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있고 이를 우울장애라 말한다. 절대 마음이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력하지 않아 문을 못 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우울하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는 변화하지 않고 계속 지내왔다는 것은 아니다. 때론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점.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묵클럽(팬들과 함께 하는 책모임)에서 회원들의 질문에 진실하게 대답하는 부분은 직접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서 제목인 [최선의 우울]은 그저 우울한 사람들에게 억지로 웃으라고 하지 말고 그 감정에 최선을 다해 우울해 함으로써 삶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되어 다시 한 번 삶의 버팀목이 되어 살아있음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양가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라는 것...그럼에도 우리는 이래저래 흔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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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속삭였다. 네가 조금 전 입에 담았던 건 아주, 아주 비겁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아, 사람이 조금쯤 비겁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비겁한 말이지만 너는 강이라서 잘 모르겠지. 나와 달리 아주, 아주 깊은 강이라서. (p.173)
우울증을 예방하고 우울한 인간이 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 (p.213)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책의 표지를 다시 뒤적였다. 내가 읽고 있는, 이 날카롭고도 선명한 문장이 소설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보통'가정에서 태어나 보통의 부모님과 보통의 형제들과 보통 같은 유년을 보내고, 보통의 직장, 보통의 남편과 보통의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내게는 그가 겪은 일들이 낯설고 힘겨운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가는 『최선의 우울』에 미리 “우울함에 획기적인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고 완벽한 방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양 떠들어대는 사람은 혐오하기까지 한다(p.8)”라고 말할 만큼 '우울'에 대해 현실적인 입장이다. 사실 나는 약간 모자란 아이처럼 '맑은' 사람이라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최선의 우울』이 마냥 우울하기만 했다면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우울을 대하는 방향을 정해간다. 힘겹게 우울을 이기며 무엇인가 하려 하기보다는 나의 어느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그것과 잘 공존하는 법을 익힌 것 같다. “많은 사람은 우울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해주지 않는다. 모종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당장 날 위로해달라거나, 내게 도움이 돼달라거나,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거나, 우리 관계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불거졌다거나, 너와는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를 할 기분이 아니라거나, 지금 내 기분을 낫게 하지 못하면 네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겠다거나…. (p.184)”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의 기준과 나의 잣대로 타인의 기분과 감정을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도 했고.
그의 '우울하다는 선언'을 읽으며 나는 그가 자신의 우울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잘 대하는 방법을 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의 우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공감할 수도 없지만(물론 그가 그것을 바라지도 않을 것 같지만), 안심되더라. 그러며 문득, 요즘 사회에 만연한 우울하다는 감정이, 어둡고 가라앉는 무엇이 아닌, 기쁘거나 즐겁거나 하는 감정처럼 그냥 그런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오히려 심각하지 않게, 담백하게 지날 수 있는 일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나도 평생을, '우울'이나 '불행'은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으며 우리가 즐거운 감정을 '이겨낸다.'라고 표현하지 않듯, 우울도 이겨내기보다는 '지나간다'라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훨씬 가볍게 아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나에게 『최선의 우울』은 그렇게 우울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감정이 정답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도 했고. 최선을 다해 우울해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기로 했다는 그가, 그 와중에도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기를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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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함의 색깔을 찾고 싶어서 예스24리뷰어클럽에 응모하여 받게 된 책 최선의 우울. 막상 받고 보니 읽기가 겁났다. 막연한 내 우울함이 진짜이거나 짙은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는데 왠지 알고나면 그 우울에게 내가 질 것 같았다. 다행히(?) 책도 좀 늦게 배송되었고, 또 우울함과 함께였던 나는 덜 우울하기를 기다려 힘겹게 책을 폈다. 우울함이 최선일 수 있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참 역설적인 책의 제목... 그래 기왕 우울할 거면 그 중 가장 나은 우울함이길 괜한 기대가 들었다. -이유 없이 우울한 마음에 대하여 -표지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표지 -우울은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의 장기처럼 존재한다 -5쪽 -그냥 그렇게 태어나 버리고 만 것이다.-37쪽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데, 길을 물어보는 것조차 조금 이상한 일처럼 느껴진다. -43쪽 -삶의 이유는 ...매일 같이 재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229쪽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장들을 메모하니 끝이 없다. -자신의 우울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사회로부터의 시선이며 편견이다. -53쪽 위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아마 내가 나를 그런 시선과 편견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비염이 심해져서 이비인후과에 갔다...왔다고 말하는 것처럼...이렇게 말할 때면 우울이라는 것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번거로움이며 평범한 시련처럼 느껴진다. -43쪽 이 책의 우울함의 해결책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게 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위 문장을 들려주고 싶다. 물론 그는 '최선을 다해 우울해보고자는 생각을 쓴 것-224쪽'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최선의 우울'은 역설이 아니었다!! 나도 우울하려면 최선을 다해 우울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언젠가 우리가 서로의 우울을 안경처럼 이야기할 날이 오리라는. 그런 안일한 믿음이 내게는 있다-59쪽 그리고 나의 감상을 묻는다면, 이 문장에서 '안일함'을 빼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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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우울
살면서 많은 감정과 마주하지만, 그 중에서 나는 가장 멀리하고 싶은 감정이 우울이다. 가벼운 우울에서부터 시작해 끝도 없이 내려가는 감정에 그리곤 심각한 생각까지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도 꽤 이 감정을 안다. 현재는 저편에 두었지만 최선의 우울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감정이 기어올랐다. 우울의 깊이는 사람마다의 차이가 있어서, 누군가에겐 우울할 수 있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기에 각자 느껴지는 바에 따라 우울이 이해는 되지만, 딱히 답도 없다는 생각인 입장이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우울해지면서 약간의 희망도 보인다. 보통의 생각에서는 우울의 끝이 꼭 이 생에서 사라져버릴 일 같아보이지만 그저 이 감정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최선 다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되는 것일 뿐이라는 걸.
저자는 이 책에 위로 한 줄 적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글도 아니라고 한다.
온전히 우울에 관한 책 , 최선을 다한 저자의 우울의 기록이라 한다. 저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선의 우울
느닷없는 날씨의 변화와도 같다. 오래된 노래 가사에도 있지 않은가. 쏟아지는 비까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15
마음 속의 우울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우울해지는 이유와 이 우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담겨있다.
유년기부터 험난했던 저자의 삶. 그랬기에 우울의 강도는 일반적이진 않았을 것 같다. 계속 되는 우울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도, 점차 우울과 마주 할 수는 있게 된 자신의 최선의 우울.
저자가 깨달았다는, 우울 총량 보존의 법칙 세상에 존재하는 오르막길의 개수와 내리막길의 개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111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똑같은 개념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하면서도 새삼스러운 것이다. 따지고 보면 둘 다 비탈길이다. 그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는 그저 사람이 어느쪽 길의 끝부분을 보고 걷는지에 달렸다. 뭐든지 알고 보면 세상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이다. 112 인간이라는 족속은 상황을 미분한 값이 지루해지면, 그걸 또 한 번 미분해버린다. 이렇게 보니 우리는 자신의 안이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우울해질 거리를 찾아내려는 성질을 지닌 모양이다. 손톱 발톱에 머리카락도 깎으면 다시 자라나듯이,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도 어느 정도쯤은 사서 만드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나 어느 정도의 우울을 품고 살수밖에 없다. 130-131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정답 삼을수록, 내 인생 전반을 차지하는 일상은 하잘것없는 오답이 되어간다. 140
우울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행복을 찾는 와중에도 우울을 찾게 되는 , 행복과 우울이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우울은 고백하는 순간 , 달라지는 주위 시선과 태도들이 있기에 감추며 지내게 되는 감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울을 극복하라는 말 대신 최선을 다하라 한다.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한 인간이라고 해서 꼭 우울하기만 한 인생을 살라는 법은 없다. 그야 그럴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높긴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가장 우울한 인생이란, 우울한 사람이 전혀 우울하지 않은 체하며 사는 인생이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매일 웃고 떠들다가, 끝내는 나 자신에게마저 소외되는 인생이다. 219
예전에 한참 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책들을 읽었었는데, 그 때 생각해보면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과정속에 나에 대해 인정하고, 아껴주라는 내용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우울한 감정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지 못해서 더 힘들고, 피곤하고 , 결국 못 벗어날 것이라면 차라리 그래, 그러한 우울함을 받아들이되, 다만, 더 우울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면 된다. 저자가 말하는 더하기보다 빼기의 미덕이라도 갖춘다면 그것만으로 최선의 우울을 다하는 것이리라. 자신을 향한 일말의 사랑이라도 보이는 것이지 않을까.
최선의 우울을 읽으면서, 우울한 사람에게 주변에서 , 산책좀 해, 여행 좀다녀, 사람들 좀 만나, 운동좀 해, 혼자있으려하지마라, 몸에 안좋은 것만 먹지 마라 등 도와준답시고 이래라 저래라 , 억지로 끄집어 낸다고..해서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알겠다. 무슨 말을 한들 들리지 않을 뿐더러, 반감만 줄지도 모르겠다.
참 무책임(?), 정없는(?) 무관심한. 마음이 생기려하지만 적어도 최선의 우울을 보이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하더라도, 어떻게든 작은 힘은 되고 싶다. '충분히 그런 감정 느낄 수 있어.' 최대한 공감이라도 해주는 것이라도.
초반부에 최선의 우울은 저자가 그냥 그렇게 태어난, 그냥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 표현하기에 절망적이게 느껴지기도 했다가, 그냥 그러한 감정. 여러 감정처럼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우울한 것도 잔혹한 끝을 향해 가면 무의미한 것 같은데, 최선의 우울은 무언가 의미를 찾아가는 것 같은 기분에 깊이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쩌면, 이 우울도 계속 짊어지고가다보면 아주 조금은 보통의 감정과 다를바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니 그 감정마저도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니. 무의미하게만 만들지 말고 빼기의 미덕만 가지고서라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않을까싶다.
최선을 우울은 우울함에서 도망갈수있게 응원을 하는 책이 아닌 저자의 우울한 감정에 대해 쓴 책이지만,
우울한 감정의 사람이든, 우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의 주변인이든 우울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 되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 어떻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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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세한 리뷰를올렸습니다. 김리뷰님의 리뷰에는 비할바 아니지만 우울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보면 동질감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줄 것 같은 진솔한 에세이. 우울과 우울장애, 연극성 인격장애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자살에 대한 생각을 바꿔줍니다. https://m.blog.naver.com/digiloglife/22322017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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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와, 이 책 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겪었던 일들을 읊는데, 다친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다. 후덜덜. 그리고 작가가 덤덤하게 털어놓는 불행한 어린시절. 무책임한 어른들, 아니 부모. "내 어린시절은 평범했다"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 그렇다, 나는 평범하게, 아니, 오히려 많이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우울증'에 관한 책을 읽는다. 머리가 커서일까, 20대가 되면서 친구들이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해준다. 우울하다고. 반면,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기본이 행복감인 사람들도 있던것. 그 사람들은 이 책제목을 봐도 그냥 지나가겠지.. 책의 부제가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최선의 우울 - 이유없이 우울한 마음에 대하여"를 소개하려 한다. 무척 우울해보이는 책표지도 마음에 들어버렸넹ㅋ
자신의 실패를 툭 툭 털어놓는 이 책, 역시 쎄다. 작가 "이묵돌"을 필시 필명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작가의 모친이 또 찾아올 터. 연 끊을만도. 작가님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잘하신거라고. 나를 갉아먹는건 가족이 아니라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시길.
작가의 병원 상담 이야기를 읽으며, 세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것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맞아, 정신과 가면 진료기록이 다 남아서 입사에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는 괴담 나도 들었지, 끄덕끄덕. 근데 살아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드만~ 제정신 차리려고 병원가는거니, 옆에서 응원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문득.
최선의 우울, 책이 술술 잘 읽힌다. 내가 우울할 깜냥이 되는건가, 작가의 최선을 다하는 우울에 위로받는 시간이 된다. 작가님도 글쓰며 많이 위로되었길, 꽃길만 걷기를.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선의우울, #이묵돌, #일요일오후, #문화충전, #서평단모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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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멍하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는가? 죽고 싶은가? 잠이 오질 않는가? 나의 우울함의 정도를 재단할 수 없거나, 우울증인지 아닌지 모호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인간의 고통을 1부터 10까지로 점수를 매긴다고 했을 때, 나의 우울은 대체 어느 지점에 있을까. 숫자로 바꿀 수조차 없는 이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울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건지 극도로 우울한 자가 쓴 우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심장처럼 우울도 함께 지니고 살아가지만 우울을 감추어야한다는 강박에 누가 얼마만큼의 우울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영화 [조커] 에서는 정신질환을 겪는 주인공이 '정신질환의 가장 고통스러운 점은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한다는 것' 이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는 우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우울해보자고 말한다. 그런 하루가 있다고, 말없이 우울하고 싶은 기분이 들때가 자주 있다고. 시력 교정을 위해 안경을 쓰는 것처럼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으며 숨기지 않고 우울하다고 드러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날이 올때까지 최선을 다해 우울하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제목과 표지를 보았을때 꺼려졌지만 솔직하고 거침없는 작가의 글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우울, 번아웃, 아픈 마음에 대해 조언하는 수많은 책들 속에 가장 공감되는 책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사람들이 습관처럼 부추기는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들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끊고 자르고 떼어내고 제거하고 선을 긋는 일 같은 것들. 나날이 더 미워할 것들을 찾도록 만드는 바로 그 패턴 말이다.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은 내게 필요없다' 같은 논지들. 나 아닌 다른 이들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당신이 처한 문제를 한없이 단순화한다. … 당신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인류애를 상실하게 만드는 추악한 인간들의 면면이 아니다. 단지 이 부조리한 세상에는 그런 하루가.. 말없이 울고 싶은 기분으로 시작하게 되는 하루가 종종있다. 꽤 자주 있다.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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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 관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자 에세이 최선의 우울을 만나보았다. 작가는 이 책은 우울을 해결하는 단정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하며 말하며 위로받을 수 없을거라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작가는 우울에 관한 해결법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에세이의 주를 이루는 것은 작가 본인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와 우울에 관한 깊은 고찰들이다. 우울이라는 것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해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우울이라는 감정에 대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듯이 속 시원하게 표현해낸다.
작가는 인간의 우울을 상대적인 변화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그것을 미분에 빗대 표현한다. 어떻게든 우울할 구석을 찾아내고야 마는 인간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과 생각이 또 다른 방식으로 각자가 가진 우울에 위로가 되어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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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현 시대의 소비 트렌드를 알려주는 비즈니스 관련 서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인터넷이 아주 많이 발달하기 전과 비교하여 사람들의 활발한 인터넷 사용 전과 후로 나누어 소비 패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선 해당 물건에 대한 흥미를 느낀다. (이 단계는 인터넷 사용 전과 후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 혹은 가족의 필요에 의해 물건에 흥미를 느꼈다면 현대인들은 본인이 노출된 미디어에 의해 충동적으로 흥미를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건에 흥미가 생겼다면 이전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거나 구매하지 않았다. 상품에 대한 후기는 주변인들과 아름아름 나누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물건 구매 전 '검색'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다. 물건을 눈 앞에 두고 인터넷으로 그 물건에 대한 사용후기를 확인한다. 흥미 유발부터 물건 수령까지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 경우들도 많다. 그만큼 우리는 물건의 사용후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실제 그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이 업로드 해둔 상세한 후기를 참고하여 쇼핑을 한다. 그러니 후회막심 쇼핑의 경우의 수를 줄여줄 수 있다. (충동 구매가 아닌 이상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겪어보지 않은 경우 실제로 그 일을 겪어 본 사람들의 평가에 상당 부분 의존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비단 물건에만 해당된다고 생각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사람들의 그 '경험'이라는 것에 큰 비중을 둔다. 직접 경험만큼은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간접 경험도 아주 중요하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들을 전부 오롯이 경험할 수 있겠는가. 또 가끔은 나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도 분명 있다. 아마 '우울'이라는 것이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는 우울하면 시끄러운 노래를 들었다. 정신없는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다 보면 뭔가 우울함이 사라졌다. 그러다 조금씩 세상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우울할 때 조용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연주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고 가끔은 조용한 노래들 따라 부르며 눈물샘의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다.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라고 하지 않나.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면 뭔가 우울감을 떨치기에 편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린 시절 시끄러운 음악으로 나약한 정신을 달래던 그 때는 진정으로 우울했던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냥 잊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최선의 우울」의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우울한 심리를 상담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흔해빠진 조언을 조소한다. 여러 방면에서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절망의 심연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상태에서 허덕이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충고나 조언을 해줄 수 없다. 누구나 그런 말은 할 수 있다. "힘내세요.",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더 값진 거 잖아요.", "죽기엔 좋은 세상" 등등.
'자살'을 화두로 한 책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지금껏 심도있게 읽은 자살에 관한 책은 두 권이었다. 하나는 동생을 허무하게 강 아래로 보내버리고 난 후 그 형이 집필한 에세이 형식의 책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자살'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가 쓴 책이었다. 두 번째로 언급한 이 책의 경우에는 저자의 지도교수가 학위 논문의 주제로 '자살'을 권했고 어느 날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렇게 무거운 주제는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진정으로 그 속에 빠져본 사람만이 그 속 사정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무덤덤하게 그려내는 우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쩜 우울이란 녀석은 우리 모두에게 올 수 있는 또, 왔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버릴 수 있는 그런 녀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 최선의 우울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음.. 있을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이 책을 읽고 쫑쫑은 주관적인 견해로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